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이상과 K가 사랑한 여자 변동림
[Book review] 이상과 K가 사랑한 여자 변동림
  • 설재원(본지 에디터)
  • 승인 2020.04.23 17: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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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령의 장편소설 『천재들의 초상』

  재미작가 김채령의 장편소설 『천재들의 초상』은 저자가 우연히 K미술관을 들렀다가 이상의 아내였던 L, K의 아내였던 A가 동일인임을 알게 되면서 구상된 작품이다.

  “그녀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두 명의 천재 예술가를 품은 여자였다. 그 여자에 대한 궁금증이 너무 강렬히 일었다. L에게 이상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어떻게 이상을 흙에 묻고 다시 K와 맺어졌을까. 냉철한 성격의 L이 바라본 천재들의 민낯은 어떠했을까.” 이 궁금증으로부터 이 소설은 쓰여졌으며, 증언을 생생히 고증하기 위해 L의 수사 몇 구절이 소설 중 ‘L의 일기’에 차용되었다. 즉 이 소설은 사실을 기반으로 하였으나 픽션을 가미한 창작적 재구성인 것이다.

  총 19 파트로 짜여진 목차를 찬찬히 살펴보면 9번의 L의 노트를 통한 고증과 함께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녀의 삶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윤대녕(소설가, 동덕여대 교수)은 “이 땅에 출현한 최초의 모더니스트이자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 이상과 〈어디 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의 화가 K는 한국인인 우리에게 있어 부적 같은 존재들이다. 이 두 천재 사이에 변동림(L)이라는 무모하고 열정적인 여인이 등장해 불우한 시대에 설화 같은 사랑의 모험을 감행한다. 겹구조로 이뤄진 이 소설은 주인공이자 화자인 ‘내’가 도피하듯 떠난 미국에서 ‘이상’과 ‘K’를 소환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모두의 사랑을 감동적으로 완성해내는 말미가 대단히 인상적인 소설”이라고 평한다.

  저자는 자신이 “경험한 천재들은 대부분 균형이 깨진 사람들 가운데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내 주변에도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둔 천재가 있었는데 그는 한 가지 생각에 꽂히면 다른 것을 모두 잊고 마는 것이다. 그가 병원을 전전한다는 소문이 들렸으며, 어느 날 저자에게 물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해요?”

  그 물음은 종일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맴돌았다. 사랑, 명예, 가족, 재물, 건강 등 여러 대답이 솟아났으나 그 무엇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천재 이상뿐 아니라 우리 역시 도피할 수 없는 현실 세계나 죽음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껴안고 산다. 거기에 과거의 상처까지 무겁게 매달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이 말에는 조건이 담겨있지 않다. 무조건이다. 무조건이란 어머니의 마음이며, 테레사 수녀의 마음이다. 거기까지 다다르기 위해 까치발 세우고, 팔을 만만세로 뻗어보아도 내겐 늘 위태로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나는 기꺼이 눈물을 삼키며 나의 고통에서 타인의 고통을 본다. 그곳에 인간이 있고, 세계와 우주가 있다. 고통은 은유의 강을 건너며 심미적으로 치환되어 연민으로 또는 사랑으로 타인에게 번진다.

  번진다. ‘번짐’이란 단어가 주는 느낌은 따스하다. 환하고 넉넉하다. ‘번짐’에는 대상이 있다. 그 대상의 폭이 의외로 넓다. 내 가족, 내 친구, 내 고향……. ‘나’와 관계된 것들의 유대 관계에 집착하는 이 시대 사람들의 이기심을 걷어내고 번져가면 비로소 모든 경계가 허물어진다. 흙 속에 심긴 씨앗의 시간이 번져 꽃이 되고 열매가 된다. 삶과 죽음조차도 서로 번져서 삶이 죽음이 되고, 죽음은 삶을 이어주는 토양이 되기도 한다. 모든 관계의 화해를 의미하는 말이다. 너와 내가 스미고 번져서 마침내 합체되는 것. 그것은 사랑이다-. 「작가의 말」 중

  저자는 “너와 내가 스미고 번져서 마침내 합체되는 것. 그것은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 사랑은 에로스여도 좋고, 아가페여도 좋겠다. 그 무엇이든 사랑일 수 있다면, 생명일 수 있다면.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이 소설을 쓴 진짜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나도 네게로 스며들어 번지고 싶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당대 최고의 신여성 변동림, 그녀는 왜 이상 김해경을 사랑했으며, 그가 세상을 떠난 후 화가K 의 아내로 살아가야 했던가?

  방민호(문학평론가, 서울대 교수)는 “이 소설은 최후의 모더니스트 이상과 변동림, 그리고 K 사이를 떠도는 망명과 유랑의 기운을 그려내면서 사랑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한 현대 여성의 귀한 사랑이 이들의 사연을 가로지른다. 그녀 또한 망명과 유랑의 사랑을 해야 한다. 오랜 추적과 탐구 없이는 씌일 수 없었을, ‘진짜’ 예술가들의 이야기의 출현을, 이상의 문학세계를 힐끗 들여다본 적 있는 한 사람의 비평가로서 진심으로 반긴다. 우리는 쉬운 망각을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고 평한다.

  이처럼 오랜 미국 이민생 활에서 창작 활동을 해온 김채령의 장편 『천재들의 초상』은 우리를 최후의 모더니스트 이상과 변동림의 시대로 데려간다. 그리고 내 안의 ‘나’에게 묻는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두 천재 이상과 K가 사랑한 여자 변동림과 그녀의 삶을 닮은 또 다른 여자의 특별한 사랑이야기를 담은 이 장편소설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너무나 매혹적인 로맨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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