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신중현 5] '아름다운 강산'이여
[아티스트 신중현 5] '아름다운 강산'이여
  • 장석원(시인·광운대 교수)
  • 승인 2020.02.05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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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이다. 단 한 순간도 멈춤이 없었던 시간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속에서, 어제와 오늘의 차이가 과연 무엇인지, 어제는 2019년이고 오늘은 2020년이라는 구분이 가능한 것인지, 생각해본 경우는 많지 않다. 인간은 시간을 인식하기 위해, 적당한 분절 기준을 만들어냈고, 그것 중의 하나에 따라, 드디어, 새로운 한 해가, 2020이라는 숫자로 표기되어 우리에게 당도했다. 어제의 해는 어둠에 먹히고, 오늘의 해가 흑암을 찢어내고 솟구치는 첫새벽에 저마다 부푼 희망을 품게 되는 시절이다. 엄혹한 겨울을 쇄빙선처럼 가르고 다가오는 새로운 1년 앞에서, 상승하는 태양 같은 음악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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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음악은 불가사의하다. 그 무엇도 예측할 수 없다. 전후 저개발 약소국 대한민국에서 ‘불가능’의 ‘불’을 떼어내고, 예술에 불을 질러버린 작품이 여기에 있다. 우리는 10분 후에 이런 단어를 떠올릴 것이다. 격동, 환희, 감동, 예찬, 아름다움…… 언어의 부질없음에 허무를 맛본다. 걸작을 창조한 예술가에게 붙이는 칭호’ 천재라는 단어의 무의미함. 소용없는 말에 불과하다. 언어가 음악 때문에 증발하는 경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침묵을 지키는 것. 말하지 않는 것이 경의를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일 때도 있다.

그리하여, 이것은 다른 음악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된다. 시간과 공간이 점으로 응축한다. 침묵 속에서, 검은 점이 흡입한 음악을, 소리가 사라진 고요 속에서, 신중현의 음악을, 이미지로 변환한다. 이것은 공간을 점유하는 물리적 소리로 표현되는 음악이 아니다. 이것은 어둠을 상감(象嵌)하는 순수한 이미지일 뿐이다. 이것은 소리 없는 음악이다.

기관, 엔진, 심장. 가슴에 음악이 박혀 있는 나를 싣고 폭주하는 디젤. 풍경이 압착된다. 나무가 눕는다. 언덕이 내려앉는다. 강물이 일어선다. 하늘 밑바닥이 벌어진다. 활주하다가 이륙한다. 날개도 없는데 로켓처럼 창공을 찌른다. 비행운(飛行雲)을 만드는 나의 피. <아름다운 강산>의 질주. 활강하는 건반 선율에 올라타고 나는 상승 상승 상승 그리고 중단 없는 하강. 영원한 회귀. 음악의 대지로 돌아간다. 나는 사라질 것이다. 나는 파열할 것이다. 눈물방울 떨어진다. 호흡이 끝난다. 나는 빙결된다.

드넓게 펼쳐진 설원(雪原)의 끝. // 붉고 거대한 오함마가, 지상으로 침몰하고 있었다. // (……) // 철의 사나이가, 대지 위에 누워 구소련(舊蘇聯)처럼 지워지고 있었다. // 묵직한 해머처럼 / 침묵한 채 // (……) // 보아라, 사나이는 의식의 흐름 끝에서 붉게 녹슨 거대한 보일러를 만난다. // 그 순간, / 사나이의 의식의 흐름이 증기처럼 뜨거워지고 / 사나이가 강력한 기관처럼 가동되기 시작할 때 // 사나이는 붉게 녹슨 거대한 철의 바퀴를 굴린다. / * / 눈보라 속……증기기관차처럼 국경을 달리는 사나이여, / * / 대륙횡단철도처럼 의식의 흐름 끝에는 국경이 없으므로 / * / 그 노동을 상상하는 철의 상상력으로…… / * / 한 인간을 상상하는 철의 견인력으로…… / * / 나는 이 불가사의한 땅 끝까지 덜컹덜컹 끌려왔으므로
― 조인호, 「설국열차(雪國列車)」 부분(『방독면』, 2011)

