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Theme] 인터랙티브 소나기 산책
[6월 Theme] 인터랙티브 소나기 산책
  • 이명현(문화콘텐츠 연구자, 중앙대 국문과 교수)
  • 승인 2020.05.29 1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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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감콘텐츠를 매개로 한 인(人)+문(文)의 상호작용

“그 다음날은 소녀의 모양이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도, 다음날도. 매일같이 개울가로 달려와 봐도 보이지 않았다.”

  황순원의 「소나기」, 이 세 글자는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순수와 그리움을 떠올리게 하는 마법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 존재하였지만 지금 여기에 없고, 매일 매일 찾아 헤매지만 찾을 수 없는 그 소녀처럼.

  소설 「소나기」의 배경 양평에 작가 황순원을 기념하여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이 있다. 이곳에는 황순원의 문학을 알리는 문학관이 있고, 소설의 배경을 테마로 한 길과 숲이 조성되어 있다. 이 아름답고 서정적인 곳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소나기」의 마법을 체험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이 고민에 대한 해답으로 시도하는 것이 실감콘텐츠 ‘인터랙티브 소나기 산책’이다,

  실감콘텐츠는 사용자에게 가상 환경에서 현실 같은 생생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시각, 청각, 촉각, 운동감각 등의 다양한 감각 정보를 전달해 몰입감과 현장감을 극대화하는 매체를 말한다. ‘인터랙티브 소나기 산책’은 관람객들이 실감미디어를 매개로 소설 속 주인공이 되어보도록 기획하고 설계하였다.기존 산책로에 증강현실(AR;Augmented Reality), 키네틱 조형물을 접목해서 「소나기」의 배경 속으로 들어가는 체험을 하고, 문학관 내부에서는 인터랙티브(Interactive) 기법을 활용하여 프로그램에 대한 자발적 참여를 유도한다.

인터랙티브 소나기 이미지ⓒ소나기마을

  「소나기」와 실감콘텐츠, 문학적 정서와 ICT, 이 둘은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지금 여기에 없는 것을 상상하게 한다는 점에서 친연성을 가지고 있다. 문학은 언어를 매개로 허구의 세계를 재현하려 하고, ICT는 가상 세계를 이미지로 실재화하려 한다. 어쩌면 이 둘 모두 도달하고 싶지만, 지금은 갈 수 없는 세계를 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실감콘텐츠는 상상과 현실 재현의 간격을 줄이려는 시도이다. 이 간격을 줄이기 위해서 3D 입체, 고해상도 디스플레이, 오감 자극, AR, VR 등 첨단 기술이 개발되고 적용되었다. 물론 ICT 기술의 발전에도 이미지와 실재는 일치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필요할까?

  가상 경험을 현실의 몸을 매개로 현실적인 경험으로 변화시키는 자발적 참여와 체험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문제는 자발적 참여다. 스스로 기꺼이 가상의 세계에 몸을 던져 체험으로 전환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WOW(world of warcraft) 같은 방대한 세계관의 MMORPG 게임이나 경쟁 심리를 부추기는 닌텐도 같은 실감형 게임이 아니면 체험자는 자발적으로 가상 현실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인터랙티브 소나기 산책’은 실재한다고 믿지만, 지금 여기에 없는 ‘첫사랑’이란 상징의 이미지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소나기마을 광장의 징검다리에 가상의 소년과 소녀를 이미지화하여 실재한 ‘나’와 동일한 공간에 첫사랑의 그들이 함께하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게 기획하였다. 그리고 「소나기」의 배경을 디지털화하여 관람객의 접근과 참여에 반응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나’는 순수한 첫사랑이존재한 소설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모든 것이 이루어질 수 있는 마법같은 가정(Magic If)을 디지털로 구현하여 행위와 반응으로 작동한다. 이것은 이야기의 주인공을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인간 존재 전체의 가능성을 자기 개인의 체험으로 재창조하는 것이다.

  황순원 문학과 「소나기」를 단편적으로나마 알고있던 사람들은 인지적 경험과 신체적 경험이 결합되어 새로운 방식의 체화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적 정서와 첫사랑의 아련함은 새로운 형태의 흥미와 긴장을 만들고 관람객을 가상 세계로 유도할 것이다. 직접적 행위를 통해 생성되는 체험의 서사는 소설의 세계와 현실을 이어주고 타인을 공감하며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힌다.

  물론 이 체험은 현실이 아니다. 그렇지만 ‘다음날도, 다음날도 보이지 않은 그 소녀’와 교감하는 가상과 현실의 혼종이고,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해체하여 상상력의 지도를 확장하는 하이브리드(hybrid)의 세계이다.

  이러한 문학적 경험은 전통적인 독서와 소설 감상과 다르다.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스스로 체험하는 ‘놀이+교육’ 프로그램이다. 최근에는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정보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서, 자신이 원하는 정보, 흥미로운 정보에만 관심을 갖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지식과 정보를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전달-수용’의 방식이 아니라 ‘주체-참여’의 과정으로 변화해야 한다.

  소나기마을의 실감콘텐츠는 관람객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문학적 체험이 극대화할 수 있도록 기획하였다. 무엇보다 문학관 내부와 산책로의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황순원 문학과 「소나기」의 다양한 정보를 즐기면서 습득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

  ICT 기술로 구현된 소나기 실감콘텐츠는 단순한 볼거리, 즐길거리 이상의 의미가 있다. 실감콘텐츠를 매개로 사람과 문학이 상호작용하고, 이 과정을 통해 문학 향유와 체험에 대해 근본적으로 질문을 던진다.사람(人)과 문학, 그리고 기술이 조화를 이루어 부재하지만 체험 가능한 역설을 현실화하려 한다.

 

 

* 《쿨투라》 2020년 6월호(통권 7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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