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환의 시조안테나 10] 바이러스를 물리치고 되찾고 있는 일상, 올곧은 인간의 길을 향한 현현!
[이정환의 시조안테나 10] 바이러스를 물리치고 되찾고 있는 일상, 올곧은 인간의 길을 향한 현현!
  • 이정환(시인, 정음시조문학상 운영위원장)
  • 승인 2020.07.09 1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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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바이러스

별안간 모든 길은
살얼음판 깔리고

옹이로 챙챙 감겨
숨 막힌 걸음마

마스크
겹과 겹 사이
봄날은 더디 온다

갉아먹은 바람으로
돌밭 길 거친 호흡

그 틈새로 돋는
당신 봄을 그린다

긴 터널
어둠 헤치고
물소리로 벋는 새순

- 김지욱, 「봄, 바이러스」 전문

 

  자연과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진지하고 구사하는 이미지가 생생하다. 미세한 자연의 변화에서 인생의의미를 찾고자 힘쓰는 점이 눈길을 끈다. 시조의 한 덕목인 명징하고 간명한 세계가 주조를 이룬다. 또한 사람살이가 주변의 자연환경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웅숭깊은 사유와 내적 성찰을 통해 새로운 시조 세계를 탐구하고 있다. 「봄, 바이러스」는 지금도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소견을 시로 기록하고 있다. 실로 별안간 모든 길은 살얼음판 깔리고 옹이로 챙챙 감겨 숨 막힐 듯한 걸음마 길이다. 그래서 마스크 겹과 겹 사이 봄날은 더디 오고 있는 것이다. 유사 이래 이런 봄은 처음이다. 갉아먹은 바람으로 돌밭 길 거친 호흡 중에도 화자는 그 틈새로 돋는 당신 봄을 그리고 있다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마침내 긴 터널 어둠을 헤치고 물소리로 벋는 새순이 초록으로 환히 빛나는 날에 대한 간절한 염원이다. 차츰 우리 사회가 안정되면서 일상을 되찾고 있는 즈음에 「봄, 바이러스」는 의미 있게 읽힌다.

 

조각가가 꿈이었던 팔목 굵은 사내는
대리석 목욕대 위 모델을 흘깃 보고
한 됫박 첫물 뿌리며 데생을 시작한다

한때는 눈부셨던 세차장 사장도
지금도 눈부신 성형외과 의사도
실상은 꼼짝 못하고 몸을 맡긴 피사체

깔깔한 때수건 조각도처럼 밀착시켜
핏줄까지 힘주어 묵은 외피 벗겨내면
곧이어 환해진 토르소, 두 어깨 그득하다

수증기 송송 맺힌 목욕탕 한 편에서
날마다 극사실주의 석고 깎는 조각가
두 손은 북두갈고리 거친 숨을 뱉는다

- 이현정, 「세신사」 전문

 

  「세신사」는 공중목욕탕에서 몸의 때를 미는 일을 하는 사람을 등장시켜서 인간의 길을 탐구한 점이이채롭다. 만만찮은 패기와 저력이 뒷받침된 역작이다. 조각가가 꿈이었던 팔목 굵은 사내가 대리석 목욕대 위 모델을 흘깃 보고 한 됫박 첫물 뿌리며 데생을 시작하는 것부터 예사롭지가 않다. 세차장 사장과 성형외과 의사가 등장하여 몸을 맡기고 있다. 조각도도 나오고 핏줄까지 힘주어 묵은 외피 벗겨낼때 곧 환해진 토르소의 두 어깨도 드러난다. 수증기 송송 맺힌 목욕탕 한 편에서 날마다 극사실주의 석고 깎는 조각가의 두 손은 북두갈고리가 되었고, 연신 거친 숨을 뱉으며 일하고 있다. 「세신사」는 진정한 삶의 길이 어떠해야 하는 지에 대해 치열하게 궁구하면서 시종 한 호흡으로 주제를 향해 집중한다. 네 수로 직조된 진중한 인생보고서이기도 하다. 또한 올곧은 인간의 길을 향한 현현이다.

 

 

* 《쿨투라》 2020년 6월호(통권 7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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