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Theme] 게임의 역사
[7월 Theme] 게임의 역사
  • 나보라(게임역사연구자)
  • 승인 2020.07.03 16: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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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히긴보덤, 스티브 러셀, 랄프 베어, 놀런 부쉬넬

  일반적으로 게임의 역사는 라디오나 컴퓨터, 텔레비전 등 20세기 중반 가속화되는 정보·통신의 기술적 발전을 시발점으로 삼아왔다. 여기에는 ‘핵전쟁으로 인한 지구의 종말’이라는 최후의 시나리오가 가시화되던 냉전의 엄혹한 분위기가 ‘우주전쟁’으로까지 확장되던 시대 속에서, 일종의 해킹 같이 재미를 위한 기술적 일탈이 ‘게임’이라는 형태로 발현되었다는 인식이 담겨있다. 미국의 물리학자로서 핵폭탄 개발에 참여했던 윌리엄 히긴보덤(William Higinbotham)의 <두 사람을 위한 테니스(Tennis for Two, 58’)>나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받던 MIT 연구실의 대학원생 스티브 러셀(Steve Russell)과 친구들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스페이스워!(Space War!, 61’)>는 그러한 인식을 뒷받침하는 역사적 사례들이다. 이 원형적 게임들은 대중적인 소비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리고 기술적으로도) 오늘날 상업용 대중오락으로서의 게임과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최초의 가정용 게임기, 즉 콘솔 - 마그나복스 오디세이(Magnavox Odyssey) - 을 개발했던 랄프 베어(Ralph Baer)나 최초로 전자식 비디오게임 - <퐁(퐁(Pong)> 등 - 을 상업용으로 개발·출시했던 아타리(Atari)의 설립자 놀런 부쉬넬(Nolan Bushnell)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게임의 원형으로 인정된다. 또한 언급된 윌리엄 히긴보덤, 스티브 러셀, 랄프 베어, 놀런 부쉬넬 등은 게임의 역사에 있어 명실공히 창시자(founding fathers)로서 인정받고 있다.

1972년 아타리가 개발한 슈팅게임, <퐁>

  주류 게임사 저술은 대개 이 창시자들의 활동과 발명품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만큼 이들의 이야기가 게임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무게가 상당하고 실제로 오늘날의 게임이 있기까지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창세의 연대기가 지닌 강렬한 호소력이 특정한 편향을 발생시키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이 창시자들의 인상적인 활동상으로 인해 게임에는 IT산업 초기를 주도했던 해커들의 천재적인 발명품이라는 인상이 각인되어왔다. 그러한 인식이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는 없으나, 그로 인해 마치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던 진공상태에서 천재들의 발명을 통해 게임이 비로소 인간 사회에 등장한 것처럼 인식되었다는 점, 그리고 그러한 인식이 게임사 전반에 확산되어있다는 점은 지적할 필요가 있다. 이 고착된 인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는 아마도 <퐁>의 전설적인 일화일 것이다.

  두 개의 패들로 하나의 공을 주고 받는 2인용 게임 <퐁>은 그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탁구(ping-pong)를 모티브로 한 아케이드용 비디오게임으로, 1972년 세계 최초의 비디오게임 개발사 아타리에서 제작했다. 앞서 언급한 전설적인 일화란 아타리가 시장에 정식 출시하기 전 <퐁>의 시제품을 근처 선술집에 테스트 삼아 설치했다가 반나절 만에 동전이 가득 차 고장이 나버린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이 유명한 이유는 그 생소함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킨 비디오게임의 저력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인데, 실제로 <퐁>의 정식 출시 직후 미 전역에 비디오게임 붐이 불면서 불과 2년 만에 비디오게임 산업이 2억5천만불의 연매출을 달성한 바 있다. 그리고 이러한 초기 게임산업의 번성은 <퐁>이라는 게임이 지닌 단순하면서도 역동적인 재미와 비디오게임이라는 새로운 오락매체를 흥미진진하게 만들어낸 아타리(로 대표되는 초창기 게임) 개발자들의 천재성과 혁신성 등에 초점을 맞춰 서술되어왔다.

  그러나 이 유명한 창세 설화에는 <퐁>으로 대표되는 비디오게임이라는 새로운 오락장치가 시험적으로 설치될 장소로서 선술집이 의도적으로 ‘선택’되었다는 사실이 생략되어있다. 미국에서 선술집은 전통적으로 술 외에도 다양한 오락을 즐기는 장소였는데, 미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술집에서 당구를 치거나 다트를 던지며 노는 장면이 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특히 동전을 넣고 듣고 싶은 음악을 골라 재생하는 주크박스는 미국 선술집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오락장치로서, 따라서 마찬가지로 동전을 넣고 작동시키는 방식의 <퐁>을 시험 삼아 설치할만한 장소로서 선술집은 적절한 ‘선택’이었다 하겠다.

퐁시제품

  이러한 ‘선택’의 문제는 같은 시기 한국에 <퐁>이 도입될 수 있었을지를 상상해보면 보다 분명해진다. 1970년대 초반의 한국 사회에선 미군 주둔지 근처가 아니고서야 그러한 미국식 주점 - 당시 대중적인 주점이었던 대폿집은 드럼통을 고쳐 만든 식탁에 연탁을 끼워 추위를 달래며 김치를 안주 삼아 막걸리를 마시던 곳이었다 - 을 영업하기 어려웠고, 따라서 <퐁>과 같은 동전투입식 오락장치가 설치될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또한 시험 삼아 설치되었을지라도 대중화되기는 더욱 어려웠을 터인데, 왜냐하면 1960년대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던 회전당구(파친코) 파동으로 인해 ‘동전투입식 오락장치’란 당시 대다수 한국인들에게 파친코를 연상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즉 오락장치 투입구에 새겨져 있는 ‘동전을 넣으시오(Insert Coin)’라는 문장의 의미가 미국 사회와는 달랐던 것이다.

  이는 정보·통신 기술 발전의 산물로서 (전자식 비디오)게임이 출현했던 20세기 중반을 게임 역사의 기점으로 삼을 경우 설명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즉 아무리 전례 없는 혁신적인 산물일지라도 그 사회적 수용은 기존하는 다양한 맥락 속에 ‘배치’됨으로써 이루어져왔던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배치의 과정 또한 게임의 역사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와 같은 접근방식은 ‘(우리에게 있어) 게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오늘날 게임은 단순히 기술적 산물일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는 하나의 놀이/오락이고 경제적으로 중요한 무게를 갖는 산업이기 때문에, 각 영역간의 입장이 충돌하면서 많은 갈등과 논란이 발생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좀 소강상태긴 하지만 올 초까지만 해도 WHO가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에 질병코드를 부여하기로 결정하면서 이를 지지하는 입장과 그에 반대하는 입장 간에 첨예한 대립이 벌어진 바 있으며, 그 이전에도 비슷한 갈등은 지속적으로 존재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 해결의 실마리란 결국 우리에게 있어 게임이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숙고함으로써 그 정체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데 있지 않을까. 배치의 과정이 담긴 역사적 고찰 작업이 갖는 의미는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쿨투라》 2020년 7월호(통권 7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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