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Theme] 트로트, 슬픔의 근원
[4월 Theme] 트로트, 슬픔의 근원
  • 정현우(시인, 뮤지션)
  • 승인 2020.03.26 1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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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20대 30대들의 취미인 ‘혼코노’. ‘혼자 코인 노래방’이라는 뜻으로 저도 가끔 노래방을 가는데 재미있는 한 가지는, 옆방에서 흔히 들려오는 음악은 발라드나 락발라드가 아닌 바로 트로트! 라는 사실입니다. ‘미스터 트롯’이 최고 시청률 35.7%를 찍으며 전 연령대에게 엄청 난 인기를 얻고 있죠. 트로트의 역사를 천천히 거슬러 올라가보면, 30년대 중후반 트로트의 주류화를 결정한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1935)이나 <애수의 소야곡>(1938) 이 있었습니다. <목포의 눈물>은 1936년에 일본에서도 음반이 발매되었고, 애상적인 멜로디는 일본인에게도 적지 않은 사랑을 받았었지요.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삼학도 파도 깊이 숨어드는 때/부두의 새악시 아롱져진 옷자락
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깊은 밤 조각달은 흘러가는데/어찌타 옛 상처가 새로 워진다
못 오는 님이면 이마음도 보낼 것을/항구에 맺은 절개 목포의 사랑

  얼핏보면 시조 한수 같기도 한 이 노래는 4분의 2박자, 라단조, 약간 빠른 빠르기가 곡의 감정을 더 북돋아 주기도 합니다. 작사자와 가창자가 모두 목포 출신인 이 곡은 일본식의 곡풍을 지녔으나 지금도 끊임없이 불리고 있는 곡입니다. 사실, 한국의 트로트를 이야기하기 이전에 일본의 엔카를 살펴봐야 합니다. 한국과 일본의 대중음악이 가지고 있는 정서를 깊숙이 들여다보려면 트로트와 엔카를 비교하면서 짐작을 할 수 있습니다. 엔카란 일본의 고유한 정서를 담아 만들어 부르는 신식 가요형식을 말합니다. 초기의 엔카의 형식은 서양 곡에 가사를 따로 붙여 노래한 번안곡이거나, 일본의 민속음악인 부시(節)형식의 노래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레코드가 아직 일반적으로 보급되기 전인 1910년경 노래 가사만 인쇄해서 바이올린을 켜면서 돌아다니며 노래 가사집을 팔던 사람들을 ‘엔카시’라고 불렀습니다.

  한국에 트로트풍의 음악이 들어온 것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 말부터입니다. 이보다 앞서 일본에서는 일본 고유의 민속음악에 서구의 폭스트롯을 접목한 엔카가 유행하고 있었죠. 1928년부터 레코드 제작이 본격화되면서 많은 일본 가요가 한국말로 번역되었고 한국 가요도 일본에서 녹음을 하는 과정에서 일본인이 편곡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결국 우리가 트로트라고 부르는 음악장르는 엄밀하게 미국의 폭스트로트가 그 뿌리라고 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일본으로 가면서 엔카가된 폭스트로트는 템포가 느려지고, 일본인의 정서가 자연스럽게스미면서 일본가요인 엔카가 된 것이죠. 이렇게 많은 과정을 격고 정착된 우리나라의 트롯은 보통 4박자의 리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트로트의 시작이라고 하면 저는 항상 이 노래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바로 윤심덕의 <사의 찬미>입니다.

광막한 황야를 달리는 인생아/너는 무엇을 찾으려 왔느냐/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평생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녹수 청산은 변함이 없건만/우리 인생은 나날이 변했다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평생/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

  이 노래의 가사를 살펴보면 사실, 윤심덕의 일생이 그대로 투영 돼 있는 노래이기에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윤심덕은 조선총독부의 관비유학생으로 발탁되었고, 일본에서 성악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음악선생님으로 있으면서 대중가요 활동을 하였습니다. 1926년 일본에 음반을 취입하기 위해서 가게 되었고, 여기서 그 유명한 <사의 찬미>를 취입하게 됩니다.

