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월평] 역(易)전된 오르페우스-에우리디케, 그 미친 사랑에 대하여
[영화 월평] 역(易)전된 오르페우스-에우리디케, 그 미친 사랑에 대하여
  • 김시균(매일경제 기자)
  • 승인 2020.03.11 1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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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린 시아마 감독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2020)
ⓒ그린나래미디어

‘두 사람은 짙은 정적 속에서 가파르고 자욱한 안개로 뒤덮여 어두운 길을 걸어갔다.
이승과 그리 멀지 않은 저승 끝에 다다랐을 때,
아내를 잃을까 봐 겁났던 오르페우스는 못 참고 고개를 돌려서 그녀가 뒤에 오는지 봤다.
아내는 팔을 뻗어 남편을 안으려 했지만 그 안타까운 손은 허공만 잡을 뿐.
다시 죽은 그녀는 남편을 탓하지 않았다. 사랑이 무슨 죄겠는가.'

 어두운 밤, 주홍빛 화덕불에 의지한 세 여인이 ‘오르페우스 신화’에 대해 토론을 벌이고 있다. 하녀 소피(루아냐바야미)는 오르페우스의 마지막 행위를 좀처럼 이해하지 못한다. 왜 그는 금기(禁忌)를 어기면서까지 뒤를 돌아본 것인가. 왜 그래야만 했는가. 사랑하는 당신을 더는 볼 수 없게 되는데.

 “끔찍해라,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잖아요”.

 화가 마리안느(노에미 메를랑)가 “이유가 있다”고 말하니, 소피는 귀공녀 엘로이즈(아델 하에넬)에게 다시금 읽어달라 청한다. 하지만 다시 들어봐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하지 말라고 했는데 왜 했냐는 것이다. 엘로이즈가 말한다.

 “사랑에 미친 거지. 어쩔 수 없었던 거야” .

 마리안느의 생각은 조금 다른 것 같다 .

 “참았어야죠. 이유야 어찌 됐든 선택했을 수도 있고요… 그녀와의 추억을요, 그래서 뒤돌아본 거예요. 연인이 아닌 시인의 선택을 한 거죠”.

 마리안느를 빤히 바라보던 엘로이즈가 시선을 책장으로 내리더니 여남은 구절을 마저 읽는다. ‘그녀는 그에게 닿을 수 없는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다시 저승으로 내려갔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여자가 말했을 수도 있죠.‘뒤 돌아봐요.’ ”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오르페우스 신화를 직접적인 문학적 알레고리로 삼는 영화다. 오르페우스가 화가 마리안느라면, 에우리디케는 귀공녀 엘로이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우린 둘 사이 관계가 역전(逆轉)되는 현상을 목도할 것이다.

 영화는 마리안느가 제자들에게 제 모습을 스케치 시키는 신에서 출발한다. 시선의 대상이 된 마리안느는 학생들 뒤편에 놓인 한 점의 화폭을 보게 되고, 누가 저 그림을 꺼냈느냐고 묻는다. 자기가 꺼냈다는 한 학생이 그러면 안 되냐고 하니 마리안느는 “안 돼”라며 작은 숨을 토해낸다. 그림의 제목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먹구름 짙은 한 밤, 구름들 사이로 달이 떠 있고 흑갈빛 벌판 중심에 한 여인이 뒤돌아 선 채다. 여인의 드레스 밑단은 주홍빛 불길이 활활 치솟는 상태. 무슨 사연이 담겨 있을까 .

 신이 바뀌면 공간은 바다 위다. 마리안느는 물길에 흔들대는 작은 배 위에서 양손으로 나무 상자를 누르고 있다. 상자 안엔 한 여인을 그리기 위한 캔버스와 미술품들이 담겨져 있다. 그러다 잠시 손을 놓고 뒤돌아본 사이, 상자는 바다로 풍덩, 떨어진다. 그녀는 주저 없이 바다로 뛰어들고 헤엄쳐 상자를 건져 올린다.

 이 대목은 조금 이상하다. 마치 캔버스를 담은 상자가 제 의지로 바다에 뛰어든 것처럼 보인다. 그러도록 찍혔다. 발작적으로, 돌연히. 후에 알게 될 일이지만, 캔버스에 그려질 대상, 엘로이즈는 자신이 곧 죽을 사람인 듯이 행동한다. 하지만 죽음(타나토스)에 이끌리는 그녀를 마리안느가 이내 건져줄 것이다. 사랑을 모르던 그녀에게 사랑의 숨결(에로스)을 불어넣음으로써.

