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게 시나리오 쓰기 5] 영화 속 인물
[재미있게 시나리오 쓰기 5] 영화 속 인물
  • 이무영(영화 감독, 시나리오 작가)
  • 승인 2020.05.26 12: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밀양〉ⓒ시네마서비스(좌), 〈복수는 나의 것〉ⓒCJ엔터테인먼트(중), 〈마더〉ⓒCJ엔터테인먼트(우)

누가 뭘 하는가? 왜 그러는가?

 영화의 아이디어도 충분하고 이야기의 확장까지 어느 정도 청사진을 갖췄다 생각이 들 때 바로 그 충만한 영감으로 곧바로 시나리오에 돌입, 며칠 만에 탈고해야겠다는 의욕이 마음속으로 꿈틀거린다. 그런데 이때가 바로 마지막 점검을 할 적기이다.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라.”는 말처럼 이 지점에서 작가는 정말로 내 영화를 이끌어갈 주인공이 누구인지 마지막으로 세밀하게, 또 입체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아니 지금까지 얼마나 주인공에 대해 고민했는데 뭘 더 해야 돼?”라며 언짢아하지 말아야 한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명언을 기억하는가!

 우리는 친구나, 부모자식, 심지어 부부 사이에도 상대방에 관해 모르는 면을 발견할 때가 종종 있다. 이게 사실이라면, 각본을 막 쓰기 시작하려는 당신은 여전히 당신 영화의 주인공이 어떤 인물인지 명확하게 모를 가능성이 농후하다.

 자 이제 돌다리를 건너기 전 두들겨 보도록 하자! 이 돌다리가 당신을 강 건너편으로 안내할 정도로 튼튼한가?

 만약 아니라면 당신은 필경 강물에 빠져 익사하게 될 것이다.

 

매력적인 주인공

 영화가 뭐냐고 묻는다면 컴컴한 극장 안에서 주인공, 혹은 주요 인물이 뭘 하는지, 더 나아가 왜 그러는지를 지켜보는 행위라고 답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작가는 주인공을 내세워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 러닝타임 동안 자신의 삶을 완전히 망각한 채 얘기 속에 빠져들게 해야 한다. 절대 지루하게 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당연히 영화를 끌고 가는 주인공은 무조건 매력적인 캐릭터여야 한다.

 그가 외모가 뛰어나거나 부와 명예를 과시하는 인물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외적으로 볼품없거나 평범한 삶을 살아도 괜찮다. 아니, 심지어 사회에서 지탄 받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 영화의 주인공은 무조건 매우 흥미로운 인물이어야 한다. 비밀스럽거나, 재미있거나, 관객의 동정심을 유발하거나, 존경받을만하다면 금상첨화다. 물론 영화를 다 보고난 후 관객은 주인공과 그의 여정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밀양>의 신애를 보라! 그녀는 남편과 사별하고, 결국 하나밖에 없는 아들까지 잃는다. 당연히 관객은 그 슬픔에 공감하며 그녀의 처지를 딱하게 여긴다. 영화 속에서 그녀의 문제는 슬그머니 관객의 문제로 둔갑한다.

 <복수는 나의 것>의 류도 마찬가지다. 그는 유괴한 소녀를 죽게 만들었다. 법의 잣대로 보면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은 그의 처지에 공감한다.

 <마더>의 엄마만큼 독특한 주인공을 찾기란 쉽지 않다. 외적으로 그녀는 지극히 평범하며 나약해 보인다. 하지만 그녀는 절대 드러내고 싶지 않은 엄청난 비밀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 게다가 나중에 애꿎은 사람까지 죽인다. 내 엄마라면 끔찍하지만, 영화 속 주인공으로는 너무도 매력적이다.

 잘 생각해보라! 재미있게 본 영화 중 주인공이 별 매력이 없던 경우가 있었는지!


인물탐구를 위한 정보 수집

 주인공을 비롯한 주요 인물들을 입체적으로 연구 하기 위해 작가는 다음과 같은 방법을 동원할 수 있다. 이 과정을 통해 작가는 매우 세밀하게 각 인물의 내면에 다가갈 수 있다.

 

 인물의 과거사

 우리 모두가 과거의 삶이 있듯 모든 주인공은 자신만의 역사를 지닌 채 영화에 등장한다. 찬란하거나, 부끄럽거나, 또는 평범하거나 매우 특별한 과거사, 혹은 전사(前史)일 수 있다.

