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신중현 6] 1982년,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아티스트 신중현 6] 1982년,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 장석원(시인·광운대 교수)
  • 승인 2020.03.09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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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 두려운 신비. 신중현과 뮤직파워 2집을 감상한 후, 내가 마주친 단어들 또는 감정들. 소리와 의미 관계의 미끄러짐 또는 뒤틀림. 경험하지 못했던 것을, 그 시대가 지난, 먼 훗날 발견하는 환희. 충격 때문에 음악을 끄고 한참동안 침묵에 빠져 있었다. 먼 산책을 마치고 돌아왔다. 파주 들판의 정적을 오랫동안 응시하고 귀가했다. 날아가는 철새들, ‘V’자 대형의 내각이, 두 다리 벌어지듯, 확장되고 있었다. 음악이 입을 벌린다. 먹힐 뿐이다. 듣는 이를 무참하게 파괴하는 음악의 실체. 도대체 무엇인가.

 막 평론가로 등단한 20대 제자가 승용차 안에서 나에게 질문했다. 이 음악, 이 기타 이상해요, 사람을 긁는데요. 누구냐고 물어서, 신중현이라고, 대답했다. 이름은 알았는데 들어보지는 못했다고.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네 말대로 이상한 정도가 아니라 상상을 초월하는 것 같다. 그의 나이만큼 더 산 나도 비슷한 감정과 생각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심지어 그는 ‘괴곡(怪曲)’이라는말—물론, 없는 단어이다, 그가 만든 말이다, 「내가 쏜 위성」을 지칭하는 단어였—도 했다. 신중현 효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친 김에 소개 작업의 범위를 넓혔다. 같은 앨범을 여러 사람들에게 권했다. 20대 싱어 송 라이터 김창엽이 감상 후 소감을 보내왔다. 그가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을 때 창작된 음악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나는 궁금했다.

 사람들이 음악을 들으면, 특히 과거의 것으로 올라갈수록, 서양 혹은 외국의 어디와 ‘견줄 만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곤 합니다. 그러나, 신중현의 음악은, 그리고, 이 앨범은, 그런 말에서는, 논외로 비켜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견줄 만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장르 음악의 문법 대부분이 서양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이야기와 감정과 정서를 우리 식으로 제대로 표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우리 것이라고 우기면서 비문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그 문법을 제대로 지키면서 우리의 뉘앙스와 맥락을 녹여내야 합니다. 이 앨범은 그런 의미에서 ‘한국 락 음악의 교본’ 같은 앨범이 아닐까 합니다.

블루스, 하드 락, 싸이키델릭 락의 문법을 제대로 지키면서 그 위에 너무나 한국적인 멜로디와 편곡 방식을 도입하여 완성도 있는 앨범으로 응축해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감각을 기준으로 삼으면 다소 유치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그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락의 문법을 유지하면 서도 무그 신디사이저를 도입하는 참신함, 신중현의 소름 돋는 기타 솔로, 보컬 김동환의 박력 있으면서도 한이 느껴지는 가창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동의 경지를 펼쳐 보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손에서 우리의 힘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 목격하는 사실, 실존하는 사실. 지금 듣고 있는 이 음악이 경이로울 뿐입니다.

 나의 평가는 필요 없다. 나의 판단 역시 불필요하다. 순정한 반응 앞에서, 음악의 아름다움 앞에서 나는 단어 ‘겸허’를 떠올린다. 말의 거품으로 음악을 분식(粉飾)하기란 어렵지 않다. 신중현의 작품에서 배우는 것이 있다. 위대한 예술은 언어를 초월한다. 아름다운 예술은 작품의 이전과 이후를 분리하지 않고 예술가와 향유자를 불멸하는 감동의 순간 속에서 언제나 하나가 되게 한다. 신중현과 뮤직파워의 앨범을 다시 듣는다.