 배를 타고 떠나는 설정은 신화적 서사의 틀을 충실히 잇고 있다. 리라를 품고 강들을 건너 지하(地下)로 떠나는 오르페우스처럼, 캔버스와 붓을 품은 마리안느는 바다를 건너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 섬으로 떠난다. 때는 1770년대 후반, 온몸이 젖은 채로 도착한 대저택에서 그녀가 처음으로 마주한 이는 하녀 소피다. 소피가 말한 바에 따르면 엘로이즈는 긴 기간 수녀원에서 지내다 집으로 돌아왔다. 결혼을 앞둔 언니가 절벽에 몸을 던져 죽었기 때문이다. 목격자였던 소피는 절벽에 몸을 던진 그녀가 비명을 지르지 않았으므로, 자살일 것으로 추정한다. 그렇게 돌아온 엘로이즈는 모친의 요구대로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혼약을 치르기로 돼 있다. 상대가 누구인지 모르고, 자기가 결혼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은 고려되지 않는다. 상류층 귀족인 그녀 역시 남성억압적 세계의 희생 제물일 뿐이다(<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 남성들은 마리안느를 실어 나르는 뱃사공들과 완성된 초상화를 배달하러 온 한 남성을 제외하고선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비(非)가시적 억압이 이 세계엔 짙게 드리워져져 있다. 이는 여인들이 발설하는 언어에 의해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이튿날 마리안느는 엘로이즈의 모친을 만난다. 모친은 지금껏 화가들이 딸의 초상화를 그리는 데 실패했다고 알려준다. 결혼을 하기 싫어 포즈를 잡지 않는다고, 번번이 완성을 지연시켰다고, 화가들은 딸의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돌아갔다고.

“그러니 딸 모르게 그려야 해요. 딸한테는 당신을 산책 친구라고 해 놨어요. 기뻐하더군요. 여기 온 이후로 외출 금지였으니까.”(모친)
“왜죠?”(마리안느)
“첫째 때는 실패했으니까요.”(모친)

 엘로이즈의 저택엔 사내들이 없다. 이 공간엔 아버지란 부재(不在)한다. 그렇다고 금기와 억압마저 부재한건 아니다. 이 세계를 주재하는 건 백작 부인인 어머니여서다. 요컨대 그녀는 이 세계의 가부장이며 대타자이고, 죽음(死)의 신 하데스다. 아버지 탈을 쓴 존재가 주재하는 공간에 사랑이 낄 틈은 없다. 외출은 금지되고 교감은 배제된다. 사랑(에로스)이 없으므로, 죽음(타나토스)에 이끌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엘로이즈는 자주 죽음에의 충동에 이끌린다. 그녀는 모친의 볼에 키스해주지 않는다.

ⓒ그린나래미디어

 만남의 초기에 시선은 자주 일방향적이다. 한 쪽이 한쪽만을 응시한다. 첫 접촉에서 마리안느는 엘로이즈 뒤를 보며 걷고 있다. 엘로이즈는 절벽을 향해 가는 중이다. 언니가 뛰어내렸다는 바로 그 절벽으로. 그러다 갑자기 전력으로 뛰기 시작하고, 당황한 마리안느가 그런 그녀를 뒤따라 뛰어간다. 엘로이즈는 절벽 앞에 다다라서야 멈춰서며, 고개를 돌려 마리안느를 바라본다. 최초의 마주침.

 영화에서 감정은 시선과 제스쳐로 길어 올려진다. 감정은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시선의 움직임과 방향을 통해 우린 인물이 머금은 감정을 짐작한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특히나 이 시선-감정의 물리학을 상당히 탁월하게 구현해낸다. 나루세 미키오의 빼어난 걸작들, 타카미네 히데코가 구사한 말 없는 침묵의 시선들이 그러했듯, 두 여인 사이로 오가는 시선들이 교환되며, 상호 운동한다. 엇갈리고 엇갈리다 이내 마주하고, 지그시 바라보고, 그럼으로써 보이지 않던 감정이 가시화한다(그런것처럼 느껴진다).

 화가인 오르페우스가 귀공녀 에우리디케를 은밀히 관찰하고 있다. 제 신분을 들키지 말아야 하므로 대상의 구석구석으로 시선을 던져 남몰래 스케치를 한다. 그녀 얼굴 윤곽을, 눈썹과 머리를, 귓볼과 턱선을, 코와 입술 등등을. 그러나 대상을 관찰할수록, 그녀를 바라볼수록 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기란 힘들어진다. 사랑의 씨앗은 대상을 향한 시선에서 싹틔우기 때문이다. 시선을 보내고 또 보낼 수록 어쩔 도리 없이 감정은 농밀해진다. 그러던 어느 한밤, 딸이 당신 얘기를 많이 한다던 엘로이즈 모친의 말을 듣고 난 마리안느는 혼자서 와인 잔을 들이킨다. 어둠이 내려앉은 작업실. 양초에 불을 피워 직전 화가가 그리다 실패했다는 그림, 엘로이즈의 얼굴이 지워진 미완성 초상화를 바라보던 그녀는 그림 상반신으로 천천히 시선을 옮긴다. 그러다 이내 촛불은 가슴 부위에 옮겨붙고, 그녀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물끄러미 응시한다.

