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Theme] 「소나기」의 동양적 순수라는 아이콘
[6월 Theme] 「소나기」의 동양적 순수라는 아이콘
  • 김용희(소설가, 평택대 교수)
  • 승인 2020.05.29 10: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황순원 소설 「소나기」는 1970년대 이후 최근까지 문화콘텐츠로 활용되면서 수많은 장르로 변신을 거듭해왔다. 영화로는 1978년 고영남 감독의 <소나기>에서부터 2004년 장진 감독의 <소나기는 그쳤나요>로 제작되었고 애니메이션으로는 1995년 백승균 감독의 <소나기>, 2016년 안재훈 감독의 <소나기>로 재탄생했다. 드라마로는 2005년 KBS TV문학관 드라마<소나기>, 뮤지컬은 2004년~2012년까지 꾸준히 만들어져왔다. 오페라는 2012년 공연되었고 현대무용으로 2014년 <설령 아프더라도>로 공연되고 2009년<찰나>라는 타이틀로 무대 위에 올랐다. 뿐만 아니라 벽화로 부산 광안1동 엄지마을에 그려졌으며 2015년에는 교보문고 주최 <백 주년 소설 그림전>으로 선보였다. 연극으로 2017년, 2018년, 2019년에 만들어졌고 콘서트로도 2017년 <황순원 소설 「소나기」와 우리 가곡>이란 제목으로 기획되었다. 샌드애니메이션 문학콘서트라는 제목으로 2018년 공연되기도 했다.

  황순원 소설 「소나기」가 이렇게도 다양한 예술장르로 제작, 공연, 상영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사랑’이라는 원형(archetype)이 인간 무의식 속에 숨겨진 가장 보편적 개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순원의 「소나기」는 서구문학에서 나타난 ‘첫사랑’의 모형과는 다른 고유함을 지닌다. 그것은 ‘동양주의의 순수’라 일컬을 수 있다. 전세계 첫사랑의 수많은 이야기들 중 유독 한국에서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가 OSMU의 원석이 되고 있는 그 이유이기도 하다. 황순원 소설 「소나기」는 순수사랑의 결정체혹은 아이콘으로 이미지화되곤 한다. 이와 같은 순수성을 TV문학관 드라마에서는 ‘자연으로의 회귀’ 혹은 ‘자연’을 통한 ‘기원’을 반복해서 탐구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소년과 소녀를 이어주는 모든 매개들은 ‘자연물’이다. 우연의 소산으로서의 소나기, 조약돌, 무우, 소 등이 배치된다. 그리하여 TV 문학관 <소나기>는 과거 전통의 미장센을 철저하게 화면 위에 배치함으로써 의식적으로 전근대의 시각이미지를 이용하고 있다. 최근 스크린 상에서 ‘자연으로의 회귀’ 는 전근대의 생명이미지를 회고하는 과거적 시선을 내장한다. 과거의 민족지로서 ‘자연’은 회고적으로 자연을 돌아보는 시선이면서 동시에 전방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회고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채워지지 않는 현존에 대한 동경, 이제부터 도래할 것에 대한 약속 등이 공존하고 있다. 두 개의 다른 시간- 과거회고와 미래지향, 노스텔지어와 이상주의가 합쳐지는 것은 언뜻 불가능해보이지만 영상 이미지는 그 두개의 시간이 합쳐지는 적합한 장소가 된다. 근대 이전의 자연적 공간, 근대적 분열과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 비현실적 순수주의는 연대기적이고 역사적인 시간의 민족지일 뿐 아니라 꿈의 시간, 되살아난 신화의 시간에 관한 ‘민족지’이기도 한 것이다 .

  HDTV 문학관 <소나기>는 자연풍의 채광으로 여름의 녹색과 하늘 풍경, 시골밤 모깃불을 피워올리는 평상 위 풍경 등을 영상미 넘치게 펼쳐놓는다. 기존 아날로그 텔레비전의 경우 화면의 비가 4:3이어서 풀샷(full shot),이나 롱샷(long shut) 등을 쓰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러나 HDTV는 풀샷이나 롱샷과 같이 배경을 포함한 장면을 연출하기가 용이하다. 소설 「소나기」가 역사적 시공간성이 거의 배제된 채소년과 소녀의 순정에 집중하고 있다면 드라마는 역사적 현실적 공간을 내러티브 전개에서 구체적으로 재배치하고 있다. 그것은 근대와 개인의 정체성, 전통과 근대 사이에서 억압의 지점과 슬픔의 정서를 찾는 텔레비전 관객의 향수과정을 고려해서이다. 한국 드라마에서 순정물은 전통적으로 근대화 담론의과정에서 소외되는 개인의 문제, 집단 속에서 타자화된 주체의 억압지점에서 표출된다.

