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_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봉준호와 '기생충'
[movie_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봉준호와 '기생충'
  • 박흥진(영화비평가)
  • 승인 2020.03.31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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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cars_RedCarp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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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일명 오스카)상의 역사에 새 기록을 남겼다. 서울의 가난한 가족과 부자 가족의 관계를 통해 한국의 극심한 빈부 격차를 비판한 <기생충>이 2월 9일 할리웃의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 감독, 각본 및 국제영화(옛 외국어영화) 상 등 4개 부문의 중요한 상을 휩쓸었다. <기생충>은 이들 4개 부문 외에도 편집과 미술상 후보에도 올랐었다. 아카데미는 물론이요 한국영화사에도 새로운 기록을 남긴 큰 경사다.

  봉 감독도 첫 번째 수상인 각본상(한진원 공동 집필)을 받은 뒤 소감에서 “각본을 쓰는 것은 고독하고 외로운 작업이다. 그것을 쓰는 것이 나라를 위해 쓰는 것은 아니지만 이 상은 한국으로선 첫 상이자 큰 영광”이라고 말했다.

  외국어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기는 이번이 처음이고 작품상과 국제영화상을 모두 받기는 더더욱 처음이다. 각본상도 아시안 영화로선 처음이다. 아카데미상은 지금까지 미국영화인들의 자기 잔치라는 비판을 들어 왔다. 봉 감독도 이를 ‘지역 행사’라고 말한 바 있다.

  <기생충>은 대부분 작품과 감독상을 받을 것으로 예측한 샘 멘데스 감독의 1차대전 서사극 <1917>을 제치고 깜짝 영광을 차지했는데 <1917>이 용감함과 우정과 희생을 그린 전통적 구식 전쟁영화라는 점에서 아카데미가 이를 기피하고 소품이나 마찬가지이나 독창적 아이디어를 지닌 <기생충>을 선택했다는 것은 아카데미가 구각을 벗으려고 보여준 노력의 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카데미가 내년에도 외국어영화에 작품상을 준다는 보장은 없다. 한 발 앞서가면 그 다음에는 두 발 물러서는 것이 아카데미의 관행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카데미가 외국어영화상의 이름을 올해부터 국제영화상으로 바꾼 것도 아카데미의 구각 탈피 노력의 일례로 볼 수 있다. 이 상을 받은 봉 감독도 소감에서 “아카데미가 상의 이름을 바꾼 뒤 첫 번째 받는 상이라는데 의미가 있다”면서 “오스카가 새 방향을 추진하는 시점에서 상을 받아 기쁘다”고 말했다.

Dolby TheatreⓒOscars

  아카데미 회원들이 ‘기생충’에게 상을 무더기로 준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영화가 좋기 때문이긴 하지만 또 다른 이유로 아카데미의 외국어영화 기피증을 맹렬히 비판한 언론의 공이 크다. 특히 필자가 속한 LA 영화비평가협회(LAFCA) 동료 회원인 LA 타임스의 비평가 저스틴 챙은 여러 차례에 걸쳐 아카데미의 외국어 영화와 자막 기피증을 비판하면서 “<기생충>이 오스카를 필요로 하는 것보다는 오스카가 훨씬 더 <기생충>을 필요로 한다”고 <기생충>을 후원했다. 그런데 LAFCA는 <기생충>과 봉 감독을 2019년도 최우수 작품과 감독으로 선정했고 송강호를 최우수 조연 남우로 골랐다.

  봉 감독도 1월 5일에 열린 역시 필자가 속한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가 주관하는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받은 소감에서 “1인치도 안 되는 자막이라는 장벽을 넘으면 보다 훌륭한 영화들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아카데미가 백인 남자 일색이라는 비판을 벗어나기 위해 몇 년 전부터 한국을 비롯한 젊은 다인종 국제영화인들과 여성들을 대거 신입회원으로 초빙하면서 아카데미에 새 피가 공급된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로 들 수 있다.

  <기생충>은 작년 칸 영화제 대상과 골든 글로브상에 이어 외국어 영화로서 오스카상을 탐으로써 구로자와 아끼라, 잉그마르 베리만, 페데리코 펠리니 및 프랑솨 트뤼포 같은 세계적 거장들이 달성하지 못한 업적을 이룬 셈이다.

  ‘기생충’은 사회비판영화요 블랙 코미디이자 가족 드라마이며 비극이요 공포 스릴러인 장르를 뒤섞은 작품인데 이 장르의 변형적 연출은 봉 감독의 특기다. 영화가 관객은 물론이요 비평가들의 격찬을 받은 이유는 우선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선한 아이디어. 기발한 착상인데 모두들 한결같이 “이런 영화는 처음 봤다”고 칭찬했다. 또 빈부격차의 문제는 비단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것도 관객에게 어필한 것으로 보인다. 봉 감독도 영화에 대한 세계적으로 공통된 반응을 보고 “우리가 모두 현재 하나의 거대한 자본주의 국가에 살고 있구나 하고 깨달았다”고 피력했다.

