[2월 Theme] 2020 오늘의 영화 수상작 '기생충'은 '월드 시네마'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2월 Theme] 2020 오늘의 영화 수상작 '기생충'은 '월드 시네마'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 유지나, 전찬일, 손정순
  • 승인 2020.02.05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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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오늘의 영화' 좌담

손정순(이하 손) 안녕하세요? 오늘 좌담에는 ‘2020 오늘의 영화’ 기획위원이신 유지나, 전찬일 선생님을 모시고 국내외 영화의 현재와 미래를 짚어보고자 합니다. 대학에서 현장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시는 두 분을 좌담자로 모시게 되어 기쁩니다. 쿨투라(도서출판 작가)는 2006년부터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서 상영된 영화 가운데서 좋은 한국영화와 외국영화를 가려 엮은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를 발간해오며 독자들에게 많은 호평을 받았습니다.

15회 째를 맞는 2020년에도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를 엮기 위해 문화예술인과 영화평론가로 구성된 100명의 추천위원을 위촉하여 설문 조사를 실시하였으며, 그 결과 많은 추천을 받은 한국영화 11편과 외국영화 11편이 『2020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로 선정되었습니다.

특히 작년 2019년은 한국영화가 100년을 맞는 뜻 깊은 해였습니다. 한국영화 100년의 역사와 미래를 조명하기 위해 국내외에서 많은 행사들도 있었는데요, 무엇보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한국영화 100년의 쾌거로 ‘2020오늘의 영화’ 에서도 최고작으로도 뽑혔습니다. 먼저 두 분께 한국영화 100년을 맞이한 2019년 한국영화의 흐름과 의미를 여쭙고 싶습니다.

 

2019년 한국영화와 외국영화의 흐름

유지나(이하 유) 2019년은 3·1운동과 같은 해인 1919년 (10월 27일) 단성사에서 연쇄극으로 상영된 <의리적 구토>(혹은 <의리적 구투>)를 기점으로 삼는 ‘한국영화 100년’의 의미를 찾아가는 많은 기념행사들과 학술작업이 이루어진 한 해였습니다. 제가 참여한 ‘한국영화 100년: 과거, 현재, 미래의 만남’은 예술원 회원이신 원로감독님 다섯 분의 작품을 다시 보며 관객과 토론하는 현재 속의 과거를 영화적으로 되새기는 자리였는데요. 저는 임권택 감독의 <티켓>(1986) 상영과 토론회를 진행하면서 2019년 미투운동 이후 변해가는 세상에 대한 희망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일상화된 여성 매매춘 현실을 고발하려고 만든 <티켓>은 현재 리메이크해도 좋을 문제작입니다. 그런데 “<티켓> 뿐만 아니라 (101편에 달하는) 자신의 다른 영화들에서도 지금 생각해보면 떼어내고 싶은 장면들이 많다.”라는 임 감독님의 반성적 성찰은 한국영화 성장의 자양분처럼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그런 한국영화의 현재인 2019년은 “전반기엔 <기생충>, 후반기엔 <벌새>” 라는 대중담론이 형성될 정도로 세계영화제 수상 기록과 국내 상영의 호흡이 어우러지는 풍요로운 한 해이기도 했지요. 특히 여성서사에 주목해볼만합니다. 어린 시절 가정과 사회를 돌아보는 김보라 감독의 <벌새>, 여성의 욕망을 탐구하는 <윤희에게>, 이어 소설로 화제를 모으며 각색영화로도 흥행성공을 보여준 <82년생 김지영>과 같은 작품들은 한국사회의 젠더 감수성을 개척해나가야 할 미지의 영역이자 쟁점이라는 점을 예고해줍니다. 그런 점에서 2019년은 천만관객 돌파를 내건 흥행중심 영화기사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다양한 영화 제작과 상영문화의 공존이란 점을 깨우쳐준 한 해이기도 했습니다.

