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월평] 사랑과 시 그리고 메타포
[음악 월평] 사랑과 시 그리고 메타포
  • 정현우(시인, 뮤지션)
  • 승인 2020.03.11 1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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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브엔터테인먼트
ⓒ페이브엔터테인먼트

"인간의 이타성이란 그것마저도 이기적인 토대 위에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홀로 고립되어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힘든 일이다.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하고 지켜보기만 하는 것이 괴로워 재촉하듯 건넸던 응원과 위로의 말들을, 온전히 상대를 위해 한 일이라고 착각하곤 했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 내 사람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참견을 잘 참지 못한다.
하지만 이제는 나의 그런 행동들이 온전히 상대만을 위한 배려나 위로가 아닌
그 사람의 평온한 일상을 보고 싶은 나의 간절한 부탁이라는 것을 안다.
염치없이 부탁하는 입장이니 아주 최소한의 것들만 바라기로 한다. 이 시를 들어 달라는 것, 그리고 숨을 쉬어 달라는 것.
누군가의 인생을 평생 업고 갈 수 있는 타인은 없다. 하지만 방향이 맞으면 얼마든 함께 걸을 수는 있다.
또 배운 게 도둑질이라, 나는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든 노래를 불러줄 수 있다.
내가 음악을 하면서 세상에게 받았던 많은 시들처럼 나도 진심 어린 시들을 부지런히 쓸 것이다.
그렇게 차례대로 서로의 시를 들어 주면서, 크고 작은 숨을 쉬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 아이유(IU) Love poem 앨범소개 -

  아이유의 이번 《Love poem》 앨범 소개 글이 눈길이 갔습니다. 자신의 선한 동기마저도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 깊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아이유는 어디 행성에서 온 사람일까요? 여기서 말하는 이타성이란 무엇이고 이기적인 것은 무엇일까요? 인간 본성의 양면성, 이타성, 이기성 중 어느 입장을 지지하는 것에 관계없이 요즘 사회가 이기적인 면모들이 여과 없이 드러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얼마 전 아이유의 친구 설리가 자살을 선택했습니다. 사실, 제가 방송작가로 일할 때 설리양과 여러 번 마주친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느꼈던 그녀의 이미지는 스타답지 않게 굉장히 깍듯했고 털털했습니다. 새벽 촬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힘든 내색 하나 하지 않았습니다. 촬영 중간에 간식이 들어왔는데 함께 온 코디네이터를 먼저 챙겼고 저에게도 먼저 먹으라며 손을 내밀었습니다. 방송이 종영되고 간혹 SNS에서 구설수에 오르는 그녀를 보면서 익명이라는 이름 아래 여과 없이 내뱉어내는 리플들을 보고 있자니 인간의 바닥은 어디까지인가 생각이 들기도 하더군요. 우리나라 국민의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하는데, 사회가 분노의 불길로 타오르는 와중에 아이유의 《Love poem》은 사람들의 마음을 적셔줄 작은 빗줄기가 되어주고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이유의 미니앨범 《Love poem》은 아이유의 음악 파트너 이종훈 작곡가의 잔잔하고 애잔한 멜로디와 밴드 사운드가 오묘하게 어우러진 음악입니다. 흔히 가요에서 쓰이지 않고 팝에서 쓰이는 피아노의 코드 진행은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아이유의 노래들을 살펴보면 전반적으로 누군가에게 읊조리듯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고요한 마음으로 끌고 가는 코드 진행은 저절로 아이유의 음색에 귀를 기울이게 만듭니다. 이 노래는 특별히 설리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닐지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누구를 위해 누군가기도하고 있나 봐/숨죽여 쓴 사랑시가 낮게 들리는 듯해/너에게로 선명히 날아가 늦지 않게 자리에 닿기를
I’ll be there 홀로 걷는 너의 뒤에/Singing till the end 그치지 않을 이 노래/아주 잠시만 귀 기울여 봐/유난히 긴 밤을 걷는 널 위해 부를게
또 한 번 너의 세상에 별이 지고 있나 봐/숨죽여 삼킨 눈물이/여기 흐르는 듯해/할 말을 잃어 고요한 마음에/기억처럼 들려오는 목소리
I’ll be there 홀로 걷는 너의 뒤에/Singing till the end 그치지 않을 이 노래/아주 커다란 숨을 쉬어 봐/소리 내 우는 법을 잊은 널 위해 부를게
(다시 걸어갈 수 있도록)/부를게(다시 사랑할 수 있도록)/Here I am 지켜봐 나를, 난 절대/Singing till the end 멈추지 않아 이 노래
너의 긴 밤이 끝나는 그날/고개를 들어 바라본 그곳에 있을게

