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INTERVIEW] 시련과 상처들이 선하게 쓰일 수 있다 - '폴란드로 간 아이들'의 추상미 감독
[12월 INTERVIEW] 시련과 상처들이 선하게 쓰일 수 있다 - '폴란드로 간 아이들'의 추상미 감독
  • 손희(본지 에디터)
  • 승인 2019.01.02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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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부터 흐리더니 추적추적 늦가을비가 내린다. 겨울을 재촉하듯 너무 싸늘하다. 빗속을 달려 이대 후문에 있는 예술극장 필름포럼에 도착했다. 오늘(11월 8일) 저녁 7시 반, 이곳에서 추상미 감독의 다큐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GV(성현)가 있다. 영화가 상영되기 전에 추상미 감독을 만났다. 레드티셔츠를 입고 나타난 그녀는 예뻤다. 화려하게 꾸미지도 않았는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참 빛났다. 그녀가 의자에 앉자 으스스했던 늦가을비의 기운마저 어깨 위로 확 달아났다.

 배우에서 감독으로 - 배우 시작할 때부터 연출이 꿈

손희(이하 손): 지난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때 와이드앵글-다큐멘터리 쇼케이스 부문에 초청된 <폴란드로 간 아이들> GV에 참석하고 싶었는데 표가 순식간에 매진되어서 기회를 놓쳤습니다. 연극에서 시작해서 드라마와 영화 뮤지컬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배우로서 충분히 만족하셨을 것 같은데 다시 감독으로 도전장을 내민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추상미(이하 추): 처음 배우를 시작할 때부터 사실 연출이 꿈이었어요. 연출이랑 병행하고 싶었는데 막상 실천에 옮기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제가 결혼하면서 4년 동안 임신이 안 돼서 몸을 좀 만들고 아이를 가져야겠다 싶어서 배우 활동을 접었어요. 그러던 차에 임신이 됐는데 아이가 유산이 된 거예요. 그때 충격이 많이 컸었죠.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공부를 해야겠다 싶어서 대학원 영화연출과에 입학해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는데 그  때가 39살이었어요. 전주국제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작품을 비롯하여 현재 9편의 단편을 만들었습니다.

: 배우로서 작품에 출연했을 때와 감독으로서 참여했을 때 어떤 부분이 가장 다르게 느껴졌나요?

:우선 모든 예술 분야는 다 본질이 똑같다고 생각해요.어떤 작품에 주제가 있고 그 작품을 분석해야 하고, 어떤 결과물로 내보내야 한다는 점은 똑같아요. 하지만 배우로서 작품에 임했을 때는 세상과 분리된 느낌을 더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의 내면의 세계에 더 몰두하고 그 역할이 되기 위해서 외부적인 것들을 끊고 혼자 침잠했던 시간들이 많았어요. 영화감독으로서는 세상을 보는 시선이 굉장히 자유롭게 열려 있어야 하고, 타인들과도 소통하고 사회적인 이슈들에도 민감해야 하잖아요. 그런 부분들을 대학원에 다니면서 훈련했더니 그렇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세상과 내가 분리되지 않고 타인과 내가 연결되어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게 됐습니다.

: 정말 대단하십니다. 불문학을 전공하신 걸로 아는데 늦게 대학원에 들어가서 다시 영화연출을 공부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으셨을 텐데요?

: 나이 들어서 공부해야 하니까 공부도 잘 안 되고 어린 아이들하고 공부해야 하니까 쉽지만은 않았어요. 그래도 힘들고 어렵다기 보다는 재밌어서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아이를 출산하면서 휴학했고 지독한 산후우울증을 겪던 중 북한의 <꽃제비(어린 이걸인)> 관련 영상을 보게 됐어요. 그 후에 장편 영화 소재를 계속 찾고 있던 과정에서 친한 지인이 하는 출판사에 놀러 갔다가 이번 작품의 소재가 된 한국전쟁 고아들의 비밀 실화를 만나게 됐어요.그 때부터 이 비밀 실화를 소재로 극영화로 개발하기 시작했죠.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폴란드에서 직접 자료조사를 했고 그 과정에서 폴란드 선생님들과 만났습니다. 국내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실화이기도 하고 8, 90대 나이의 생존해 계신 폴란드 선생님들의 증언, 육성, 모습을 보며 이 모든 것들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요.

 <폴란드로 간 아이들> 연출 여정

:이번에 만든 다큐 영화는 한국전쟁 고아와 폴란드 선생님들의 비밀 실화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특별한 소재잖아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연출하기까지의 여정을 듣고 싶습니다.

