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Theme] '2차 창작'이 아닌 '창작'
[7월 Theme] '2차 창작'이 아닌 '창작'
  • 박원호(게임평론가)
  • 승인 2020.07.03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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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 창작으로 완성되는 비디오 게임

  조선의 어느 서당, 훈장님이 낮잠을 자고 있는 틈을 한 학동들이 역할을 바꾸어가면서 홍길동 놀이를 하고 있었다. 며칠 전까지 학동들은 <서유기>를 읽고 원숭이 흉내를 내고 있었지만 <홍길동전>을 돌려 읽은 후 너도 나도 탐관오리는 타도하는 의적 놀이를 하고 있었다. 학동들은 방안을 뛰어다니면서 홍길동의 도술을 따라 하거나 원작의 장면을 따라 하면서 홍길동 놀이를 즐겼다. 종종 원작이 이야기와는 다르게 홍길동이 만주로 가서 오랑캐와 싸우거나 바다 위에서 이순신장군을 도와 왜놈들과 싸우는 전개까지 흘러갔지만 모두가 즐거우면 그 누구도 딴지를 걸지 않았다.
  슬슬 훈장님이 다시 서당으로 돌아올 즈음에 한 학동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홍길동은 어떻게 생겼을까?” 이에 한 학동이 자신이 천자문 교과서 뒷장에 그려진 낙서를 자랑했다. 책 뒷면에 먹물로 정성스럽게 그려낸 홍길동은 호리호리한 체격에 장검을 든 미남이었다. 하지만 그 그림을 본 다른 학동은 “나의 홍길동이 그럴 리가 없다!” 붓을 들고는 자기가 상상한 홍길동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두 번째 학동이 그린 홍길동은 임꺽정을 연상케 하는 기골이 장대한 장사였다. 이에 질세라 옆에 있는 학동이 그려낸 홍길동은 시커먼 도포를 입고 저승사자를 연상시키는 날카로운 눈빛을 한 광인이었다.
  결국 천자문 뒷장에 낙서를 한 죄로 학동들은 낮잠을 자고 돌아온 훈장님에게 매타작을 당했지만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서로 자신들이 그린 2차 창작에 대한 토론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코스프레 역시 대표적인 서브컬처의 2차 창작이다. 2차 창작은 서브컬처의 세계를 지탱한다.

  1. 2차 창작은 무엇인가?
  소설, 만화, 영화 등등 하나의 작품은 다양한 요소를 통해 구성되어 있다. 이 원작을 구성하는 요소를 차용하여 재구성하여 나온 결과물을 2차 창작이라고 한다. 2차 창작의 역사는 앞에서 필자가 멋대로 지어낸 이야기처럼 독자가 작가가 만들어낸 원작을 통해 형태의 결과물을 상상하면서 시작했을 지도 모른다.
  대중적으로 익숙한 형태의 2차 창작은 패러디를 뽑을 수 있다. 하지만 단연코 2차 창작이 가장 활발한 영역은 서브컬처일 것이다. 작가와 독자의 경계가 모호한 서브컬처의 세계의 반은 2차 창작이 지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수많은 동인지, 팬픽으로 만들어진 외전들은 하나의 작품에 오랜 생명력을 부여하기도 한다.
  게임에서의 2차 창작은 인터넷을 통한 정보혁명과 함께 급성장한 케이스다. 특히 비디오 게임과 연관된 첨단 기술이 대중화 되면서 다른 서브컬처의 작품들과는 다른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물론 서브컬쳐의 2차 창작은 수익과 관련한 복잡한 법적인 문제와 원작의 정체성을 훼손하면서 벌어지는 작가와 팬간의 갈등과 같은 문제를 가져오기도 했다. 특히 거대기업의 깐깐한 법무팀은 팬들의 애정 어린 2차 창작을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그런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자 한다. 오직 비디오 게임의 2차 창작이 가진 특수성에 대하여 집중하고자 한다.