뮤직파워멤버

Side A
 track 01 내가 쏜 위성 : 알지 못했다는 사실은 핑계가 될 수 없다. 기이한 음악이다. 듣는 사람을 제안으로 잡아당기는, 물속으로 끌어당기는 음악. 숨 돌릴 틈을 주지 않는다. 종로3가 1호선 역에서 환승을 기다리면서, 이어폰으로 청취한 음악. 듣는 순간, 단박에, 흡입당할 수밖에 없는 음악. 수용 주체를 일시에 소거시키는 직선적인 하드 락. 어둠을 내뿜는 음악. “우주 속을 헤치고” 멀어지는 우주선처럼 공간을 찢는, 피막을 뚫고 뻗어 나오는 빛처럼, 활짝 펼쳐지는 소리들, 드럼과 베이스 주조 아래에서, 숨바꼭질하는 악동들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가 보여주다가 감추는 기타. 어느 순간 전면으로 돌출하는 기타. 아이언맨의 발바닥에서 쏟아지는 불꽃 같은 기타. 파괴자의 얼굴로 군림하지만 결코 고통을 주지 않는다. “더 힘차게 달”리라고 명령하는 자의 얼굴. 없던 것의 출현. 과거로 돌아가 나는 열렬하게 헤드뱅잉한다. 아드레날린 펌프. 심장이 뜨거워진다. 혈압이 상승한다. 박동이 가파르게 증가한다. 나는 우주 끝으로 달려간다. 딥 퍼플(Deep Purple)과 유라이어 힙(Uriah Heep)의 이미지가 어른댄다. 그것들과 다른, 독보적인, 단 하나만 존재하는 음악.

 track 02 기다리는 마음 : 첫사랑 같은 기타가 시간이 지날수록 용해된다. 속도가 느려졌다. 미지의 행성에 착륙한 것 같다. “오늘 따라 밤하늘에 별도 많”은데, 나는 혼자이고, 나는 사랑을 기다리는 자이고, 나는 “그 사람이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한다. “기다리는 어리석은 내 마음이여”. 우리는 헤어졌는가. 기다림과 그리움이 뒤섞인 채 건반 선율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건반 활주로가 펼쳐진다. 기타는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다. 음파 뒤에, 청자의 등 뒤에, 건반 밑에 웅크리고 있지만, 기다림에 젖어 있지만, 무겁게 침잠해 있지만, 기타는 물속에 떨어뜨린 반지처럼 반짝거린다. 활짝 날개를 펼친다. 사이키델릭 사운드가 남아 있지만, 이것은 그것이 아니다. 분리될 수 없는 한 덩어리, 새로운 몸으로 탄생한, 점도와
탄성을 한껏 증폭시킨 음악.

 track 03 코스모스 아가씨 : 디스코? 뉴 뮤직? 베이스와 무그의 진군을 따라가는 ‘끈적한’ 기타. 아…… 탄성이 낮게 터진다. 발장단을 멈출 수 없다. 음악이 나의 몸을 움직이게 한다. 이석(耳石)의 진동. 음악이라는 육체. 코스모스 꽃잎에 떨어지는 청명한 가을 햇빛. 코끝을 간지럽히는 꽃잎. 햇빛 속에서 퍼져 나오는 맑은 소리. 이 음악에서는 아찔한 건초향이 풍겨 나온다. 악기들의 협연. 몸들의 뒤섞임. 소리의 겹쳐짐 안에서 꽃잎이 하늘거린다. 나는 코스모스를 건드린다. “십삼 촉보다 어두운 가슴을 안고 사는 이 꽃을 / 고사모사(高士慕師) 꽃이라 부르기를 청하옵니다”(조정권, 「코스모스」). 나는 말을 바꾸기로 한다. 이 꽃을 음악으로 탄생시킨 신중현을 ‘고사모사’라고 부르기를 청한다.

