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환의 시조안테나 9] 좌우가 없는 사막에서 보듬어 안는 삶, 잃어버린 북쪽을 향한 그리움
[이정환의 시조안테나 9] 좌우가 없는 사막에서 보듬어 안는 삶, 잃어버린 북쪽을 향한 그리움
  • 이정환(시인, 정음시조문학상 운영위원장)
  • 승인 2020.05.26 17: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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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횡단 차창 밖 전후좌우 모래다

졸다가 깨어나 이 생각 저 궁리 해봐도

사막은 모래뿐이다

좌우가 없었다

종일을 가도 가도 아스라한 모래 위에

살아 있기도 했지만 죽어 있는 호양나무

생사가 별게 아니었다

그 모습 당당했다

- 김영재, 「사막은 좌우가 없다」 전문

 

  ‘사막은 좌우가 없다’는 제목에서 곧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사막 횡단 차창 밖 전후좌우 모래다, 라고 하면서 졸다가 깨어나 이 생각 저 궁리 해봐도 사막은 모래뿐이고 좌우가 없었다, 라는 첫수의 모든 진술은 막막한 인생살이를 축약하고 있다. 어디를 보아도 모래뿐인 광막한 세계에서 말도, 생각도 다 잃어버리고 무아지경에 빠질 만도 하다. 종일을 가도 가도 아스라한 모래 위에 살아 있기도 했지만 죽어 있는 호양나무를 만나면서 생사가 별게 아님을 뼈저리게 자각하면서 그 모습이 당당한 점을 뇌리에 깊이 새긴다.
  이렇듯 김영재 시인의 시편들은 특별히 꾸미려고 하거나 기교를 앞세우지 않는다. 솔직담백하고 소탈하다. 그러면서 은연중 심금을 울린다. 시조의 또 다른 맛이다. 자신만의 숨결과 빛깔 그리고 향기와 소리로 빚은 시의 향연이다. 사막 한가운데서 다른 방향도 아닌 좌우에 대한 고찰을 한 점이 이채롭다. 남북 방향도 있는데 특별히 좌우를 생각한 점이 인상적이다. 예측 밖의 상상력이 작동하여 시 읽는 맛을 더하면서 쫓기듯 살아가는 이들에게 은연중 자각을 안기는 작법을 보이고 있다. 생사를 초탈하는 시인의 넉넉한 면모가 미쁘다.

 

여기 와서 만나는 철불 닮은 내 북쪽

그에게도 잃어버린 북쪽이 있다했다

절 한 채 가만히 벗은 달빛 든 보름 뒷날

가까운 듯 먼 듯 저 뒷모습이 섭섭했다

대적광전 다 못 읽어 툭 떨어지는 눈물

그 눈물 거두어주는 내 북쪽은 달 혹은 적

- 이태순, 「도피안사」 전문

 

  ‘도피안사’는 색다른 시편이다. 화자는 북쪽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북쪽을 사유한 지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누구나 사방팔방 중에 어느 한 방향에 대한 특별한 감정을 가질 수 있다. 자신의 경험과 깊은 관련이 있을 수도 있고, 태생적으로 마음이 가는 향방일 수도 있겠다. 도피안사는 강원도 철원에 있다. 여기 와서 만나는 철불 닮은 내 북쪽이라는 첫 줄이 인상적이다. 그러면서 문득 그에게도 잃어버린 북쪽이 있다 했다, 라고 진술한다. 이때 그의 잃어버린 북쪽은 또 다른 의미의 확대로 파장을 일으킨다. 절 한 채 가만히 벗은 달빛 든 보름 뒷날의 일이다. 가까운 듯 먼 듯 저 뒷모습이 섭섭해서 대적광전 다 못 읽어 툭 떨어지는 눈물을 거두어주는 내 북쪽을 두고 달 혹은 적이라고 명명한다. 그의 북쪽은 무엇이고 나의 북쪽은 또 무엇일까? 그 북쪽이 달이기도 하고 적이기도 하다는 표현은 선적이다. 도피안사라는 절 이름도 특별하고 시 세계도 여느 작품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는 지독히 허기질 때 빈집으로 간다고 했다. 자신을 들여다보고 만날 수 있는 곳, 소요할 수 있는 곳이자 시의 발원지이기 때문이다. ‘도피안사’도 그런 곳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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