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Theme] 트로트 ‘뉴웨이브’
[4월 Theme] 트로트 ‘뉴웨이브’
  • 하경헌(스포츠경향 엔터테인먼트부 기자)
  • 승인 2020.03.26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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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조선

 ‘뉴웨이브(New Wave)’, 그 예전 1970~1980년대 록장르에 있었던 말인 것 같고 또 1950년대 전 세계 영화판을 흔들었던 말인 것도 같다. 이전과는 분명히 다른 문법과 태도로 예술에 접근하는 행위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새로운 한 시대를 열어간 디딤돌이 되는 생각. 만약 우리나라의 트로트에도 ‘뉴웨이브’가 일어나고 있다면 그 시기는 바로 지금인 것 만 같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젊은이들의 휴대폰 플레이리스트에 오르지 않던 트로트곡들이 이제는 대거 무리를 이루고 들어찼다. 트로트 가수의 신곡이 발표되면 주요 음원사이트에 ‘차트인(실시간 재생 순위 100위권에 진입하는 일)’을 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최근 TV조선 오디션 프로그램 ‘내일은 미스터트롯(이하 미스터트롯)’에 출연한 가수들은 차트 안에 나란히 줄지어 오르는 ‘줄 세우기’의 모습도 보여준다.

 아직 시절은 코로나19 사태로 어느덧 찾아온 봄을 만끽하지 못하는 분위기지만 트로트에는 분명히 훈풍이 불어왔다. 이대로라면 1990년대 초반 이전 모든 세대가 트로트로 ‘대동단결’해 ‘국민가요’의 명곡이 자주 등장하던 그 시절 전성기로 돌아갈 듯하다. 시류에 가장 민감한 예능 프로그램들은 MBC ‘놀면 뭐하니?-뽕포유’를 비롯해 MBC에브리원 ‘나는 트로트 가수다’, SBS ‘트롯신이 떴다’ 등 트로트를 소재로 한 신작을 경쟁적으로 편성하고 있고 트로트 가수들의 행사 출연료 역시 적게는 2~3배에서 많게는 열 배 가까이 뛰었다.

 트로트 장르 특유의 맛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하지만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고, 이렇게 많은 곳에서 트로트를 조명하는 일은 트로트가 스스로 새 옷을 입었기 때문임을 부정할 수 없다. 무엇이 트로트의 ‘뉴웨이브’를 이끌었을까.

ⓒMBC

트로트를 원하는 시대

 대한민국 인구조사 통계에서 생산가능 인구 이른바 15세에서 64세를 넘어간, 실제로 ‘노인증’을 받기 시작하는 인구는 사회의 고령화에 따라 꾸준히 늘어왔다. 실제 지난 10년만 해도 2011년 이 연령대의 인구는 552만명에서 2015년 654만명을 넘어 2020년에는 813만명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짧은 시간 동안 급격하게 고령사회로의 진입이 진행되는 중 이다.

 하지만 늘어난 이들의 인구만큼 문화의 저변은 따라가지 못했다. 아직도 지상파에서는 ‘실버 전문 프로그램’이라 칭하는 프로그램들은 새벽 시간에만 편성하고 있고, 그 형식 역시도 지역 소개, 일자리 소개, 맛집 소개 등 단편적인 소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의 ‘실버세대’는 예전과 다르다. 세계적으로도 압도적인 스마트폰 보급비율로 휴대폰이 없는 이를 찾아볼 수 없으며 직관적인 체제의 유튜브에도 비교적 빨리 적응해 지금 10대 다음으로 동영상 콘텐츠를 소비하는 나이대가 60대 이후다.

