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Theme] 비대면非對面 공교육: 교육철학과 문화지체의 사이에서
[5월 Theme] 비대면非對面 공교육: 교육철학과 문화지체의 사이에서
  • 설규주(경인교대 교수)
  • 승인 2020.04.28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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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들의 연속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라는 대통령 취임사 문구는 진영 논리에 따라 전혀 다른 맥락으로 사용되어 왔다. 이 문구는 나라에 좋은 일이 생기면 칭찬으로,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비아냥으로 연결되곤 한다. 진영 논리를 떠나 객관적인 사실만 놓고 볼 때, 코로나19로 인해 그동안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잇따라 일어났다. 한국발 승객의 해외 입국 제한, 외신의 연이은 한국 방역 칭찬, 프로 스포츠 리그 중단과 취소, 마스크 5부제, 마스크를 쓴 후보자와 유권자, 온라인 개학, 성당 미사 취소, 온라인 예배 등등…

 어느 것 하나 우리가 원했거나 목표했거나 자연스럽게 일어난 것은 없다. 이 모든 일들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해 강제되었고 바이러스처럼 빠르게 퍼져 나갔다. 지금의 이 새로운 경험이 훗날 한때의 추억 거리로 소환되는 데 머물지, 아니면 앞으로의 우리 사회 트렌드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는 초석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비대면 공교육’이라는 어색함

 다른 영역에 비해 변화가 더딘 편이라는 지적을 받는 교육도 코로나19로 시험대에 올랐다. 초중고는 온라인 개학이라는, 대학은 대규모 온라인 콘텐츠 개발이라는 거대한 변화를 맞닥뜨렸다. 교사든 학부모든 학생이든 교육 당국이든 공교육과 관련된 사람 중에 이 새로운 경험 앞에서 당황하지 않고 긴장하지 않고 부담 갖지 않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기자들에게는 좋은 취재거리였는지 온라인 개학이나 온라인 강의 초기에는 당사자들의 불만과 불편을 다룬 기사들이 제법 많았다. 면대면 접촉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더 이상 미룰 수도 없어서, 해야 하니까 했던 것이지만 강의를 제공하는 자, 강의를 듣는 자 모두 무언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았다.

 나만 해도 그랬다. 강의를 직업으로 삼는 내게 강의실은 매우 일상적인 공간이다. 강의실에서 학생들 앞에 서 있을 때 나는 거기서 어떤 공연이나 연기를 하는 게 아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강의를 진행한다. 그런데 온라인 강의녹화나 실시간 화상강의를 위해 우리 집 노트북 앞에 앉아 있을 때는 오히려 어색했다. 당연히 직장보다는 집이 더 일상적이고 더 편안한 장소인데도 적어도 그 시간에는 불편했다. 마치 내가 무대 위에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내가 느낀 불편함이나 어색함이 학생들에게도 어느 정도 전달되었을 것이다.

 사실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을 온라인 방식으로 전환한 건 교육계만은 아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차원에서 많은 회사나 단체들이 재택근무를 하면서 화상 회의도 급증했다. 구글 미트 행아웃이나 줌(Zoom)이 전통적인 회의실을 빠르게 대체했다. 화상회의의 성과가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게 교육계의 온라인 강의나 온라인 개학만큼 ‘기삿거리’가 되지는 않았다. 혼란스럽다거나 불편하다는 반응보다는 어쩔 수 없다, 신기하다, 편리하다 등과 같은 반응이 되레 더 많이 소개되었다. 그런데 왜 유독 교육계의 온라인 교육 시도에 대해서는 격려보다는 우려가 많았을까.

 교육철학인가, 문화지체인가

 두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겠다. 우선, 좀 거창하게 표현하면 우리의 교육철학이 개입되어 있는 것 같다. 교육철학이라는 표현이 너무 있어 보이는 표현이라면 그냥 오랜 고정관념이라고 해도 좋다. 인강이 넘치고 유튜브가 대세인 시대에도 적어도 공교육만큼은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가 면대면으로 상호작용을 충분히 하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 공교육에서는 지식만이 아니라 바람직한 태도나 가치도 배워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구성원 간의 생생한 감정과 표정, 뉘앙스까지도 공유할 수 있는 면대면 상호작용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신앙처럼 여전히 우리에게 자리 잡고 있다. 그러니 누군가는 ‘비대면 공교육’을 일종의 형용 모순처럼 생각할 수도 있다. 사실 같은 비대면 교육이라고 해도 사교육계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그리 비판의 날을 세우진 않았다 .

