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신중현 8]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
[아티스트 신중현 8]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
  • 장석원(시인·광운대 교수)
  • 승인 2020.04.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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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로트 광풍이 거세다. 트로트를 싫어하지 않았다. 대학 시절, 낮의 민중가요와 밤의 포크 송이 균형을 이뤘지만 술자리 끝에는 트로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가르쳐준 사람 없고 배운 적도 없는데 부르면 입에서 주르륵 흘러내리던 트로트. 노래방에서 트로트 메들리는 좌중의 흥분제였다. 모두를 춤추게 하는 집단성이 트로트에서 방사(放射)되었다. 그렇다고 트로트를 즐긴다고 말할 수 없었다. 트로트를 좋아한다고 하면 지인들은 대부분 눈을 가늘게 떴다. 별걸 다 좋아하는군…… 우연하게 접속한 이박사의 앨범을 감상한 후 트로트의 무한 변신 가능성을 파악했지만, 소개할 때마다, 욕을 얻어먹는 경우가 많았다. 현인의 노래에서 시를 발견했지만 그것보다 더 좋은 것들이 많다는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씽씽밴드와 프렐류드를 거쳐 지금은 OBSG(오방신과)를 이끄는 이희문의 민요를 탐닉하다가 떠오른 생각 하나. 트로트의 기원이 일본 엔카가 아니라—트로트 열풍의 뿌리는 매우 깊다. 역사적으로 보면 1930년대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트로트는 일본에서 건너온 ‘신유행가’였다. 서양음악이 밀려들면서 일본의 전통적 ‘요나누키(四七拔き)’ 단음계(라시도미파)에 2박자 리듬을 더한 대중가요 ‘엔카(演歌)’가 만들어졌고, 엔카가 일제강점기 조선으로 전파돼 트로트로 재탄생했다(김인구, 「恨과 興 뒤섞인 유일한 장르…… ‘꺾기’ 기술·편곡 진화하며 재평가」, 《문화일보》 인터넷판, 2020.3.12.)—19세기 말 20세기 초의 민요라는 추측과 직관의 뒤섞임. 김소월의 트로트 같은 시를 왜색이라고 말하는 국문학자는 없다. 김소월의 시와 민요의 상관관계는 널리 밝혀졌다. 우리가 지금 환호하는 트로트도 전통에 뿌리 내리고 있지 않을까.

 트로트와 뽕짝의 차이.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콜라텍의 배경음악이, 관광버스 안에서 막춤 추는 사람들의 체취 범벅인 저질 음악 뽕짝이, 지켜보고 귀담아 듣는 음악으로 변신했다. 어찌 된 일인가. ‘미스터 트롯’에서 성악가 김호중이 부르는 <무정블루스>나 <바람남>이 어떻게 트로트인가. 판소리꾼 강태관의 <대전블루스>가, 가수 임영웅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가 정말 트로트인가. 트로트 가수가 김광석을 노래하면 트로트인가. 성악가가 트로트 <짝사랑>을 부르면 변절인가. 내가 트로트에 열광하는 이유는 트로트의 혼종성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전통가요’ 같은 명칭에 묻어 있는, 경로우대 냄새 짙은, 트로트의 정형화를 상업성이 파괴했다고 말해도 좋다. 새로운 가능성이 구현되었다. 대부분의 대중음악이 그러하듯 트로트도 다른 것과 혼혈—이박사가 『Space Fantasy』에서 실현했지만 철저히 무시 당했던 선구적인 시도, 트로트와 테크노의 결합, 그 대중적 예가 김연자의 <아모르파티>이다—되기 시작했다. 없던 것이 생겼다. 많은 것과 결합 가능한 트로트를 통해 우리는 이질적인 것의 힘을 알게 되었다. 우리의 무엇이 달라졌기에 인식이 변했는가.

