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ICON 조현우 축구선수] 조현우는 ‘빛현우’가 됐다
[2018 ICON 조현우 축구선수] 조현우는 ‘빛현우’가 됐다
  • 장민석(조선일보 기자)
  • 승인 2018.12.2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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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6월 18일 러시아 니즈니노브고로드. FIFA(국제축구연맹) 월드컵 F조 조별리그 한국과 스웨덴전을 1시간여 앞둔 미디어센터에는 긴장이 감돌았다. 킥오프를 앞두고 양 팀의 주전 라인업이 발표되는 시간이다. 나 역시 마른침을 삼키며 ‘새로고침’만 눌러댔다.

 “조현우라고?”

 누군가가 큰 소리로 외쳤다. 한국 기자들이 모여있던 미디어센터 한쪽이 시끌시끌해졌다. 신태용 한국 대표팀 감독의 선택은 의외였다. 4년 전 브라질월드컵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김승규가 이번에도 골키퍼 장갑을 낄 거란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간 것이다. 3년 전 아시안컵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쳤던 김진현도 후보였다. 스웨덴전 주전 수문장은 A매치라곤 겨우 6경기를 뛴 국가대표팀의 ‘넘버3’ 골키퍼였다.

 한국이 월드컵 열기로 떠들썩했던 2002년 여름 서울 강서구 신정초등학교 운동장. 호리호리한 초등학교 5학년생이 골문 앞에 섰다. 원래 왼쪽 수비수였던 그는 대회 하루 전날 주전 골키퍼가 그만 두면서 ‘땜방용 골키퍼’로 투입됐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매서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는 공을 소년은 몸을 던져가며 모조리 다 쳐냈다. 지켜보던 축구부 감독들과 동료들의 입이 딱 벌어졌다. 골키퍼 조현우의 시작이었다.

 16년이 흘렀다. 그동안 조현우는 대구FC 유니폼을 입고 한국 프로축구 K리그 베스트 골키퍼상을 세 차례 수상하는 등 수준급 골키퍼로 성장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에겐 여전히 생소한 이름이었다. 그는 대표 경력도 거의 없는 ‘비주류’ 골키퍼였다.

 주전 라인업이 적힌 종이를 들고 스타디움 기자석으로 향하는 취재진의 얼굴엔 의구심이 가득했다. 이운재가 세계적인 선방을 펼쳤던 2002년을 제외하곤 한국은 역대 월드컵 무대에서 골키퍼가 돋보인 적이 거의 없었다. 오히려 골키퍼의 결정적인 실수로 아쉬움을 삼킨 적이 많았다.

 킥오프 휘슬이 울렸다. 월드컵에 처음 나간 조현우의 얼굴에선 긴장감이란 찾아볼 순 없었다. 그는 오히려 즐거운 듯 종종 미소를 띠었다. 그 여유 넘치는 표정을 보고 기대 이상으로 잘할 수 있겠다란 생각을 했다.

 조현우는 발군이었다. 높이 솟구친 공은 어김없이 그가 가져갔다. 골문 구석을 향하던 공도 별안간 나타난 조현우의 손에 멈춰 섰다. 상대 슈팅을 순간적으로 허벅지로 막아낸 장면은 압권이었다. 페널티킥으로 한 골을 허용해 한국은 0대 1로 패했지만, 조현우에겐 찬사가 쏟아졌다.

 조현우는 골키퍼 치고도 말랐다. 189cm의 큰 키에 몸무게는 76kg이다. 가벼운 조현우가 날아오를듯 뛰어올라 공중에서 슈팅을 막아내는 장면은 축구의 그 어떤 순간보다 강렬한 시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그는 골키퍼로 성장해 오면서 지도자들에게 수없이 “살을 좀 더 찌우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어설프게 체중을 늘리기보다는 마른 체격을 유지하면서 장점인 순발력을 극대화하는 것을 택했다. 자신의 우상인 스페인 골키퍼 다비드 데 헤아(192cm,76kg)가 비슷한 체격으로 세계 최고로 군림하는 것도 조현우에겐 큰 힘이 됐다. 조현우가 데 헤아처럼 노랗게 물들인 모히칸 헤어 스타일을 고수하는 것은 데 헤아에 대한 존경의 또 다른 표현이다.

