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Theme] 총론: 문화로서의 게임
[7월 Theme] 총론: 문화로서의 게임
  • 박이선(게임문화연구자)
  • 승인 2020.07.02 1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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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마인크래프트> 청와대 행사 사진ⓒ청와대 유튜브

  지난 5월, 청와대가 네모나게 변했다. 유명 온라인 게임 <마인크래프트>에서 대통령 주관의 어린이날 특별 행사가 열린 것이다. 팬데믹 상황에서 온라인 수업으로 지친 어린이들을 위해 어른들이 이벤트를 준비했다. 대통령 부부 내외를 모사한 캐릭터가 가상의 ‘청와대 맵’ 앞에 서서 메시지를 전한 이 사건은, 게임 문화사적으로 꽤 중요한 의미를 남겼다. 그간의 인식에 비추어 보면 게임은 가볍고 진지하지 않은 유희이자 청소년의 학업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는 부정적인 존재이기도 했다. 그런 게임을 공식적인 제도 권역이 포용한 것이다. 게임이 문화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놓여있음을 확인하게 된 계기였다.

  그렇다고 게임을 어린아이들의 전유물만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지금은 누구나 게임을 하는 시대다. 정치인, 예술인, 학자 등에게 고조된 관심을 보면 게임은 21세기를 대표하는 문화 형식 중 하나가 된 것으로 보인다. 직장인들이 출퇴근길과 업무 시간 틈틈이 스마트폰 게임을 즐기고, 커플은 PC방에서 데이트를 하며, 친구들끼리 게임 속 광활한 전쟁터에서 만나 헤드셋 마이크를 통해 서로의 일상을 묻는 일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또한, 지금의 부모 세대는 어린 시절부터 게임을 하면서 자란 세대이다. 게임을 중독 물질로 보기보다 자녀의 이름 뒤에 ‘OO맘’, ‘OO아빠’와 같은 아이디를 만들어 함께 팀을 맺고 여가를 보낸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도 한몫해서, 스마트폰 이용의 확산은 사람들에게 게임과 일상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아직 게임은 ‘취미’에 국한되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누군가에게는 무지한 영역이 될 수도 있다. 관심사로부터 멀어지면 자연스레 외면받는다. 이는 게임의 문화적 위상이 상대적으로 낮게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생충>이 영화제에서 수상하거나, <82년생 김지영>이 사회적으로 이슈를 가져왔을 때 우리는 문화적으로 가치를 두고 관심을 요구한다. 세부적인 내용을 아는 것은 ‘교양적 실천’이다. 하지만 게임에는 그러한 기대를 걸기 힘들다. 게임에 관련된 하나의 문화적 사건이 발생했을 때, “게임을 하지 않는 편이라 잘 모른다”라는, 다소 ‘매니악’한 무언가로 일정한 거리가 유지된다. 아직은 게임이 책, 영화, 음악보다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문화’에 대해 수없이 다양한 정의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문화란 기호화 된 것, 그리고 그 기호화된 산물이 여러 사람에게 공유되는 상태를 뜻한다. 게임의 세계는 무수한 기호들로 이루어져 있고, 플레이어는 그것을 해독하며 텍스트를 형성해간다. 가상 세계는 대표적인 재현 구성물이다. 게임을 구성하는 요소에는 문학, 사회학, 미학, 그리고 산업적 의미까지 다양하게 얽혀있다. 그리고 다른 문화영역과 마찬가지로 충분한 비평이 이루어질 수 있다. 기존의 문화를 바라보는 틀을 똑같이 빌려 게임을 바라보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의 ‘롤드컵’개최사진
(실제 대회명: League of Legends World Championship)
ⓒRiot Games (*리그오브레전드 게임회사)

  문화로서 게임을 진지하게 사유하기

  게임을 인문학적인 시각에서 사유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였다. PC게임이 대두하면서 새로운 감각 경험, 가상현실에 대한 탐색적인 논의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문학에서는 게임을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의 매체로 보았다. 책이나 영화와 다르게 상호작용이 가능하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반면 게임을 문학의 연장선에서 봐선 안 된다는 사람들도 등장했다. 이들은 술래잡기나 축구와 같은 전통적인 놀이의 연장선 위에서 바라볼 것을 주장했다. 텍스트는 미리 짜여있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스스로 만들어간다. 게임의 세계는 스토리텔링보다 규칙이나 선택, 결과가 더 중요하다고 봤다. 다행히도 시간이 흘러 이들 간의 대립은 상호이해적인 것으로 여겨지며 수렴을 이룬다. 게임은 어느 한 쪽 입장에만 해당하지 않는, 문학이기도, 놀이이기도 하다. 게임이 새로운 문화적 산물로 떠오르면서 한때 발생한 논쟁들이다.

  게임은 플레이어가 조작하고 체험한다는 점에서 수행성, 신체성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이는 책이나 영화가 가지지 않는 게임만의 특징이다. 플레이어는 가상 현실에서 ‘아바타’의 몸을 빌려 신체와 연결한다. 대표적인 게임의 장르인 RPG(role-playing game)에서 플레이어는 자신의 역할을 설정한다. 플레이어가 변신할 수 있는 캐릭터의 직업, 능력, 성별, 외형은 무궁무진하다. 그 신체를 딛고 가상 현실에서 생명을 얻는다. 게임 내 사물들과 관계를 맺으며 맥락을 형성한다. 새로운 몸의 탄생인 것이다.

  게임에서의 재현의 문제도 중요하다. 문화를 비평하는 방법의 하나는 재현 양상을 분석하고, 그 재현이 나타나게 된 맥락을 추적하는 것이다. PC게임 <그랜드 테프트 오토> 시리즈는 미국 범죄자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어떤 인물을, 어떤 방식으로 등장시키고 있는지를 보면 사회적 인식 속에 잠재한 흑인의 폭력성, 여성의 상품화 문제를 추적하여 발견할 수 있다. 게임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시뮬레이션이다. 시뮬레이션 게임은 실제의 모습을 본 따 만든 가상의 공간을 제공한다. 인간 세상을 옮겨 놓아 게임으로 제작한 <심즈>는 대안적 상상을 가능케 한다. 한 게임학자는 실재의 거울이자 자기 표현할 수 있는 게임의 공간을 연극 무대로 해석하기도 했다.

 

  게임을 매개로 한 문화까지 확장

  게임 문화는 게임을 매개한 문화까지 확장했을 때 총체적으로 고려할 수 있다. 이스포츠(e-Sports)는 나날이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축구의 월드컵만큼 온라인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의 국가 대항전 ‘롤드컵’의 인기는 거대하다. 아이돌이나 스포츠 스타 팬덤만큼 유명 프로게이머 ‘페이커’의 팬덤도 탄탄하다. 최근에는 ‘하는’ 게임에서 ‘보는’ 게임으로의 변하는 풍속도가 눈에 띈다. 소위 ‘스트리머’, ‘크리에이터’에 의한 게임 방송의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다. 여기에는 다양한 해석이 붙을 수 있지만, ‘보는 게임’ 문화가 게임 문화에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문화라고 했을 때, 그 주변부에 형성된 현상까지 적절히 포함해야 한다. 지금을 보면 너무 많은 일상이 게임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다. 게임을 하지 않더라도 좋은 옷을 골랐을 때 “득템했다”라고 하지 않는가. 문화로서의 게임을 전제했을 때 우리는 새로운 비평적 시각을 얻어낼 수 있다.

 

 

* 《쿨투라》 2020년 7월호(통권 7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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