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월평] 역술원 좀 다니시는지?
[문학 월평] 역술원 좀 다니시는지?
  • 허희(문학평론가)
  • 승인 2020.03.11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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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윤, 『밤의 행방』

  역술원 좀 다니시는지? 일부러 밝히지 않아서 그렇지, 꽤 많은 사람이 역술원 고객이리라 짐작된다. 언론에서도 벌써 몇 년 전부터 청년들이 역술원에 자주 간다는 뉴스를 보도했으니까. 무엇 하나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불안을 느끼는 탓이다. 타로 카드•사주•신점 등 다양한 방법으로 그들은 취업•연애•결혼 등 자신의 고민거리를 상담한다. 하소연이 목적이라면 상관없겠으나, 역술가들이 탁월한 방책을 알려주는지는 잘 모르겠다. 개중에는 사이비도 드물지 않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일류 역술가와 만나는 기연을 얻어도 앞날이 극적으로 바뀌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역술가가 이래라저래라 조언은 해도, 이를 얼마나 받아들여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는 온전히 듣는 이의 몫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우리는 계속 살아갈 확률이 높다. 성향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 없어서다. 진수성찬을 두고 누구는 음미하며 기뻐하지만, 누구는 허겁지겁 먹다 체하고, 누구는 제 발로 상을 걷어차기도 한다. 그럴 때 일류 역술가는 비애를 느끼리라. 뭔가를 미리 아는 게 사람들한테 정말 도움이 되는 걸까. 이를테면 죽음의 예고 같은 것들. 그런 의문을 품은 작품이 안보윤 작가의 여섯번째 장편소설 『밤의 행방』이다. 등단작 『악어떼가 나왔다』(2005)에서부터 드러난 바, 그녀의 소설 안테나는 세상의 어두운 전파를 수신하고 거기에 웃음을 더해 다시 세상으로 송신하는 방식을 취한다. 풍자가 안보윤의 특기라는 뜻이다. 그녀는 슬며시, 그래서 더 아프게 독자를 찌른다. 『밤의 행방』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은 “평범한 인상의 중년 남자”(133쪽) 주혁이다. 점집 ‘천지선녀’가 그의 거처다. 누나가 연 가게지만 정작 그녀는 자리를 비운 상태다. 누나는 신을 받으러 가겠다고 산으로 올라가버렸다. 그녀는 무속인이라서 점집을 차린 게 아니라, 점집부터 차리고 무속인이 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대놓고 사기를 치겠다는 의도는 없으니 그나마 양심적이라고 할까. (이것이 현실을 비트는 안보윤의 첫 번째 웃음 코드다.) 천지선녀가 없는 점집 천지선녀는 그래도 운영 중이다. 사람들이 알음알음 주혁을 찾아와서다. 그는 아무런 영적 능력이 없다. 그러나 우연히 특수 아이템을 습득했다. 나뭇가지 ‘반’이다. 반은 두 가지 면에서 특별하다. 하나는 주혁과 대화할 수 있다는 것, 다른 하나는 타인의 죽음을 예지한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사신이라 간주하니 무시무시한 분위기를 풍길 것 같지만, 실제로 반은 단 것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어린아이 같은 느낌이 물씬 나는 나뭇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아이러니한 효과를 노리는 안보윤의 두 번째 웃음 코드다.) 여하튼 반 덕분에 주혁은 유명세를 타게 됐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소문을 들었어요. 여기 다른 건 하나도 못 맞추는데, 사람 죽는 거 하난 기가 막히게 잘 맞춘다고요. 사신이 붙었다고. 다른 점쟁이들은 애기동자나 장군귀신이 붙는데 여기 선녀님한테는 사신이 붙었다고 그랬어요.”(139쪽) ‘여기 선녀님’은 당연히 주혁을 가리킨다. 동네 사람들에게 점집 천지선녀에 사는 그는 도령이 아닌 선녀로 통한다. (이것이 아이러니한 효과를 배가시키는 안보윤의 세 번째 웃음 코드다.)

  작가가 웃음 요소를 배치한 부분은 이 정도로 정리해두자. 그럼 『밤의 행방』의 찌르기는 무엇일까. 그것은 주혁을 방문하는 내담자들의 사연에서 드러난다. 직장 내 성폭력과 비리 등으로 이들은 괴로워한다. 내담자가 사건 당사자인 경우도 있으나 그들 대부분은 사건 당사자의 가족이다. 사건 당사자는 숨을 거두었다. 하지만 뭔가 석연치 않은 죽음을 규명하겠다. 이것이 가족들이 천지선녀를 만나러 온 목적이다. 가령 해원의 에피소드가 그렇다. 그녀는 동생 해림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의 실체를 알고 싶어 한다. 요양병원에 불이 나 간호사로 일하던 해림이 사망했는데,해원을 찾아온 병원 관계자는 해림이 횡령을 겸해 불을 지른 범인이라고 지목했다. 그러니 괜히 들쑤시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이다.

  평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올바른 행동에 앞장섰던 동생을 떠올리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언니는 생각했다. 그것이 해원이 죽음과 관련된 사안만큼은 기가 막히게 맞춘다는 점집 천지선녀로 발걸음을 옮긴 이유다. 주혁은 해원에게 말한다. 해림은 아무도 해치지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요양병원 사람들을 구하려다 희생당한거라고. 이에 해원이 대답한다. “동생이 횡령에 방화라니. 그런 걸 할 줄 아는 인간이었다면 지금껏 고생도 안 했을거예요. (……) 그들이 더 이상 아무도 죽일 수 없게 만들거예요.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이제 확실히 알겠어요. (……) 누구도 그런 식으로 죽어서는 안 돼요. 제 동생뿐 아니라 세상 그 누구도요.”(183~184쪽)

  여기에서 분명히 해둬야 할 점이 있다. 이때 반이 신통력을 발휘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해림에 관한 해원의 이야기를 오랫동안 들은 뒤 주혁이 내린 결론이었다. 왜 거짓말을 했느냐. 반이 그에게 묻는다. 주혁은 진실을 아는 것만큼이나 해원에게 필요한 것이 있었음을 피력한다. 바로 “위로”(185쪽)다. 그는 화재 참사로 아이를 잃은 아버지이기도 했으니까. 주혁은 사별한 가족에게 절실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았다. 반의 개입이 없었다고 한들, 이런 그의 발언을 과연 틀렸다고 할 수 있을까? 위에 나는 이렇게 썼다. 성향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 없어,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우리는 계속 살아갈 확률이 높다고. 그러기에 해림이 위급 상황에서 자기 안위가 아닌 타인 구출에 나섰을 거라는 판단도 가능해진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살지 않게 되는 흔치 않은 사례도 발생한다. 해원이 대표적이다. 원래 그녀는 공연히 나서지 말고 본인 앞가림이나 하며 조용히 살자는 신조를 가졌다. 하나 동생의 죽음을 계기로, 동생의 죽음이 왜곡되었다는 주혁의 답변에 힘입어, 해원은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투쟁의 사도로 변모한다. 처음부터 그녀는 해림이 결코 범죄를 저지를 리 없다고 여겼다. 다만 자기 자신의 믿음을 보완하고, 용기를 북돋워줄 또 다른 확신의 근거가 더 있기를 바랐을 따름이다. 타로 카드•사주•신점 등의 역술은 이럴 때 진정 쓸모 있다. 내 인생은 역술가가 아니라 나의 것—가장 좋은 해결책은 스스로 이미 알고 있어서다. 그러니까 우리의 삶에 격려와 응원을 보내지 않는 역술원에는 가지 마시길.

 

 

* 《쿨투라》 2020년 2월호(통권 6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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