 영화는 그렇게 사랑의 감정으로 타오르는 그녀의 내적 상태를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으로 형상화한다. 그러니 이튿날, 그녀가 자기 신분을 고백하는 신이 배치되는건 지당한 일이다. 사랑하게 된 당신에게 더는 거짓말을 늘어놓을 순 없기 때문이다. 엘로이즈는 고백에 대한 응답으로 드레스를 벗어던져 바다로 들어가는 퍼포먼스를 선보인 다음, 이내 마리안느 곁에 돌아온다. 이제 죽음에의 욕망(타나토스)은 빠르게 물러설 것이다. 어여쁜 사랑에의 욕망(에로스)만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기에.

 이어지는 배경은 작업실이다. 엘로이즈는 마리안느가 완성된 초상화를 보고 비판한다. 이미 예견돼 있던 순간이다. 시선(사랑)의 교환을 전제로 그려진 게 아니어서다. 눈앞에 당신을 두지 않고 그린 그림이란 생명력이 느껴지기 힘들다. 진실하지 않은 것이다. “생명력은 없나요? 존재감도?” 비판은 이어진다. “어떤 감정들은 아주 깊어요. 나랑 이 초상화는 비슷하지 않아요. 당신을 닮지도 않아서 슬프네요.” 결국 마리안느는 그림의 얼굴을 홧김에 지워버린다. 여섯 날로 예정된 작업 시간은 닷새가 추가되고, 엘로이즈 모친은 그 기간 집을 비우기로 한다 .

 이 닷새는 금기와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사랑의 시간이다. 그리고 가장 여성적인 시간이다. 죽어가는 타나토스의 시간은 보류된다. 약동하는 에로스의 시간들만이 지속된다. 사랑과 정열의 여성적 시간만이. 하나 염두에 둘 것이 있다. 사랑의 시간이란 시선의 평등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이다. 이를 보여주는 신이 있다. 영화 중반부, 배경은 한낮 작업실이다. 마리안느가 웃지 않는 엘로이즈의 사소한 습관들을 알려주고 있다. 당황스러울 때는 입술을 깨물고, 화가 날 때면 눈을 깜빡이지 않는다고. 그러자 엘로이즈가 나직이 엘로이즈를 부른다. 자기 옆에 세워 제 시선이 향하는 방향을 보게 한다. 절창이 이어진다.

 “당신이 날 볼 때, 난 누구를 보겠어요”?

 마리안느가 엘로이즈를 보고 있을 때, 엘로이즈도 마리안느를 보고 있다. 할 말이 생각이 안 나면 이마를 만지고, 평정심을 잃으면 눈썹이 올라가는, 당황할 때면 입으로 숨을 쉬는 그녀를.

 마침내 시선의 평등은 이루어졌다. 어머니의 탈을 쓴 아버지 또한 없어졌으니 놀이와 축제가 시작된다. 연대와 평등의 시퀀스가 펼쳐진다. 귀족과 화가와 하녀가 함께 계급 없는 카드놀이를 즐기고, 오르페우스 신화에 대해 토론한다. 소피가 원하지 않은 임신을 했을 땐 우애로 그녀가 중절할 수 있도록 차분히 도와준다. 여성들만으로 구성된 해변가 밤 축제에선 박수로 박자를 맞춘 신비로운 라틴어 합창이 이어진다. 합창하는 여인들 얼굴은 저마다의 기쁨과 행복으로 충만하다.

 눈여겨 볼 순간이 있다. 밤 축제에서 엘로이즈와 마리안느가 서로를 바라보는 순간이다. 그윽한 시선으로, 은은한 미소를 머금으며 상대를 응시하던 그녀들 사이로 모닥불이 활활 타오른다. 이윽고 불똥 하나가 튀었는지 엘로이즈 드레스 밑단으로 불이 붙고 만다. 이내 엘로이즈는 자리에서 널브러지고, 여인 몇몇이 다가와 불을 꺼준다. 바로 그 순간, 마리안느의 시점으로 담긴 엘로이즈의 형상은 이내 사라져버릴 듯이 불안하다(사랑으로 충만한 순간 연인들은 불안해진다. 지금 이 순간이 유한하다는 걸 동시에 직감하기 때문이다.). 엘로이즈의 풀쇼트는 영화 맨 처음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속 여인의 모습에 그대로 대응하고, 영화는 그 모습을 마치 유령 혹은 환영인 것처럼 찍는다. 유령과 환영, 이윽고 사라지는 것. 이것은 앞으로 이어질 두 차례의 환영, 마리안느가 바라보는 하얀 드레스 차림의 엘로이즈의 환영을 예기(豫期)한다. 마리안느(오르페우스)가 뒤를 돌아봄과 동시에 사라지고 마는 엘로이즈(에우리디케)를.