 90년대 초반, 내가 대학생일 때 어떤 과목의 기말시험에 ICT(정보통신기술) 활용 교육의 장단점을 묻는 문제가 나왔다. 답을 뭐라고 썼는지 지금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단점으로 ICT 활용 교육에서는 교사와 학생 간의 상호작용을 기술에 주로 의존하게 되어 진정한 교육적 상호작용이 이루어질 수 없고 학생 개개인의 교육적 필요에 반응하기도 어렵다는 취지로 썼던 것 같다. 내가 쓴 답은 아마 정답에 가까웠을 것이다. 당시는 ICT 활용 교육 관련 인프라도 의식도 모두 낮았던 시절이었고 학교 현장에서 그런 걸 실시할 마음도 거의 없었던 때였다. 그
런데 당시에 내가 썼던 답은 지금도 정답으로 간주할 수 있을까?

 다음으로 문화지체라는 개념을 통해서도 비대면 공교육에 대한 우려를 설명해 볼 수 있다. 미국의 사회학자 오그번(William Ogburn)이 사용한 ‘문화지체(cultural lag)’란 과학기술과 같은 물질문명의 발달 속도가 의식이나 문화와 같은 비물질문화의 발달속도보다 빠른 현상을 가리킨다. 휴대전화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는데 휴대전화 사용 예절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이미 우리 사회는 비대면 강의를 활성화할 수 있는 기술 수준과 환경을 상당 부분 갖추고 있다. 물론 학습자마다 가정환경의 차이, 개인적인 미디어 기기 활용 능력의 차이는 있지만 스마트 기기 임대, 데이터 지원 등과 같은 방식을 최대한 활용하여 그 차이를 어느 정도는 보정할 수 있다. 수많은 교사와 교수들이 동시에 대용량 온라인 강의 파일을 각 학교 홈페이지에 탑재하면 서버가 감당이 안 될 테지만 그것도 구글 드라이브나 유튜브로 연결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다 .

 이처럼 기술적인 측면은 완벽한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어떻게 대응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에 비해 온라인 개학이나 온라인 강의를 전면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우리 마음의 준비, 태도의 준비는 부족했던 것 같다. 온라인 방식을 공교육에 대폭 도입해도 그럭저럭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기술은 저만치 앞서가고 있었지만, 공교육에 대한 우리의 의식, 관념, 문화는 그러한 방식을 버거워했고 걱정이 앞섰다. 물론 대학도 초중고 학교도 교육 당국의 온라인 교육 방침에 맞추어 발 빠르게 움직이기는 했다. 그러나 그 발 빠름은 주로 기술적인 것에 국한되었을 뿐이다. 비물질문화에 해당하는 우리 공교육의 교수학습 문화가 그렇게 단 몇 주 만에 확 바뀌기는 어렵다. 그러면 공교육에 전면적으로 도입해 보았던 온라인 개학, 비대면 교육은 실패했다고 말해야 하는가?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낯선 경험을 하게 되는 ‘처음’이라는 시점은 실수하기 딱 좋은 때이다. 교사도 교수도 학생도 마찬가지다. 실시간 화상 수업을 위해 줌(Zoom)을 처음 쓸 때면 누군가는 목소리가 안 들린다고 하고 누군가는 화면이 안 보인다고 한다. 누군가는 아예 들어오지도 못한다. 그런데 두 번, 세 번 해 보면 점점 나아진다.

