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에세이] 연애란 무엇인가
[문화 에세이] 연애란 무엇인가
  • 유성호(본지 주간, 한양대 교수)
  • 승인 2020.02.06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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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의 경우

 

'자화상'(1928)
'자화상'(1928)

1.

인간이 이루는 공동체적 관계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인프라는 인간 상호간의 육체적, 정신적 소통일 것이다. 이는 물론 단절된 개체로는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의 ‘사회적 동물’로서의 성격을 강조하는 뜻의 말이겠지만, 점차로 ‘존재’보다는 ‘관계’ 개념이 중시되어가고 있는 현대 사회의 한 단면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구성원 사이의 활성화된 소통은 한 공동체의 생명력과 자기 발전을 추동하는 원천적 힘으로 작용하고, 반면 소통의 단절 내지 지체는 한 공동체의 생명을 억압하고 왜곡시키며 나아가 수많은 단자(單子)들로 그것을 해소시켜버리게 된다. 이러한 인간과 인간의 소통 관계를 이루는 구체적 형식은 ‘행위’와 ‘정서’로 대별할 수 있을 것인데, 이것들은 한결같이 타자 또는 사물과의 감성적 관계를 통해 드러나게 된다. 만남과 헤어짐, 협력과 고립, 화해와 적대 같은 것이 구체적인 ‘행위’를 통해 나타나는 것이라면, 좋아함과 싫어함, 분노와 너그러움 같은 것은 행위 이전에 발생하는 ‘정서’의 형식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이 모두가 일종의 사회적 ‘관계’를 통해 매개되는 것임은 물론이다.

그 중에서 ‘사랑’이라는 범주는, 비록 정서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것이지만, 그 나름의 고유한 행위 양식을 통해 자신을 구체화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그것은 인간의 역사 이래 가장 유구한 문제적 개념으로서의 역사를 가지고 있기도 한데, 고전적 쟁점일수록 사실은 그것이 여전히 미해결의 과제임을 말하는 것이라면, ‘사랑’ 역시 지속적인 우리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개념일 터이다. 물론 ‘사랑’ 역시도 인간이 가지는 고유한 욕망의 한 형식이고, 또한 근본적으로 충족 불가능한 인간 욕망의 성격에 비추어 생각해보면, 그것은 우리의 일상과 감각을 얽어매고 있는 자기 모순적인 소모적 파토스일 뿐일 수도 있다. 이러한 사랑의 복합적인 심리적, 정서적, 물리적 실체성은 후발 과학인 심리학에 의해 폭넓게 탐색되고 있는데, 그것은 ‘사랑’이 비록 개인적 차원에서 발원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와 동시에 사회적 또는 문화적 상황을 반영하는 일종의 사회 문화적 형식임을 증명해주고 있다. 곧 ‘사랑’이란 인간 내면의 정서이자 사회 심리학적 현상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랑의 관계적 형식을 뜻하는 말 가운데 ‘연애’라는 것이 있다. 이는 ‘사랑’이나 ‘애정’처럼 포괄적인 정서적 지향의 언어와 구별되는 근대적 의미의 함의를 담고 있다. 우리는 보통 부부 사이의 사랑을 ‘연애’라고 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근대적 의미의 ‘연애’란 혼인 관계에 의해 맺어지지 않은 남녀 간의 유동적이고 가변적인 사랑의 형식을 말하는 것이다. 제도적, 관습적 구속에서 벗어난 근대적 개인이 주체로 나서는 사랑의 적극적 공유 양식이 연애일 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애’의 함의에는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사랑의 의미 외에도, 시대적이고 지역적이고 계층적인 사랑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연애’는 때로는 추악한 스캔들로 때로는 더없이 애절한 로맨스로 번져나가 우리의 기억을 출렁이게 한다. 우리는 근대 초기 우리 나라에서 일어난 미증유의 연애 사건을 여럿 기억한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윤심덕과 김우진 커플, 나혜석과 최승구 커플일 것이다. 앞 커플은 현해탄에 몸을 던짐으로써 동시에 세상을 등졌고, 뒤 커플은 나혜석이 최승구의 죽음을 안고 평생을 살다가 불행하게 죽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모두 화려하고 애틋한 ‘연애’들이다. 그 가운데 나혜석 연애 이야기로 한번 들어가 보자.

