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ICON 최은영 소설가] 균열을 감싸는 체온의 소설
[2018 ICON 최은영 소설가] 균열을 감싸는 체온의 소설
  • 강유정(문학•영화평론가, 강남대학교 교수)
  • 승인 2018.12.27 15: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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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소와 같은

 처음 읽는 것은 아니지만, 「쇼코의 미소」를 읽으며, 마치 처음 읽는 것처럼 몇 구절에서 흔들렸다. 일본의 한 소녀가 한국의 어느 학교를 방문하고, 두 소녀가 서툰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고, 편지를 나누던 내용으로 기억하고 있었지만, 다시 읽었을 때, 거기엔 할아버지도 있고, 어머니도 있고, 무엇보다 두 사람 사이에 문장으로 남기지 못한 아주 긴 사연이 있다. 이런 것이었었지, 라며 처음 소설을 읽었을 때의 뭉클함과 흔들림이 기억 나 아주 잠깐 멍해 있었더랬다. 마침내, 이런 생각에 닿았다. 요즘, 젊은 작가의 소설 중에 이렇게 잠깐 삶의 흐름을 멈추게 하는 그런 소설이 있었던가?

최은영의 소설은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 강렬한 견인력을 지닌 일상의 흐름을 잠시 멈추게 하는 힘, 진짜 소중한 것들에 대한 질문을 지우는 일상의 손아귀가 잠시 힘을 일흔 순간, 그런 순간들의 힘 말이다. 최은영의 등단작이자 출세작이라고도 할 수 있을 「쇼코의 미소」에는 특별한 서사적 장치나 기교가 없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위한 첫 장면도 없고, 이야기의 순서를 뒤섞은 속임수도 없으며 숨겨 두었던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는 반전도 없다.

모든 게 순리대로다. 과거에 있었던 일에서 시작해 지금의 일로 끝나는 것,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꿈이라 부르는 것들과 결별하고 때로는 그것에 저당 잡히기도 하는 이야기, 살아 있던 사람이 세상을 떠나고 그 죽음이 또한 살아남은 자의 몫으로 침전되는 장면, 그런 것들이 천천히, 시간의 순서대로, 가만히 등장했다가 사라지고 흩어지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얼마나 오랜만이던가? 세상에 대해 대단한 포즈를 취하지도 않고, 응전 태세로 벼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득의만만한 재치로 뒤집지도 않는, 조용하고도 다정한 귓속말 같은 그런 소설을 만나본 지가 얼마나 오랜 만인가? 그런 의미에서, 최은영의 소설은 쇼코의 미소와도 같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아주 먼 훗날에서야 그 뜻을 알게 되는 삶의 휴지(pause), 그런 경우로서의 미소 말이다.

2. 용서가 아닌 이해의 소설

 도리스 레싱은 그녀의 소설 「19호실로 가다」에서, 용서는 이해하지 못한 자에 대한 태도라고 말한 바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했다는 것은 아직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이해된 것은 이해된 것으로 끝나지 용서까지 가지 않는다. 만약, 누군가를 용서한다면 그건 가까스로 이해해보고자 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최은영은 세상과 화해하는 게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는 소설가라고 할 수 있다. 최은영은 용서하지 않고 이해한다.

「쇼코의 미소」에서 화자인 소유는 스스로를 용서 하고 할아버지와 어머니 마침내 쇼코를 이해한다. 소유는 처음엔 스스로만 이해하고 다른 이들을 용서하려 하지만 결국 용서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임을 알게 된다. 이해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며 불화했던 대상은 남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었던 것이다. 이는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속을 열어 보이지 못하는 대신 살을 부딪치며 만날 필요가 없는 외국인에게 외국어로 편지를 써서 보내는” 쇼코도 마찬가지이다. 외국어를 통해 만나는 친구는, 어쩌면 이해되지 않는 나와의 화해를 위한 긴 우회로였을 지도 모른다.