  이 신선하고 놀라운 아이디어는 봉 감독의 두뇌에서 나옴에 분명한데 HFPA의 일본인 동료회원 유끼는 내게 “봉의 머리가 유난히 커 거기서 이런 뛰어난 상상력이 나오는 것 같다”면서 깔깔대고 웃었었다.

  봉 감독은 영화의 아이디어를 자기가 대학생 때 경험한 일에서 얻었다고 말했다. 그때 ‘기생충’의 주인공 중 하나인 기우처럼 큰 저택에 사는 부잣집의 중학생 아들의 가정교사로 일했는데 어느 날 그 학생이 자기에게 2층에 있는 엄청나게 크고 화려한 사우나를 구경시켜 주더라는 것이다. 봉 감독은 이를 보고 “마치 남의 사생활을 엿보는 기분으로 부잣집에 침투하는 기분이었다”면서 “여기에 내 친구들을 하나씩 데리고 이 집에 침투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하고 상상을 했었다”고 말했다.

사진 맨 오른쪽이 필자 박흥진
사진 맨 오른쪽이 필자 박흥진

  필자와 봉 감독은 그의 2009년작인 <마더>와 2017년 작인 <옥자> 그리고 <기생충>으로 인해 인터뷰 차 몇 차례 만나 구면지기. 만나면 끌어안고 “봉형” “박 선생님”하며 반기게 됐다. 그는 나이 50답지 않게 젊은 총각 모습인데 사람이 내적으로 든든하면서도 소박하고 겸손하며 또 유머가 있어 정이 간다.
봉 감독은 <마더>의 주인공인 김혜자씨가 LAFCA에 의해 최우수 주연여우로 선정돼 LA를 방문 했을 때 처음 만났다. 그는 당시 “처음에 김혜자씨가 최우수 주연여우로 뽑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충격을 금치 못했지만 참으로 당연한 일”이라고 소감을 피력했다.

  봉 감독은 이어 “나는 아직도 영화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현재 내 자신의 스타일을 찾아가고 있다”면서 <마더>까지가 자기 영화 생애의 초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 봤다. 그의 말대로 봉 감독은 <마더> 이후 만든 <설국열차>와 <옥자>로 세계적 감독 대열에 참여했고 이제 <기생충>으로 명실공히 일급 세계 감독의 반열에 올라섰다.

  봉 감독은 각본을 쓰고 감독을 겸하는 작가주의 감독으로 역시 이 범주 안에 드는 박찬욱, 이창동, 홍상수 감독 등과 함께 세계가 알아주는 감독이다. 봉 감독은 <살인의 추억> <괴물> 및 <마더> 그리고 그의 미국영화 <설국열차>와 <옥자> 등에서 볼 수 있듯이 특히 스릴러에 능하지만 이 스릴러 장르를 비틀어 변형을 시켜 오락성과 개인적 색채가 짙은 예술성을 잘 겸할 줄 아는 감독이다. 그는 장르의 균형에 대해 “장르를 섞는 것이 2시간 내내 한 장르로 진행하는 것보다 훨씬 더 쉽다”면서 “그것이 장르이건 분위기이건 간에 난 여러 가지 요소를 동시에 엮는 것이 편하고 자연스럽다. 그리고 영화란 감정에 바탕을 둔 것으로서 감정이란 늘 복합적인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고백했다.

  봉 감독은 스릴러가 주특기이니 만큼 히치콕의 영화광으로 7세 때부터 그의 영화에 빠졌는데 “난 히치콕의 얘기를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가 좋아하는 또 다른 스릴러 감독은 일본 공포영화의 장인 구로자와 기요시. 그리고 1960-70년대 활약한 스릴러를 잘 만든 한국의 김기영 감독도 좋아하는데 <기생충>은 김 감독의 <하녀>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또 일본의 이마무라 쇼헤이(<뱀장어>로 칸영화제 대상 수상)와 <양들의 침묵>을 연출한 조나산 데미도 좋아한다고.