  2. 게임의 2차 창작은 어떤 형태를 뛰고 있는가?
  단순히 게임 팬이 게임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만화나 소설을 쓰는 것이 2차 창작의 전부라면 굳이 이 글을 쓸 필요가 없을 것이다. 비디오 게임은 게임엔진 위에 그래픽적 요소와 사운드가 소스코드를 통해 연결되어 규칙이라는 장르적 특징을 완성하면서 만들어진다. 이 규칙을 구성하는 그래픽, 사운드, 소스 코드가 게임적 2차 창작의 재료가 된다. 게임을 통한 2차 창작은 크게 세가지, 게임을 확장하는 맵 에디터(Map Editor), 새로운 규칙을 만드는 모드(MOD), 그리고 네러티브를 만드는 머시니마(Machinima)로 구분된다.
  사실 프로그래머가 아닌 문과형 인간이라면 화려한 그래픽 리소스와 미려한 사운드 파일을 누군가가 공짜로 제공해준다고 해도 람보르기니 부품 더미 위에 원숭이 마냥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몇몇 게임들은 ‘맵 에디터’ 기능을 통해 게이머가 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최초의 맵 에디터를 제공했던 게임 <로드런너>

  1983년 출시된 미국의 퍼즐액션게임 <로드런너>는 게임 역사상 최초의 ‘맵 에디터’를 지원했다. 주인공은 스테이지에 배치된 금괴를 수집하여 다음 스테이지로 이동한다. 여기서 방해꾼들 피하기 위해 땅을 파서 적들을 제거할 수 있다. 이 기본 규칙을 바탕으로 150개 이 후에 새로운 스테이지를 만들어 공짜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이 맵 에디터 기능이이야 말로 게임에서만 가능한 2차 창작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80년대 이 게임은 일본에서 닌텐도의 전설적인 게임기 ‘패미컴’으로 발매 되었을 당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새로운 스테이지를 만들 수 있는 게임은 플레이 타임이 엄청나게 길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렇게 게임기가 고장이 날 때까지 즐길 수 있는 게임이 안 팔릴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일본 유통사였던 아이렘은 ROM 카트리지의 생산 수량을 매우 적게 잡았다고 한다. 도매상들은 적어도 10배 이상은 발주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차후 생산까지 6개월은 걸린다는 아이렘 담당자의 통보에 분통을 터트렸다고 한다.
  맵 에디터는 모든 게이머에게 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스타크래프트>의 맵 에디터로 만든 맵 <Aeon of Strife>은 훗날 전세계 게이머들 에게 사랑받는 <리그 오브 레전드>의 초석을 마련하기도 했다. 인터넷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엡 에디팅 기능은 혼자 즐기는 영역에서 랜선으로 자신이 만든 스테이지를 서로 공유하는 영역으로 확대된다. 이 정보혁명을 거치면서 게임의 2차 장작은 새로운 규칙과 새로운 내러티브를 만드는 영역으로 확대된다.
  ‘모드(Game Modification)’는 기존 게임의 요소를 변경하여 만드는 2차 창작을 의미하며 이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사람을 모더라고 부른다. ‘엡 에디팅’이 신규 스테이지를 만들어 게임을 확장한다면 ‘모드’는 게임의 구조 자체를 바꾼다. 단순히 게임의 UI, 인터페이스 상의 단점을 수정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새로운 규칙을 가진 신작 게임을 2차 창작으로 이어진다.
  특히 모드에서는 거대 자본의 영향력 안에서 벗어난 더 다양하고 민감한 소재까지 거침없는 표현이 가능하다. 인디게임은 아니지만 거대자본이 만든 게임엔진 위에 인디적 감성을 표현할 수 있으며 때로는 원작을 뛰어 넘는다.

 