 어떤 일이든 우리는 시행착오를 겪는다. 2015년 메르스가 확산될 때를 돌이켜 보면 코로나19에 비해 그래도 ‘폭발적’인 수준은 아니었다. 당시 국내 총감염자 수는 186명이었고 사망자는 39명이었다. 2020년 4월 기준으로 국내 확진자는 1만 명이 넘고 사망자만 200명이 넘는 코로나19의 위중함은 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때 하루에 수백 명씩 확진자가 급증하는 상황에서도 의료 체계 붕괴가 일어나지 않고 더 큰 확산을 막아낼 수 있었던 비결로 의료진과 시민의 헌신 외에도 2015년의 방역 실패 경험을 이야기한다. 당시에는 쓰라렸지만, 그 아픔을 토대로 훗날 방역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반전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우리 공교육에 대해서도 그러한 기대를 조심스레 가져본다. 교육계에 밀어닥친 강제적인 변화로 인한 초반의 시행착오는 그저 나쁜 기억이 아니라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자양분이요 토대가 될 수 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온라인 개학, 전면적인 비대면 공교육을 처음 시도할 때는 대부분의 교사나 교수들이 강의의 질보다는 새로운 플랫폼에 강의를 꿰맞추는 데 급급했지만, 두 번째, 세 번째는 분명 다를 것이다. 그와 함께 학습자들의 눈높이와 사회적 기대도 더욱 올라가 있을 테니 대충 준비할 수도 없다. 이와 함께 2020년 3월에는 꽤 존재했던 온라인 공교육 관련 기술과 문화 간의 격차가 앞으로는 크게 좁혀질 가능성이 높다. 동시에 비대면 공교육 방식을 불편해 하던 우리의 오랜 고정관념 혹은 전통적인 교육철학에도 일정 부분 변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비대면과 면대면의 견제와 균형

 나는 온라인 강의의 우수성이나 그러한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이 더 옳다는 주장을 하려는 게 아니다. 면대면 교육은 앞으로도 여전히 가치 있을 것이고 필요할 것이다. 대학원을 다니던 시절 방송대 출석강의를 몇 년간 담당했다. 당시에는 사이버대학이 존재하기 전이었고 원격교육을 위한 고등교육기관으로는 방송대가 유일했다. 방송대에는 학기마다 약 1주일 정도의 출석 수업이 있었다.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이백 명 정도 앞에서 강의를 했는데 당시 수강생들의 진지한 태도를 잊을 수가 없다. 강의 내용은 물론이고 농담까지도 받아 적고 강의 중에 누군가의 휴대전화 소리라도 울리면 전화기 끄라는 무언의 눈짓과 압박을 보내던 그 모습을… 왜 그렇게 강의에 집중하느냐고 물었을 때 한 수강생은 사정상 원격수업을 듣기는 하지만 이렇게 한 학기에 한 번씩이라도 직접 수업을 듣는 시간이 너무 좋다고 답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이처럼 면대면 강의에 ‘목마른’ 분들 앞에서 강의 준비를 절대 소홀히 해서는 안되겠다는 걸 새삼 느꼈고, 지금까지도 강의실에 들어갈 때 종종 되뇌는 장면이다.

 그런데 반대로 면대면 강의를 많이 듣는 학생들의 생각도 그럴까? 이들 앞에는 한 학기에 일주일 정도가 아니라 한 학기 내내, 일주일에 며칠씩, 하루에 몇시간씩 면대면 강의가 ‘널려’ 있다. 이들은 면대면 강의에 ‘목마른’ 게 아니라 ‘지쳐’ 있고 ‘질려’ 있을 수도 다. 비대면 강의는 이들에게 강의와 관련한 선택지 하나를 더 늘려 줄 수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것이 단순한 선택지에 머물지 않고 학생들이 원하는 효율성과 유용성에 부응할 수 있다면, 매 수업시간의 가치를 높이는 데 일조할 수 있다. 너무 낭만적인 상상일지는 몰라도 그렇게 된다면, 비대면 교육은 면대면 교육의 대체재까지는 아니어도 매우 유용하고 유력한 보완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대학생 때 ICT 활용 교육에 대해 내가 썼던 답은 이제 더 이상 만점짜리 정답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만약 내가 그 문제를 출제한 교수라면, 지금 시점에서도 여전히 부분 점수는 주고 싶다. 대신 코멘트를 하나 달아주고 싶다. 디지털 환경과 스마트 기기에 익숙한 새로운 세대의 학습자와 새로운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는 방법도 진지하게 고민해 보라고... 더이상 그것은 상상 속에 가둬놓거나 마냥 미루며 비판만 해댈 수는 없는, 우리 삶에 훅 들어온 현실이 되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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