나를 용서하려는 시도는 최은영의 두 번째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에 이르러 타인에 대한 적극적 포용과 이해로 확장된다. 확장이라 일컬을 수 있는 까닭은 나를 용서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타인을 이해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나의 비겁을 바라보는 것이며 나의 기만을 인정하는 것이고, 결국 나라는 인간의 한계를 수긍하는 것이기도 하다. 변명에서 벗어나 세상을 볼 때, 나의 자리는 제 값에 서 있게 된다.

 『내게 무해한 사람』의 맨 앞에 실려 있는 「그 여름」이라는 소설에 매혹되는 까닭도 여기서 멀지 않다. 「그 여름」은 보기 드문, 사랑이야기이다. 그 여름 아주 우연히 시작된 사랑이 하나의 기억으로 남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이 이야기는 사실 새로울 것이라고는 전혀 없는, 아주 오래된 사랑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여태껏 많은 소설에서 보지 못했던 동성 간의 사랑이라는 것 뿐. 하지만 이 차이는 ‘사랑’이라는 보편성 앞에서 차이가 아닌 공통점으로 녹아내린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상대가 어떤 사람이던 간에, 결국, 그렇게 강렬하고도 아픈 일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사랑했지만 결국 현실의 중력 앞에서 각각 다른 길을 선택하는 두 연인은 서로 다른 모습에 끌려, 매료되었지만 결국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친구의 이야기로 변주된다. 『내게 무해한 사람』에 실린 이야기들은 어떤 점에서 모두가 다 사랑이야기이기도 하고 모두가 다 우정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다. 「쇼코의 미소」의 소유의 말처럼,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으니 말이다.”

3. 소박한 위로의 진실한 온도

 만약, 소설에도 온도가 있다면 최은영의 소설은 사람의 체온만큼 따뜻하다. 흉터를 남길 만큼 뜨겁거나 정신이 달아날 정도로 차갑지 않고 최은영의 소설은 딱 사람의 체온만큼이나 따뜻하게 독자를 감싼다. 자극적인 문장도 그렇다고 화려한 기교도 없다. 하지만 어떤 문장 하나하나에 닿을 때마다, 우리가 잊고 지내던 삶의 질감이 분명해 짐을 경험한다. 그건, 하나의 흐름이었던 생이 어떤 감각으로 구체화되며 떠오르는 체험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최은영의 소설은 어떤 이미지로 기억된다. 찰나의 순간 남겨진 스냅사진처럼, 최은영의 소설을 읽고 나면 황토색 베레모를 쓰고 손녀를 찾아 온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 뒤로 고장 난 우산을 들고 따라가던 20대 손녀, 뜨거운 여름 운동장을 뛰고 있는 한 소녀 그 소녀의 싱그러운 미소와 땀방울이 마치 언젠가 보았던 장면의 데자뷔처럼 튀어 오른다. 말하자면, 우리 삶의 흐름을 일순 정지해, 영상화하는 힘, 그래서 말로도 논리로도 설명할 수 없지만 뚜렷이 각인된 삶의 어떤 순간들이 떠오르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각인된 순간들이 하루하루 무의미한 시간을 살아 내는 독자들에게 따뜻한 이 해의 온도가 되어준다는 사실이다. 최은영의 소설을 읽다보면 자신의 삶을 용서하지 못했던 우리가 마침내 그 삶을 온 힘을 다해 끌어안고, 이해하려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삶은 그렇게 용서하는 게 아니라 이해하는 것임을 그리고 그렇게 나와 화해하면서 삶은 지속되는 것이라고 조용히, 따뜻하게 그냥 안아 주는 것이다.

우리는 이처럼 조용하고, 다정한 위안을 꽤 오랫 동안 기다렸던 것은 아닐까 싶다. 언제라도 최은영의 소설을 읽으며, 삶의 온도를 다시 느끼는 것을 보면, 그리고, 이 삶의 모순을 끌어안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스스로와 만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강 유 정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졸업. 2005년 《조선일보》 《경향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동아일보》 영화평론 입선. 저서로 『오이디푸스의숲』이 있음. 강남대 교수. 《세계의문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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