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Theme] 게임, 코로나19 사태로 한층 더 주목받다.
[7월 Theme] 게임, 코로나19 사태로 한층 더 주목받다.
  • 이경혁(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
  • 승인 2020.07.03 16: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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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의 대유행 속에서 디지털게임은 뜻밖의 주목을 끌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전염을 최소화하기 위한 여러 방안 중 하나로 직접 사람을 만나는 대신 집에서 게임을 즐기자는 ‘플레이 투게더’ 캠페인을 제안했고, 많은 게임사들이 이에 호응하며 꽤나 인기있는 게임들을 무료로 배포하는 등의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대규모 팬데믹 사태로 주목받은 언택트untact라는 새 트렌드 속에서 디지털게임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음에도 함께 놀기가 가능한 매체로 각광받았다. 아마 당분간은 많은 게임사들이 때아닌 호조에 힘입어 여러모로 순항의 나날을 보낼 것이다. 디지털미디어 시대의 각광받는 총아에게 불어온 새로운 기회는 게임의 앞날에 보다 밝은 빛을 내리쬐고 있지만, 그렇다고 마냥 긍정적인 이야기로만 게임을 둘러싼 환경이 점철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문화현상들과 마찬가지로 게임을 둘러싼 흐름들 또한 다양한 표정의 얼굴들을 드러낸다.

  뉴미디어일 뿐, 게임에도 그늘은 존재한다

  당장 ‘플레이 투게더’의 제안자인 WHO는 2019년 5월에는 국제질병사인분류코드인 ICD의 제 11차 개정판에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의 등재를 공식 승인했다. 게임이 질병이냐 아니냐로 시끄러웠던 작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 문제는 국내 도입의 방향성을 두고 국무총리실에서 조정을 맡을 만큼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채 난맥을 이루고 있다.

  WHO의 게임질병코드 등재는 굉장히 복잡하고 난해한 입장들의 대립을 드러낸다. 당장 의학계와 교육계가 조속한 도입을 요구하는 반면 사회과학계와 문화계에서는 매체현상이자 문화콘텐츠로서의 맥락이 고려되지 않음을 지적하며 대립중이다. 그 와중에 쏟아지는 상호간의 비난도 적지 않다.

  찬반의 입장을 떠나 생각해 볼 것은 실제로 과도하게 게임에 몰입하는 바람에 일상의 삶이 어그러지는 경우가 실존한다는 점이다. WHO의 게임이용장애는 모든 게임을 질병요소로 분류한 것은 아니며, 일상을 영위하는 데 있어 문제가 되는 일부 사례를 상정하고 있다. 오랫동안 게임이 부정적 편견에 휩싸여 폭력 사건도 게임 탓, 절도 사건도 게임 탓을 당한 역사가 있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식음을 전폐하고 게임만 하다 삶을 놓치는 경우가 없다고 단언하기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물론 과도한 게임이용이라는 현상의 원인이 게임인지, 혹은 게임 밖의 사회적 영향력인지에 대한 논의가 더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과도한 게임이용이 현실적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완전히 부인하는 것은 오히려 디지털게임이 가지고 있는 복합적인 양상들 중 일부만을 취사선택해 보는 편견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게임에 거는 긍정적인 기대만큼 발생할 수 있는 어두운 구석에 대한 관심도 놓쳐서는 안된다.

  이 문제는 특히 자본주의 사회의 대중문화상품으로 존재하는 디지털게임의 산업적 토대와 맞물리며 기업의 이윤추구라는 또다른 문제와도 연관된다. 누군가의 과도한 게임이용은 한편으로는 누군가의 이득이기 때문이다. 특히 과거와 달리 모바일게임을 중심으로 한 최근의 많은 게임들은 ‘프리 투 플레이’라는 이름의 부분유료 정책을 통해 수익을 내고 있는데, 이로 인해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현금결제가 발생하며 또다른 사회적 이슈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문화로서, 예술로서 평가받을 수 있는 수많은 게임들이 존재하지만 그보다 더 대중적으로 게임 전반의 비중을 가져가는 것은 사행성에 가까워 보이는 게임들이다. 끝없는 유저들간의 경쟁환경을 조성하고 더 많은 현금투입을 통해 타인보다 높은 순위와 레벨을 차지하라는 유혹은 공정한 경쟁이라는 게임의 게임의 룰 밖으로 튀어나온 약육강식에의 욕망이기도 하다. 어떤 모바일게임에서는 길드의 가입 조건이 한달에 1억 이상의 추가결제인 상황이고, 대부분의 모바일게임들에서는 고액 결제를 하는 상위 20%의 플레이어 외에는 자신들이 하위 80%를 받쳐주고 있다는 사실에 순응하는 모습들을 보기가 어렵지 않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의 목적은 이윤이고, 새로운 결제방식이 기존보다 훨씬 나은 수익을 창출하는 데 그걸 거부하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대신 ‘게임은 문화다’라는 틀에 박힌 선언이 이런 환경에서도 가능한 것인지를 되물을 수는 있을 것이다. 환금만 안 된다 뿐이지 거의 파친코에 가까운 수준의 확률형 아이템을 팔면서도 ‘게임은 문화다’를 외친다면 그건 좀 낯간지러운 일이 아닌가.

  게임이용자들의 플레이 양상도 아름답고 밝은 게임의 미래를 주저하게 만든다. 어지간한 인기 게임들의 채팅창에 넘실거리는 강도 높은 욕설과 비방을 두고 ‘문화예술로서의 게임’을 이야기하기는 낯부끄럽다. 채팅이 없는 게임이라 할지라도 게임커뮤니티에 쏟아지는 이야기들을 놓고 보면 도대체 어디부터 정비해야 할지 감도 안 서는 상황이 난무한다.

  보편대중문화로서, 그 어둠까지도 이야기할 수 있어야

  게임이 워낙 사회적으로 부정적 편견을 뒤집어쓰고 있다보니 그 반작용으로 나오는 ‘게임은 문화다’ 이야기는 역으로 게임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측면을 은폐해버리는 효과를 낳곤 한다. 하지만 다가오는 게임의 시대를 이야기하기 위해선 오히려 그런 모습들까지도 게임의 일부임을 인정하고 개선해 나가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파친코에 가까운 게임을 만들고 그로부터 수익을 올리면서 정작 게임이 궁지에 몰릴 때마가 꺼내드는 ‘게임은 문화예술이다’ 카드는 설득력을 잃은 지 오래다. 다짜고짜 ‘그깟 오락질’로 치부하는 시선 이상으로 무조건 게임은 옳다고 말하는 입장 또한 오늘날의 게임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한 켠에서는 새로운 예술적 성취를 향한 시도들이 이어지고, 또 다른 한 켠에선 최고의 영업이익률을 뽑아낼 수 있는 콘텐츠상품의 제작이 이어진다. 과도한 이용으로 일상을 놓칠 가능성도 있지만 세상 어느 매체도 가닿지 못할 새로운 경험으로 놀라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임도 존재한다. 그 모든 긍정과 부정의 양 끝단 사이에 걸치는 것들이 다 게임이다. 게임과 게임플레이를 두고 문화담론을 세우기 위해서는 게임이 얼마나 서로 다른 면면들을 다 끌어안고 존재하는 매체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편견과 선입견을 넘어 그 빛과 어둠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시대에 이르러야 우리는 비로소 이 뉴미디어를 현대 대중문화의 일부로 부담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다.

 

 

* 《쿨투라》 2020년 7월호(통권 7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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