원작자들의 칭송을 받은 2차 창작 <엑스컴 : 롱 워>

  전략 롤플레잉 게임 <엑스컴: 에너미 위드인>의 모드 <엑스컴 : 롱 워>는 모드 역사상 가장 훌륭한 명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계인의 침략전쟁을 소재로 하고 있는 <엑스컴> 시리즈는 무능력한 아군과 무자비한 적군 사이에 놓여진 지휘관의 고뇌를 느낄 수 있는 게임이다. 이 악명 높은 난이도로 유명한 시리즈의 모드 <엑스컴 : 롱 워>는 안 그래도 어려운 원작의 요소를 더 세분화시키고 다양한 선택을 추가하면서 제목처럼 더 길어진 전쟁을 제공한다. 단순히 원작이 가진 시스템의 단점을 보완하는 것을 넘어 더 깊이 있는 플레이를 제공한 것이다. 조금 과장을 더해서 설명하자면 고대 인도의 보드게임 차투랑가의 룰을 변형하여 현대의 체스를 완성한 것도 같은 업적이다. 원작의 디자이너 제이크 솔로몬은 “롱 워는 엑스컴을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렸다. 우리가 만든 엑스컴 게임은 롱 워를 위한 20시간 튜토리얼이라고 해도 좋다.”라고 극찬했다. 즉 원작자가 2차장작이 자신들을 뛰어 넘었다고 인정하는 최고의 찬사를 남긴 것이다. 이것은 모든 문화영역의 2차 창작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전대미문의 평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모드의 영역에서는 모든 독자가 개발자에 가까운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한계가 있다. 프로그래밍의 대한 영역에 이해가 모드를 만드는 기본 조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임의 2차 창작의 형태가 꼭 게임일 필요는 없다. 게임을 구성하는 그래픽과 사운드라는 요소만 있다면 우리는 영화감독이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다.
  간단한 툴을 통해 게임 속 인물들을 내가 원하는 공간과 시간에 배치한다면 새로운 내러티브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런 형태의 영상을 머시니마(Machinima)라고 한다. 이는 기계를 의미하는 머신(machine)과 영화를 의미하는 시네마(cinema)의 합성어로 게임엔진을 이용하여 만든 애니메이션 영화를 의미한다.
  전세계적으로 크게 성공한 게임 <그랜드 시트프 오토5>는 ‘락스타 편집기’라는 머시니마 툴을 제공한다. 게임 <그랜드 시트프 오토5>은 범죄를 소재로 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이 편집기만 있으면 당신은 코미디, SF, 멜로는 물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수 있다. 당장 유튜브에 gta 5 machinima라고 검색한다면 전세계의 제주꾼들이 게임의 그래픽 리소스로 만든 다양한 영화들을 감상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시나리오를 준비중인 영화학도라면 이 게임을 통해 자신만의 단편영화를 만드는 것도 꿈은 아닐 것이다.

 

락스타 편집기로 만들 머시니마 영상. 한국 영화 <아저씨>와 <신세계>를 패러디했다.

  3. 게임의 2차 창작이 탄생하는 이유
  새로운 스테이지를 추가하는 맵 에디팅(Map Editor)의 확장, 같은 재료로 장르마저 다른 새로운 게임을 만드는 모드(MOD)의 창작, 영화감독의 영역까지 꿈꿀 수 있게 하는 머시니마(Machinima). 비디오 게임의 2차 창작은 원작의 확장시키거나 독립된 작품을 만드는 수준으로 다른 서브컬처의 2차 창작과 큰 차이를 보여준다.
  비디오 게임의 2차 창작이 다른 매체의 2차 창작과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주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게이머라는 인종에 대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게임회사에는 QA(Quality Assurance)라는 직군이 존재한다. QA의 업무는 개발자의 의도대로 게임이 완성되었는지 알기 위해 시스템을 테스트하고 ‘버그’를 찾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종종 QA는 비정상적인 행동을 유도하는 테스트를 진행한다. 캐릭터를 움직여 절벽으로 떨어뜨리거나 아군을 공격하거나 소중한 아이템을 쓰레기통에 처박기도 한다. 혹은 게임플레이에서 의도적인 태업을 하면서 아군을 패배로 이끌어버린다. 이런 생각지도 못하게 게임의 진행을 방해할 수 있는 요소들을 ‘예외사항’이라고 부른다.
  아마 게이머가 아닌 사람들은 설마 그런 이상한 행동을 하는 유저가 존재하는가? 하고 의문을 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 일부러 자살골을 넣으려는 국가대표 선수가 있을까? 물론 그런 이상한 유저들은 존재한다. 게다가 엄청나게 많다.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서 하는 게이머들은 항상 게임의 규칙의 허점을 발견하여 개발자들의 야근을 부추긴다. 특히 한명의 게임 기획자로서 장담하는데 이런 허점을 통해 게임머니 혹은 랭킹상승 같은 불법적인 이득을 얻는 게이머를 위해 분명 지옥의 한 자리가 예약되어 있을 것이다.