 ‘뽕짝’을 발견했다는 말에 낯이 붉어진다. 신중현을 ‘발견’했다는 인식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내면에 인박혀 있던 ‘자기 비하’의 극단적 표상이었던 트로트와 국악. 한국인들은 ‘롹’을 할 수 없다는 의식이 팽배했던 것도 마찬가지 현상이라고 이해 가능하다. 대중음악은 서양과 일본을 따라갈 수 없다는 생각, 뒤집힌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몰랐고 우리가 인정하지 않았던, 세계적 음악 수준을 단번에 뛰어넘은 신중현이 있었다. 반복한다. 이 고유명사는 우리의 ‘긍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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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ream, ELP, Grand Fuck Railroad, Green Day, Jam, Jimi Hendrix Experience, King’s X, Motorhead, Muse, Nirvana, Police, Primus, Rush, Triumph, ZZ Top, 마그마, 산울림…… 이 고유명사들의 공통점, 록 음악의 미니멀리티(minimality)를 구현한 3인조 밴드들. 여기에 신중현과 엽전들을 추가한다. 기타 신중현, 베이스 이남이, 드럼 권용남. (신중현과 엽전들 1집의 초판 드러머는 김호식이었다.) 우리가 듣고 있는 1집은 한정판으로 나온 초판이 아니라, 재녹음된 다른 1집이고,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미인>도이 두 번째 1집 수록곡이다. 우리가 보유한 보석, 신중현이 꼭짓점인 트리오 ‘신중현과 엽전들’의 현대성…… 그 신비 쪽으로……

 2006년, 동유럽. 많은 시인 평론가 사이에서 나는 첫 시집을 출간한 애송이에 불과했다. 낯선 시공간에 내던져진 내가 당면했던 두려움과 즐거움의 동시병발. 까끌거리는 사포 같은 러시아어가 뺨을 핥고 있었다. 그때 내 가방 속에는 Pearl Jam의 절규와 Slayer의 저주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날 그 거리에서 신중현을 심장 가까운 곳에 품고 있었다면 어떤 감정에 사로잡혔을까. 신중현을 왜 몰랐을까. 왜 우리의 음악을, 모국어로 부르는 한국의 록을 알지 못했을까. 쌍뜨 뻬제르부르크의 고리끼 거리와 프라하의 까를대교에서 신중현과 엽전들 1집에 수록된 <떠오르는 태양>을 혈관에 주입했다면 내 피는 얼마나 뜨거워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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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ck 02 생각해 : 4분 23초였던 노래가 1분 52초로 줄어든 이유는 제작사의 간섭 때문이었을까. 신중현의 목소리에는 젊음의 힘이 가득하다. 베이스의 전진 위에 뿌려지는 꽃잎 같은 기타. 지금 이곳에 없는 것들이 그때 그곳에 있었다. 과거의 습격, 과거의 귀환을 경험한다. 현재가 잃어버린 것이 있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것이 앎의 지평 위로 솟아올랐다. 그것이 우리에게 새로운 창조로 인식된다면, 새로움의 감각을 각성시킨다면, 그것을 현대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겹쳐진 기타 사운드가 “멀리서 너를 보고 있는” 것 같다. 가까이 다가와서 가슴 아플 정도로 끌어안는다. 신중현의 노래가 끝나고 들려오는 기타 연주, 몸을 뒤틀게 한다. 귀에 봉침(蜂針)처럼 박힌다.

 track 03 그 누가 있었나 봐 : 시간 가는 줄 모른다는 말을 새삼 확인한다. 이남이의 베이스가 음악의 얼굴이다. 노래를 부르고 기타를 연주해야 하는 신중현은 균형을 유지한다. 베이스가 배음(背音)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흰 눈 맞은 동백처럼, 포도(鋪道) 틈새의 민들레처럼 정확하고 선명하게 자신을 드러낸다. 돋을새김한 문자 같다. 간주 부분에서 날개 펴는 기타는 꽃향기에 한껏 취해 몸 뜨거워진 연인이 나누는 눈빛처럼 농밀하고 끈적하다. 에로스, 몸을 구부리게 한다. “그 누가 있잖아” 하고 외치는 가수의 목소리는 떨린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말은 언제나 사랑하는 사람 쪽으로 휘어진다. 마침내 꺾인다, 부러진다.

