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ICON 양혜규 현대미술가] 양혜규, 그녀의 사물과 생각으로부터 도약한 미술
[2018 ICON 양혜규 현대미술가] 양혜규, 그녀의 사물과 생각으로부터 도약한 미술
  • 강수미(미학. 동덕여자대학교 교수)
  • 승인 2018.12.27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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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과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작가이며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립미술학교 슈테델슐레의 교수인 양혜규는 현재 국제 미술계가 매우 중요시하고 가장 알고 싶어 하는 한국현대미술가다. 전 세계 미술계에서 높게 평가받는다거나 유명하다고 표현하는 대신, 굳이 ‘가장 알고 싶어’ 한다고 쓴 데는 특별한 의도가 있다. 양혜규의 미술은 파악하기 어렵다는 의미일 수도, 충분히 향유되거나 공유되지 않았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동시에 그만큼 쉬운 접근이나 흔한 미적 경험과는 인식적, 감각적 거리가 있기에 더욱 가까이하고 싶고 어떻게든 붙잡고 싶은 매력이 그녀의 작업에 내재한다는 의미다. 그 점에서 한국어로 ‘포착하다’가 신체적 행위만이 아니라 앎과 이해의 뜻을 갖듯, 독일어 ‘erfassen’이 파악과 포착의 의미로 쓰인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하지만 그녀의 작품은 그악스럽게 손에 틀어쥐고 게걸스럽게 섭취하기가 쉽지 않은 예술이다. 또 몇 개의 장르 및 유파, 몇 명의 거장 및 대표작만으로 미술을 재단하는 보수적인 예술관으로는 범주적 오류에 빠지기 십상이고 혼란스러워 보일 작업들(art works)이다. 요컨대 수동적인 감상자, 태만한 전문가, 타성에 젖은 미술 감상법으로는 감각 지각적 쾌락에서 실패를 각오해야 할 고도로 자기 학습적이고 자기 변성적인 동시대/현대미술(contemporary art). 이것이 작가 양혜규와 그녀의 미술, 그리고 거기 결부된 안팎의 관계를 미학적으로 해석했을 때 내놓을 수 있는 명제다.

스스로 정의하는 양혜규의 직업은 ‘조각가’다.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양혜규의 초기작에 속하는 비디오 삼부작(2004-2006) <펼쳐지는 장소>, <주저하는 용기>, <남용된 네거티브 공간>과 <휴일이야기>를 초청 상영한 후 가진 아티스트 토크에서 작가가 그렇게 밝혔다. 학예사가 영화/영상 작업을 꾸준히 해주십사 요청하는데 “본업이 아니”라고, 자신은 “조각가로서 조형적인(plastic) 공간과 물건을 다룬다”고 말한 것이다. 하지만 양혜규는 또한 조각의 물질성과 물리적 차원으로는 해소되지 않는 무엇이 분명히 있기에 어떤 때는 비디오 작업을 할 것이라고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가령 그녀가 “천착하고 있는 추상(abstraction)”이 개입한다면. 여기에 현대미술가로서, 특히 파악하기가 어려운 작가로서 양혜규의 입장과 창작 방법론을 이해할 계기가 있다. 이를테면 이 작가는 질료를 사용해 형태를 빚고 만드는 조형예술에 발 딛고 있다. 하지만 전통 조각의 절대적 규범이나 정전에 매이지 않고 오히려 특정한 계기와 조건에 따라 다원적이고 이질적이며 다자적인 요소들의 상호운영성(inter-operability)을 적극화하는 예술 체제를 지향한다. 예를 들어 2009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대표작가로서 《응결凝結》전시로 선보였으며 2016년 파리 퐁피두센터 개인전 《좀처럼 가시지 않는 누스》등을 통해 현재 양혜규의 시그니처 작품으로 자리 잡은 일명 ‘블라인드 조각’을 보자. 그것은 일상 창틀에 매달린 블라인드와 같은 사물을 조각의 형태 및 구조로 구축·배열·조직화하고 건축공간에 설치하는 미술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장식적이고 정적인 아트 오브제/조각품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실제 시공간의 환경에 따라 가변적으로 움직이며 소리를 내고 독특한 빛과 향이 더해지기도 하면서 감상자로 하여금 복합적인 지각경험을 유도하는 종합예술작품이다. 거기서 물질과 운동, 구조와 체험, 미학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 시각과 청각과 후각과 촉각, 작동하는 요소와 지탱하는 축 등은 양혜규의 추상화(化)가 실현되고 있음을 가시화하는 미시적 현상들이다. 이때 추상 화/작업을 미학적으로 논설해보자면 작가가 다원적, 이질적, 다자적 요소들을 조각의 매트릭스 위로 불러들여 그것들이 서로를 깎고 정련시키는 결정화(crystallizing) 과정을 의식적으로 이끌어 낸다는 의미다. 물론 이런 말이 현학적으로 들릴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기법, 세부장르, 매체를 기준으로 평이하게 설명한 텍스트를 인용해보자. 즉 “1990년대 행위 기반 오브제부터 라커 페인팅, 사진, 종이작업, 비디오에세이, 의인화된 조각, 퍼포먼스적 작업, 대규모 설치작품 들”이 그녀의 미술세계를 이루고 있다고 말이다. 양혜규는 작년에 ‘2018 볼프강한 미술상(Wolfgang Hahn Prize)’ 수상자로 선정됐다. 독일 쾰른 루트비히미술관은 수상과 연계해 올해 4월 18일부터 8월 12일까지 대규모로 양혜규 회 고전 《도착예정시간(ETA) 1994-2018》을 개최했다. 인용문은 거기서 내놓은 공식 문서 중 일부다.