 

유저는 항상 디자이너의 의도와 반대되는 길을 찾아낸다

 

  게이머들은 한마디로 말을 안 듣는 종족들이다. 왼쪽으로 가라면 오른쪽으로 가고, 계단을 이용하라면 창문으로 떨어진다. 폭탄을 건들지 말라면 꼭 폭탄으로 돌진하여 작전을 엉망으로 만든다. 영화 속 주인공은 사악한 드래곤과 싸워 이기고는 공주를 구해내지만 게이머들은 그렇게 구한 공주를 성벽으로 던져버린다. 적을 공격하라고 돌멩이를 던지는 시스템을 만들어놨더니 돌멩이가 굴러가는 패턴에 돈을 거는 내기도박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게이머라는 종족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 말 안 듣는 게이머들을 규칙을 파괴하는 진상고객이라고만 욕할 순 없다. 혹시 고추장을 찍은 산낙지와 레드와인이 의외로 어울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종종 말 안 듣는 게이머들은 이런 셰프도 알지 못하는 의외의 재미를 찾아내는 진정한 ‘프로’게이머의 면모를 보여준다.
  한 게임 속 대저택에 불에 약한 괴물이 살고 있다. 이 괴물과 싸우기 위해서는 불화살이 필수적이다. 화살을 구매하는 것을 잊어버린 게이머는 상점이 있는 마을로 발걸음을 돌리려고 한다. 하지만 한가지 깨달은 게 있다. 바로 이 게임에는 건물이 불에 타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게이머는 정문으로 들어가 괴물에게 불화살을 쏘며 싸우는 정공법 대신 부싯돌로 작은 불씨를 일으켜 건물을 불태우는 방법을 생각해낸다. 결국 대저택이 불타면서 큰 데미지를 입은 괴물이 정문으로 빠져나올 때 게이머는 마지막 일격을 날린다.
  디자이너는 게이머를 위해 대저택으로 가는 길에 불화살을 파는 상인 캐릭터를 배치했지만 화살 1방 쏘지 않고 괴물을 물리친 것이다. 이런 꼼수는 ‘공략’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었지만 E스포츠가 되면서 ‘전략’으로 체계화되었다.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의 민속놀이 <스타크래프트>는 규칙을 파괴하면서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다. 북미권 유저들은 <스타크래프트>의 역사 초기에 충분한 병력을 생산하고 적진을 공격하는 전략을 주로 사용하였다. 하지만 한국의 게이머들은 초반 병력으로 빠르게 적의 본진을 공격하는 새로운 형태의 전략을 만들었다. 게이머들의 문무를 겸비한 영웅인 테란 황제 임요환 선수께서는 초반 건설 유닛 SCV를 공격으로 활용하는 전략을 선보이셨다. 실제 블리자드의 스텝들은 임요한 황제의 전략에 크게 감탄하여 SCV의 스펙을 너프하는 밸런스 패치를 추가했다고 한다.
  본진에서 생산과 채굴을 반복하는 SCV를 초반 공격의 전력으로 활용하는 전법은 곧 SCV는 비전투 건설유닛이라는 개념을 파괴한 플레이의 2차 창작이라고 할 수 있다.
  관객의 소감이 영화를 완성하듯이 게이머가 직접적인 플레이는 게임을 완성하면서 게임 디자이너들이 보지 못한 영역을 주목한다. 사실 디자이너와 게이머의 시선을 항상 어긋나있다. 디자이너는 숲을 내려다보지만 게이머는 그 안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다. 디자이너들은 클리어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힌트를 게임에 배치하지만 게이머들은 종종 자신만의 관점을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내는 2차 창작을 발견한다. 이것을 발견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재미’라고 부른다.
  2차 창작은 게이머가 게임을 클리어하고 해당 게임의 그래픽, 사운드, 소스코드를 분해하고 재조합 하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게임의 플레이 과정 안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2차 창작이 활발한 게임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다양한 공략과 전략이 가능한 ‘자유도’를 가진 것에 주목해야 한다. 샌드박스로 분류되는 게임들이 보여주는 높은 자유도는 게임이 가지고 있는 거대한 오픈 월드 위에 실행할 수 있는 다양한 선택지를 재미의 동력으로 사용한다. 게임을 클리어 한 후 스텝롤이 끝난 후 2차 창작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게임을 스타트했던 순간부터 2차 창작은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1989년 발매된 게임 <심시티>. 전설의 시작이다.