 track 04 긴긴밤 : 밴드의 이름 ‘엽전들’을 곰곰 바라본다. 낯춤이든 높임이든 희화화이든 비판이든 명사 엽전에서 ‘우리’를 떠올린다. 신중현이 염두에 둔 ‘우리 것’은 무엇일까. 서양의 록을 우리 것으로 창조하기. 서양 음악이 한국에 이식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 서양 음악이 토착화 과정을 거쳐 새로운 면모로 재탄생한다는 것.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졌다. (우리의 맨얼굴을 처음 발견하는 경이에 빠져, 낯선 두려움에 빠져, 그것의 침략에 속수무책 무장해제 당한다, 항복한다.)우리는 그 실례를 신중현과 엽전들 1 집에서 확인한다. 우리가 낮고 모자라다고 억압시켰던 것이 현재로 돌아왔다. 새롭다. 그것이 우리의 몸을 변양시킨다. 반복되는 기타 리프와 베이스의 결합…… 손가락 끝에 가시가 박힌 것 같다. 한국 사람인데 한국적인 록의 원형을 지금에서야 경험한다. 경탄(驚歎)한다. 이것이었구나.

 track 05 나는 너를 사랑해 : 이 곡이 이 앨범의 무의식일지도 모른다. 가사는 제목 ‘나는 너를 사랑해’뿐이다. 그런데 ‘해랑사를 너는나’로, 거꾸로, 발화된다. 그리고 상여노래. 앨범의 허리를 죽음으로 분지른다. 나는 너를 사랑하지만 나에게 남겨진 것은 죽음뿐이라는 뜻일까. 신중현이 죽음의 냄새를 작품에 끌고 들어온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겪은 당대 정권의 폭력 때문이었을까. 당도할 시대가 죽음의 그림자에 덮씌울 것임을 예견할 것일까. 미래의 묵시록이었을까. 이 트랙은 너무나 전위적이고 너무나 신랄하다. 신중현만이 할 수 있는 도발이기에 너무나 너무나 발랄하다. 1974년의 만장(挽章)을 본다.

 track 06 저 여인 : 플레이 타임 1분 즈음, 이남이의 베이스 라인이 도드라진다. “저 여인은 울고 있네”에서 작곡자나 기타리스트가 아니라 가수 신중현이 빛난다. 흥미로운 상상에 빠진다. 1974년에 유튜브와 SNS가 있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Rush의 AlexLifeson과 ZZ Top의 Billy Gibbons가 깜짝 놀라지 않았을까. 전 세계가 화들짝 몸서리쳤을 것이다. 신중현은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음악을 창조했다.

 track 07 설레임 : 꿈의 세계로 들어간다. 신중현과 함께 도착한 그곳에서 우리는 봄 햇볕 속 야마(野馬)를 바라본다. Pablo Picasso의 <꿈>에 빠진다. 나른하다. 신경계가 확장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소리의 시작과 끝이 칼끝처럼 다가온다. 연기가 아른거린다. “고요하게 지나가는 흰 구름이 보”인다. “내 마음속에 누가 있었나”보다. 님일까. 돌아오는 그 사람의 얼굴이 신기루 같다. 부서지고 흩어져 날아간다. 곡의 후반부에서 기타 연주는 꿈처럼 사라진다. 날개를 펴기 전 추락한다. 현실로 축출된다. 돌아온 이곳, 우리가 살고 있는 여기는 어디인가. 짧은 환상여행 끝에 응시하는 현실의 모습. 둘러보라, 살고 있는 이곳을.

 track 08 할 말도 없지만 : 압착 또는 사출. 신중현의 기타 연주를 이 두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른다. 청자의 감정을 음악이 그렇게 만든다. 기타 소리가 청각을 촉각으로 전환시킨다. 기타 소리가 피부에 들러붙는다. 귀가 아니라 살갗이 반응하는 음악이 3분도 지나지 않아 사라진다. 긁는 기타와 긁힌 마음. 징징 우는, 와와 울리는 기타 뒤에서 두둥실 떠오르는, 새싹처럼 쫑긋 솟아나는 베이스. 록 음악의 기본 편성인 악기 셋으로 엽전들이 구현한 음악은 삼림(森林)처럼 두껍고 짙다.