환상 같은, <아름다운 강산>을 껴안았을 때, 내가 느꼈던 감정. 10분 동안 영원히 펼쳐지는 음악. 무한한 공간을 유한한 시간의 몸통 안에 응축해놓은 음악이 대지의 이미지를 뿜어낸다. 광활하다. 측정할 수 없는 에너지, 끓고 있는 용암 같은 힘…… 중력을 삭제하고 속도를 배가하는 이미지 때문에 도달한 혼돈. 이 음악은 횡축을 산정하지 않는다. 높이와 깊이를 뭉갠다. 영구동력기관이 된다. 청자의 심장 박동이 된다. 이것은 망막에 새겨지는 함성이다. 빛을 삼켜버리는 음악.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침묵에 빠진다. 음악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나는 증발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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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으로 돌아간다. 붉은 광주. 그날의 이 나라에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강산>. 우리는 찢어진다. 우리는 박피된다. 우리는 선혈이 되어 흩뿌려진다. 휘날리는 만장보다 아름다운 음악. 3분 즈음에 들려오는 금관(金管)의 날갯짓. 박차처럼 반짝거리는 리듬이 왜 나에게는 공수부대의 발걸음으로 들릴까. 나는 1980년 버전 <아름다운 강산>이 껴안은 예술의 비극적 운명을 응시하고 있다. 키보드 선율의 확장적 움직임이 공시성(共時性)을 불러오는 것 같은 착각. 음악이 현존하는 이 순간의 나에게로, 그때 울려 퍼지던 그 곳에서 출발한 음악이 1980년에서 2020년으로, 웜홀을 통과하여 점프하여 세차게 달려든다. 이곳은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곳.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의 이 나라는 <아름다운 강산> 때문에 아름다워진 곳.

하늘은 파랗게 구름은 하얗게 실바람도 불어와 부푸는 내 마음 나뭇잎 푸르게 강물도 푸르게 아름다운 이곳에 내가 있고 네가 있네 손잡고 가보자 달려보자 저 광야로 (……) 우리는 이 땅 위에 우리는 태어나고 아름다운 이곳에 자랑스런 이곳에 살리라 찬란하게 빛나는 붉은 태양이 비추고 하얀 물결 넘치는 저 바다와 함께 있네 그 얼마나 좋은가? 우리 사는 이곳에 사랑하는 그대와 노래하리 (……) 봄 여름이 지나면 가을 겨울이 온다네 아름다운 강산
― <아름다운 강산> 부분

1972년의 시대 상황을 견주어 볼 때, 텍스트의 내용이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가. 정말로, 가사대로, “얼마나 좋은” 시대냐고 노래 부를 수 있었던 때인가. 아니다, 아니다. 이 음악은 찬양가가 아니다. 정반대이다. 박정희 정권의 강압을 거부하고 이 작품을 작사 작곡한 신중현의 의도를 우리는 쉽게 알아챌 수 있다. ‘너’의 나라가 아니라 ‘우리’의 나라가 지닌 아름다움을 신중현은 표현하려고 했을 것이다.

독재자의 나라가 아니라 국민의 나라. 이 땅에 사는 사랑하는 ‘우리’들의 삶이 펼쳐지는 나라. 사랑하는 사람들이 건설한 우리들의 나라가 아름답고 아름답다.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이곳이 “아름다운 강산”이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땅의 평화와 번영이여, 영생하라 아름다운 강산이여. 신중현의 외침이 들려온다. 그의 가사는 문학적 읽기의 대상이 아니다. 그의 언어는 음악의 부분이다. 음악에서 분리될 수 없다. 빛이 되는 음악 그리고 빛고을…… 1980년 그날의 이 나라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리라.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희망과 다짐으로 바뀌는 음악. 1972년에 그랬듯이, 1980년의 역사를 껴안고 마는 <아름다운 강산>의 운명. 나는 이 작품을 평가하는 데 쓰이는 형용사 ‘훌륭하다’를 폐기한다. 내가 껴안고 있는 단어는, 다시, ‘아름답다’이다. 시대와 예술의 관계 그리고 예술의 운명과 <아름다운 강산>의 아름다움 그리고 이 땅의 아름다움 그리고 한 편의 시.