 track 04 내 친구 : 그의 기타는 밀도가 높고 부피가 크다. 시간이 지날수록 무게가 늘어 대상을 세게 짓누른다. 압착시키려는 것 같다. 몸을 휘감는 쇠사슬 같다. 벗어날 수 있을까. 자기장을 조종하는 돌연변이 매그니토 같다. 전기 기타의 제왕 같다. 뻗어 나온 뿌리가 몸으로 파고든다. 신중현의 기타 소리는 갈(葛)과 등(藤)처럼, 파고들어 핏줄이 되어 전진한다. 기타 음이 철조망의 가시 같다. 나와 음악은 한 몸이다. 엉켜 뒹군다. 보라색 꽃송이를 늘어뜨린 여름의 등나무 그늘, 훈증 같은 기타 선율, 휘장처럼 어른거린다.

 track 05 이렇게 몰라주나 : 바이닐(vinyl)의 앞면. 끝에 도착한 나는 당황한다. 나의 여행은 반환점을 돌기 전에 좌초하고 만다. 신중현의 음악 안으로 침몰한다. 피스톤처럼, 저절로, 둥당둥당, 몸을 움직인다. 멈출 수가 없다. 음악의 포로가 되었다. 노예의 등가죽에 생긴 음악 채찍 자국이여, 영광스럽다. 민요의 한 구절을 닮은 것 같은 탐스러운 베이스 라인. 폴짝폴짝, 트램폴린 위의 아이처럼, 통통 튀어 오르는 임팔라처럼, 즐겁게 춤을 춘다. 음악과 몸이 분리되지 않는 대상이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음악은 이미지가 아니다. 음악은 언어를 축출한다. 음악은 실재이고, 현재이다. 춤을 춥시다. 음악은 언제나 영원한, 유일한 영구지속혁명. 1982년.

Side B
 track 01 비가 내리면 : 이 비를 표현할 수 있는 첩어는 ‘주룩주룩’이다. 금관악기 소리가 구름처럼 넓게 산포되는 순간 이 비는 따스해진다. 경쾌하게 행진하는 음악. “지금 창밖에 비가 내리”기 때문에 생각나는 사람, 나의 그 사람. 기억은 떠오르는 것이 아니다. 비 때문에 기억이 나를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 비가 내리면, 기억은 하늘에서 후두둑 떨어져 나를 적시는 것이다. 그 사람이 돌아온다. 비는 그 사람의 미소. 기쁜 비, 사랑에 가쁜 나의 빗줄기. 빗줄기처럼 묵묵하게 배경을 이루는 베이스. 시각적 이미지를 품고 퍼져 나오는 건반. 빗방울 사이사이를 메우는 기타 소리 위에서 브라스의 황동빛 메아리는 압도적이다. 밀착하는 빗줄기, 같은, 기타.

 track 02 잊어야 한다면 : 결국, 신중현은 사랑과 망각에 대해 말하려고 했던 것일까. 이 음악에 이르러 나는 생각한다. 신중현의 기타는 작품의 전면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간주를 주도하는 키보드. 사그러드는, 부피가 축소된 목소리. 키보드 다음 등장하는 기타의 블루지(bluesy)한 흐느낌. 들러붙는 손바닥 같은 느낌. 따스하다 못해 끈끈한 피부 같은, 애무하는 애인의 손길 같은 기타가 짧게 나타났지만, 이별 뒤의 강렬한 감정은 더 이상 표현할 것이 없는 상태. 곡이 끝나고 있다. 사랑의 갈증. 기타가 페이드 아웃된다. 그 사람이 떠나간다. 나는, 신중현은, 음악은, 제자리에 멈춰선 채 그 사람을 바라본다. 담장을 넘어가는 구렁이처럼, 꼬리만 살풋 보이는 기타. 이별은 그렇게 가뭇없이 다가왔다가 소리 없이 모습을 지운다. 남겨진 자는 아파서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한다. 그런데, 왜 슬프지 않을까. “난로 위에 끓어오르는 주전자의 물이 아슬 / 아슬하게 넘지 않는 것처럼” 신중현의 기타는 절절하게 또는 열렬하게 “사랑의 절도(節度)”(김수영, 「사랑의 變奏曲」)를 지켜낸다. 그것이 사랑이라고, 그것이 기다림의 아름다움이라고 신중현이 음악으로 웅변한다.

