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한국적 운명애(運命愛)의 길
[북리뷰] 한국적 운명애(運命愛)의 길
  • 해나(본지 에디터)
  • 승인 2020.03.11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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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근 작가의 희곡집 『봄날은 간다』

 

  극작가이자 산문가로 활동하는 최창근 작가의 대표작을 수록한 『봄날은 간다』가 문학의숲 희곡선으로 출간됐다.

  최창근의 데뷔작이자 대표적인 희곡 「봄날은 간다」는 가족이 아닌 사람들이 가정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정제된 언어와 신화적 구성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마치 수묵화 한 점을 볼 때의 매력처럼 행간의 여백이 주는 상상력과 수사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작품이라는 평가와 함께 인생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작가의 따스한 시선과 극작의 진솔함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극찬을 받았다.

  여기 한 가족이 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이 모여 피붙이보다 더 진한 사랑을 만들어가는 가족이다. 어머니와 아들과 딸. 어머니는 남사당패에서 만나 의남매를 맺은 남편과 결혼하지만 그 남편은 어느 무더운 여름날 핏덩이 하나를 데려다 놓고 집을 나간다. 어머니는 남편이 데려다놓은 아이를 자신의 친딸처럼 키운다. 고아원에서 보모로 일하던 어머니는 자신의 남편과 닮은 아이를 아들로 키운다. 오누이 관계가 된 아들과 딸은 자연스럽게 가까워지지만 자신의 내력이 아이들에게까지 이어질까봐 두려워한 어머니는 이들의 관계를 갈라놓으려고 애쓴다. 서로 사랑하게 된 아들과 딸은 두 사람의 사이를 인정하지 않는 어머니 몰래 도망가려 하지만 차마 어머니 혼자 남겨두고 갈 수 없는 딸은 남고 아들만 떠난다. 혼자 남겨진 딸은 어머니를 원망한다. 결국 집으로 다시 돌아온 아들에게 어머니는 딸을 부탁하고 세상을 떠난다.

  이 작품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사랑에 국한된 이야기만은 아니다. 한 가족에 관한 이야기면서 그 이야기에만 머무는 이야기도 아니다. ‘한국’이라는 물리적인 지형적 공간의 틀 안에서 숨을 쉬는 이야기면서 동시에 인간이면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에 관한 보편적인 이야기이다. 시작도 끝도 없는 이야기, 그러면서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이 이어지는 이야기이다.

  희곡집 『봄날은 간다』는 동명의 희곡을 비롯해 산문 4편을 담았다. 산문은 「사랑의 여러 빛깔(들)」 「길 떠나는 집」 「브레송의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밤」 「고백의 시간」등이다. 2001년 초연한 이후 꾸준히 무대에 오르는 이 작품은 입양 가족, 독신 가족, 동성 부부 등 다양한 가족 형태를 제시하면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신형철은 “그의 데뷔작은 「봄날은 간다」이다. 1998년 언젠가, 이 옛 노래 제목에, 같은 제목의 영화를 만든 허진호 감독보다도 먼저 최창근이 끌렸을 때, 그는 저 다섯 글자에서 흔히 연상되는 무상(無常)함 말고 어떤 초연(超然)함을 감지한 것은 아니었을까. ‘축축한 욕심이 다 빠져나간, 그래서 평온하게 마른’ 몸 같은 초연함 말이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피가 섞이지 않은 남매의 사랑을 다루되, 『폭풍의 언덕』 같은 광폭한 로망스로 나아가지 않고, 사랑의 힘으로 운명을 타이르는 연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극중에서 그들이 걷는 길은, 운명을 적대하지도 운명에 복종하지도 않는, 운명과 어울리며 그것을 긍정하는 길이다. 이를 한국적 운명애(運命愛)의 길”이라고 평한다.

  이 책의 저자인 최창근 작가는 경희대 국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2001년 데뷔작 「봄날을 간다」로 2002년 동아연극상 작품상을 받았다.

 

 

* 《쿨투라》 2020년 2월호(통권 6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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