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월평] 작가, 그것도 극작가의 등장이란
[연극 월평] 작가, 그것도 극작가의 등장이란
  • 장윤정(연극평론가)
  • 승인 2020.04.23 12: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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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상을 위한 희곡쓰기, 글쎄 어찌나 사소하고 어찌나 안 궁금한지

 무릇 작가란 미지의 존재 아니던가. 소위 작품으로 말해야 한다는 요구가 작가의 얼굴과 목소리를 작품 너머로 숨겨두게끔 만드니 말이다. 자연히 대중과의 소통에서 작가는 늘 작품 뒤로 밀려나곤 했다. 그중에서도 극작가의 위치는 이중으로 밀려나 있다고 해야겠다. 대개 희곡은 공연으로 관객을 만나다 보니 텍스트로, 배우의 발화로, 극작가는 거듭 밀려나게 되는 것이다. 이 지점을 과감히 무너뜨린 두 작품이 등장했다. 이소연 작가의 <희곡상을 위한 희곡쓰기>와 신효진 작가의 <글쎄 어찌나 사소하고 어찌나 안 궁금한지>다. 이른바 ‘작가주의 정신’이라 일컫는 것들과는 완벽히 어긋나는 제목들이다. 그 발칙함이 통쾌함을 선사한다. 두 작품은 제목만큼이나 솔직하다. 각 작가의 내밀한 고민이 담겨 있으며, 작가는 작품 속에 직간접적으로 등장한다. 그동안 무대 뒤편으로 밀려나 있던 작가의 얼굴과 목소리가 관객의 전면에 드러나는 순간이다.


 극작가로 산다는 건

 <희곡상을 위한 희곡쓰기>는 실제와 가상의 구분을 무너뜨리며 시작한다. 작품은 “온갖 희곡상을 휩쓴 유명 극작가 ‘이소연’의 희곡쓰기 강연을 위해 신촌극장에 삼삼오오 모인” 관객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황은후 배우가 이소연 역을 분하고 실제 이소연 작가는 무대 한 귀퉁이에 앉아 공연 진행을 돕는다.

 극중에서 이소연은 달리는 버스 안에서 돌연 창밖으로 몸을 내던져 죽음을 맞은 인물이다. 그 직후 희곡신으로부터 1시간의 유예 시간을 얻어 급히 유작을 남겨야 하는 상황이 묘사된다. 이소연은 지속해서 관객에게 말을 건네며 상황을 설명하고, 관객들과 직접 유작의 대사를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다 보면, 어느새 관객은 이소연의 작가의식의 근원을 들여다보게 된다. 상실감과 진심과 책임감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모습이다. 이소연은 가본 적도 없는 빙어축제에 대해 홍보 글을 쓰는데, 심지어 그것은 타인의 블로그에 올라갈 글을 대행해서 써주는 일이었다. 그럴듯한 거짓말은 빙어를 향한 죄책감으로, 스스로에 대한 좌절과 환멸로 되돌아왔다. 그때, 그녀는 달리는 버스 밖으로 몸을 내던지고 말았다. 마치 체홉의 <갈매기>에서 니나에게 영향을 준 갈매기처럼, 빙어는 이소연에게 더이상 삶을 무심히 지나칠 수 없도록 만드는 역할을 했다. 작가의 손끝에서 탄생한 빙어는 단순한 빙어가 아니었다. 빙어를 통해 발언하고자 했던 욕구, 그 근원을 들여다보아야 함을 작품은 말하고 있었다. 다양한 소재를 통해 지속해서 발언하고 싶어 하는 작가 내면의 깊은 욕구가 어쩌면, 외로움에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닐지 묻고 있었다. 닫혀 있던 극장의 창문을 여는 것으로 작품은 막을 내린다. 외부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소리는 극장 내부의 적막을 깨고, 침잠하는 작가의 세계관에 틈을 냈다. 그 틈은 세상과 소통하며 자신에 대한 사유의 끈을 놓지 않을, 작가의 숨구멍이 되었다.