  이 곡은 이오시프 이바노비치의 왈츠 <다뉴브강의 잔물결>의 주선율에 별도의 가사에 덧붙인 번안곡인데요, <사의 찬미>는 원래 녹음하고자 했던 곡이 아니었습니다. 노래를 녹음하던 중에 그녀가 갑자기 노래를 녹음하고 싶다고 했고, 그렇게 급작스럽게 녹음된 <사의 찬미>는 그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얻기도 했었죠. 그 인기 중에 하나가, 윤심덕과 애인이었다고 추측되는 극작가 김우진과 함께 관부연락선을 타고 귀국 도중 둘 다 가명으로 유서를 남기고 현해탄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김우진은 결혼을 했던 유부남이었기에 윤심덕과 김우진을 두고 수많은 루머들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죽음을 가장했다는 ‘생존설’과 실족 등에 의한 ‘사고설’ 많은 것들이 제기되었습니다. 당시 그들의 드라마틱한 죽음으로 인하여, 사실은 어디 외국에서 살고 있다는 설이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사실 두 사람은 안 죽고, 유럽으로 도피했다는 소문이 가장 신빙성 있게 돌기도 했습니다.

  <사의 찬미>가 폭발적인 인기를 끄는 만큼 소문도 늘어났죠. 1931년에 이탈리아 잡화점을 하는 동양인 부부가 있었는데, 이들이 김우진과 윤심덕이었다는 소문이 유력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자살을 하기 위해 유서를 쓰는데 가명을 굳이 사용했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두 남녀의 죽음이, 자살이든 위장 죽음이든 윤심덕의 삶은 한 편의 시였고 소설이었고 슬픔이었습니다. 전설적인 노래를 남기고 1926년 8월 4일 이후 윤심덕과 김우진은 사라져버렸습니다.

  그 이후, <울고 넘는 박달재>(1948)부터 시작해 한일 국교 정상화라는 시대적 배경을 발판으로 <동백 아가씨>(1964), <물레방아 도는데>(1972), <돌아와요 부산항에>(1977)를 거쳐 80년대 이후의 <허공>, <봉선화 연정>에 이르기까지 트로트는 오랫동안 사랑받았습니다. 6, 70년대에 혜성처럼 등장했던 이미자, 남진, 나훈아, 심수봉, 조용필 그리고 2000년대를 거쳐와 장윤정, 홍진영, 송가인까지 트로트가 죽지 않고 여전히 살아있는 이유는 아마도 슬픔의 근원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트로트가 이렇게 인기가 많기까지 다수의 사람들은 트로트를 대중문화에서도 하위문화에 속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왜색이 짙은 국적 없는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밤무대에서 부르는 노래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둠이 깔려있고 붉은 조명 아래서 노래를 하고 있는 장면을 떠올려 보면 어느 누구는 싸구려 같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또 다른 한편으론 얼마나 또 시적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가끔, 제가 시를 쓸 때 듣는 음악들이 있는데 몇 곡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먼 옛날 어느 별에서 내가 세상에 나올 때/ 사랑을 주고 오라는 작은 음성 하나 들었지
사랑을 할 때만 피는 꽃 백만 송이 피워 오라는/진실한 사랑 할 때만 피어나는 사랑의 장미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아낌없이 아낌 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이젠 모두가 떠날지라도 그러나 사랑은 계속 될거야/저 별에서 나를 찾아온 그토록 기다린 인연인데
그대와 나 함께라면 더욱 더 많은 꽃을 피우고/하나가 된 우리는 영원한 저 별로 돌아가리라