전찬일(이하 전) 유 교수님의 말씀에 저도 공감합니다. 저는 <기생충>의 기념비적 쾌거에 대해서는 충분히 거론된 만큼, 일단 넘어가겠습니다. <어벤져스:엔드 게임>과 <알라딘>, <겨울왕국 2> 3편의 외국영화와, <기생충>과 <극한직업> 한국영화 2편, 총 5편이 천만 고지를 넘었다는 것도 주목해야 할 성과였습니다. 특히 두 한국영화의 속내가, 17편에 달하는 그간의 천만 영화들과는 적잖이 다르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기에 모자람이 없습니다. 대중영화는 불쾌는커녕 불편하면 안 된다는 일종의 금과옥조를 무색케 하며 불편하다 못해 불쾌하지까지 한 <기생충>이 천만 선을 돌파했다는 사실, 제가 <기생충>의 기록적 성취에 더 놀라는 이유입니다. 이런 예는 시선을 세계영화역사로 확장해도 찾기 불가능합니다. 반면 영화적 완성도가 뛰어나다고 평하기 주저되는데도 <극한직업>은 1,600만을 넘어 <명량>에 이어 외국영화 포함 역대 흥행 2위 자리에 올랐습니다. 더욱이 <극한직업>은 전격적 코미디 영화로는 천만을 넘기 힘들다는 정설 아닌 정설을 깨고, 국산 코미디 영화의 새 장을 열었지요. 목하 한국관객이 가장 원하는 것은 웃음 코드, 거기서 비롯되는 일말의 위로·위안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7번방의 선물>도 코믹하긴 했으나, 그 영화는 최루성이 강한 휴먼 드라마이기도 해, <극한직업>처럼 본격 코미디로 분류하기는 곤란하다는 게제 생각입니다. 여하튼 이 두 영화의 천만 고지 등극은 우리나라 관객들의 외연과 내포가 그만큼 크고 깊다는 것을 뜻합니다.

한편 상기 천만 영화들은 날로 심화되고 있는 스크린 독과점 문제를 극명하게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최다 스크린 1,400여 개에 그친 <알라딘>을 빼고 나머지 영화들은 2천개 전후의 스크린 싹쓸이로 관객의 볼 권리를 침해했다는 등의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2천개에 근접했던 <기생충>도 예외는 아니었죠. 특히 <어벤져스: 엔드 게임>과 <겨울왕국 2> 두 편은 2,800개와 2,600개를 넘는 스크린들을 장악해, 이 땅의 스크린 독과점 문제는 더 이상 업계의 자율적 판단에 맡겨둘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증거했습니다. 문체부도 더 이상 방관할 수만은 없다고 판단했는지, 관련 대책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는 있지만, 그 대책이 과연 언제 어떻게 마련될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합니다. 워낙 업계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는 탓이겠죠. 결산이라고 하긴 그렇지만, 이 정도로 하겠습니다.

두 분의 말씀을 들으니 2019년은 그야말로 뜨거웠던 한국영화 100년의 해였음을 상기하게 됩니다. 2020 오늘의 한국영화는 <기생충>(봉준호)을 비롯하여 <벌새>(김보라), <82년생 김지영>(김도영), <엑시트>(이상근), <미성년>(김윤석), <증인>(이한), <윤희에게>(임대형), <강변호텔>(홍상수), <김군>(강상우), <생일>(이종언), <블랙머니>(정지영) 포함 총 11편이 선정되었는데요 이 11편을 제가 다 관람했다는 사실은 선정된 영화가 작품성과 대중성까지 모두 확보했다고 봅니다.

특히 작년 금강역사영화제에서 <김군>을 보고 소름이 돋았는데, 이 다큐영화가 11편에 들어갔다는 사실은 한국영화 독자의 높은 수준을 실감하게 됩니다. 김보라 감독의 독립영화 <벌새>는 작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관람했는데 이 영화는 개막을 하자마자 전석이 매진되었고, 상영이 끝난 뒤에도 객석에서 기립박수가 쏟아지는 등 해외 영화인들의 진심어린 응원과 기대를 한몸에 받았습니다. 저는 이 영화가 특히 좋았던 것은 유년시절에 대한 원형적인 감정에 깊게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벌새>는 ‘양성평등’이라는 주제로 개최된 69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청소년 영화들을 모은 제너레이션 포틴 플러스(14+)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는데요, 순간 너무나 감격적이었습니다. 이후 수많은 해외 초청과 수상으로 이어졌는데요, <엘에이 아시아 퍼시픽 필름페스티벌>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할 때에는 현지 김준철 특파원을 통해 본지에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김보라 감독의 <벌새>야말로 <기생충>과 함께 올해 최고의 화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늘의 외국영화는 <아이리시맨>(마틴 스코세이지)을 비롯하여 <조커>(토드 필립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쿠엔틴 타란티노), <결혼이야기>(노아 바움백), <두 교황>(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그린 북>(피터 패럴리), <가버나움>(나딘 라바키), <미안해요, 리키>(켄 로치), <겨울왕국 2>(크리스 벅, 제니퍼 리), <어벤져스: 엔드 게임>(안소니 루소, 조 루소), <경계선>(알리 아바시) 포함 총 11편이 선정되었습니다. 2019년 외국영화의 흐름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흔히 영화산업을 제작-배급-흥행, 이렇게 세 단계로 보는데 스마트폰 시대, 포노사피엔스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세계영화 지형도에서 이런 단계론이 진화하고 있습니다. 극장 시사문화는 비메오나 인터넷 서비스로 진화해가는 와중에 저만 해도 극장가기 빈도수가 줄고 넷플릭스나 인터넷 영화보기로 변해가는 중입니다. 실제로 넷플릭스 제작영화의 극장 개봉과 넷플릭스로 스트리밍 서비스 문제가 세계영화산업의 지형도를 바꾸는 중이고요. 중국과 북한에는 넷플릭스 장벽을 여전히 쌓고 있지만, 국경을 넘어선 영화산업은 스크린컬처를 주도하는 유튜브를 통해서도 일상문화로 접속하는 중인걸 절감하게 됩니다.