 상대적으로 트로트에 익숙하고, 젊은 시절 이를 향유했던 세대의 숫자가 늘어나면 열망도 깊어지기 마련이다. 이러한 부분을 ‘미스트롯’ ‘미스터트롯’은 정확하게 겨냥했다. 시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세대의 특징을 고려해 큼지막한 자막을 넣고, 몰입을 높일 출연자의 서사도 촘촘히 준비한다. 게다가 ‘서바이벌’ 특유의 긴장감을 탑재했으니 아직 오디션에 익숙하지 않은 이 세대에게 이러한 전개는 충격이었다. ‘미스트롯’의 진(眞) 송가인의 전국구 인기도 ‘미스터트롯’의 신드롬도 여기에서 기인했다.

 트로트 스스로의 자가발전도 한몫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댄스뮤직과 발라드 그리고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아이돌 음악에 완전히 자리를 내줬던 트로트는 2000년 중반 이후 장윤정, 박현빈, 홍진영으로 대표되는 젊은 피들의 등장으로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들은 트로트에 댄스, 팝, 재즈, 심지어는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 등 새로운 흐름을 집어넣길 주저하지 않았다. 이러한 형식에 트로트 특유의 반복과 쉬운 가사로 인한 대중성이 결합하니 진화는 저절로 시작됐다.

ⓒTV조선

트로트, 캐릭터를 입다

 과거의 트로트를 생각하면 여러 이미지가 떠오른다. 남자 가수든, 여자 가수든 모두 포마드와 파마로 머리에 잔뜩 힘을 주고 눈이 부실 정도로 반짝거리는 의상을 입는다. 노래 부를 때의 자세 또한 거의 서 있거나 약간 몸을 흔드는 정도였다. 하지만 요즘 트로트 가수들의 모습은 변화무쌍하다. 안무를 전문적으로 적용하는 가수들이 늘어났고, 의상이나 액세서리도 이른바 노래의 ‘콘셉트’에 맞춰서 하고 나오는 경우가 많아졌다. 한마디로 체계화 된 것이다.

 지난해 연말 대한민국을 또 한 번 트로트의 열풍으로 밀어넣은 ‘유산슬’은 지금 트로트의 새로운 모습을 집약한 캐릭터였다. 원래 유산슬은 30년 방송활동을 한 유재석이 그의 소모된 이미지를 신인가수로서 들키지 않게 하기 위해 만들었던 가명이었다. 하지만 이 캐릭터는 시간이 지날수록 독립적인 서사를 갖고 과정을 헤쳐 나오면서 유재석과는 별개의 이미지로 대중에게 소구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본인마저도 두 인물의 정체성을 헷갈리는 일이 일어났다.

 송가인 역시 국악으로 다진 실력에 남도의 털털함을 함께 캐릭터로 입어 “가인이어라~”로 대표되는 구수한 인사와 함께 ‘송블리(송가인+러블리)’라는 애칭을 얻고 있다. ‘미스터트롯’을 통해 조명받고 있는 ‘임히어로(임영웅)’ ‘탁걸리(영탁)’ ‘찬또배기(이찬원)’ 역시도 각종 방송 프로그램과 SNS의 발달로 팬들로부터 왕성한 캐릭터 형성의 기회를 받아 자신을 차별화하고 있다. 캐릭터는 차별성도 중요하지만 대중이 성장시키는 일도 중요하다. 지금의 트로트 가수들은 캐릭터를 통해 대중과 호흡하고 교감하는 것이다.

ⓒTV조선

 오랫동안 각종 가요 프로그램에서 군무를 하는 어린 가수들을 보며 내내 지루함을 느끼던 대중들에게는 이렇게 새로운 트로트의 바람을 타고 온 스타들이 당연히 반가울 일이다. 지금 트로트의 ‘뉴웨이브’는 그들을 원하는 시대와 시대를 기다리며 꾸준하게 진화를 거듭한 가수들이 마치 짝짜꿍을 하듯 손을 경쾌하게 마주치는, 언젠가는 올 것 같았던 큰 파도와 같다. 열망의 크기가 그만큼 컸기에 그 파고도 지금, 이만큼 높다.

 

 

* 《쿨투라》 2020년 4월호(통권 7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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