 어쨌든 과거 주인공의 삶은 영화 속 그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다. 그런데 어찌 이 부분에 대한 연구를 소홀히 한 채 각본쓰기에 돌입할 수 있겠는가!

 <마더>의 엄마는 과거 다섯 살 아들과 농약을 먹고 동반자살하려 했던 여인이다. 그런 그녀가 성인이 된 바보 아들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거는 아이러니는 도대체 무엇인가! 드라마적으로 지극히 매력적이다.

 <밀양>의 신애는 배우자와 사별했다. 그런데 결혼 시절 그 남편은 다른 여인과 바람을 피웠던 적이 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그녀는 이 사실을 결코 믿으려 하지 않는다. 이처럼 불행을 직시하지 않으려는 그녀의 성향은 아들을 잃은 후 기독교 신앙에 의지, 그 슬픔을 극복했다고 착각하는 모습에 자연스럽게 투영된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 동진은 비록 망한 사업가이지만 과거 맨손으로 회사를 일군 바 있다. 사업실패가 이유인지 모르나 그의 아내는 그와 딸을 버리고 재혼했다.

 이처럼 영화 속에서 밝혀지는 전사 외에도 작가가 고민한 주인공들의 과거 삶의 내용물은 아마도 열 배 이상일 것이다.

 신애의 남편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엄마가 어린 도진과 동반자살하려 했던 이유가 정확히 무엇인지, 동진의 결혼이 깨진 이유가 무엇인지는 영화상으로 드러나진 않는다. 그러나 이창동과 봉준호, 박찬욱은 이 부분에 대해서도 틀림없이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단, 그 내용이 굳이 영화 속에 드러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에 생략한 것뿐이다.

 이처럼 영화에 구체적으로 등장하는 내용이 아니더라도 주인공에게 영향을 주는 과거사라면 작가는 충분히 이 부분에 대해 깊게 고민해야만 한다.

〈귀여운 여인〉ⓒ브에나비스타 인터네셔널 코리아

 인물의 특성 연구

 과거사만큼이나, 아니 오히려 더 중요하게 거론돼야 할 내용은 인물의 특성에 대한 탐구다. 작가는 다음과 같이 자신이 창조하려는 주인공의 네 가지 특성에 대해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할 필요가 있다.

 

 1) 외형적 특성

 나이, 성별, 인종, 외모, 신체적 특징, 패션, 신체적 형이나 장애, 유전적 특징.

 요즘 세상에 주인공의 외형적 특성, 특히 외모를 구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 번 잘 생각해보자! 으로 드러나는 주인공의 모습이 영화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꽃뱀 캐릭터라고 하자! 경우 대체적으로 평범한 외모의 여자를 캐릭터로 내세울 수는 없다. <노트르담의 꼽추>(장 들라누와 감독, 1957)의 주인공은 꼽추여야 하고, <귀여운 여인>(게리 마샬 감독, 1990)의 여주인공은 귀여워야 한다. 역설적 의미가 함축된 게 아니라면 말이다.

 많은 경우 주인공의 외모는 타인이 그를 대하는 태도와, 반대로 그가 타인을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준다. 당연히 관객의 생각에도 영향을 준다.

 다른 특징들도 작가가 주인공을 입체적으로 창조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준다. 젊은 사람이냐 노인이냐, 여자냐 남자냐, 무슨 인종이냐, 패션 감각이 있느냐 없느냐 등도 마찬가지다.

 <나의 왼발>(짐 쉐리단 감독, 1989)의 크리스티 브라운은 뇌성마비로 왼발만을 움직일 수 있는 화가다. 그의 장애는 당연히 플롯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 관객이 그를 대하고 평가하는 태도도 장애가 없는 화가의 경우와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이처럼 주인공의 외형적 특성은 관객이 일차적으로 주인공을 평가하는 중요한 도구로 작가가 플롯을 때 이 부분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2) 정신적 특성

 성격(외향적, 혹은 내성적), 성품(온화한, 혹은 무감한) 야망, 콤플렉스, 정신장애, 도덕관, 성 취향, 성 생활 등.

 한 인간의 내면은 참으로 복잡하다. 드러나는 주인공의 성격이나 성품은 선천적일 수도, 또는 후천적일 수도 있다. 주인공이 야망이 있느냐 없느냐, 하룻밤 섹스(one-night stand)를 별 거 아니게 생각하느냐 아니냐는 그야말로 천지차이다. 성격과 성품, 도덕관의 차이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인물 A는 분이 치밀어 오를 때 마누라를 두들겨 패고, B는 왜 자신이 화가 났는지 세심하게 설명하는 사람이라고 치자! 둘이 동일한 상황에 놓인다면 이야기의 전개방향은 각자 성품에 따라 달라지지 않겠는가!