 <글쎄 어찌나 사소하고 어찌나 안 궁금한지>는 제목만큼이나 유쾌하다. 우선 무대에 신효진 작가가 직접 ‘작가’의 역할로서 등장한다. 이미 극단 쿵짝프로젝트에서 배우로 활동한 바 있는 작가니만큼 새로울 일은 아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작·연출·배우를 한꺼번에 소화하여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낸 지점이 인상적이다. 그만큼 작품의 전체적인 서사는 신효진 작가 개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극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계기, 첫 번째 작품이 공연되었던 과정, 극작가로서 삶을 꾸려나가기 힘든 상황, 공연 작업장에서 극작가의 위치, 작가로서 지난날 작품에 대한 자기반성, 그럼에도 지속되는 연극에 대한 애정 등. 이 모든 지점은 작가의 ‘사소함’과 맞닿아 있었다. 사소한 계기, 사소한 지점에 대한 애착, 사소한 부분에서 의미를 찾는 행위를 통해 어쩌면 우리네 삶이 사소한 일들로 구성된 것은 아닌지 묻는 것이다. 그러니 사실 극작가의 삶이라는 외피를 걸친 채, 삶 속 사소한 지점들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작품에 가깝다. 특별할 것 같은 개인의 이야기가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보편의 영역임을 발견하게 만든다.

 관객과 직접 마주한 작가들

 <희곡상을 위한 희곡쓰기>는 황은후 배우가 열연한 1인극이긴 하지만, 엄밀히 살펴보자면 이소연 작가 또한 간접적으로 등장한다. 극중에 스크린이 펼쳐지고 프로젝터로 글자가 나타나는데, 무대에서 이소연 작가가 글자를 입력하면 그것이 띄워지는 방식이다. 이소연 작가는 희곡신으로서, 때로는 빙어로서 이소연이라는 인물을 맡은 황은후 배우에게 말을 건넨다. 자신이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 아이러니함에서 재미가 발생한다. 작가가 무대에 직접 등장하여 배우 및 관객과 밀착한 형태로 공연에 참여하고 있는 지점 또한 인상적이다.

 <글쎄 어찌나 사소하고 어찌나 안 궁금한지>는 관객들에게 잘 노출되지 않던 작업현장의 모습과 감춰두고 싶은 극작가의 궁핍한 영역까지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그 지점을 증폭시킨 것은 양대은 배우와 한혜진 배우의 능청스러운 연기였다. 그 사이에서 신효진 배우 또한 실제와 가상을 구분할 수 없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덕분에 관객은 극작가의 내밀한 삶을 들여다보는 동시에, 재미나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복합적인 감정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 두 작품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과거 작품들 속 대사를 이번 작품에 각자 등장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덕분에 각 작가의 작품세계를 얕게나마 통시적 관점에서 가늠해볼 수 있게끔 한다. 또, 늘 연출과 배우를 통해 우회적으로 전달되던 작품세계가 작가의 직간접적인 발언으로 전달됨으로써 다소 덜 왜곡되는 효과도 기대해볼 수가 있다. 그러니 무대 위 작가의 등장은 형식적인 변화 이외의 지점에서도 의미 있는 일이 되었다 .

 <희곡상을 위한 희곡쓰기>와 <글쎄 어찌나 사소하고 어찌나 안 궁금한지>는 사실 역설적인 제목들이다. 이소연 작가는 결국 희곡상을 위한 희곡쓰기 같은 건 하지 못할 것임을 시사했고, 신효진 작가는 사소한 것은 어쩌면 사소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지점을 말하고 있었다. 작가주의 정신에 위배되는 말들로 작가정신이 발현되는 아이러니한 형태다. 두 작가는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만큼 진심이 담긴 언어들로 작품에 접근하고 있었다. 진정으로 관객과 작품의 화두를 주고받고자 하는 창작자의 의지로 읽힌다. 이 작품들이 소중한 이유는 무엇보다 여기에 있다.

 

 

* 《쿨투라》 2020년 4월호(통권 7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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