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ICON 김태리 배우]진정한 ‘미스터 션샤인’은 배우 김태리가 연기한 고애신
[2018 ICON 김태리 배우]진정한 ‘미스터 션샤인’은 배우 김태리가 연기한 고애신
  • 안진용(문화일보 기자)
  • 승인 2018.12.27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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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깨비>, <태양의 후예>, <시크릿가든> 등을 집필한 김은숙 작가의 신작인 <미스터 션샤인>. 이 드라마가 첫 삽을 뜰 때만 해도 과연 누가 <미스터 션샤인>, 즉 “타이틀롤이냐?”에 대한 궁금증이 컸다. 이병헌을 비롯해 유연석, 변요한 등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세 인물 모두 역할이 크고, 구한말을 배경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선명한 색을 드러내는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끝난 후 진정한 <미스터 션샤인>은 배우 김태리가 연기한 고애신이라는 의견에 무게가 실린다. 양반가 규수라는 신분을 뒤로하고 조국을 위해 남장을 한 채 화약냄새를 맡는 삶을 선택한 그야말로 가장 찬란하게 빛을 발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단연 맞춤옷을 입은 듯, 빈틈없이 고애신을 연기한 김태리가 있다.

#김은숙 작가를 만나다

 <미스터 션샤인>은 김태리의 첫 드라마 출연작이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 이후 영화 <1987>과 <리틀 포레스트>에 잇따라 출연하며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쌓았지만, 긴 호흡의 드라마에는 등장한 적이 없다. 그러니 24부작을 이끌어가야 하는 <미스터 션샤인>은 적잖은 부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김태리는 시나리오도 읽지 않은 상태에서 <미스터 션샤인> 출연을 결정했다. 이는 김은숙 작가에 대한 믿음의 발로였다. 김 작가는 앞선 작품에서 하지원, 송혜교, 전도연, 박신혜 등 내로라하는 여배우들도 함께 일했다. 하지만 역대 자신의 쓴 드라마 중 가장 많은 제작비인 430억 원이 투입되는 드라마의 여주인공으로 김태리를 선택했고, 김태리는 그런 기대에 부응했다. 실제로 김태리는 <미스터 션샤인> 제작발표회에서 “시나리오를 보지 못했다”며 “그저 이응복 감독님과 김은숙 작가님이라는 것을 보고 선택을 했다”고 밝혔다.

 김태리의 올해 나이는 28세. 하지만 연기는 나이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극 중 고애신이 꽃 같은 나이의 양반집 여식으로 남지 않고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걸었듯, 김태리 역시 <미스터 션샤인>을 이끌어가는 여주인공다운 책임감으로 이 작품을 진두지휘했다.

 고애신의 유모인 함안댁을 연기한 배우 이정은은 종방 후 필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김태리는 동료 배우이자 친구 같고, 가끔은 선배 같을 때도 있다“며“이 사람이 가진 담대함, 배역에 대한 접근이 놀라울 정도로 성숙하다. 자기의 연기가 목표한 지점에 다다르지 않으면 잠을 못 이루는 김태리가 주인공을 맡은 건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병헌과 어깨를 견주다

 <미스터 션샤인>에서 김태리는 거물과 맞닥뜨렸다. 무려 이병헌이다. ‘연기 9단’이라 불리는 그와 한 프레임 안에서 연기하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이미 여러 배우들이 이병헌과 영화 속에서 자웅을 겨뤘으나 존재감을 비교했을 때 한참 밀리는 참담한 경험을 했다.

 우려는 첫걸음부터 시작됐다. 일단 두 사람의 나이 차이가 도마에 올랐다. 1990년생인 김태리와 1970년생인 이병헌의 나이 차는 20세. 물리적으로 볼 때 연인의 감정을 소화하는데 어려움이 따를 것이란 걱정이 앞설 만하다. 이런 우려에 대해 김태리는 “지금껏 영화에 출연할 때부터 좋은 선배들과 작업을 해왔다”며 “그때마다 ‘부담스럽지 않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연기하면서 그보다 더 축복인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는 단단한 소신을 전했다.

 결과에 대한 평가는 어땠을까? 이병헌은 명불허전이었다. <아이리스> 이후 9년 만에 TV 드라마로 복귀한 이병헌은 능수능란하게 유진 초이의 삶을 구축했다. ‘역시 이병헌’이라는 찬사가 이어졌다.

 하지만 김태리도 뒤지지 않았다. ‘이병헌을 넘었다’고까지 평할 필요는 없다. 이병헌과 충분히 어깨를 견줬고, 그와 합을 맞추며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방송이 시작된 뒤, 두 사람의 나이 차이를 꼬집는 여론과 언론의 박한 평가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병헌과 보폭을 맞추며 24부작이라는 긴 호흡을 적절히 배분해냈다는 것만으로도 김태리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의미를 부여하다

  <미스터 션샤인>은 경계인을 다룬 작품이다. 유진 초이는 조선에서 태어났으나 미군 장교가 된 검은 머리 외국인, 구동매(유연석 분)는 일본도를 찼으나 조선인의 뜨거운 피가 흐르고, 쿠도 히나(김민정 분)는 일본인에게 팔려가듯 시집 가 일본 이름을 얻었으나 여전히 조선인으로 살고자 하는 인물이다. 누구 하나 온전히 하나의 이름으로 살아가지 못한다. 고애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양반의 신분이나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밤과 낮의 삶이 다르다. 저마다가 경계 위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여성 의병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은 많지 않다. 영화 <암살>의 속 배우 전지현 정도가 참고할 만한 캐릭터였다. 하지만 “캐릭터를 그리기 위한 레퍼런스는 따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운을 뗀 김태리는 “누군가 강요해서 선택하는 일들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선택해서 직진하는 강인한 인물”이라고 고애신을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김태리는 그동안 다른 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걸출한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그 시대를 살던 이 땅의 사대부 여성들이 온실 속 화초처럼 그려진 것과는 사뭇 다르다. ‘의병=남성’이라는 판에 박힌 생각을 깬 것 역시 <미스터 션샤인>의 또 다른 성과다. 김태리가 완성시킨 이런 상징적 인물의 의미를 <미스터 션샤인> 속 대사를 빌려 표현할 수 있다.

 유진 초이는 고애신에게 말했다. “꽃으로만 살아도 될 텐데. 내 기억 속 사대부 여인들은 다들 그리 살던데.”

 고애신은 답했다. “나도 그렇소. 나도 꽃으로 살고 있소. 다만 나는 불꽃이오.”

안 진 용 문화일보 기자. 저서로 『방송연예산업경영론』(공저)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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