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영화 격월평] ‘내 꿈’을 이루게 도와줄래?
[장르 영화 격월평] ‘내 꿈’을 이루게 도와줄래?
  • 양진호(영화평론가)
  • 승인 2020.03.11 10: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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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와조 감독의 영화 '디어스킨'(2020)

 

ⓒM&M 인터내셔널

  2019년에 주목받았던 영화 중 하나인 <경계선>(알리아바시 감독)에서 주인공 티나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타인과 자신의 차이에 대해 이해하려고 한다. 인간이 아닌 것(트롤)으로 태어난 그녀는 인간들 속에서 직업을 갖고 가족을 갖고 자신의 공동체를 갖기 위해 스스로에게 ‘인간이 되기’를 끊임없이 주문했지만, 그 강박의 무게를 버틸 수 없었던 시점부터는 ‘인간이 아닌 것’이 무엇인지를 자기 안에서 찾아 나갈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은 평범한 광대에서 ‘조커’로 거듭난 아서 플렉(<조커>, 2019)과 조각난 자기의식의 심연 사이에서 ‘비스트’를 꺼낸 정신병자 케빈(<글래스>, 2018)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를 정의하지 않으면 나 자신은 어떤 시간과 공간 속에서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인간’을 대체할 무엇인가를 자신의 내면에서 찾아야만 했던 것이다. 일상이라는 맥락 안에서 우리는 의심할 필요도 없는 ‘인간’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스스로에게 ‘나는 누구인가(나는 인간인가)’를 물어볼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영화는 인간과 인간 아닌 것의 경계로 몰리고 있는 우리에게 가짜 답을 알려주는 대신, 애써 피하려고 했던 그 질문을 스크린 속에서 계속할 것을 권한다.

  미스터 와조 감독의 <디어스킨>은 연쇄살인범의 행적을 냉소적인 유머와 스릴러 기법을 오가는 방식으로 담아낸다는 점에서 라스 폰 트리에의 <살인마 잭의 집>(2018)을 떠올리게 한다. 과대망상에 가까운 자연주의를 통해 자신의 행위를 순수를 지향하는 예술로 완성해나가려는 주인공의 실패를 묵직한 음향들이 드문드문 망치로 가볍게 두들기듯 스칠 때마다 우리는 두 영화가 닮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돋보이는 유사점은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것이 주인공과 ‘사람 아닌 것’의 대화라는 점이다.

<디어스킨>에서 조르주는 자신이 입고 있던 멀쩡한 재킷을 버리고 남아 있던 전 재산을 털어 구입한 100퍼센트 사슴가죽으로 만든 재킷과 대화하며 범죄를 모의한다. <살인마 잭의 집>에서는 주인공 잭이 자신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유령 같은 인물 ‘버지’에게 살인에 대한 자신의 모든 경험과 논리들을 (버지의 물음에 대해 답하는 형식으로) 고백한다. 이 두 주인공들에게 말을 걸어 온 타자는 현실의 서사에 난 구멍을 통해 들어온 자기 자신의 ‘분신’들이다. 슬라보예 지젝이 허구의 기원은 현실로부터의 도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체가 일관된 현실에 접근할 수 있도록 배제되어야만 했던 실재의 귀환에 있다고 했던 것처럼, 이 분신들은 현실 속에서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주인공들의 일상이라는 서사를 ‘다른 방식’으로 지속시키기 위해 그들에게 돌아온 자기 자신인 것이다. 현실 속에 남아 있는 주인공들이 현실 바깥의 자신(으로 여겨지는 이)에게 ‘나는 누구인가’라고 묻기 시작할 때 관객들은 자신들의 일상 어딘가도 이미 무너져 있음을 알아챌 수밖에 없게 된다.

ⓒM&M 인터내셔널

  그런데 <디어스킨>의 주인공 조르주는 가죽재킷이 자신에게 걸어오는 말을 못 듣거나 무시하고 넘어갈 뻔하기도 했다. 44세, 아내를 버리고 집을 나온 남편, 전 재산 7300유로(한화 약 1000만 원)로 가죽재킷을 구입하고 거지가 된 남자. 영화는 조르주에 대한 이 이상의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는 직장에서 해고되었거나, 이웃에게 사기를 당했거나, 혹은 결혼생활의 권태감이 극에 달해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곳으로 도망 온 조금은 별난 중년 남성 같은 것으로 남을 수도 있었다. 잠깐 정신이 나가 7000유로짜리 재킷을 샀다고 하더라도, 그가 그 정도에서 만족하고 잠깐 방황하다 집으로 돌아왔다면 그는 재킷의 목소리를 듣지 않거나 무시해도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가죽재킷에게 목소리를 부여한 것은 재킷 주인이 조르주에게 공짜로 넘겨준 ‘캠코더’였을지도 모른다.