: 굴곡진 여정이 있었죠. 왜냐하면 그동안 남북한 관계가 굉장히 안 좋아서 이러다 만일 전쟁이라도 일어난다면 하는 상황이었잖아요, 사실 전쟁이 일어나면 우선 내 가족의 안위와 내 생명을 지키기 위해 노력을 하는데, 전 그 순간 영화는 어떻게 되나 그게 제일 먼저 걱정이 되었죠.(웃음) 지원금을 가지고 만든 영화이기 때문에 그걸 반납해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미래가 완전히 불투명했죠. 그런데 2018년이 되면서 거짓말처럼 시국의 분위기가 반전된 거예요. 당시 전 국민 중에서 제가 제일 기뻐했던 것 같아요.(웃음) 이 영화가 애매한 것이 있고, 남북 평화모 드가 진행은 되는데 이게 정말 될 것인가 말 것인가, 긴가 민가 하는 상황에서 개봉되는 것이 좋은데 지금이 딱 그 시점이죠. 타이밍이 맞다는 생각을 했어요. 시사회 후 언론의 반응도 굉장히 폭발적이라서 저도 놀랐죠.

: 언론시사회에서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었 던 것은 상처를 새롭게 조명하는 관점이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조금 더 설명해 주실 수 있는지요? 그리고 폴란드 여정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것을 영화를 통해서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었다는 게 가장 크고요, 보지말았어야할 것을 많이 듣고 본 사람들, 모든 것이 다 파괴되는 것들이 아이들에겐 상상할 수 없는 트라우마를 갖게 되겠죠. 아우슈비츠가 있었고 나치가 2차 세계대전 당시에 발악을 하는데... 가족이 죽고, 친구가 죽고 하는 경험, 그 순간에 인간의 모든 가치관이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과연 어른이 됐다고 그 기억에서 자유로울 수가 있을까요? 유년시절에 겪은 것들이 트라우마가 되니까 그 분들은 상처를 마치 자기 삶의 일부처럼 안고 살아가는 거죠. 이 아이들을 돌본 것은 선행이 아니라 벗어날 수 없었던 기억으로부터 회복, 자유로워진 어린 시절을 구원받는 경험이었을 것 같아요. 이 분들의 사랑은 그냥 사랑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쏟아 붓는 사랑, 그 아이들을 사랑하고 보듬고 키움으로써 자기도 회복할 수 있었던 거지요. 70여 년 전 한국전쟁 고아들을 보살폈던 프와코비 체 양육원 원장님 인터뷰에서 “아이들을 처음 보았을 때 까만 머리, 까만 눈에 생전 처음 보는 동양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들이 머나먼 타국의 아이들이 아닌 내 유년 시절의 일부 같았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가 필요하다는 걸 직감했고, 300명의 교사들에게 엄마, 아빠로 부르도록 지시했습니다”라는 말을 했어요. 그분은 아흔이 넘으셨는데 본인의 삶을 돌아봤을 때 가장 잘한 일이 북한 고아들을 돌봤던 일이라고 해요.

 폴란드로 간 아이들 중 남한 아이들도 있었다

: 요즘 분위기면 우리가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추적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이 열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영화 상영 후 당시 고아들에 대해 소식을 전해온 분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났나요?

: 고아들이 다시 북한으로 송환된 이후 소식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것은, 북한으로 다시 돌아간 아이들이 폴란드어와 러시아어에 능통했기 때문에 대부분 엘리트 그룹을 형성했고 40여 년 후에 폴란드 대사 또는 영사가 되어서 폴란드에 다시 가신 분, 교환 교수가 되어서 가신 분이 있어요. 그 후 임기를 마쳐서 북으로 돌아가신 분들이 있고, 이분들에 대해서는 제가 미리 알고 있었지만 자료가 불충분해서 영화에서는 제외했던 부분이에요. 그리고 조사하던 중 폴란드로 보내진 아이들이 중에 남한의 아이들도 같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 사실을 기록으로 담기로 결심하게 됐지요. 고향이라는게, 사랑 받았던 기억이 있는 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부산영화제 GV에서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폴란드 전쟁고아 출신이었다는 탈북민이 오기도 하셨고, 아버지가 폴란드 전쟁고아 출신이라는 분도 연락이 닿았어요. 또 그 아이 중 한 명이 탈북하여 남한에 거주하다가 작년 간암으로 돌아가셨다는 걸 알았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뵐 수 있었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그분이 생전에 폴란드 이민을 준비했었다는데, 그 이야길 듣고 꼭 자신이 태어난 물리적 공간만이 고향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바라는 건 폴란드로 보내졌던 아이 중 혹시 탈북하여 남한에 거주하는 분이 있다면 꼭 만나고 싶어요. 아마 영화가 계속 상영될수록 더 많은 소식이 들려올 거라고 생각해요.