<로마>와 <두 교황>도 넷플릭스가 투자했는데요. 넷플릭스로 본 인상 깊은 작품이었습니다. 현재 시점에서 과거를 돌아보는 기억의 현재화, 즉 영화적 시간의 매력이 한 세기를 넘어선 세계영화사의 의미란 깨우침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과거의 거장으로 남지 않고 현역으로 활동 중인 마틴 스코세이지의 <아이리시맨>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개인과 집단, 그리고 사회, 범죄와 정치 등… 온갖 부조리한 결합과 그 상관관계를 카메라 시선으로 탐구해온 그의 내공을 세월의 흐름 속에서 감지하게 됩니다. 극장 개봉 독점 문제와 함께 인기를 끈 <어벤져스:엔드 게임>과 <겨울왕국 2>를 보면서 할리우드의 지속적인 시리즈 제작과 그 파장에 절감하기도 했습니다. 한 편만 보면 이해되지 않는 ‘어벤저스 시리즈’의 캐릭터 매력, 그리고 백마 탄 왕자 기다리는 수동적인 공주 이미지를 전복시키며 21세기 젠더정치학에 접속한 디즈니의 ‘겨울왕국 시리즈’ 가 그 증거인 셈이지요.

저도 외국영화와 연관해 특기할 사항은 넷플릭스 영화들의 선전이라고 봅니다. 2020 오늘의 영화 중 총 11편의 외국영화 가운데 3편이 그 세계 굴지의 스트리밍 서비스 기업이 투자·제작한 영화들입니다. 최우수 외국영화로 뽑힌 <아이리시맨>을 비롯해 <두 교황>, <결혼 이야기>가 그들입니다. 지난해에는 <로마> 한 편이었습니다. 더욱이 이들은 넷플릭스 서비스 전에 몇몇상영관에서 극장 개봉되기도 했으며, 두 달 가까이 장기 상영되기도 했습니다. 어떤 영화는 어쩌면 쿨투라 이번호가 나올 때도 어디선가 상영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예년에 비해서나 한국영화 전반과 비교해 ‘강추’하고픈 문제적 수·걸작들이 상대적으로 많았다는 것도 언급할 만한 흐름입니다. 그 증거들이 상기 11편의 면면인데, 개인적으로는 <아이리시맨>과 <두 교황>은 물론 켄 로치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 이후’인‘나, 리키 터너’ <미안해요, 리키>와, 극적 상상력의 끝을 제시한 스웨덴 영화 <경계선>, 미국의 야만성을 새삼 보여준, 2019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 <그린북>을 볼 수 있어 참 좋았습니다 .