 자, 이별의 시간이 임박하고 있다. 불안한 여인들은 마지막 밤, 안간힘으로 사랑의 밀어들을 토해낸다. 당신을 기억하겠노라고.

“주방에서 잠든 당신의 모습을 기억해. 내가 카드를 땄을때 날 노려보던 시선을.”(엘로이즈)
“기억해, 당신의 첫 웃음을.”(마리안느)
“기억해, 처음으로 키스하고 싶었던 순간을.”(엘로이즈)

 닷새가 흐른다. 초상화는 이미 완성됐다. 모친도 돌아왔으므로, 이제는 헤어져야 한다. 엘로이즈는 자신의 코르셋 끈을 마리안느에게 조여달라 청한다. 구속과 억압, 남성적 시간들로의 회귀. 그녀는 이 사실을 거역(拒逆)하지 못한다. 그림으로나마 저항하는 마리안느와 달리(마리안느에게 그림 그리기는 남성 억압적 세계에 대한 저만의 존재 증명 행위이다. 반면 엘로이즈에겐 오직 사랑만이 존재 증명이므로,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는 이별 이후 시간이란 다시금 죽은 시간일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진실한 사랑의 시간은 여기까지다. 마리안느가 황망히 저택 문을 나가려는 찰나, 엘로이즈가 그녀를 부른다 .

 “뒤를 돌아봐.”

 오르페우스가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에우리디케를 바라보자, 문은 닫힌다. 암흑, 그리고 작별.

ⓒ그린나래미디어

 첫 신으로 돌아오고서 영화는 미술 전시회로 이어진다. 부친의 이름으로 전시된 자신의 작품 앞에 마리안느는 가만히 서 있다. 뒤돌아본 오르페우스와 절벽 아래로 떨어지기 직전의 에우리디케다. 마리안느는 결국 엘로이즈와의 추억을 택한 것이다. 그러니 궁금해지는 건 엘로이즈다. 마리안느는 전시장 어느 벽면에 내걸린 화폭으로 다가간다. 누군가가 그린 엘로이즈와 그녀 딸의 초상화다. 그림 속 엘로이즈는 오른 손으로 보랏빛 책 한 권을 쥐고 있다. 검지 손가락이 가리키는 페이지는 28. 마지막 밤, 마리안느가 자기 얼굴을 그려준 페이지다. 마리안느는 조용히 미소를 머금는다.

 영화는 “마지막으로 그녀(엘로이즈)를 봤다”는 마리안느의 독백과 함께 공간을 대극장으로 옮긴다. 어둑한 실내, 객석에 앉은 마리안느의 시선이 어느 한 곳으로 고정된다. 저 멀리 2층 반대편, 금은빛 드레스를 입은 한 여인이 구석으로 이동하고 있다. 엘로이즈다. 독백이 이어진다. ‘그녀는 날 보지 못했다’.

 정말 그러한가. 아닐지도 모른다. 영화는 이를 일러주듯,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장 격정적인 음악 하나를 밀어넣는다. 아니, 쏟아붓는다. 곡명은 비발디 사계 여름 3악장. 강렬하고도 비장한 현역 선율과 동시에 카메라는 저 멀리 엘로이즈에게로 서서히 줌인한다. 그녀 얼굴이 선명해질 때까지 계속해서 다가간다. 그렇게 그녀 얼굴(측면)이 클로즈업되고, 장장 2분 27초에 이르는 초장기 롱테이크가 지속된다. 표정 없어 뵈던 그녀 얼굴로 한바탕 격랑이 휘몰아친다. 가슴은 들썩이고, 호흡은 거칠어진다. 눈자위로 물기가 맺혀가고, 이내 굵은 눈물방울이 흘러내린다.

 역전된 오르페우스-에우리디케. 이별이 예고된 운명이었다면, 오르페우스(엘로이즈)가 이미 이를 알고 있었더라면, 결국엔 뒤를 돌아봐야만 했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에우리디케(마리안느)를 보기 위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그것은 선택도 아니고, 추억을 위한 것도 아니다. 오로지 사랑, 그 미친 사랑 때문이다. 일그러져가는 그녀 얼굴이, 그 비통함이, 잠시 스치던 미소가, 이를 오롯이 증거해주고 있다. 아아, 사랑이 무슨 죄겠는가.

 

 

* 《쿨투라》 2020년 2월호(통권 6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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