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Theme] 기적은 아니지만 기적처럼 느껴지는
[2월 Theme] 기적은 아니지만 기적처럼 느껴지는
  • 허희(문학평론가)
  • 승인 2020.02.05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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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오늘의 소설' 수상작 「완벽한 생애」의 조해진 작가 인터뷰


편지하기—새로운 이해와 오해를 위하여
 기적은 아니지만 기적처럼 느껴지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예상치 못한 누군가에게 받는 편지가 그렇다. 편지를 읽기 전에는 놀라움과 의구심이 든다. 그는 내게 왜 편지를 보냈을까? 그가 편지를 보낼 정도로 과연 우리가 친했던가? 편지를 읽은 후에는 복잡한 감정에 휩싸인다. 거기에는 편지를 보낸 사람의 생각과 마음이 겹겹으로 담겨서다. 편지는 그것을 받은 사람과 쓴 사람—두 가지 입장의 이해와 오해를 하도록 만든다. 오해 없는 이해, 이해 없는 오해는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상치 못한 누군가에게 받는 편지는 언제나 기적처럼 느껴진다. 우리의 인연이 영영 끊어졌던 것이 아니라, 알게 모르게 계속 연결돼 있었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되니까. 덕분에 나와 당신은 새로운 이해와 오해를 통해 다시 자리매김한다. 이토록 커다란 변화를 어떻게 기적처럼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
 이런 면에서 독자에게 늘 먼저 편지를 보내는 작가가 조해진이다. 그의 소설 속 인물들도 편지를 쓰거나 읽는다. 단편 「산책자의 행복」(『빛의 호위』, 창비, 2017)이 그렇지 않나. 중국 유학생 메이린은 이메일을 쓰고 이를 철학과 강사였던 홍미영이 읽는다. 홍미영은 메이린에게 답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홍미영은 부치지 않았을 뿐 메이린에게 수많은 편지를 쓴 것이나 다름없다. 메이린의 편지를 매개로 홍미영은 그와 자신에 대한 이해와 오해를 거듭해가기 때문이다. 「완벽한 생애」(『자음과모음』, 2019 여름호)도 마찬가지다. 홍콩에서 영등포로 온 시징과 영등포에서 제주로 떠나는 윤주의 연결고리는 편지—이메일과 메모다. 윤주가 집에 남긴 메모를 본 시징이 재차 이메일을 쓰지 않았다 해도, 이들의 관계가 단절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지 않다면 이 작품에서 단 한 번도 만나지 않는 시징과 윤주의 삶이 나란히 서술될 리 없을 테니까.

 

“「완벽한 생애」도 그래요. 이 작품은 외따로 떨어져 있지 않은 두 세계의 신념, 그리고 사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윤주는 자기가 남긴 메모가 시징에게 어떤 파장을 끼칠지는 몰랐을 거예요.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시징의 삶은 그 메모의 간접적인 영향을 받게 돼요.”


절망하기—희미한 희망을 위하여
 “떨어져 있는 두 세계가 접점을 이루는 순간이 어쩐지 저는 좋더라고요.” 조해진은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그의 소설에는 이편과 저편, 예컨대 한국(인)과 외국(인)이 조우하는 장면이 유독 많다. 그러니까 두 세계가 분리된 듯 보여도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진실, 모든 개체는 함께 존재한다는 그 이유만으로 서로 무관할 수 없다는 믿음을 조해진은 지금까지 지켜왔다. “「완벽한 생애」도 그래요. 이 작품은 외따로 떨어져 있지 않은 두 세계의 신념, 그리고 사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윤주는 자기가 남긴 메모가 시징에게 어떤 파장을 끼칠지는 몰랐을 거예요.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시징의 삶은 그 메모의 간접적인 영향을 받게 돼요.” 두 세계의 신념, 그리고 사랑은 어떻게 구현될까.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지만,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면 할수록 결핍을 느끼는 인물들의 모습으로 그려져요. 그런데 이들은 그대로 여기에 멈춰 있지만은 않아요. 조금씩이라도 나아가려는 의지로 공명합니다.”

 


 이것은 예전 한 인터뷰에서 조해진이 했던 답변—어쩌면 절망이 더 쉬운 선택일지도 모른다고 했던 발언을 염두에 둬야 할 테다. 그렇다고 조해진은 무책임한 낙관으로 소설을 끝맺는 작가가 아니다. 그가 제시하는 희망은 찬란하게 빛난다기보다 희미하게 아른거린다. 오히려 그래서 미덥다. 조해진은 성마르지 않다. 자신이 쓴 소설 문장과 똑같이 그는 한 마디 한 마디 신중하게 말을 골라 대화에 임했다. 조해진은 사건의 여러 가지 면을 고려해 충분히 검토한 뒤 모두에게 상처가 되지 않는 답을 내놓으려는 사람이다.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오래 전부터 가졌던 짐작은 이번 만남으로 한층 굳건해졌다. 희미하게 아른거리는 희망을 소설로 쓰기 위해 조해진은 대부분 서사를 인물들의 절망을 다각도로 조명하는 데 할애한다. 단순하게 보면 「완벽한 생애」에서 윤주는 직장을 그만둠으로써, 시징은 은철과 헤어짐으로써 절망에 빠졌다고 할 수 있으리라.