 티가 많아도 소중한 옥, 극영화는 아이들이 주인공

: 관람객 평점 9.63점이 넘었고, 기자와 평론가의 평점도 높은 편입니다. 호평이 쏟아지는 이 뜨거운 반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감사하지요. 특히 박평식 평론가가 쓴 ‘티가 많아도 소중한 옥’이란 평이 제일 와 닿습니다. ‘옥의 티’라는 말이 있잖아요. 옥의 티처럼 그런 게 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고 옥이다라고 해주셨는데 그게 딱 맞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분이 평점 주실 때 제일 짠돌이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언론의 도움을 많이 받았을 때 극장에서 시간을 잘 잡아줬으면 더 좋았겠죠. 극장을 150개만 해도 많이 열린 거거든요. 그런데 시간대가 아침 8시 반 이런 극장도 있고 하니까 흐름을 잘 타고 가야하는데 딱 멈춰버린거죠. 아쉽죠. 예술영화잖아요. 그래도 되게 잘 된 게 연말이라서 장기 상영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죠. 예술극장에서 가장 걸릴만한 영화인 것 같아요. 상업 영화는 관객이 떨어지면 끝이잖아요. 오늘까지는 150개 극장에서 상영되고, 내일부터는 아트영화관으로 싹 옮겨요.

: 다큐가 성공적이라 극영화 역시 기대하는데, 극영화 연출에 대해 귀띔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 다큐는 극영화하고는 관점이 많이 다르죠. 극영화는 아마 아이들이 주인공이 될 것 같아요. 폴란드선생님들이 북한 전쟁고아들을 품은 이야기이고, 상처가 중요한 주제가 되겠지만, 다큐멘터리가 폴란드선생님들에게 많이 집중되어 있다면 극영화는 아이들의 이야기, 분단의 상황, 한국전쟁에서 비롯된 이야기등을 다루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어떻게 교류를 하는지, 그러니까 다큐에서는 다루지 않는 그런 것들을. 애들이 햄릿의 시나, 연극, 쇼팽의 음악으로 정말 기가 막힌 폴란드의 예술교육을 받았어요. 분단 상황이라는 것은 아이들한테는 연극이었어요. 상처를 직면하게 하고 인식하게 하고 예술로 풀어낸 것이죠. 치유를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예술로서 승화할 수 있도록 교육한 그 과정을 담고 싶어요.

 시련과 상처들이 선하게 쓰일 수 있다

: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폴란드 역시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어서 다른 국가의 상처까지도 치료해줄 수 있는 것은 같아요. 저는 자신의 상처를 다른 민족의 아이들을 품는데 선하게 썼던 폴란드 선생님들의 실화를 통해 전쟁과 분단의 역사를 가진 우리들의 상처는 어떻게 성찰되어 왔는지를 되돌아봤습니다. 시련과 상처들이 선하게 쓰일 수 있다는 믿음, 메시지를 통해 관객분들께서 위안을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저 영화를 보시고 많은 눈물을 흘리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안에서 영화와 예술을 얘기할 수 있고. 문학도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요?

 추상미 감독은 영화 상영 후 GV를 통해서도 폴란드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쏟았던 아낌없는 사랑에 거듭 경의를 표했다. 이 날 GV현장에는 추상미 감독과 함께 폴란드에 다녀온 탈북소녀 이송 배우가 자리했다. 영화를 보고 폴란드 선생님들의 위대한 사랑에 감동한 관객들의 질문이 GV 내내 이어졌다. 폴란드 선생님들이 보여준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는 관객들에게 ‘위대한 사랑’을 전했다. 전쟁과 분단을 넘어 화해와 통일을 향해 가는 현재의 우리에겐 어쩌면 절실한 영화다. 폴란드 선생님들처럼 우리도 그 아이들에게 “우리가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다. 그리고 이 위대한 영화를 카메라에 담은 그녀에게도 관객들의 사랑을 듬뿍 전하고 싶다. 

 

 

* 《쿨투라》 2018년 12월호(통권 5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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