  장르가 된 2차 창작
  전설적인 게임 디자이너 윌 라이트는 헬리콥터 시뮬레이션 게임 <번겔링 만 공격작전>의 맵 에디터를 가지고 놀다가 (절대 일 하다가 생각한 것이 아니다. 가지고 놀다가 떠올린 것이다.) 맵 에디터가 더 재미있다는 생각을 떠올리고 도시를 경영해나가는 게임을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건설&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의 알파요 오메가라고 할 수 있는 <심시티>다.
  게이머에게는 영토와 자원이 주어진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시장’으로서 권한을 도구로 디자이너가 제공한 다양한 자원을 재료로 도시를 건설하고 확장을 하는 2차 창작을 시작한다.
  <심시티>와 같이 창작 자체가 목적인 게임들은 유저에 따라서 천차만별의 네러티브를 보여준다. 진정한 게임의 스토리텔링은 시나리오 작가의 대본과 성우들의 연기가 아닌 유저의 선택으로 만들어진다. 100명의 게이머가 턴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문명>을 동시에 시작한다면 서로 다른 문명의 결과물을 보여준다. 게이머의 성향에 따라 독재에서 민주주의까지 다양한 형태의 국가가 건설되고 문화승리를 통한 평화적인 미래를 보여주거나 전 국토가 핵전쟁에 휘말린 암울한 디스토피아로 귀결되기도 한다.
  원작을 구성하는 요소를 독자가 재구성하여 나온 결과물이 2차 창작이라면 이런 샌드박스형 게임의 플레이 과정은 2차 창작의 과정과 정확히 일치한다. 즉 비디오 게임의 역사 안에서는 2차 창작의 발달사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이 2차 창작의 재미의 정점에 다다른 게임이 역대 가장 많이 팔린 2억장의 판매고를 자랑하는 비디오 게임 <마인크래프트>다. 이 게임은 앞에서 설명한 맵 에디팅, 모드, 머시네마의 2차 창작을 모두 제공한다.
  게이머는 블록으로 만들어진 세상에서 몬스터들을 피해 재광을 하고 도구를 만들고 집을 집는다. 이 기능을 가지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형태의 지형을 만들 수 있다. 유튜버 Laurens Weyn은 특수블록을 사용하여 <마인크래프트>에 계산이 가능한 대형 컴퓨터를 만들었다. 컴퓨터 속의 또 컴퓨터라니 2차 창작의 새로운 경지가 열린 것이다. 물론 게임의 룰이나 명령어 특수블록을 사용하여 새로운 게임모드를 만들어낼 수 있다. 사실상 <마인크래프트> 1개의 게임으로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유저가 접속해있는 한 무한대로 늘어난다.
  물론 이 아기자기한 캐릭터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낸 머시네마는 유튜브에서도 수많은 명작영상을 만들어냈다. 앞에서 필자가 멋대로 지어낸 이야기에서 등장한 학동들이 21세기에 태어났다면 이 <마인크래프트>를 플레이 했을 것이 틀림없다.

 

인간이 만든 역대 최고의 비디오 게임에 절대 빠질 수 없는 명작 <마인크래프트>

  2차 창작이 아닌 창작
2020년 인류의 세대를 구분한다면 아마 스마트폰이 없는 시절을 살아본 적이 없는 젊은 세대와 살아본 적이 있는 세대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30대 중반의 필자는 아날로그의 불편함을 경험해 본 적 없는 젊은 세대를 동정했었다. 하지만 <마인크래프트>를 기점으로 보여주는 2차 창작의 놀이는 앞 세대의 게임 라이프에 지지 않을 정도로 열정적이다. 소수의 엘리트들이 독점했던 기술은 대중화 되며 더 사용하기 편리해졌다. 80년대의 컴퓨터 천재들의 기술은 지금의 10대들 조차 능숙하게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편리해졌다. 각 게임들이 제공하는 맵 에디터와 모드 기능 역시 더 사용하기 쉬운 형태로 진화했다. 나의 10대 시절의 게임 라이프의 주된 테마가 파괴였다면 이제 지금 세대들이 즐기는 게임들은 더 많은 창조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제 게임의 ‘2차 창작’에서 ‘2차’라는 단어는 사족에 가깝다. 창작은 게임의 목표이자 장르이며 재미의 원동력이다. 디자이너와 게이머의 경계는 무너졌다. 재료와 도구는 이미 준비되어 있다. 당신이 게이머가 아니라면 꼭 기술과 감성의 진화의 최종 형태인 비디오 게임을 통해 디자이너와 게이머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을 체험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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