  ‘자연의 회귀’와 ‘순수의 구성’은 근대의 억압과 분열이 만들어낸 현실의 역상이라는 지점, 무의식적인기원으로의 지향과 연관된다. 드라마는 이와같은 순수의 구성에 ‘근대 사회’의 도래라는 국면을 교합하고 있는 셈인데 이를테면 혈통 있는 양반집에서 소녀의 어머니가 재가하는 것으로 소녀가 홀로 남겨지게 되었다는 사실, 가부장적 남성혈연체계로 이루어지는 윤 초시의 집안에 자손이 끊어지고 그 많은 전답이 속된 자본가에게 넘어가게 되는 국면, 윤 초시 집에서 대대로 마름 노릇을 하며 힘겹게 살아가는소년의 집안이라는 설정 등이다. 봉건의 해체, 신분제의 붕괴, 전근대적 정체성과 근대적 정체성이라는 역사적 국면이 드라마 서사의 중요한 물질적 현실성을 부여하고 있다. 드라마는 전근대 질서가 서서히 붕괴되고 근대로 이양되는 과정에서의 소년과 소녀 순정에서 근대적 순수를 찾고자 한다. 그것은 외부의 사회적 조건에 영향을 받지 않는 두 사람 간의 인격적 감정적 관계인 ‘순수한 관계’에 대한 탐구라 해석할 수 있다. 근대는 전근대의 계급상승의 기회비용을 포기한 데 대해서 근대의 낭만적 사랑이라는 보상을 주게 되는 셈이다. 소년은 소녀의 집안에서 대대로 마름을 부쳐먹는 신분적 계급적 열등함을 지니고 있지만 근대의 연정은 전근대적 계급을 벗어난다는 데서 그 ‘순수성’을 보장받으려 한다. 소년과 소녀의 순수한 관계란 외부의 사회적 조건에 영향을 받지 않는 두 사람 간의 감정에서 비롯되며 그 관계는 그 자체의 내재적인 성격에 의해 지속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소나기」에 나타는 ‘순수의 구성’은 계급 해체라는 측면에서 근대적 사랑구성이면서 동시에 근대 낭만적 사랑의 범주를 해체하는 국면을 드러낸다. 자본주의 가부장제에서 낭만적 사랑은 결혼, 사랑, 성이 개개인의 삶으로 통합되는 데 반하여 순정물은 ‘성’, ‘섹슈얼리티’의 영역을 배제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소나기」는 근대 순정물이 가지는 과잉 감정주의를 넘어서서 침묵과 여백, 감정적 절제의 미학성을 견지하고 있다. 즉 동양적 ‘순수’는 근대의 성과 사랑이라는 일상적 부르주아 양식을 배제한 채 일종의 과잉된 ‘절제’와 ‘모호함’으로만 지탱된다.

  근대적 순수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존재들은 ‘부재’를 견뎌내야만 하는데 그것은 흔히 ‘여성의 죽음’으로 표면화된다.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이야말로 사랑이 요구하는 희생이며 사랑이 격정적으로 타오르게 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1990년대 초 <편지>, <약속>에서 남성주인공의 죽음이 나타나기 전 멜로는 여성의 죽음을 언제나 희생의식으로 수반했다. 근대화과정에서 비롯된 멜로드라마는 여성의 희생을 갈등의 극단적 해결방식으로 혹은 체념과 포기와 같은 역사 포기로 이끌어가면서 체념과 슬픔의 정조를 유발시키기도 했다. 「소나기」에서 가녀린 소녀의 이른 죽음은 순수성에 대한 극단적 성취를 이루는 지점이다. 소년은 ‘순수한 관계’를 과거의 기억으로 간직할 때 기억주체로서의 근대인이 될 수 있다. 근대주체는 잃어버린 순수의 기원을 과거 ‘기억’의 형태로만 간직하면서 현재적 혼돈을 감당하고 성장해 간다.

  TV드라마로서 <소나기>는 멜로의 동양적 재구성과 연관되어 있다. 첫사랑, 순수, 자연, 여자, 어린아이, 라는 원시성을 원천으로 한다. 그리하여 이 드라마는 절제와 마음의 기운으로 통하는 동양주의를 보여준다. 근원에 대한 추구를 보여준다. 유년의 공간과 유년의 첫사랑 등은 시적 절제와 순수성으로서 비어있는 공백을 기표화하고 있다. 시적 절제는 동양적인 것과 연관된다. 소설이 드라마화됨으로써 시적 함축을 통해 모호함과 응축, 고독과 순결이라는 순수의 숭고성을 더 높이고 있다.

  자연으로의 회귀와 순수한 첫사랑과의 결합. 한국 드라마의 순수주의, 기원으로서의 회귀는 한류의 동양주의에서 문화횡단적인 탐구를 하도록 한다. 소설 「소나기」는 이와같은 근원적인 신화, 비어있는 텅 빈 순수, 첫사랑의 순정주의라는 원시성으로 디지털 문명 지대에서 현대인들에게 끝없이 수많은 문화콘텐츠로 재생, 복원되고 있다.

 

 

* 《쿨투라》 2020년 6월호(통권 72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