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Theme] 코로나19가 몰고온 영화계 대불황 극장의 시대는 황혼으로 접어드는가
[5월 Theme] 코로나19가 몰고온 영화계 대불황 극장의 시대는 황혼으로 접어드는가
  • 김시균(매일경제 기자)
  • 승인 2020.04.28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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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장가, 미증유의 위기

 “4만명대입니다, 4만명대. 토요일 하루 관객 말입니다. 역대 최저치입니다.”

 하나의 영화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지난달 4일 전국 극장가를 방문한 전체 관객수(4만2630명) 얘기다. 그것도 주중 아닌 주말, 가장 많은 관객이 몰린다는 토요일 기준으로.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황재현 CGV커뮤니케이션팀 팀장의 목소리는 수심으로 가득했다. 그는 “당혹스럽다”고 했다. “4월은 좀 나아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면서.

 “전례가 없지 않습니까. 2004년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이 출범한 이래 최저예요. 아마 (국내) 멀티플렉스 체제가 시작된 이후로도 처음일 테고요. 이 상태라면 전체 극장이 문을 다 닫아야 할 판입니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어요. 우리마저 문 닫으면 그 여파는 누가 책임지겠습니까.”

 2009년 신종 플루 사태,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사태 당시에도 이정도까진 아니었다. 2009년 신종 플루 위기감이 고조된 9월에도 토요일 최저 관객은 47만명. 2015년 MERS 사망자가 처음 나온 6월에도 토요일 최소 관객은 68만명이었다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극장가는 그야말로 미증유(未曾有)의 위기를 맞고 있다. 국내 1위 멀티플렉스인 CGV는 3월 28일부터 30%에 달하는 직영점이 문을 닫았다. 그나마 문을 연 극장도 관객들 발길이 끊긴 진 오래. 지난달 4일 토요일 기자가 찾은 롯데시네마 월드타워관은 적막하기 그지없었다. 오전 10시 30분 시작이었던 <주디>를 보러 온 관객은 단 4명이었고, 낮 12시 40분 상영인 <인비저블맨> 역시 3명이 다였다. 이날 박스오피스 1위는 <엽문4: 더 파이널>. 이 영화 역시 하루 관객은 8300여명이 전부였다.

 극장 매출이 한국 영화 산업에서 차지하는 몫은 약80%. 관객이 티켓값을 내면 영화발전기금을 뺀 나머지가 극장과 배급사, 투자사, 제작사 등에게로 간다. 극장이 무너지면 영화계 전체가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임성규 롯데시네마 은평관 관장은 “영화계 유례없는 대공황”이라고 했다.

 국외 풍경은 더 심각하다. 미국의 대표적 극장 체인 AMC, 시네마크, 리갈시네마 등이 대부분 폐쇄됐다.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자 지난 3월 20일(현지시간) <워싱턴 포스트>지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관은 생활의 중요한 일부분이며, 지금 그들은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글을 실었다. 이 글에서 놀란은 1924년 설립 이래 단 한 명의 해고도 없었다는 한 극장 사연을 소개한다. 미국 미주리주에 있는 B&B 씨어터 얘기로, 이 극장은 최근 코로나19여파로 인해 2000여명의 직원을 대량 해고했다고 한다. 놀란은 “미국 의회가 우리 생활의 중요한 일부분이자 많은 이들에게 일자리와 즐거움을 주는 극장들에 주목 해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다른 나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유럽 각국은 일제히 극장 문을 걸어 잠갔고, 중국은 세초 춘제 기간에 이어 4개월째 상영을 못하고 있다. 동남아, 중동 국가라고 나을 건 없다. K-시네마 근거지인 베트남 호치민, 하노이에 84개 극장을 보유한 CGV, 40여개 극장을 세운 롯데시네마 또한 일거에 폐쇄됐다. 강동영 롯데시네마 커뮤니케이션팀 팀장은 “베트남 진출 이래 가장 심각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온라인 영화 관람마저 극장 관객을 누르다