나혜석
나혜석
나혜석의 첫사랑 최승구
나혜석의 첫사랑 최승구

2.

근대 초기에 지울 수 없는 흔적과 인지도를 남긴 화가이자 작가이자 여성운동가였던 나혜석은, 1896년 4월 28일 수원에서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이른 나이에 그녀의 인생을 흔들어놓은 사건은 동경 유학 시절에 만난 최승구와의 첫사랑이었다. 최승구는 1892년 경기도 시흥에서 태어나 일찍 부모를 여의고 숙부의 보살핌으로 보성중학을 거쳐 동경 게이오대학에서 유학한 시인이다. 아호를 소월(素月)로 썼던 최승구는 동경 유학생 가운데 천재로 불렸으며, 동경 유학생 잡지였던 《학지광》의 편집인을 맡았을 정도로 그 영향력이 지대하였다. 이미 고국에 아내가 있었던 최승구를 나혜석에게 소개한 인물은 정작 최승구의 친구이자 나혜석의 오빠였던 나경석이다. 그는 이들 커플이 스웨덴의 여성 사상가 엘렌 케이가 말했던 ‘연애의 이상’에 꼭 들어맞는 경우라고 생각했다. 결국 이들은 서서히 연인 관계로 나아갔고, 짧은 기간이었지만 사회적 금기와 시선을 뒤로한 채 열렬한 비제도적, 비관습적 ‘연애’를 하였다.

그 후 최승구와 나혜석은 동경 유학생 사회에서 최고 커플이 되어 숱한 화제를 뿌린다. 하지만 양 집안의 동시 반대로 최승구의 이혼은 현실화하지 못했다. 최승구는 가족의 이혼 반대로 유학비를 받지 못했고, 사랑의 고통으로 몸과 마음을 다쳐 끝내 폐결핵에 걸려 학업을 중단하고, 1915년 말에 고향으로 가서 요양을 하게 된다. 그때 나혜석이 병중의 최승구를 찾아가 그를 하루종일 보살피다가 일본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그동안 그의 사촌동생 최승만의 저작을 통해 전해져왔다. 그러다가 나혜석이 최승구를 찾아왔던 때의 세목을 담고 있는 자료가 최근 발굴되어, 이들의 애틋한 이야기를 우리로 하여금 정확하게 알게 해주고 있다.

나혜석은 《월간매신》 1934년 3월호에 「영원히 잊어주시오」라는 길지 않은 글을 게재하였다. 한동민 수원박물관 학예팀장에 의해 발견된 이 자료는, 나혜석과 최승구의 사랑이 보여준 마지막 장면을, 그것도 나혜석 스스로의 기억에 의해 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크다. 이 자료에 의하면, 나혜석은 아버지의 사망 통보를 받고 잠시 귀국하였다가 최승구의 형 최승칠로부터 최승구가 위독한 데다 나혜석만 찾으니 잠시 왔다가 동경으로 갈 수는 없겠느냐는 전갈을 받는다. 집안 반대로 그녀는 그냥 동경으로 떠났지만, 동경에 도착해보니 다시 최승칠의 편지가 와 있는 게 아닌가. 그녀가 못 온다는 소식을 듣고 최승구의 병이 더 위중해졌으며 그래서 그녀가 오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그때 나혜석은 두말할 것 없이 귀국하여 그의 고향 고흥에 가서 무려 열흘 동안이나 정성스런 간호를 한다. 방을 치우고 화분을 들이고 깨끗이 그의 몸을 씻기고 그의 얼굴을 스케치하는 등 열흘 동안 이들은 병중의 로맨스를 완성한다. 병세가 나아지자 나혜석은 동경 길에 올랐고, 동경에 도착한 지 닷새 만에 최승구의 사망 소식을 접한다. 사망 전보를 차마 볼 수 없어 동생더러 뜯어보라고 하고 나서, 나혜석은 애도의 답전을 보내고, 다시 그 답전을 관 속에 넣었다는 소식이 고흥으로부터 또 온다. 이 글의 마지막 구절은 이러하다.

