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에세이]이상과 반 고흐
[문화 에세이]이상과 반 고흐
  • 방민호(작가·문학평론가, 서울대 교수)
  • 승인 2020.04.23 11: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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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의 확대와 시각 체험
이상이 1928년 경성고등공업학교 시절 그린 자화상.
비대칭 구조의 얼굴에 안구가 없는 한쪽 눈, 눈밑에 흐른 눈물 자국, 함몰된 정수리 등이
당대 첨단 예술사조인 표현주의와 맞닿아 있다는 평이다.ⓒ『이상평전』, 김민수 지음

 이상은 27세에 세상을 떠났다. 반 고흐는 37세에 세상을 떠났다. 이상은 폐결핵으로 죽었지만, 자신의 병을 방치하듯 살아 죽음을 불러들였고,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자르는 기행 끝에 정신병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두 사람 모두 인생을 오래 누리지 못했다. 그들은 재능 있는 사람답게 일찍 세상을 떠나야 할 운명을 타고 태어났다.

 이상은 처음에는 그림을 그리려고 했다. 그러다 문학으로 길을 돌렸다. 큰아버지 김연필은 총독부 기술관리였고 본명이 김해경인 이상이 경성고등공업학교에 들어간 것도 그런 큰아버지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 이상은 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조선총독부 기사로 들어가지만 큰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공무원’ 직을 버리고 본격적인 문학의 길로 나서게 된다.

빈센트 반 고흐 <파이프를 물고 귀에 붕대를 한 자화상>(1889),
Oil on canvas, 51 x 45 cm, 개인 소장

 고흐는 처음에는 자신의 집안 사업이기도 했던 그림 판매상의 점원으로 일했지만 곧 목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신학 공부를 하고 목회자의 길을 걷고자 한다. 고흐의 부친이 바로 목사였다. 하지만 그 길은 생각했던 것과 달리 자신의 성격에 맞지 않았다. 고통과 번민 속에서 그는 마침내 마음속에 키워오던 화가의 길로 나아가고자 한다.

 이상은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 식민지 체제의 한복판에서 인생을 마친 사람이었다. 그는 그럼에도 가장 현대적인 문학의 길을 개척하고자 했다. 보들레르, 니체, 도스토옙스키 같은 19세기 거장들의 문학과 철학이 그들에게는 하나의 현실 자체였다. 자신을 둘러싼 19세기의 문학적 현실을 딛고 그는 20세기의 현대성이란 무엇이며 이를 문학적으로 상대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고심했다. 그는 당나라 시인 이백부터 일본의 아쿠타가와까지 많은 작가를 섭렵했다. 그들을 알되 그들을 넘어서야 한다는 강렬한 자의식이 그의 소설들에 점철 되어있다. 그는 말년에 문제작 「날개」를 발표하고는 일본 도쿄로 건너갔다. 거기서 자신이 구상해온 작품들을 완성시켜 나갔다. 「종생기」, 「실화」, 「권태」같은 명작들이 그때 피어났다.

 고흐는 네덜란드의 프로트 즌델트라는 이름 없는 곳에서 출생했고 그림을 그리고자 결심하면서 처음에는 어두운 색조의 그림들을 그렸고 <감자 먹는 사람들> 같은 명작을 그렸다. 그러나 그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인상파 거장들의 도시, 프랑스 파리로 나아갔다. 그의 그림들 중에는 쇠라의 점묘화를 방불케하는 것도, 마네나 르누아르 같은 것도 있다. 그는 네덜란드 때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과 화가들에 심취했고, 모방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새로운 창조를 기약한 것이었다. 프랑스에서 그는 툴르즈 로트렉의 살롱에 출입하며 많은 화가들을 만나 교유를 나눴다. 하지만 그들은 먼 시골에서 온, 파리의 세련된 매너와는 거리가 먼 촌뜨기 화가의 재능을 쉽사리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아를르라는 곳으로 물러났지만 그곳에서 그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수립했다. <해바라기> 같은 불후의 명작이 이때 출현했다. 이상은 살아 있는 동안 세인들의 오해와 악평에 시달렸다. 경제적 궁핍은 그의 병세를 악화시켰고 죽음이 어른거리는 무대에서 그는 최후까지 자신의 길을 버리려 하지 않았다. 그의 문학을 알아준 이는 박태원이나 김기림 밖에 없었다. 바로 그 이상처럼 살아서 자기 그림을 몇 점도 팔지 못한 사람이 고흐였음은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자신의 경제를 동생 테오에게 내맡겨야 했다. 그가 보내주는 용돈으로 생활을 겨우 충당한 끝에 그는 삶을 이르게 마감했다.

빈센트 반 고흐 <해바라기>(1987). Oil on canvas, 43 x 61 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이상과 고흐, 그들은 모두 문화의 변방에서 태어났으되, 가장 현대적이고 그럼으로써 보편적인 예술을 성취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시대는 예술혼을 가진 이들로 풍성했지만 그들을 위해서는 불행한 시대였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때 경제적 궁핍과 질병, 죽음은 그렇게 두려워 할 것이 못되었다. 요즈음 나는 이상과 고흐, 이 두 사람의 불행했던 삶과 그들이 남긴 ‘불멸의’ 명작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이 걸어간 길, 외줄기 길을 생각한다. 문학과 회화를 자기가 걸어가야 할 길이라 믿고 나서 그들은 다른 길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의 이러한 삶과 예술에는 숭고함이 깃들어 있다. 그들은 보통사람보다 높고 또 비범했다.

 오늘날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결코 좋지 않다. 예술을 위해서도, 학문을 위해서도 세상은 좋은 여건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 더구나 이 시대는 영혼이 풍부한 이들이 이상과 고흐의 시대보다 적다. 하지만 바로 이것이 우리들이 만들어 가는 길의 진정성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고 있음이다.

 오늘, 그래서 이 두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그들이 바로 ‘나’의 현실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어려울 때 어떤 이의 정성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 《쿨투라》 2020년 4월호(통권 7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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