늘 그랬듯 이번 11편 안에 들지 못한 수작들도 적잖습니다. “노년에 대한 관조”(김남석)가 돋보이는, 아흔 살의 노거장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주연의 <라스트 미션>을 필두로 2018 칸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어느 가족>의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프랑스의 보물 배우들 카트린 드뇌브, 줄리엣 비노쉬 등과 함께 빚어낸 소품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영화에도 밝은 (극)작가 최창근이 “너무나 슬프고 비참하게 아름다운 여성 성장영화”여서 “얼굴을 가리고 간신히 보았다”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아사코>,여우주연상(올리비아 콜맨)에 그쳤지만 작품상, 감독상 등 2019 오스카 레이스에서 9개 부문에서 후보에 올랐던,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등이 몇몇 예들입니다. 또한 <어벤져스:엔드 게임>과 <겨울왕국2>의 사례에서 드러났듯, 일부 외국영화들의 무분별하며 더 폭력적인 스크린 독점 이슈도 또 다시 한 번 짚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네. 2019년은 넷플릭스 영화들의 선전을 두 분 모두 짚어주셨습니다. 저는 이번 2020 오늘의 영화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작년 부산국제영화제를 뜨겁게 달구었던 넷플릭스 영화 <더킹: 헨리 5세>와 주연배우 티모시 샬라메가 생각납니다. 온라인 예매 1분 21초 만에 표가 전석 매진되자 현장표를 구하기 위해 밤을 지새운 관객들이 부산 영화의전당을 가득 메웠던 그 뜨거운 열기는 자못 감동이었습니다. <더킹>을 비롯한 올해 최고 외국영화로 뽑힌 <아이리시맨>과 <두 교황>, <99개의 노래> 등 넷플릭스 영화는 이미 대중영화속으로 깊숙이 침투해 세계 영화의 흐름을 주도해나간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2020 오늘의 영화' 수상작으로 선정된 2019년 한국영화 최고작,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대해서도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최근 미국에 다녀오신 유 교수님께서 먼저 말씀해 주시지요.

 

2020 오늘의 영화 최고작 <기생충>과 <아이리시맨>

<기생충>은 영화제를 통한 작품성 인정과 국내 및 해외상영에서 모두 성과를 이룬 2019년 한국과 세계의 대표적인 영화가 되었습니다. 2019년 말, 한 시민단체 모임에서는 2019년 한류결산으로 <기생충> 특강을 퍼즐 맞추기 같은 봉준호식 암호 풀기 장르영화로 분석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봉준호 영화야말로 “아는 만큼 보인다” 라는 말을 절감케 했다는 소감을 전해주는 분도 있었습니다. 연말연시에 다녀온 미국에서도 개봉중인 <기생충>에 대한 의견을 나눌 기회가 많았습니다. 한국관객은 가난한 가족을 위선적으로 그려낸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국에서 학력과 계급관계는 어떤 것인지 등등… <기생충>을 둘러싼 대화를 하면서 봉준호의 블랙유머가 코미디보다 더 재밌는 풍자효과로 작동하는 길은 세계에서도 통하는 점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기생충>은 ‘바퀴벌레 에피소드’가 등장하는 그의 아카데미 졸업작 <지리멸렬>에서도 이미 예고된 셈이죠. ‘기생충’ 벌레는 〈설국열차〉에도 피지배층의 양식인 양갱의 재료이자 상징기호이기도 합니다. 그런 ‘기생충’은 드디어 영화 제목이 되어 계급구조적 문제를 수저론에 기생하는 인물들로 재현되어 세계적 현상이기도 한 계급갈등의 메타포로 풍부한 의미 작용을 해낸 것으로 보입니다.

맞습니다. 한 영화가 거둘 수 있는 성공은 흥행 성적으로 드러나는 대중적 호응, 영화제 및 영화상을 통한 인정, 그리고 비평적 평가에 이르기까지 크게 세 채널에 의해 이뤄지는데, <기생충>은 최상의 결실을 일궈냈습니다. 빈말이 아니라 125년을 맞이한 세계영화 역사에서도 그 예를 찾질 못하겠습니다. 대한민국 영화의 국제적 위상이 그만큼 더 제고됐음은 두 말할 나위 없지요. 100주년을 맞이한 한국영화로서는 더 이상의 유의미하고 큰 선물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 새삼 역설하고픈 것은 <기생충>의 영화적 완성도 수준입니다. 상대적으로 해외에 비해 국내에서 <기생충>에 대한 평가가 저조·인색한 편인데, 이유인 즉슨 영화가 불편·불쾌해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관련해 일찍이 써 다른 지면에 발표했던 리뷰(<기생충>, 가족 희비극을 넘어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역대급 완성도의 문제적 걸작)의 일부를 옮기는 걸로 대신합니다.