  아이유는 이 곡을 직접 작사하기도 했고 이 앨범을 한 편의 시(詩)라고 말했습니다. 가사를 살펴보면 “숨죽여 쓴 사랑시가 낮게 들리는 듯해.” 아이유 그녀에게는 노래하는 행위가 곧 시를 쓰는 행위이고 상대를 위한 간절한 마음임입니다. “또 한 번 너의 세상에 별이 지고 있나 봐” 우리가 꿈이라고 생각했던 별이라는 존재를 넌지시 끌어오는 가사를 면서 시와 대중음악의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생각해봅니다. 시와 노래는 언어적 요소와 음악적 요소를 함께 지니고있는 장르입니다. 시는 언어 예술이지만 리듬의 조화로운 질서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시는 텍스트를 쓰고 읽는 행위이고 노래는 부르는 행위 즉, 문자와 소리라는 이중의 경계에 있지만 시와 노래에서 느낄 수 있는 교집함은 바로 시적인 감정일 것입니다. 시라는 장르는 노래에 의해서 옷을 새로 입을 수 있고, 노래는 시적인 감정으로 인해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줄 수 있겠지요.

  아이유가 음유시인으로서의 발돋움 해준 앨범은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와 《꽃갈피 둘》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국민여동생이라는 타이틀에 머무르지 않고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리메이크 앨범에 전력을 다해 쏟아 부으며 아티스트의 면모를 충분히 보여주었습니다. 리메이크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원곡의 느낌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자신만의 해석을 곁들이는 것인데, 그녀는 촌스럽지 않게 옛 감성을 세공되지 않은 보석 같은 감정을 아련하게 탈바꿈시켰습니다. 1972년 발매한 〈개여울〉을 원곡가수인 정미조는 44년 만에 피아노와 베이스 클라리넷으로만 재편곡하여 불렀는데, 아이유는 정미조의 앨범을 수백 번 들으면서도 ‘연륜과 세월을 내가 따라갈 수 없구나’ 라며 수 없이 본인의 감성과 감정을 넣기 위해 수천 번 불러봤다고 하니, 그녀가 음악을 대하는 태도에서 조차 느껴지는 겸손한 마음은 아이유 ‘덫?’에 걸려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그녀만의 매력과 마성이기도 할 것입니다.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파릇한 풀 포기가 돋아 나오고
잔물이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 시던/그런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김소월의 시에서 ‘님’은 ‘당신’으로 호명됩니다. 시인은 두 개의 개여울, 즉 ‘당신’과 함께 앉아 과거의 개여울과 ‘나’가 앉아 있는 현재의 개여울을 병치하면서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이유가 개여울을 다시 부르면서 소녀에서 여인으로 성숙한 화자가 사랑했던 ‘님’ 혹은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로 다시 재해석 하고 있습니다. 김소월의 시의 핵심은 ‘님’입니다. ‘님’은 당신, 애인, 그대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되어 나타납니다. 아이유의 음악 또한 다양하게 변주하고 변신했습니다. 리메이크 앨범을 비롯해 〈밤편지〉 〈이름에게〉 〈팔레트〉 같은 앨범들은 여러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으면서도 아이유의 음악은 장르를 뛰어넘으며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작사가 쉽게 쓰여 있는 이유가 아니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시적 언어’로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아이유의 음악에서는 시에서 중요하게 쓰이는 메타포들이 내재되어있습니다. 그녀가 내놓는 앨범마다 디자인에서부터 가사까지 하나도 놓칠 수 없는 시적인 장치들이 숨겨져 있으니까요 .

  영화 〈일포스티노〉의 마지막 대사가 기억에 남습니다 “선생님은 온 세상이 무엇인가의 메타포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메타포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 숨을 쉴 때, 누군가의 죽음을 들여다 볼 때, 그의 뒷모습을 보고 슬픔을 느낄 때, 당신의 뒤에서, 옆에서 메타포는 충분히 가득합니다. 우리는 이것들을 메타포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요.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 부둣가에 버려진 소라껍데기에서, 풀려버린 운동화 끈에서, 어둠이 옮겨가는 나무의 우듬지에서, 한없이 떨어지는 눈발 속에서. 항상 존재해왔지만 들여다보지 못했던 메타포들을 생각해봅니다.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싶은 요즘입니다.

 

 

* 《쿨투라》 2020년 2월호(통권 6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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