간단하고 명백하고 심오하고 철저한 그 말
“오해 없이 영원히 잊어주시오”
이는 내 초련(初戀)의 최초요 최종의 말이었다.

그녀의 첫사랑[初戀] 최승구는 이러한 말을 남기고 나혜석 곁을 영원히 떠났다. 1916년 2월경의 일이었다. 그렇게 최승구는 26세의 젊은 나이로 숨을 거둔다. 그 후 나혜석은 자신이 그의 죽음을 만들지는 않았나 하는 자괴감에 빠져, 그의 곁에 조금 더 머물렀더라면 죽지 않았을 거라는 회한을 털어놓기도 했다. 이후 나혜석은 김우영이라는 변호사와 결혼할 때 최승구 묘지에 묘비를 세워달라고 요청했고, 그것이 마지막으로 그를 잊어버리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들은 최승구 묘지를 찾아 묘비를 세웠고, 지금 우리는 그것을 찾을 수 없다. 참으로 열렬하고 안타깝게 이어지다 끊기고 다시 이어진 ‘연애’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만큼 그들은 제도적, 관습적 구속에서 벗어난 근대적 개인이 주체로 나서는 ‘연애’를 한 것이다. 이제 나혜석 고향인 수원에는 그녀의 이름을 딴 거리명이 생기고, 학자들에 의해 ‘나혜석학회’가 만들어지는 등, 그녀는 불멸의 역사적 인물로 재조명 받고 있다. 그 화려함 뒤에 그녀의 이토록 슬픈 연애 이야기가 농울치고 있는 것이다.

작업실에서 나혜석의 모습(1932)
작업실에서 나혜석의 모습(1932)

3.

‘사랑’에 관한 한, 그것의 대상인 타자는 무심하고 의식 없는 사물이 아니라 주체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자의식과 욕망을 가진 살아있는 존재이다. 따라서 우리가 말하는 ‘사랑’은 자기애(自己愛) 같은 자기 회귀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 소통의 성격을 띠는 관계 양상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일방향적인 짝사랑 또는 외사랑이라는 방식이 존재하겠지만, 궁극적으로 말해 사랑은 쌍방향적인 것이다. 우리는 보통 ‘사랑에 빠진다(falling in love)’라고 한다. 그러나 일찍이 프롬은 사랑은 빠지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것이라고 갈파하였다. 사랑이란 수동적인 정동(passive affect)이 아니라 능동적인 활동(active activity)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존재 관념보다는 소유 관념에 집착하는 정서적 지향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성숙한 사랑이란 자신의 통합성(integrity)을 유지하는 조건하에서 이루어지는 결합이기 때문에 “둘이 하나가 되면서도 여전히 둘인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라는 역설을 성립시킨다. 따라서 살아있는 생명체로서의 존재 증명에 사랑보다 더 명징한 것은 없다. 나혜석과 최승구가 보여준 ‘연애’ 이야기는 이러한 쌍방향적이고 능동적이며 성숙한 사랑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독서 경험을 통해 보건대 사랑의 고전들, 이를테면 셰익스피어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포의 서정시 「애너벨 리」 등은 모두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우리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것도 있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사랑’이 제도적으로 승인되기보다는 운명이나 불가항력적인 타자의 개입으로 인해 소멸 또는 유보되는 것을 더 강렬하게 기억한다. 여기서 우리는 왜 사랑의 결여 형식이 완성형보다 더 비극미와 감동 나아가 예술적 동일시와 카타르시스를 더욱 증폭시키는가를 질문할 수 있다. 나혜석의 이루지 못한 사랑, 최승구가 마지막에 병중에서 만난 상상적 사랑은, 모두 그러한 미완의 비극성을 잘 말해준다. 아름답고 애잔하다.

 

 

 

* 《쿨투라》 2020년 1월호(통권 6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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