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월평] 예술가들의 협업을 통해 발견되는 새로운 가능성
[연극 월평] 예술가들의 협업을 통해 발견되는 새로운 가능성
  • 장윤정(연극평론가)
  • 승인 2020.07.13 10: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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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식 연출, 〈사라지는 사람들〉

  코로나19로 공연현장은 전에 없던 변화를 겪는 중이다. 다수의 극장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잠정 폐쇄되었고 그나마 개관된 곳은 소수 관객만을 수용하는 형편이다. 자연히 상연 예정된 작품들은 대부분 중단되고 말았다. 매년 신인 작가의 등장을 축하하는 신춘문예 단막극전마저 무산되고 말았으니, 상황의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 가능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인들은 지속해서 활동 중이다. 네이버TV, 유튜브, 페이스북 등, 오프라인 무대를 온라인 플랫폼으로 옮겼다. 연극을 영상매체로 담아 송출하는 방식은 연극인들을 안방 1열 관객들과 소통하게끔 했다. 이 낯선 방식은 현장 작업자와 관객 모두에게 실험이 되는 중이다. 열혈예술청년단 제5지대 스몰텐트와 박성준이 함께 작업한 <Perfect condition-환영(幻影)합니다>는 오프라인에서 24시간 동안 공연을 하는 동시에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공연영상을 게재했다. 관객은 라이브로 진행되는 공연을 온라인 매체로써 접할 수 있었다. 배우 배선희와 연출 김진아는 ‘선희와 진아가’라는 이름으로 <기이한 시대의 사랑 : 만날 수 없는 너에게>라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인상적인 지점은 관객이 될 ‘정기구독자’를 모집하고 짧은 영상 및 글을 ‘메일’로 보냄으로써 작품활동을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연극환경의 다변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다양한 곳을 주목하게 했다. 그 과정에서 관객은 뜻밖의 경험을 하게 되기도 한다. 예컨대 극단 핸드스피크의 <사라지는 사람들>을 접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사진_핸드스피크 제공
ⓒ핸드스피크

  배우들의 조화가 이루어낸 연극적 미학

  최근 영상매체로 송출된 연극 중에서 단연 눈에 띄는 작품은 극단 핸드스피크의 <사라지는 사람들>이었다. 온라인공연중계 플랫폼인 네이버TV에 등장한 <사라지는 사람들>은 단 하루 동안 무려 1,330명이 시청하였다. 오프라인 공연현장에서 수용할 수 있는 관객의 몇 배가 관람한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인상적인 지점은 따로 있다. 농인 창작자와 청인 창작자가 협업한 공연이라는 점이 그러하다. 작품 또한 밀도 있게 구성되어, 연극으로서 완성도를 높였다. 안방 1열 관객들의 긍정적인 실시간 댓글들이 이를 방증한다. 관람 땐 내국인뿐 아니라 외국인 관객 또한 여럿 존재했다. 과연 무엇이 이들을 사로잡은 것일까? <사라지는 사람들>에는 어떤 특별한 지점이 있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극단 핸드스피크는 사회적기업인 ‘핸드스피크’ 산하의 창작단체로서 농인 창작자들이 모여 활동하는 창작 집단이다. 극단 핸드스피크의 첫 작품은 2018년 11월에 공연된 창작수어뮤지컬 <미세먼지>다. 당시 <미세먼지>는 ‘미세먼지’라는 시의성 있는 소재를 통해 공공의 문제의식을 사유하게끔 했다. 이 지점에서 알 수 있듯 극단 핸드스피크는 장애·비장애를 넘어선 인간 보편의 문제의식을 주목하고 있다. <사라지는 사람들> 또한 그 맥락에 놓여 있다. <사라지는 사람들>은 ‘주인 없음’과 ‘달빛 도망’ 두 에피소드를 담은 작품이다. ‘주인없음’은 두 나라 간의 갈등을 묘사한다. 각 나라의 공주와 왕자는 서로를 사랑하지만, 상호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두 나라는 다툼을 이어간다. 결국, 주인 없는 땅을 두고 각축전을 벌이다 모든 인물은 절멸하고만다. 쓰러진 인간들 위로 경계 없이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나비를 통해 작품은 욕망과 경계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가늠하게 만든다. ‘달빛 도망’은 알 수 없는 무장단체로부터 도망 다니는 인물들을 보여준다. 각자 자신이나 가족의 안위를 위해 약자를 소외시키고 결국 버려진 약자는 죽음을 맞는 서사다. 그 과정에서 관객은 인간의 생존 욕구와 그로 인한 이기적인 태도를 발견하게 된다. ‘주인 없음’과 ‘달빛 도망’은 모두 알레고리 형태의 작품으로서 이해의 어려움을 덜어냈다. 두 서사 모두 무책임한 희망으로 타협하지 않기에 냉정할 정도로 비극적이다. 그리고 그 비극을 통해 삶에 있어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사유하게 만든다.