과거에 그가 썼고 현재에 그가 쓰고 있으며 미래에 그가 쓸 소설은, 내용이 무엇이든 그가 소망하는 ‘완벽한 생애’를 사는 데 소용될 테니까. 아마 상처투성이 인생이겠지.

돌아보기—혁명 이후의 혁명을 위하여
 한데 세밀하게 보면 그렇지 않다. 윤주의 퇴직과 시징의 이별에는 또 다른 사정이 있다. 앞서 조해진이 언급한 대로 그들은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면 할수록 결핍을 느끼는 상태에 처해 있었으니까. “윤주와 시징만이 아니에요. 미정과 은철도 비슷해요. 각자 소중한 것을 붙잡으려고 하지만 본인의 바람대로 잘 안 되는 거예요. 바꿔 말하면 그것은 순수했던 시작이 왜곡돼가는 과정이기도 해요. 그렇기 때문에 그 흔적을 잊지 말고 더듬어봐야 하는 것이고요.” 가령 혁명이라 명명된 것이 발생했다고 그 혁명의 기치가 실현됐다고 할 수 있을까. 이것은 우리가 온전히 겪어냈다기보다 우리를 잠시 스치고 지나가버린 것은 아닐까. 여전히 이곳에는 비가시적인 폭력이 남아 있지 않은가. 이를테면 윤주의 괴로움은 올바른 대의가 회복됐다고 여겨지는 바로 그곳에서 비롯된다.
 “그런 문제의식은 작년에 발표한 「경계선 사이로」(『너의 빛나는 그 눈이 말하는 것은』, 창비, 2019)라는 단편에도 담겨 있어요. 신문사 파업 기간 채용된 기자들이 파업이 끝난 다음 맞닥뜨리게 되는 현실이요.” 그 소설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삼십육점사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수습기자로 채용되자마자 정작 수습기간도 없이 바로 실전에 투입되어 많은 양의 기사를 써야”했던 연진이 예감하는 미래다. “선배들이 해고무효소송에서 승소하여 신문사로 돌아온다면, 그때 연진의 위치와 좌표는 배제의 유용한 근거가 될 것이고 연진에게는 두 가지 길이 주어질 터였다. 알아서 신문사를 떠나거나 송구한 죄인으로 연명하다가 그리 멀지 않은 시점에서 정리되거나.” 파업에 동참한 사람들이 연진 같은 인물을 부역자로 낙인찍기는 쉽다. 하나 그리 하는 처사는 자기 반대편에 서 있던 사람들의 방식을 비판 없이 답습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빚어내기—완벽한 생애를 살기 위하여
정치적 정당성의 가치가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정당성의 가치를 실천으로 전환하면서 오류가 생길 수 있다는 뜻이다. 누군가는 이를 불가피한 희생이라고 하겠지. 그 정도의 억울함은 어쩔 수 없다고. 그러나 이런 관점과 발화가 소설가의 것일 수는 없다. 적어도 조해진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는 불가피한 희생과 그 정도의 억울함이라는 수사법에 감춰진 무심한 잔혹성을 인지하여 소설로 써내는 작가다. “그래서 이 소설의 ‘완벽한 생애’라는 제목이 더욱 아이러니하게 받아들여질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간주하는 완벽한 생애는 흠결 없이 한 번에 만들어진 매끈한 공 같은 것이 아니에요. 찰흙으로 빚어낸 울퉁불퉁한 구에 가까울 거예요. 후회와 고통의 담긴 생애야말로 완벽할 수 있다는 역설이 이와 같은 제목에 깃들기 바랐어요.”


 그리하여 조해진은 「완벽한 생애」에 아쉬운 점이 있다고 했다. 서울에서 시민운동을 하다 제주로 내려간 미정의 삶이 부분적으로만 드러나서다. 조만간 이 작품을 경장편으로 개작할 계획을 품고 있다고문답 말미에 그는 덧붙였다. 역시 그렇구나 싶었다. ‘완벽한 생애’를 묘파하는 조해진의 작업이 이쯤에서 마무리될 리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꼭 이 소설을 잇는 작품이 아니라 해도 나는 납득했을 것이다. 과거에 그가 썼고 현재에 그가 쓰고 있으며 미래에 그가 쓸 소설은, 내용이 무엇이든 그가 소망하는 ‘완벽한 생애’를 사는 데 소용될 테니까. 아마 상처투성이 인생이겠지. 당연히 그것은 상처 없는 인생보다 완벽할 테고. 기적은 아니지만 이것은 기적처럼 느껴지는 일 중에 하나다. “나의 잘못이 아니었다고, 아무도, 그 누구도 잘못한 건 없다고, 그 말이면 사는 게 더 이상 무섭지는 않을 거”라는 「완벽한 생애」의 결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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