“다름 아닌 ‘봉준호’가 ‘역대급 완성도’로 빚어낸 ‘가족 희비극’이란 사실이 한국영화로는 사상 최초로 <기생충>이 올 제72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우선적 변수였다.(…)더욱이 가족 드라마는 칸이 전통적으로 선호해온 장르 아닌가.(…) ”

완성도에서 <기생충>은 흠잡기 쉽지 않다. 연기부터 말하면, 상기 주조연만이 아니다. 기택의 아들 기우 역 최우식은 ‘발견’에 값한다. 극중 비중은 상대적으로 작아도 기정 박소담은 빛을 발한다. 그 빛은 박사장의 딸 다혜, 아들 다송 역 정지소, 정현준에게서도 뿜어 나온다. 10명에 달하는 주조연이 제몫을 100% 이상 완수하면서, 이름을 얻는데 성공한다. 성격화(Characterization)의 맛은 어떤가. 캐릭터들의 성찬이다. 플롯의 정교함이나 완급 조절은 비교의 예를 찾기 쉽지 않다.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2000) 정도? 혼성적이면서 자기반영적(selfreflexive)인 장르 세공력도 압도적이다. 요즘 말로 융·복합 장르의 교과서라 할만하다. 강렬한 계단 이미지 등 공간 및 걸출한 음악 효과 등 사운드 연출 솜씨 또한 역대급이다….

이와 같은 덕목들로 <기생충>은 내러티브는 물론 시·청각적 재미와, 페이소스 머금은 정서적 감흥, 불쾌감을 곁들인 지적 자극에, 일말의 교훈까지 선사한다. 공생·상생이 제아무리 중요하다 한들 그 과정, 즉 그 수단·방법이 정당해야 한다는 ‘봉준호식 윤리’다.”

두 분의 이야기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세계를 압축파일로 읽는 것처럼 명징하고 스릴이 느껴집니다. <기생충>의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은 한국영화사에 새 흐름을 만드는 이정표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2019년 외국영화 최고작으로 뽑힌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아이리시맨>에 대한 생각은어떠신지요?

<비열한 거리>와 <택시 드라이버>… 그 후 미국영화사 다큐를 거쳐 여전히 부조리한 현실 관찰과 고발담처럼 작품을 만들어 온 스코세이지 감독은 <대부>의 이면을 보여주는 것만 같습니다. 범죄를 단속하고 처벌해야 할 정치, 그러나 더 큰 세력으로 군림하고픈 욕망 속에서 정치와 범죄는 뫼비우스 띠처럼 하나가 되어 돌아갑니다. 그런 세상을 깊이 들여다보는 감독의 시선은 200여 분에 걸친 긴 러닝타임을 영화적 시간의 매력으로 변화시켜 나가는데요. 특히 가난과 고통, 범죄와 싸움으로 점철된 프랭크라는 주인공 캐릭터의 분석은 감독의 연륜이 묻어나는 미장센 효과와 더불어 그 미학을 절감하게 해줍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홀로 왔다 가는 나그네 같은 인생길에 관한 성찰처럼 보이기도 한다고 할까요. 전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보셨나요?

평가에 앞서, 마틴 스코세이지 같은 이른바 ‘영화광 세대’의 대표적 거장이 넷플릭스로부터 받은 돈으로 연출했다는 사실이 안겨주는 일말의 당혹스러움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함의는 봉준호의 <옥자>와는 또 다릅니다. 결국 그 거장도 1억 6천만 달러에 육박하는 거액에 ‘투항’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한데요. 여느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이 허용치 않는 재량권을 만끽할 수 있다는 명분으로….

 <아이리시맨>이 2019년의 최고 외국영화로 선정된 주된 이유는 감독의 명성 덕분일 거라는 데는 이의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영화가 스코세이지 필모그래피의 정상에 위치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2007년 79회 아카데미영화상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편집상 4관왕에 오른 <디파티드>보다는 더 높이 평가하는 것은 사실이나 말입니다. 아십니까? <디파티드>가 아카데미 회원들이 스코세지이에게 감독상을 안겨준 유일한 경우라는 것을? 결국 보수적이기로 악명 높은 그들은 미국 최고 거장의 최고작들을 홀대·외면해왔던 것입니다. 가령 1976년 칸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걸작 <택시 드라이버> 적엔 감독상 후보에조차 올리질 않았습니다. 작품상, 남우주연상(로버트 드 니로), 여우조연상(조디 포스터) 등은 후보에 올려놓고도 무관의 치욕을 안겼습니다. <분노의 주먹>(1980) 때도, <좋은친구들>(1990) 때도 후보엔 올렸으나 빈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럼에도 <아이리시맨>은 거장의 건재를 천명하는 문제작임엔 틀림없습니다. 영화의 주제·소재는 말할 것 없고 드라마의 서사적 야심,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 조 페시에 이르는 스코세이지의 세 페르소나들을 한데 동원한 위대한 출연진 등에서 <대부>와 <워터프론트>를 떠올리는 거작. 여로 모로 노거장의 결산적 문제작으로 손색없다고 봅니다.