발바닥이 다 닳아 새 살이 돋도록 우리는 / 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 숨결이 다 타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는 / 우리의 하늘 밑을 서성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 (……) // 우리는 우리의 삶을 불 지필 일이다. / 우리는 우리의 숨결을 보탤 일이다. // (……)
― 조태일, 「국토 서시」 부분(『國土』,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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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현이 작사 작곡한 <아름다운 강산>. 1972년(신중현과 더 멘)과 1980년(신중현과 뮤직 파워)의 두 곡. 80년 리메이크 버전은 원곡보다 밝고 가볍다. 신중현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빠 빠 빠 빠밤 빰 빠밤~’ 이선희 버전 리메이크 곡 때문에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브리지 부분이 들려온다. 키보드와 관악의 조화 속에서 귀를 잡아채는 베이스. 시간의 수면 아래에서 잠항하는 베이스 위로 가사와 여성 코러스가 흐른다. “끝없이 다정”하게 다가왔다가 “파랗게” 멀어진다. 하늘에 떠 있는 선명한 구름처럼 하얀 건반 선율. 베이스가 부스터(booster) 같다. 발동기 베이스 기타. 음악은 끝을 모른다. 지금 이 순간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멈춤을 거부하는 베이스 라인. 이것을 현대적이라는 수식어로 표현한들 음악의 실체를 언어가 짊어질 수는 없다.

72년의 원곡은 장중하다. 초반부터 베이스가 달려간다. 밴드 ‘더 멘’의 메인 보컬 박광수의 얇은 목소리가 베이스와 키보드의 합주 위로 방사된다. 오로라처럼 휘황한 소리들이여. 엔진의 회전수가 증가한다. 전진하는, 진군하는 악기들. 땅에서 시작한 음악이 날개를 펼치고 비상하기 시작한다. 땅 위에 큰 그림자를 드리우고 비행하는 음악. 이 땅 위의 삶을 명상하는 듯한 반가사유상의 미소 같은 부드러움 속에서 칼날처럼 번뜩이는 기타. 머뭇거리다가 얼굴의 절반만 보여주는 것 같은 기타가 ‘저 뒤’에서 몸을 뒤튼다. 따스한 그림자 같은 둔중한 베이스가 여백을 어둠으로 채운다. 종결 지점에 다가설수록 건반과 기타가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처럼 서로의 몸을 탐닉한다. 섞였다가 떨어지고 다시 더 깊고 깊게 서로에게 파고드는 뜨거운 몸들. 10분의 사랑. 600초의 에로스. 절정에서 파열되는 사랑.

세 번째로 만나는 1975년의 <아름다운 강산>(신중현과 엽전들). 빛을 튕겨내는 금속의 떨림이 눈부시다. 노래는 가볍고, 기타는 밀도를 덜어낸다. 이 음악은 8분 동안 우리를 점령할 것이다. 기꺼이 복종하리라. 그의 노예가 되리라. 우리는 부드럽게 목을 조르는 신중현의 기타에 몸을 맡긴다. 이남이의 베이스 위에서, 신중현의 기타는, 곡의 후반부에 이르러 맨몸을 드러낸다. 이 기타의 파형(波形)은 만곡(彎曲)이다. 음의 시작과 끝이 적막과 구별되지 않는, 꽃뱀처럼 뜨겁게 스미는 기타. 들어와서 저미는 기타. 사이키델릭과 블루스의 혼종 기타. 아스트럴(astral) 사운드가 되어 빛을 머금는 기타 선율 속에서 바라보는 ‘우리’의 아름다운 강산. 자랑스럽다. 황홀하다.