 track 09 나는 몰라 : 신중현은 “알게 뭐야”의 어미를 연신(延伸)한다. 그러다가 가창은 꺾였다 펴진다. 되풀이되는 그루브를 타고 신중현은 “나는 몰
라 알게 뭐야”라고 방관조로 반항조로 그리고 타령조로 노래 부르다가 뚝 끊어버린다. 1분 15초에 벌어지는 일이다. “야 야 노래를 그렇게 부르면 어떡하냐…… 야 그 가사가…… 야 애인이 화낸다……다시 해 다시 하자”. 태연히 엽전들은 연주와 노래를 이어나간다. 애인이 화낼까봐 자신들의 노래를 스스로 검열한다. 권력은 그들의 음악을 이렇게 평가했다. 저속한 가사를 그따위 창법으로 부르다니…… 신중현은 부정한다. ‘나는 몰라 알게 뭐야.’ 같은 가사가 다르게 들린다.

 track 10 떠오르는 태양 : 연주곡이다. 사이키델릭하다. 노래 부르지 않는 신중현은 기타에 몰입한다. 화려한 기타 뒤에 있다가 전면에 나서는 베이스가 이 작품의 주인 아닐까 하는 생각. 록 음악에서 베이스는 리듬을 깔아주는 그림자 악기가 아니다. 이남이의 베이스 연주는 러쉬의 Geddy Lee와 대비된다. 이남이는 현란하게 리듬을 분절하지 않는다. 그의 연주는 신중현의 기타와 함께 도도(滔滔)하고 양양(漾漾)하게 흘러간다.

 track 01 미인 : 아껴두었던 <미인>. 단조 5음계를 사용하여 동양적인 미감을 구현한 기타. 가야금 같은 기타와 꽹과리 같은 하이햇. 연주와 노래의 주고받기. 흥겹다. 따라부른다.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네”에 이어지는 기타. 신중현의 발언과 대중의 반응과 역사의 평가가 일치하는 지점, 한국적인 록. 원형(原型)의 전설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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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엽전들’이란 밴드 이름은 일부러 한국적이고 토속적인 맛을 내기 위해 붙였다. 엽전에는 여러 뜻이 담겨 있었다. “엽전이 다 그렇지 뭐”나 “한심한 게 엽전이다”고 말할 때 엽전은 바로 우리 국민을 비하하는 은어였다.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좋다. 내가 엽전이다. 어디 엽전 맛 좀 봐라.’ 한국적인 가락만으로 한국적 록을 제대로 만들어보자고 결심했다. 6개월 동안 고심해서 곡을 썼다. 엽전들 1집은 한국식 록 음악의 전형을 보여준 야심작이었다.

—신중현, 『내 기타는 잠들지 않는다』, (해토, 2015), 166면

 1972년, 박정희는 10월 유신을 선언한다. 1973년, ‘이식문화론’과 ‘전통단절론’을 거부하고 문학사를 새롭게 서술하기 위해 김윤식과 김현은 조선의 근대를 영·정조 시대로 끌어올리는 과감한 역사 인식을 『한국문학사』에서 시도한다. 1974년, 신중현과 엽전들은 한국적인 록을 완성한다.

 역사와 문화의 기묘한 관계를 확인한다. 전통은 끊어진 것이 아니었다. ‘우리’와 ‘민족’과 ‘한국적인 것’을 인식하게 된, ‘나’의 자화상을 정직하게 응시한 신중현. 엽전들과 함께 창작한 음악의 가치. 역사성을 관통하여 현대성에 적중하는 음악.

 트로트 열풍이 전통의 계승으로 연결되면 좋겠다. 트로트의 원형(原形)이 일본 것이 아니라 우리것이 었으면 좋겠다. 조선 말기에서 시작하여 애국계몽기를 거쳐 일제강점기 이전에 꽃피운 민요가 트로트의 조상이라면, 트로트를 재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지 않을까. 창법과 박자 정도로 트로트를 규정할 수는 없다. 트로트는 일렉트로니카와 발라드를 포식하면서 범주를 확장하고 있다. 변종과 잡종이 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트로트의 가능성. 전통의 속성이 그렇지 않은가. 신중현이 실현한 한국적인 록 음악이 우리에게 전통의 현대화를 증명한다.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 (……) / 버드비숍 여사를 안 뒤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는 아무리 /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 나에게 놋주발 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김수영, 「거대한 뿌리」 부분

 

 

* 《쿨투라》 2020년 4월호(통권 7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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