2020 오늘의 영화 최고작에 대한 두 분의 말씀을 듣다보니 영화로써 동시대 문화의 중핵을 가로지르는 느낌이 듭니다. 작년 칸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의영화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요. 칸에서 개막부터 폐막까지 수상 소식을 기다리며 두근거렸던 기분을 떠올리면 지금도 설레기도 하고 전율 비슷한 것이 느껴집니다. <기생충>의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과 기타 해외영화제에서의 다수 수상에 대한 의미를 어떻게 바라보시는지요? 칸영화제를 열아홉 번이나 다녀오신 소위 칸영화제 전문가라고도 할 수 있는 전 선생님께서 답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흐흐흐. 손 대표께서 칸영화제 전문가로 불러주니 싫진 않네요. 일찍이 한국영화 100주년 쿨투라 연재 ‘한국영화사의 전환점 10’에서 “한국영화와 아시아영화는 물론, 나아가 세계 영화사의 어떤 흐름을 뒤바꿀 역사적 쾌거!”라고 했던 진단을 옮겨보면 어떨까요. “혹자는 지나친 과장이요 사대주의적 호들갑이라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 반문은 하지만 세계 영화역사에서 칸영화제가 차지해 온 위상·권위를 잘 모르고 던지는 것일 공산이 크지요.

프랑스 누벨바그의 총아 프랑수아 트뤼포가 27세의 ‘어린 나이’에 <400번의 구타>로 1959년 칸 감독상을 거머쥐고, 1960년 페데리코 펠리니가 <달콤한 인생>으로 황금종려상을,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가 <정사>로 심사위원상을 (이치가와 곤의 <열쇠>와 공동) 수상하며 ‘현대 영화’(Modern Cinema)의 문을 활짝 연 이래 줄곧, 세계 영화사의 지형도는 사실상 칸영화제에 의해 그려져 왔기에 내리는 진단입니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그동안 미국 영화는 물론 세계 영화계의 중심에 위치해왔다면, <펄프 픽션>이 1994년 칸 황금종려상을 안은 덕택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이제 그 무게추는 타란티노에서 봉준호로 전격 이동될 게 틀림없습니다. 그 잘 난, 하지만 특유의 게으름과 서구 우월주의에 물들어 한국영화를 우습게 봐왔던 보수적 영화역사가들도 더 이상 봉준호의 영화들을, ‘내셔널 시네마’로서 한국영화를 홀대하지 않고 본격 연구하게 될 터.” 이런 마당에 나머지 해외 영화제 등에서의 수상에 대해 굳이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요.

역시 칸영화제 전문가다운 명료한 답변입니다. 전 선생님의 (<기생충>이) “한국영화와 아시아영화는 물론, 나아가 세계 영화사의 어떤 흐름을 뒤바꿀 역사적 쾌거!”라는 일축에 저 또한 동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골든글로브 수상과 더불어 아카데미상 수상 유력후보에 오른 것에 대한 의미도 듣고 싶은데요…

네. 골든글로브도 그렇고 아카데미도 그렇고, 유럽권에 비해 그동안 무시 받아오던 미국 영화계로부터 공인받는다는 의미는 한국영화의 세계적 위상 제고에 결정적 기여를 하리라는 것은 자명합니다. 수상 결과에 따라 상기 역사적 쾌거는 오는 2월 9일(현지 시간)에 열릴 아카데미시상식을 기해, 나아가 그 이후까지도 한동안 계속 진행될 것입니다. 그야말로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은 한국영화를 넘어 ‘월드 시네마’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래저래 <기생충>은 역사적 걸작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세계 영화사의 어떤 무게추를 ‘봉테일’로, 한국영화로, 아시아 영화로 상당 정도 이동시키면서…….

 

2020년과 미래의 영화에 대한 전망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월드 시네마’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기생충>을 넘어 마지막으로 두 분께서 바라보는 2020년, 그리고 미래 100년의 한국영화와 외국영화에 대한 전망을 들려주십시오.