 이 가운데 2~3월 온라인 영화 관람 건수가 극장 관객수를 추월한 건 의미심장하다. 2012년 2월 ITPV와 케이블 방송으로 온라인 영화 관람 건수가 집계된 이래 처음 오프라인 관객수를 누른 것이다. 추월 현상은 국내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한 2월부터 가시화 됐다. 2월 마지막 주(2월 24일~3월 1일) 온라인 영화 관람이 84만 건이었다면, 극장 관객은 74만명. 3월에도 온라인 관람이 매주 33만~58만 건이었던 데 반해 극장 관객은 매주 32만~55만명에 불과했다. 온라인 관람수가 극장 관객수를 누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외 신작은 이미 개봉 시점을 줄줄이 연기해놨다. 마블 대작 <블랙 위도우>는 5월에서 11월 6일로, 11월 출격 예정이었던 <더 이터널>은 내년 2월 12일로 개봉일을 연기했다. <토르, 러브 앤드 선더>(2월 18일)와 <캡틴 마블2>(7월 8일)의 상영 일정은 아예 2022년으로 미뤄졌다. 사정은 디즈니도 다르지 않다. 올 8월 첫 선을 보이기로 한 <팰컨과 윈터 솔져> 시리즈는 제작이 중단됐고, 5월 개봉 예정이던 <아르테미스 파울>은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인 디즈니 플러스에서 공개하기로 했다.

 영화제 일정도 대부분 흐트러졌다. 지난해 봉준호 감독에게 황금종려상을 안긴 프랑스 칸 영화제는 5월 12~23일에서 6월 말 7월초로 미뤄졌고, 이탈리아 우디네 극동영화제도 4월 개막에서 6월 말 개막으로 일정을 바꿨다. 베이징국제영화제는 4월 19일 개최를 연기했으며, 6월께 열기로 한 시드니국제영화제는 개최 자체가 아예 취소됐다. 국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4월 30일 열려던 전주국제영화제가 5월 28일로 연기됐고, 같은 달 개최 예정인 울주세계산악영화제가 오는 10월로 미루어졌다. 4월 22일 개최 예정인 부산국제단편영화제 또한 8월 말에 열릴예정이다.


 공포의 세기에 퍼지는 극장가 묵시록

 공포의 세기엔 갖은 예언들이 난무한다. 영화계 사도 요한들 역시 극장가 묵시록을 노래하고 있다. ‘이제 더는 극장에 가지 않는 시대/ 그럴 필요가 없어진 시대….’ 노랫말은 이어진다.

 “극장은 죽었다/ 지금은 ‘언텍트(비대면) 콘텐츠’가 대세/ 넷플릭스와 왓챠, 유튜브만 있으면 그뿐/ 언제 어디서든 홀로 즐길 것/ 발품 팔아 극장에 가지 말것/ 방구석만큼 편하고 안전한 곳 없나니”.

 예언은 현실이 될까. 그럴 것 같지는 않다. 극장가 발길이 뜸해진 건 비단 대면 접촉이 두려워서만은 아니다. 정부가 권고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영향이자 새로운 대작들이 내걸리지 않는(못하는) 탓이기도 하다. 코로나19가 물러간 시점부터, 텐트폴 대작들이 하나 둘 개봉하고부터 분위기는 점차 회복될 거라는 얘기다. 놀란도 긍정한다.

 “극장가는 암흑기에 접어들었고, 당분간은 그럴 것이다. 그러나 팔리지 않는 물건이나 미수 이자와는 달리 영화란 그 가치가 끊임이 없다. 이 단기 손실의 대부분은 회복이 가능하다. 이 위기가 지나가면, 사람들 간 만남의 필요성, 함께 살고 사랑하고 웃고 울어야 할 필요성은 어느 때보다도 강력해질 것이다” .