 스웨덴전이 끝나고 조현우는 ‘빛현우’가 됐다. 멕시코와의 2차전에서도 조현우는 빛났다. 페널티킥으로 한 골을 허용한 뒤 수비가 급격히 흔들리자 조현우는 “포기하지 마!”라고 외쳤다. 어느덧 그는 팀의 중심이 되어 있었다. 아쉬운 1대 2 패배. 그때만 해도 조현우의 ‘인생 경기’가 곧 찾아올 것이란 생각을 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한국의 조별리그 마지막 상대는 4년 전 월드컵을 제패한 독일이었다. 독일이 1승 1패로 예선 탈락 위기에 몰리면서 한국-독일전은 전 세계가 주목한 경기가 됐다.

 거짓말처럼 조현우는 독일의 슈팅을 막아내고, 또 막아냈다. 조현우의 철벽 방어에 독일은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해지면서 허점을 노출했다. 한국은 경기 막판 그 틈을 노려 두 골을 뽑아냈다. 한국의 2대 0 승. 독일이 월드컵 역사상 처음으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순간이었다.

 영국 BBC는 “월드컵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라며 “독일을 제외한 전 세계 축구 팬들이 기뻐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의 승리를 이끈 조현우는 일약 월드 스타로 떠올랐다. 한국이 독일을 이겨준 덕분에 16강에 오른 멕시코 팬들은 조현우를 ‘신神’이라 칭했다. 조현우의 월드컵은 이렇게 끝났다.

 한국은 16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조현우의 눈부신 선방은 월드컵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월드컵 하나만으로도 2018년은 그의 해였다.

 그런데 불과 두 달 뒤 8월 ‘빛현우’가 다시 빛났다. 23세 이하가 뛰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와일드카드(24세 이상 선수)로 나선 것이다.

 금메달로 가는 과정은 드라마틱했다. 한국은 조현우를 빼고 후보 골키퍼인 송범근을 기용한 말레이시아와의 조별리그에서 0대 1의 충격패를 당했다. 이란과의 16강전에선 조현우가 다쳐 교체되는 일도 있었다. 부상으로 8강전을 건너뛴 조현우는 아픈 다리를 이끌고 준결승과 결승에 나가 팀 승리를 지켜내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누구보다 뜨거운 여름이었다. 5월만 해도 대표팀 후보 골키퍼에 불과했던 그가 세 달이 흐르는 동안 월드컵을 통해 세계적 스타가 됐고,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 특례 혜택까지 받았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내년 상무에 입대하고자 했던 조현우는 병역특례로 해외 진출이란 더 큰 꿈도 꿀 수 있게 됐다. 한국 골키퍼로는 누구도 이루지 못한 유럽 무대 진출이란 목표다.

 아시안게임이 끝나고 조현우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어떻게 그런 큰 경기에서 긴장을 하지 않는지 가장 궁금했다. 그는 그만의 방법을 털어놓았다.

 “떨릴 때면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공을 차던 기억을 떠올리곤 해요. 그럼 희한하게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동료에 대한 신뢰도 그의 맘을 가볍게 한다. “골키퍼는 가장 뒤에 서 있는 포지션이잖아요. ‘내 앞에 10명의 선수가 있다, 난 혼자가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절로 힘이 생깁니다.” 올해 모든 타이밍이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고 하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타이밍이 좋았다기보다는 늘 준비하고 기다렸던 저에게 기회가 찾아온 거라고 생각해요. 저, 정말 열심히 해왔거든요.”

 2018년 누구보다 빛난 그다. 하지만 아직 올해는 끝나지 않았다. 그의 소속팀 대구는 FA컵 결승(12월 5, 8일)에 올라 있다. 그가 처음으로 프로 무대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기회다. 2018년을 완벽한 그의 해로 만들기 위해 조현우는 다시 축구화 끈을 바짝 조인다.

장 민 석 2006년 조선일보에 입사해 13년째 스포츠부에 몸담고 있다. 세 번의 월드컵과 세 번의 올림픽 등 수많은 스포츠 현장에서 울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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