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환의 시조안테나 5] 가장 지역적이어서 가장 세계적인 동심과 시심의 향기로운 향연!
[이정환의 시조안테나 5] 가장 지역적이어서 가장 세계적인 동심과 시심의 향기로운 향연!
  • 이정환(시인)
  • 승인 2020.02.06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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꿩이 잘 하는가
뻐꾸기가 잘 하는가
봄 들판 무대 위에 꿩꿩 뻐꾹 꿩꿩 뻐꾹
그 소리
메아리 되어
꿩꾹이로 들려요
꿩꿩 뻐꾹 꿩꿩 뻐꾹
꿩꾹이가 꿩꿩 뻐꾹
온종일 겨루어도 승부는 나질 않아
산골은
하품을 하듯
찔레꽃을 피워요
- 오승철, 「꿩꾹이」 전문


「꿩꾹이」는 재미있게 읽히는 동시조다. ‘꿩이 잘 하는가/ 뻐꾸기가 잘 하는가’라고 묻는데 ‘봄 들판 무대 위에 꿩꿩 뻐꾹 꿩꿩 뻐꾹’이라는 ‘그 소리/ 메아리 되어/ 꿩꾹이로 들’린다. 그럴 만도 하겠다. 둘째 수에서 ‘꿩꿩 뻐꾹 꿩꿩 뻐꾹/ 꿩꾹이가 꿩꿩 뻐꾹’이라는 흉내 내는 말의 되풀이가 시에 재미를 더하고 있다. 둘의 경쟁은 ‘온종일 겨루어도 승부는 나질 않아// 산골은/ 하품을 하듯/ 찔레꽃을 피’운다고 진술한다. 이렇듯 동시조는 아이가 읽어도 좋고 어른이 읽어도 즐겁다. 창작 과정에서 일반 시조 쓰기와는 분명히 다른 묘미를 맛볼 수 있다. 때로 쓰는 그 자체만으로도 어떤 정서적 회복과 위로를 느끼게 하기 때문에 동시조 쓰기는 진정 ‘행복한 글쓰기’라고 말해도 좋겠다.

 

 

솥뚜껑 손잡이 같네
오름 위에 돋은 무덤
노루귀 너도바람꽃 얼음새꽃 까치무릇
솥뚜껑
여닫는 사이
쇳물 끓는 봄이 오네
그런 봄 그런 오후
바람 안 나면 사람이랴
장다리꽃 담 넘어 수작하는 어느 올레
지나다 바람결에도 슬쩍 한 번
묻는 말
“셔?”
그러네, 제주에선 소리보다 바람이 빨라
‘안에 계셔?’
그 말조차 다 흘리고 지워져
마지막 겨우 당도한
고백 같은그 말
“셔?”
- 오승철, 「셔?」 전문

 

「셔?」는 2010년 제29회 중앙시조대상 수상 작품이다. ‘솥뚜껑 손잡이 같네/ 오름 위에 돋은 무덤/ 노루귀 너도바람꽃 얼음새꽃 까치무릇/ 솥뚜껑/ 여닫는 사이/ 쇳물 끓는 봄이 오네’라는 첫수에서 보듯 오름 위의 무덤을 솥뚜껑 손잡이 같다는 비유를 통해 친근감을 끌어내는 솜씨가 남다르다. 봄도 ‘그런 봄 그런 오후/ 바람 안 나면 사람이랴’하면서 ‘장다리꽃 담 넘어 수작하는 어느 올레/ 지나다 바람결에도 슬쩍 한 번/ 묻는 말’이 곧 ‘“셔?”’이다. ‘그러네, 제주에선 소리보다 바람이 빨라/‘안에 계셔?’그 말조차 다 흘리고 지워져‘버려서 ’마지막 겨우 당도한/ 고백 같은/ 그 말’이 ‘“셔?”’임을 강조하고 있다. 제주가 아니고서는 이러한 정서, 이러한 미묘한 시적 분위기를 연출할 수가 없을 터다.

시인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다. 오승철 시인은 제주에서 태어나 한평생 제주를 지키며, 제주 고유의 정서와 아픈 역사를 천착하여 시조의 미학적 지경을 넓히는 일에 남다른 공력을 들여왔다. 그만이 쓸 수 있는 개성적인 시 세계를 부단히 지향하고 있으니, 법고창신이다. 하여, 그의 시조는 가장 지역적인 것인 만큼 가장 세계적이다.

 

 

 

* 《쿨투라》 2020년 1월호(통권 6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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