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월평] 아름다운 순간을 창조하는 시
[문학 월평] 아름다운 순간을 창조하는 시
  • 전철희(문학 평론가)
  • 승인 2020.02.06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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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름은>(2017)의 감독 신카이 마코토가 올해 발표한 신작 애니메이션 <날씨의 아이>는 대다수의 평론가와 관객들에게 혹평을 받았다. 작화와 음악이 미려할 뿐 줄거리는 허술하다는 것이 비판의 골자였다. 나는 이 비판이 타당할 수 있을지언정 공허하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애당초 이런 종류의 만화는 아름답고 절절한 장면 몇개만 보여준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에서는 여자에 대한 마음(집착?)을 뒤늦게 깨달은 남자가 그 여자를 찾아 헤매는 장면이 거의 항상 나오는데, <날씨의 아이>는 남자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찾아 철도길과 다리를 질주하는 모습을 다른 어느 작품보다 아름답고 절절하게 모사했다. 소년만화가 멀어져가는 대상(소녀)을 향한 소년의 연정을 보여주면 적실하게 보여주었으면 된 것 아닌가. 나는 그 장면만으로도 <날씨의 아이>의 거의 모든 단점과 한계를 상쇄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이것은 편협한 평가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평론가 폴린 카엘(Pauline Kael)이 <Kiss Kiss Bang Bang>(1968)에서 지적했듯, 근사한 영화를 만드는 것은 심오한 주제의식이나 견고한 스토리가 아니라 멋진 키스신과 총격신 같은 것들이다. 적어도 영화를 비롯한 예술장르에서는 이미지들의 연쇄만으로도 걸출한 작품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황인찬은 그와 같은 방식으로 “내용 없는 아름다움”을 실현하고자 분투해온 시인이다. 이번에 출간된 그의 세 번째 시집 『사랑을 위한 되풀이』에서 한 작품을 인용해본다.

“쌓인 눈을 밝으면 소리가 난다/작은 것들이 무너지고 깨지는 소리다//우리는 그때 맨발로 뜨거운 아스팔트를 걷고 있었어 물놀이에 정신이 팔려 신발을 잃어버리고도 서로를 보며 그저 웃었고 그때 우리는 두 사람이었지//한 사람의 발자국이 흰 눈 위로 길게 이어져 있다/아주 옛날부터 그랬다//이제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웃고 있는 서로를 보며 우리가 서로의 눈동자 속에서 무엇을 보고 또 알았는지 끝없이 이어진 수평선을 보며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마음을 주고받았는지//“이런 삶은 나도 처음이야”/그렇게 말하니 새하얀 입김이 공중으로 흩어졌고”(「사랑과 자비」)

물놀이를 하다가 신발을 잃어버린 이들이 눈 덮인 아스팔트길에서 눈빛을 교환하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모습이 묘사된 대목이다. “우리”가 주어인 문장이 삽입되어 있을지언정, 전반적으로 볼 때 이 작품은 누군가의 내면을 깊이 파고드는 대신 외부자의 눈으로 시각적/청각적 이미지들을 조합하는 일에 특히 집중하고 있다. 여기에서 시인은 “우리”가 어떤 사이이며 어떤 사건을 겪었는지 등등의 사항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일련의 이미지를 통해, 어떤 두 인물이 “우리”가 되고 서로의 존재를 통해 행복을 느끼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만약 작중인물의 사연을 구구절절 나열했다면 이들의 이야기는 기껏해야 흔해빠진 신파로 귀결되기 십상이었을 것이다. 이 작품이 아름답고 몽환적인 ‘꿈’ 같은 느낌을 자아내는 것은, 모든 구체적인 상황을 생략하고 거기에 강렬한 순도의 색채감만을 부각시켰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령 사랑하는 사람과 처음 손을 잡거나 문득 눈빛을 마주친 순간 같은 때, 자신을 포함한 세계가 너무나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물론 그런 순간은 아름다운 꿈처럼 금방 끝나버리기 마련이고, 그러고 나면 우리는 다시 무미한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 위의 작품에서 황인찬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꿈과 같은 순간을 모사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이 순간을 문학적인 방식으로 ‘창조’해낸 것이다. 한편 이 시인은 그런 시적 창조가 ‘발자국’이나 ‘입김’처럼 한 순간의 환상이 되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점 또한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

인용한 작품에서 “작은 것들이 무너지고 깨지는 소리”를 만들어낸 발걸음을 언급한 대목은, “우리”가 함께하는 아름다운 순간이 오래가지 못할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그렇게 보면 “이런 삶은 나도 처음이야”라는 작중 언명은, 우선적으로 충만한 사랑을 느낀 “우리”의 감격을 나타내기 위한 대사이기도 하겠지만, 또한 이렇게 빛나는 순간이 현실에서 지속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문학적 허구(fiction)로만 포착될 수 있다는 인식을 내포한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이 글의 서두에서 아름다운 장면을 보여주는 일에 집중한 애니메이션에 대해 언급했다. 그리고 영화나 회화 같은 예술형식에서는 이미지에만 천착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 또한 지적했다. 그런데 문학(詩)은 깊이를 추구하는 장르이다 보니, 하나의 이미지에만 집중하는 작가를 찾기가 의외로 쉽지 않다. 황인찬은 어떤 불가역한 사랑의 순간을 섬세한 이미지로 극화함으로써 나름의 미학적 성취를 도모하는 한편 아득하고 애절한 순간을 창조해내는 작업을 거듭해온 매우 희귀한 시인이다.

이번 시집에서 그는, 자신의 ‘창조’가 매우 짧은 순간 동안에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시작(詩作)을 “되풀이”하겠다는 의지 또한 보여주고 있다. 돌이켜 보면 이 시인은 첫 번째 시집부터 줄곧 이런 되풀이를 거듭해온 셈인데, 그래서 『사랑을 위한 되풀이』는 그의 시를 애독해 온 독자들에게 만족스러운 선물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 《쿨투라》 2020년 1월호(통권 6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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