 다만 몇몇 변화는 불가피하다. 업계에 따르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 극장가엔 에티켓이 보다 중시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례로 극장 내부 손 세정제 비치는 필수가 될 것이다. 상영관 내 기침 자제와 마스크 착용 문화는 자연스런 배려 행위로 자리할 것이다. 스마트폰에 기반한 자가 서비스 또한 강화될 것이고, 티켓 예매뿐 아니라 음식 전반에서도 자가 주문 서비스가 늘 것이다. 좌석 자체도 띄어 앉기가 표준이 되고 관객이 들끓던 메인 시간대는 예전만큼 선호되진 않을 것이다. 이른바 극장가 ‘뉴 노멀’이다.

 혼란한 시기임에도 올 여름 대작들은 하나 둘 개봉 준비로 분주하다. 먼저 디즈니가 제작한 실사판 <뮬란>이 오는 7월 24일 국내 상륙한다. 이날을 전후로 국내 기대작 세 편 또한 개봉 시점을 저울질하고 있다. CJ엔터테인먼트 <영웅>(감독 윤제균), 롯데컬처웍스 <모가디슈>(감독 류승완)와 넥스트엔터테인먼트(NEW)의 <반도>(감독 연상호)다. 동명의 뮤지컬이 원작인 <영웅>이 도마 안중근을 재조명한다면, <모가디슈>는 소말리아 내전에서 고립된 남북대사관 공관원들의 탈출기다. <반도>는 천만 영화 <부산행>(2016) 이후를 그린 좀비 블록버스터다. <반도> 배급사 NEW의 양지혜 홍보팀장은 “코로나19 사태가 휩쓸고 있는 작금의 한국 사회와 놀랍도록 흡사할 것”이라고 했다.

 물론 여기엔 국내 코로나 확진자가 6월 이전엔 거의 사라진다는 전제가 깔려져 있다. 상황 여하에 따라 다시 미뤄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오는 7~8월이 우리 영화계 매우 중요한 테스트베드”(황재현 CGV 커뮤니케이션팀 팀장)인 이유다.

 극장의 존재론, 영화 체험의 본질을 되물을 때

 어쩌면 극장에서 한 걸음 물러서 있게 된 지금이야말로 몇 가지 물음을 제기해볼 기회인지 모른다. 우리에게 극장이 갖는 의미란 무엇인지, 그 안에서 영화를 본다는 행위란 과연 어떤 것인지를 말이다.

 때는 1895년 12월 28일 뤼미에르 형제(Auguste & Louis Lumire)는 파리 그랑카페의 한 지하 살롱에서 10여 편의 활동사진을 상영했다. 데이비드 보드웰이“영화사의 가장 유명한 사건”이라 명명한 영화의 탄생일이다. 그후 125년 동안 이날이 영화의 탄생일로 기려지는 건 그것이 ‘대중’(정확히 초대 손님을 제외한 33명)을 상대로 한 최초의 ‘유료’ 영사였기 때문이었다. 동일한 시공간에서 대중을 상대로 상영할 때라야 영화는 비로소 영화로서 존재를 각인 받았던 것이다.

 이러한 영화의 처음을 상기한다면, 오늘날 넷플릭스나 유튜브 등을 통한 ‘언택츠 콘텐츠’ 보기가 진정한 영화 체험이라 할 수 있는지, 혹은 그 반대가 아닌지를 한 번쯤 자문해볼 필요가 있겠다. 놀란의 말마따나 “우리는 함께하기 위해 극장에 갔고, 서로를 위해 그곳에 있지” 않았었냐고 말이다.

 보수적 견해이겠으나 기자는 영화의 존재란 극장이라는 시공간을 전제할 때라야 성립 가능하다고 여기는 쪽이다. 하나의 영화를 보고자 극장으로 향할 때의 발걸음, 그 가벼운 설렘, 어머니 자궁과도 같은 어둠의 깊은 심연으로 들어설 때 바로 그 편안함, 그리고 이내 너른 스크린에서 펼쳐질 영화라는 세계. 두어 시간이 흘러 바깥으로 나와서는 앞선 세계에 대해 다시금 곱씹어보는 것. 이 모든 것을 아우를 때라야 진정한 영화 체험에 근접한다고 여전히 믿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믿는 관객들이 모여 오늘의 극장을 쭉 존속시키리란 것도.

 요컨대, 극장가의 황혼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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