  봉 감독은 이번에 감독상을 받으면서 자기가 영화를 공부할 때 숙지하던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에게 감사를 표하는 기회를 맞기도 했다. 스콜세이지 역시 <아이리시맨>으로 감독상 후보에 올랐었다. 봉 감독은 상이 뜻밖이라는 듯이 다소 겸연쩍어 하는 웃음을 지으면서 무대에 올라 “영화를 공부 할 때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조적인 것’이라는 말을 새겨 간직했는데 그 말은 바로 마틴 스콜세이지가 한 것”이라며 “그의 영화를 보고 공부했는데 수상후보에 함께 오른 것은 큰 영광이며 상을 탈 줄 몰랐다”고 스콜세이지에게 감사를 표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봉 감독은 또 역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로 감독상 후보에 오른 쿠엔틴 타란티노에게도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는 “내 영화를 아무도 모를 때 알아준 사람이 쿠엔텐 타란티노”라면서 “아이 러브 유 타란티노”라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그래픽 디자이너인 아버지로 인해 집안 분위기가 봉 감독을 초등학생 때부터 영화 쪽으로 몰고 갔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방 안에 처박혀(다소 대인 기피증이 있다고) 주한 미군방송인 AFKN-TV에서 방영하는 영화들을 보면서 영화인의 꿈을 키우게 됐다고. 그때본 영화 중 깊은 충격과 감동을 받은 것이 프랑스의 앙리-조르지 클루조가 감독하고 이브 몽탕과 샤를르 바넬이 나온 인생 낙오자들의 생존의 몸부림을 그린 서스펜스 스릴러 <공포의 보수>. 영화를 보면서 너무나 불안하고 긴장이 돼 화장실에도 갈 수 없었다고 기억한다. 꼬마 때부터 이런 영화를 좋아했으니 그는 상당히 조숙한 사람이었음에 분명하다.

  이들 영화에 서서히 매료되면서 과연 카메라 뒤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며 누가 이런 작품들을 만드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그 생각에 잠도 못자고 여러 감독들의 이름을 암기해 가면서 자기도 감독이 되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TV로 외국 영화를 보면서 대사를 몰라 상상으로 내용을 그리곤 했는데 그 뒤로 자기는 헛것을 자주 보는 버릇이 생겼다고. 이 헛것이야 말로 예술가의 비전이라고 하겠다. 봉 감독은 <옥자>의 아이디어도 어느 날 차를 차고 가는데 갑자기 공중에 커다란 돼지가 나타나 그것에서 착상했다는 것이다.

  봉 감독은 스스로를 매우 감정적인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각본을 쓸 때도 감정적이 되곤 하는데 밤늦게 글을 쓰면서 자기가 쓴 글을 보고 울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 그 대사를 보면 크게 실망하곤 한다는 것이다.

  봉 감독은 체격이 늠름해서 그런지 여행할 때면 하루 종일 뭘 먹을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면서 식당에 관해 열심히 조사를 한다고. 세트에 있을 때도 차려 놓은 점심이 매우 중요하다며 크게 웃었다.

왼쪽 기생충 투자배급사 CJ그룹 이미경 부회장
왼쪽 기생충 투자배급사 CJ그룹 이미경 부회장

  한국에서 <기생충>을 만드는데 별 애로 사항은 없었는지에 대해 물었다. 봉 감독은 이에 대해 “난 운이 좋아 한국에서 영화를 찍을 때 영화계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는다. 전체 촬영기간은 74일로 제작자들과 투자자들로부터 적극적인 후원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은 제작 후반 작업 땐 전연 간섭을 안 했다. 완전히 자유로워 책임감이 더 막중했다. 이런 지원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국제적 관객들에게 떳떳이 내놓을 수 있는 영화를 만들려고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영화의 인물들인 김씨네와 박씨네 사람들을 모두 처음부터 구상했는지에 대해서는 이렇게 알려줬다. “첫 아이디어는 2013년에 구상했다. 그 후 4년간은 영화의 기본 줄거리를 생각하고 썼다. 14쪽의 줄거리를 쓴 것이 2015년이다. 그 땐 김씨네와 박사장네 두 가족 밖에 없었다. 세 번째 인물들인 박사장네 지하실의 부부는 각본이 완성되기 3개월 정에 착상했다. 그들로 인해 영화의 후반부가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그들을 착상하고 큰 행복감을 느꼈다. 그 두 부부의 아이디어는 운전을 할 때 나와 차를 멈추고 메모를 했다. 각본을 쓸 때 뜻밖의 새 인물이 떠오를 때가 가장 행복하다.”

  봉 감독은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제작비에 대한 예의로라도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는 영화를 만들고 싶지만 돈을 추구한다거나 내용을 타협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술가의 의지를 밝혔다. 그는 지금 영어영화와 한국영화 각기 한 편씩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구태의연한 할리우드의 자기 잔치인 아카데미상의 자막과 외국어영화 기피증을 깨어놓은 봉 감독의 건투를 빈다.

  시상식이 끝나자 HFPA 동료회원들로부터 축하한다는 텍스트 메시지가 내게 쇄도했다. 마치 내가 상을 탄 것처럼 기분이 흐뭇하고 자랑스러웠다.

 

 

* 《쿨투라》 2020년 3월호(통권 6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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