4차 산업혁명 여파로 어느 때보다 급변하는 일상적 현실 속에서 AI와 결합된 공생의 길을 모색하는 작업은 세계영화에게 주어진 과제이기도 합니다. AI를 도입한 다양한 영화작업이 이미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를테면 AI 스토리텔링 코드라든가, 유튜브에서 제작, 유통되는 짧은 영화영상 등이 그렇습니다. 이런 시대에 영화평론 형태도 변하고 있습니다. <세계영화사(들)> 다큐에서 한 세기 영화사를 관찰하며 “영화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여자와 총”이라고 다양한 자료로 반복했던 고다르의 총평은 오히려 커다란 빈틈을 암시해줍니다. 적어도 젠더적 감수성에서 주제와 형식을 창조해낼 여지는 미지의 장으로 열려있지요. 주체적인 여성캐릭터, 여성 서사, 다양한 성차와 존재방식, 그에 따른 다양한 관계방식을 본격적으로 개척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N포세대가 욜로족으로 진화해가는 창의성이 영화영상 세계에서 만발하는 희망을 가져보기도 합니다 .

4차 산업시대의 AI와 결합된 공생의 길을 짚어주신 유 교수님 말씀에 깊이 공감하며 저는 한국영화의 고질적 특징인 ‘빈익빈부익부 현상’은 한 층 더 심화될 게 틀림없다고 바라봅니다. 그것은 대작 위주의 흐름이 지속될 것이라는 의미인데요. 그와 병행해 그 고질병에 대한 저항도 덩달아 커질 것입니다. 그에 발맞추기라도 하듯 <82년생 김지영>이나 <생일> 같은 중간급 예산 영화들과, <항거:유관순이야기> 같은 저예산 영화들처럼, 뜻 있는 시도와 성공 사례들이 늘어나는 방향으로 가리라고 조심스레 전망해봅니다. 그리고 <기생충>과 봉준호 신드롬은 2020년 내내 전 세계를 여전히 강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지금으로선, 한국영화의 향후 100년을 그릴 자신은 없습니다. 다만 잘 나가는 몇몇 스타급 감독에만 집중하기보다는 미래의 인재 감독들을 발굴하고, 그들을 지속적으로 지지하는 시스템이 갖춰지길 바랄뿐입니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영화판을 잠식하고 있는 메이저 투자배급사와 감독들 간의 ‘직거래’는 최대한 지양되고, 일찍이 1990년대 한국영화를 이끌었던 명 제작자 시스템이 다시 정착되기도 바랍니다. 2020년대 한국영화의 흐름은 판단컨대 2010년대의 연장선상에서 국내외적으로 크디 큰 변화를 맞게 되겠지만, 한국 관객들의 영화사랑은 여전할 게고, 국제적 위상은 한층 더 올라갈 것이라고 봅니다. 봉준호와 <기생충>을 기점으로 한국영화들의 미국 입성 기회가 점차 증가할 테니까…….

긴 시간 동안 국내외 영화에 대한 전체적인 흐름과 총평을 해주신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빛나는 좌담은 세계 영화사 안에서 한국영화 100년의 지형도를 그려내는 소중한 작업이 될 것입니다. 더불어 앞으로 펼쳐질 한국영화의 위대한 100년은 새로운 희망의 100년을 꿈꾸게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고맙습니다.

 

2020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한국영화 2020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외국영화

★ <기생충> (봉준호)
★ <벌새> (김보라)
★ <82년생 김지영> (김도영)
★ <엑시트> (이상근)
★ <미성년> (김윤석)
★ <증인> (이한)
★ <윤희에게> (임대형)
★ <강변호텔> (홍상수)
★ <김군> (강상우)
★ <생일> (이종언)
★ <블랙머니> (정지영)

★ <아이리시맨> (마틴 스코세이지)
★ <조커> (토드 필립스 )
★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쿠엔틴 타란티노)
★ <결혼이야기> (노아 바움백)
★ <두 교황>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 <그린 북> (피터 패럴리)
★ <가버나움> (나딘 라바키)
★ <미안해요, 리키> (켄 로치)
★ <겨울왕국2> (크리스 벅, 제니퍼 리)
★ <어벤져스: 엔드 게임> (안소니 루소, 조 루소)
★ <경계선> (알리 아바시)

 

 

* 《쿨투라》 2020년 2월호(통권 6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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