 인물 A는 외도에 대해 아무 죄책감이 없고, B는 한 번 바람피웠다는 이유로 자살을 시도할 정도로 죄책감에 시달리는 인물이라고 하자. 이 경우도 마찬가지로 향후 플롯이 완전히 달라지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특별한 콤플렉스나 정신장애는 주인공이란 인물에 특별한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3) 사회적 특성

 계급, 직업, 교육, 종교, 국적, 정치적 성향, 등등. 인간의 성장배경과 그가 현재 처한 환경은 그의 삶에 실로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한 여인이 있다 치자!

 그녀의 집안과 성장배경은 그녀가 커서 무엇이 될지, 행동패턴은 어떨지 등을 결정한다. 사랑받고 자랐느냐, 학대받았느냐 등은 그녀의 현재 삶을 진단하는데 필요한 요소들이다.

 주인공의 정치적 성향이 매우 중요하게 쓰이는 경우도 허다하다. 대체적으로 진보적 인물이 낙태나 동성애 등 사회적 이슈에 포용적 태도를 보이는데 반해 보수적 인물은 배타적인 경우가 많다. 당연히 이런 성향의 차이는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어떤 상황 가운데 어떤 결정을 하고 행동하느냐를 결정한다.

 아는 사람 중에 어마어마한 부자가 있다. 대체적으로 그는 자신보다 행운을 덜 갖은 사람들에게 관대한 듯 보인다. 그런데 그는 정부가 부동산투기 억제정책을 펼치는 데 대해 핏대를 세우며 분노한다. 반대로 어떤 부자는 평생 구제에 힘쓰고 세상을 떠날 때 전 재산을 기부하고 떠난다.

 이처럼 같은 부자라도 다 다르다. 당신은 주인공이 부자라면 과연 그는 어떤 유형에 속하는 사람인가!

ⓒCJ엔터테인먼트

 4) 취미와 특기

 과거 이력서를 쓸 때 특기나 취미를 적는 경우가 있었다. 그만큼 대부분의 인간은 어떤 특정한 취미나 특기를 갖고 있다. 영화에서 이 특기나 취미가 큰 쓰임새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 류는 밤마다 야구연습장에서 알루미늄배트로 부서져라 공을 때린다. 청각장애인인 그가 이 세상을 향해 던지는 유일한 외침이요, 분노의 넋두리다. 이 취미는 나중에 그가 첫 살인을 저지를 때 매우 요긴하게 활용된다.

 <밀양>에서 신애가 피아니스트인 건 그냥 작가가 아무 특기나 고른 게 아니다. 이 특기 때문에 영화 속 그녀는 밀양에서 피아노 학원을 여는 것이다.

 <마더>의 엄마는 하나도 아프지 않게 침을 놓는다며 자화자찬한다. 관객이 별 관심 없이 지나친 그녀의 침술은 나중에 살인자 아들의 죄를 덮기 위해 살인까지 저지르고, 그 죄를 다른 이에게 뒤집어씌운 자신의 죄악을 잊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

 한 가지 흥미로운 건 인물의 외형적, 사회적 특성이 가끔 정신적 특성에도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외모나 성장배경 등이 성격형성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누군가가 자신의 외모를 오랫동안 저주스럽게 여겼다면 필경 그것이 뿌리 깊은 콤플렉스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한 번도 가난을 겪지 못했고, 상생의 가치에 대해 배운 적도 없는 상류층 인물이 밑바닥 사람들에 대해 자동으로 온정적 태도를 갖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마리 앙투아네트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고 한 말은 그리 이해하기 어려운 게 아니다.

 물론 이는 사실이 아니라 그녀를 단두대로 보낸 반대세력이 퍼트린 루머라는 얘기도 있다. 무엇이 맞는 얘긴지는 모르겠으나 죽은 자는 말이 없다!

ⓒCJ엔터테인먼트

 다방면으로 세밀하게 인물의 과거사와 다양한 특성을 연구했다 하더라도 그 모든 것들이 시나리오에 등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작가는 캐릭터의 다양한 면을 알면 알수록 유리하기에 최대한 많은 정보를 쌓기 위해 애써야 한다.

 

 

* 《쿨투라》 2020년 5월호(통권 71호) *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