조르주는 숙소 근처의 술집에 갔을 때,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얘기를 주고받는 젊은 웨이트리스(드니스)와 중년 여성이 자기 가죽재킷의 ‘죽여주는 스타일’을 칭찬하고 있다고 착각했다. 그의 시시껄렁한 자랑을 좀 더 들을 의향이 있던 중년 여성(그녀가 매춘부인 것을 나중에 친해지게 된 드니스가 알려주었다)은 조르주에게 직업이 뭐냐고 물었고, 캠코더는 그때 조르주의 알리바이가 되어주었다. 그는 그녀에게 ‘영화감독’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것이다. 가죽재킷은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가치를 가진 조르주만의 보물이었다. 그러나 그 가치를 남들에게 설득시키기 위해 그는 다른 것들이 필요하게 되었다. 자신은 이 가죽재킷을 고를 정도의 심미안이 있는 특별한 사람인데,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은 그런 자신에 대한 적절한 정보가 되어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때부터 ‘보는(발견하는) 사람’에서 ‘보여지는 사람’이 되어 가기 시작했고, 다음날 아침 쓰레기통을 뒤져 아침식사를 해결하던 자신을 멀리서 지켜보던 소년에게 분노를 드러낼 때에는 타인에 대한 의식이 이미 피해망상에 가깝게 변해 가고 있었다. 가죽재킷은 그때부터 그에게 ‘이 세상에서 재킷을 입은 유일한 사람으로 남아라’라고 자신의 소원을 이야기하기 시작하고, 조르주도 그것을 무시할 수 없었다.

  웨이트리스인 드니스는 공교롭게도 영화 편집 일을 했던 경력이 있었다. 그녀는 ‘재킷 입은 유일한 사람’ 프로젝트의 첫 희생양으로 조르주에게 지목되었지만, 순순히 그에게 재킷을 벗어준 뒤에 그의 편집자로서 일하게 된다. 조르주는 오직 그녀의 재킷을 빼앗기 위해 영화촬영에 대한 거짓말을 하며 스카웃 제의를 한 것이었지만, 그녀는 그의 광기에서 ‘영화적인 매력’을 발견하고 그에게 돈까지 줘 가며 조력자 역할을 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조르주가 재킷 도둑에서 살인마로 진화한 것은 그녀 덕분이었다. 드니스는 그에게 “액션과 피가 더 필요해요”라며 그의 ‘창작 욕구’를 북돋워줬기 때문이다. 재킷의 목소리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자기 자신의 목소리였다면 드니스의 목소리는 더 분명하게 들리는, 더 이상 충동의 차원이 아니라 현실에서 들려오는 타자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시간 순서가 뒤죽박죽인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펄프픽션>(1994)을 본래 시간대로 돌려놓았을 때 영화가 ‘후지게’ 변하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현실감각이 뒤죽박죽된 조르주의 서사에서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섬뜩하리만치 빛나는 두 사람의 시너지는 영화 후반부로 가며 그들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데려간다. 그들은 ‘영화적인 것’을 쫓다가 결국 자신들의 영화에 갇혀 버리고 만 것이다.

  77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은 군더더기 없는 서사와 기발한 연출 덕분에 거의 30분 정도로까지 느껴진다. 그리고 극장 밖으로 나왔을 때 관객은 코끝이 쨍해지는 추위 속에서도 잠시 코트를벗을 수밖에 없게 된다. 현실 속에서 조르주가 “코트 좀 벗어 주시겠습니까”라고 묻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지금 입고 있는 코트,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왜곡된 욕망 같은 것들이 내 온몸을 감싸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면 우리는 잠시 날것으로 있고 싶어질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바라는 이름들로 다이어리를 꽉 채우게 되는 2월이다. 그중에 ‘네 꿈’이 아니라 ‘내 꿈’은 몇 개나 되는지, 영화 <디어스킨>은 우리에게 점잖지 않은 표정으로 묻고 있다.

 

 

* 《쿨투라》 2020년 2월호(통권 6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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