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게 찾아온 또 하나의 앨리스
[북리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게 찾아온 또 하나의 앨리스
  • 해나(본지 에디터)
  • 승인 2020.02.06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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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문은강(27) 작가의 첫 장편소설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는 아무도 모험을 하지 않는 세상에서 ‘춤’으로 부조리에 맞서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고복희를 그려낸다.

“양극화, 불평등과 사회 시스템의 잘못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느끼게 하는 페이소스가 있다”(심사위원 성석제 작가의 「밸러스트」 심사평)는 찬사를 받으며 데뷔한 문은강 작가는 이번에 출간하는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에서 다시 한 번 자신의 삶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단단하고 매력적인 페르소나를 소환해낸다. 열대의 비와 빛이 쏟아지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호텔을 운영하는 고복희 여사와 이국땅은 서로가 낯설다. 그러나 ‘희생된 철거민, 생존조차 보장되지 않는 노동자, 기득권을 지키려는 공권력’이 ‘동그란 굴렁쇠’를 굴리는 소년을 TV로 지켜보며 부자연스럽게 화해하는 대한민국에 비하면 그곳은 지나칠 정도로 편안하고 이해하기 쉬운 곳이다.

그녀는 무엇이든 원칙대로이며, 절대 타협하지 않았다. 시위 한 번 나가지 않았던 대학생 시절에도, 25년 동안 중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일하며 학생들로부터 ‘로보트’라는 별명을 얻었을 때에도 고복희는 스스로의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런 그녀도 ‘달라질 것이다’라는 믿음만 가졌을 뿐, 오랜 시간이 지나도 계속 부조리했던 한국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떠났다. 퇴직하면 남쪽 나라에서 살자던 남편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이유로.

이런 고복희의 호텔 ‘원더랜드’에 불현듯 “앙코르와트를 보겠다”는 청년 백수, 박지우가 찾아온다. 밀린 숙제처럼. 끝내 채우지 못했던 대학 노트의 여백처럼. 앙코르와트를 보겠다면서, 앙코르와트에서 7시간 넘게 걸리는 호텔을 숙소로 잡은 그녀에게 고복희가 “왜 여기로 왔습니까?”라고 묻는다. 박지우는 고복희에게 담담하게 되묻는다. “여기가 캄보디아 수도 아니에요?” “불국사는 서울에 있습니까?”

방에만 처박혀 있지 말고 좀 나가라는 엄마의 말을 듣고 한국을 떠나 왔다는 스물여섯 살 백수 박지우. 염치없는 이 투숙객은 직원의 연애사며 교민 사회 모임이며 고복희가 남편에게만 잠깐 열었다 굳게 닫아버린 마음속까지 온갖 군데를 들쑤시고 다닌다. 어쩌면 앙코르와트처럼 신비하게만 간직했던 내면으로, 또 하나의 자신이 ‘관람객’의 마음으로 찾아온 걸지도 모른다.

이 소설에는 인간 내면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그 결실로서의 역동적인 서사가 담겨 있다. ‘망한’ 한국이 아닌 ‘망한 적 없는’ 캄보디아의 한 호텔에서 한국사람 고복희가 사람들과 만나 서로 갈등하면서도 화해와 성장과 변화를 이루어간다. 작가는 주인공의 단호한 성격 안에 오래도록 춤추는 순간을 그리워했던 기억이 마치 ‘고향’처럼 남아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인간 본연의 깊은 존재론을 친근하고도 속도감 있는 서사로 엮어간다. 자신의 원칙만을 믿었던 한 세대의 삶과 그것을 더 유연한 사고로 안아 들인 한 세대의 삶이 얽히면서, 이 소설은 과감하게 한 시대를 시간적으로 은유하는 ‘원더랜드’의 지도를 완성하게 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무뎌져가는 삶에 대한 우울에서 끊임없이 벗어나고 싶은 욕망과 혹시 거기서 벗어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말이다.

이상하고 괴팍한 호텔 사장 고복희만이 볼 수 있었던 세계, 그리고 그녀가 볼 수 없는 세계에서 온 이상한 나라의 소녀. 둘의 부딪힘과 화합은 ‘밸러스트’처럼 이 소설의 서사를 균형 있게 유지시켜 나가며 독자를 ‘원더랜드’로 데려간다.

 

 

* 《쿨투라》 2020년 1월호(통권 6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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