그리하여 내가 노랫말에서 빼낸 수식어. ‘찬란하게 빛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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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 기타 기념 앨범》의 두 번째 트랙, <안개를 헤치고>가 감추었던 몸을 드러낸다. 휘장 같은 건반의 율동. 보컬 사이사이마다 기타를 긁으면서 신중현은, 수줍게, 결코 보이고 싶지 않은 것처럼, 음악의 표면 위로 부상(浮上)하지 않는다. 발음을 뭉그러뜨리면서, 입 밖으로 언어를 내보내지 않으려고 애 쓰면서, 가수는 안개 밖으로 몸을 늦게 노출한다. 그는 목소리를 안개 속에 묻어놓은 채 기타를 내세운다. 기타가 그의 몸이다. 기타로 할 수 있는 것, 언어 없이 악기만으로 허공에 새기는 존재의 움직임. 노래가 사라질 때, 기타가 나타나고, 기타가 사라질 때, 노래는 종적을 감춘다. 소리 없음 안으로 몸을 던져 넣어 끊기지 않는 적요 속으로 귀의하는 신중현. 그는 우리에게 몸과 마음을 동시에 내어준다. 우리가 거주할 그 공간. 우리는 그의 몸을 빌려 흐느끼고 그의 마음을 훔쳐 기뻐한다.

“그 사람 저 멀리 보이네, 만나고 싶어라, 말하고 싶어라” 당신을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그가 음악 속에서 기타의 육체를 달굴 때, 이글거리는 불꽃이 될 때, 음악 때문에 풀무처럼 숨쉬고 있는 우리를 발견할 때, 우리는 꺼져드는 음악을 응시한다. 음악이 멈춘 후 찾아오는 애잔. 그의 사위어드는 목소리를, 시간이 그를 앗아가기 전에, 영원히 내 몸의 무늬로 남겨두고 싶다. 그가 우리 몸에 우겨넣는 뜨거운 기타. 시간이 우리를 먹어치운다 해도, 남겨둔 뼈 같은 악기의 아름다운 연주는 지속될 것이다. 끝나지 않는 기타. 무한한 기타가 보인다. 신중현. 언제나 새롭고[新] 언제나 헤비한[重], 기타의 뼈를 휘감은 현(絃). 악기가 제 몸을 허공에 내어주고 빈 몸으로 바람 속을 거닌다. 바람이 그 몸을 지나자 음악이 흘러나온다, 불멸의 샘물처럼. 불우한 악기 신중현이 불후작(不朽作)을 창조한다.

불광동 시외버스터미널 / 초라한 남녀는 / 술 취해 비 맞고 섰구나 // 여자가 남자 팔에 기대 노래하는데 / 비에 젖은 세간의 노래여 // 모든 악기는 자신의 불우를 다해 / 노래하는 것 // 이곳에서 차를 타면 / 일금 이천 원으로 당도할 수 있는 왕릉은 있다네 // 왕릉 어느 한 켠에 그래, 저 초라를 벗은 / 젖은 알몸들이 / 김이 무럭무럭 나도록 엉겨 붙어 무너지다가 / 문득 불쌍한 눈으로 서로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 // 굴곡진 몸의 능선이 마음의 능선이 되어 / 왕릉 너머 어디 먼데를 먼저 가서 / 그림처럼 앉아 있지 않겠는가 // 결국 악기여 / 모든 노래하는 것들은 불우하고 / 또 좀 불우해서 / 불우의 지복을 누릴 터 // 끝내 희망은 먼 새처럼 꾸벅이며 / 어디 먼데를 먼저 가고 있구나
― 허수경, 「불우한 악기」 전문(『혼자 가는 먼 집』, 1992)

 

 

 

* 《쿨투라》 2020년 1월호(통권 6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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