 우리는 그 공식 문구처럼 매체와 장르 명으로 양혜규의 25년 간 예술 작업과 성과를 정의할 수 있다. 또 그녀의 개인전 횟수, 국내외 기획전 참여 사실, 수상 실적, 국제 미술시장 순위, 아트저널이 추산한 영향력 지수, 작가를 다룬 기사, 비평, 도록 목록 등을 통해 양혜규가 얼마나 성공한 미술가인지 를 따질 수 있다. 그것들은 사실이고 객관적으로 중요하다. 그런데 한 작가를 아는 데, 그 작가의 예술을 알고 향유하는 데 사실의 나열이나 객관성의 집적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순간이 온다. 양혜규 자신부터 2000년대 초반 작가로든 개인으로든 불확실하고 힘든 시기로부터 2000년대 후반~2018년 현재 국제적 커리어를 구가하는 현대미술가로 ‘도약(leap)’했다. 어떤 차원에서 어떤 차원으로 도약했는가? 무엇이 어떻게 형질 변경되어 뛰어올랐는가? 작가가 직접 “그녀의 생각을 형성해온 사물들과 아이디어들을 밝힌” 글(Frieze, Jan Feb 2018)을 참조하면 도약은 곧 추상이다. “추상은 환원주의가 아니며 사유를 단순화하는 방식이 아니다. 그것은 도약이다.” 양혜규는 고도로 자기 학습적이고 자기 변성적인 작가다. 마치 머신러닝처럼 그녀는 끊임없이 공부하면서 자기를 확장하고, 작품이라는 결정체로 중층 결정해 아웃풋 한다. 솔 르윗의 미니멀리즘 조각과 오스카 슐렘머의 <삼부작 발레>와 조지 오웰의 『코끼리를 쏘다』와 마그리트 뒤라스의 『죽음에 이르는 병』과... 모리스 블랑쇼와 장-뤽 낭시와 로맹가리와 김산과 윤이상과 자기 아버지와 그 세대 남자들과... 이렇게 나열하면 얼핏 연구대상을 수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리서치 결과를 작품에 단순 재현하는 대신 추상의 차원으로 끌어올리기. 그 도약의 방법이 양혜규와 그녀 미술의 오늘을 만들었다.

강 수 미 미학자, 미술비평가다. 동덕여자대학교 회화과 서양미술이론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발터 벤야민 미학, 현대미술 비평, 역사철학적 예술이론이 주요 연구 분야다. 대표 저서로 『까다로운 대상: 2000년 이후 한국 현대미술』(2017) 『비평의 이미지』(2013) 『아이스테시스: 발터 벤야민과 사유하는 미학』(2011) 『한국미술의 원더풀 리얼리티』(2009) 『서울생활의 재발견』(2003)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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