 track 03 봄 : 기타의 질감, 목소리의 차이, 리듬의 변화. 스피드, 직선적인 락 앤 롤. 봄의 속도를 느린 환각으로 표현한 김정미의 「봄」과 대조된다. 자연의 봄과 인간이 느끼는 봄의 북진 속도, 차이가 크다. 객관과 주관의 충돌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솟아나는 아지랑이, 분분 흘러내리는 꽃잎들, 휘발하는 것들로 가득 찬 봄의 이미지, 헬륨 풍선 같다. 늘어진 능수버들처럼 흐느적이는 건반의 수면 위에서 나는 미끄러진다. 두둥실 걸어간다.

 track 04 꿈이었다면 : 멜로트론을 연상시키는, 배면에서 전면으로 돌출하는, 넓게 펼쳐지는 몽환 같은 건반 선율. 음악의 느낌을 언어로 표현한다고? 어불성설이다. 음악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번역하는 일, 그리하여, 새로운 문장으로 변신시키는 것. 소리의 물질성을 언어의 추상성 안에 주조하는 것. 불가능한 일. 그리하여, 예정된 필패. 직핍하게 달라붙는 외로움. 상실 앞에서 사랑에 빠진 사람이 겪을 수밖에 없는 잔인한 고통을 일거에 죽여버리는, 실연의 염증을 치료하는, 키목신(Kymoxin) 같은, 음악이라는 약(painkiller). 감정을 회억(回憶)하게 하고, 감정을 동기화(動機化)하고, 감정을 육체의 지층에 저장하게 하는 음악. 환몽이 시작된다.

 track 05 선녀 : 신중현은 꿈속에서 만날 대상을 앨범의 마지막에 노출시킨다. 선녀가 “아름다운 꿈 속에” 거주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거주하는 꿈나라에 번지는 음악. 이것은 언어가 아니다. 이것은 의식이 아니다. 이것은 상징도 은유도, 압축도 치환도 아니다. 이것은 꿈과 현실을 가로지르는, 실재하는 음악이다. 안개 입자 같은 목소리가 다가온다. 절제하는 악기. 후두 안쪽에서 조금씩 꺼내놓는 가수의 발성. 노래가 끝나고 들려오기 시작하는 기타. 읊조리는 기타. 베이스보다 작고 어둡게, 그러나 찌르는 송곳 같은 기타 연주. Kill switch is engaged. 인생과 사랑이 짧은 꿈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듯한 기타. 신중현이 우리를 영원한 꿈의 세계로 데려간다. 음악의 나라에서 나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음악으로 우리를 타격했던 신중현은 ‘한국적인’과 ‘세계적인’이라는 단어의 의미 차이를 제거했다.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아무도 깨닫지 못했던, 기적의 현현이 이루어졌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신군부의 독재 시대에, 1982년에, 신중현이 창조한 음악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실현했던 그 음악은, 그날 그곳의 가난과 폭압과 고통을 일시에 뚫어버렸다.

 모든 방향으로 흘러가는 움직임, 강렬도 높은 자유, 정주하지 않는 영원한 움직임. 신중현, 단 하나의 사건. 단독자(單獨者), 신중현.

 최근 타계한, 형용사 ‘프로그레시브’를 고유명사 화한, 밴드 러쉬(Rush)의 드러머이자 작사가 닐 피어트(Neil Peart)가 생전에 남긴 말을 읽는다. “우리는 오로지 제한된 시간 동안 불멸하는 존재이다. (We are only immortal for a limited time).” 살아 있기에 우리는 지금 불멸하는 존재이지만, 우리 모두는 죽을 것이므로, 우리는 죽음을 부정하거나 회피할 수 없다. 불멸하는 것은 음악가가 아니라 음악이다. 불멸하는 것은, 악보에 기재된 음악이 아니고, 살아 있는 순간,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음악이다.

 

 

* 《쿨투라》 2020년 2월호(통권 6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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