  우리가 시작한다는 것을 알고 시작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 끝도 알 수 없습니다. 인간이 시작되는 슬픔을 몽환적인 반주로 표현하면서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반복 되는 구절은 우리가 왜 살아있는지, 왜 살아가는지를 저절로 묻게 만듭니다. 대부분의 트로트의 정서를 보면 슬픔, 후회, 아픔, 그리움이 깔려있습니다. 흘러가는 강을 보며 어머니를 생각하기도 하고, 덜컹거리는 밤기차를 타며 옛 애인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트로트의 가사와 멜로디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이유는 우리가 다시 재회하기 힘든 슬픔이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내게 남은 것은 무엇인지 시간이 많이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다시 재회하고 싶은 것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트로트가 계속해서 불려지는 이유는 트로트가 가지고 있는 얼굴이 여러 가지이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님이여, 그대여 직접 부르며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출하기도 하고, 세련되고 섬세하게 은유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심수봉의 <백만송이 장미>의 원곡은 알라 뿌가체바의 <마리나가 준 인생>이라는 곡입니다. 심수봉이 번안해 우리나라에 알려졌고, 개인적으로 러시아에서 번안한 내용이 한 편의 시로 읽혔습니다. 어느 가난한 화가가 집도 팔고 그림도 팔도 피까지 팔아서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바다를 덮을 만큼의 백만송이 장미를 샀다고 하는 내용인데, 비록 슬프게 끝난 사랑이지만 그 여배우는 평생 그 기억을 간직했다고 하니, 미완성이 되고서야 알게 된다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가 라는 생각도 듭니다. 살아가다보면 우리에겐 수많은 기쁨과 슬픔이 오고 갑니다. 사실 완벽한, 완성된 사랑은 애초에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우리의 몸으로 느끼고 마음이 먼저 가는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촉수 같은 것들이 흔들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세상에는 너무 많고요. 그래서 더 미완성품들이 아름다운 걸까요.

  엔카 가수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일본의 정서와 엔카의 미묘한 지점을 오묘하게 잘 살려 노래하고 있는 나카시마미카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눈의 꽃>원곡자이기도 합니다. 2010년 이관개방증이라는 병때문에 가수 활동을 중단하였다가 다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엔카의 정석은 아니지만, 엔카 특유의 꺾는 창법으로 맑으면서도 약간 허스키한 음색으로 애절한 음악을 해오고 있는 일본의 독특한 대표 가수입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3남매 막내로 태어난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엔카 가수들의 음악을 들으며 꿈을 키워왔고, 인터뷰에서 항상 엔카 가수들을 동경해왔고 그 슬픔을 매만지면서 노래하려고 한다고 할정도이니, 일본의 대표가수들도 엔카의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도 하겠습니다.

내가 죽으려고 결심했던 건 괭이갈매기가 부두에서 울고 있었기 때문이야 
제멋대로 떠올랐다 사라지는 파도처럼 과거도 쪼아 먹고 날아가거라
내가 죽으려고 결심했던 건 생일날에 살구꽃이 피었기 때문이야
나무로 지어진 역의 난로 앞에서 어디에도 여행을 떠날 수 없는 마음
내가 죽으려고 한 것은 마음이 텅 비어버려서야
채워지지 않는다며 울고 있는 것은 분명 채워지고 싶다기 바라기 때문이야

  미카의 특유의 꺾기와 미세하게 떠는 바이브레이션 창법은 이 곡의 분위기를 더 극대화시키기도 하죠. 참 우리는 죽고 싶은 이유도 많고, 살고 싶은 이유도 많은 것 같습니다. 먼 하늘에 까마귀 떼들이 흩어질 때, 나뭇가지에 얼어붙은 눈들이 가지를 내릴 때, 옥수수 밭이 점점 노랗게 불타고 있을 때, 할머니의 머릿결에 염색을 하는 엄마의 뒷모습을 볼 때, 문득 죽고 싶다는 생각과 너무나 살고 싶다는 생각이 교차 될 때가 많은 날입니다.

 

 

* 《쿨투라》 2020년 4월호(통권 7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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