ⓒ핸드스피크

  <사라지는 사람들>의 가장 인상 깊은 지점은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술에 있다. 무대에는 농인 배우들과 청인 배우들이 함께 등장하여 각자 1인 2역을 소화해낸다. 때때로 농인 배우가 청인 배우의 몸짓이 되거나 청인 배우가 농인 배우의 발성이 되곤 하는데, 결코 서로 이질적으로 분리된 상태가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한 캐릭터를 두 배우가 동시에 연기하는 것에 가깝다. 덕분에 작품은 매 순간 베리에이션을 만들어낸다. 예컨대 관객은 한 캐릭터에 대한 농인 배우와 청인 배우의 연기를 동시에 받아들이며, 두 배우의 발성과 움직임은 미세한 시차로써 베리에이션을 형성하므로, 더욱 입체적으로 극을 감각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이 지점이 가능한 이유는 농인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력과 청인 배우들의 탁월한 표현력이 조화를 이룬 덕분이었다. 그것은 서로를 신뢰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처가 될 때 가능한 결과였다.

  연기에 있어서 농인 배우들의 신체 표현과 표정 연기는 각 인물의 캐릭터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할 만큼 적확했다. 또, 수어로써 내밀한 감정들을 표현해낼 때 그것은 정보전달의 행위를 넘어서 연기로서의 움직임에 가까웠다. 즉, <사라지는 사람들> 속 수어는 배리어프리 연극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예술 행위로 존재하고 있었다. 청인 배우는 마치 농인 배우의 감정을 읽어내는 듯한 목소리와 어조로 극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덕분에 비극적인 서사 속에서도 유쾌한 코드를 잃지 않는 효과가 나타났다. 연출 또한 농인 배우와 청인 배우의 연기를 조화롭게 연극적으로 구성해낸 지점에서 주목된다. ‘주인 없음’에서는 부채를 활용하여 감성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면, ‘달빛 도망’에서는 우산을 활용하여 공간의 변화와 분위기를 전환하는 효과를 일으켰다. 배우들은 소도구를 통해 감정을 확장시켜 표현해냈고, 다양하면서도 효율적인 동선은 작품에 노련미를 더했다. 무엇보다 농인 배우와 청인 배우의협업에서 발생하는 시너지를 연출로써 미학적으로 완성해낸 것이 이 작품에서 가장 유효한 지점이었다.

ⓒ핸드스피크

  소통과 공존을 무대화하다.

  <사라지는 사람들>의 등장은 ‘소통과 공존’에 대해 다각적으로 접근하게 한다. 작품의 서사와 배우들의 협업이 그 지점을 즉각적으로 체감하게 하지만, 무엇보다 수어와 자막, 목소리로써 관객과 교류하고자 하는 형식이 ‘소통과 공존’의 의미를 사유하게 만든다. <사라지는 사람들>에서는 공연이 중계되는 동안 화면 하단에 “비장한 음악”, “잔잔한 음악”, “웅장한 음악” 등의 세밀한 지점들도 자막으로 중계하였다. 그것은 장애의 유무를 떠나 모두가 수평적으로 연극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기본적인 요건이었다. 연극에서 배리어프리란 과연무엇인지 새삼 숙고하게 만드는 지점이다. 서사 전달의 역할을 넘어 ‘연극성’까지 함께 공유되는 것이 진정 배리어프리 연극이 아닌가 반추하게 된다. <사라지는 사람들>의 등장은 그것을 효과적으로 수행해낼 수 있는 형식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시점임을 시사했다 .

  <사라지는 사람들>은 <미세먼지>에 이어 극단 핸드스피크에서 두 번째로 공연된 창작극이다. 연극으로서는 첫 작품이라고 해야겠다. 본래 오프라인 무대에서 공연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상황이 여의치 않아졌고, 세종문화회관에서 진행한 온라인공연중계 공모인 ‘힘콘(힘내라 콘서트)’에 당선되어 네이버TV 공연Live로 생중계 되었다. 덕분에 많은 대중관객과 동시대 예술인들에게 장애인 예술가에 대한 편견을 무너뜨리고, 장애인 예술가와 비장애인 예술가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을 확인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기약 없는 재난으로 침체한 연극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사라지는 사람들>은 분명 반가운 발견이다. 이미 영상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지만, 카메라 앵글로는 다 담아내지 못한 지점도 있으리라 짐작된다. 그러므로 차후 무대 현장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작·연출 : 박경식
출연 : 강다형, 강우람, 강지수, 김승수, 김우경, 김지연, 박지영, 오서진, 이혜진, 장영주, 정승민, 조현철
제작 : 극단 핸드스피크
공연장소 :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 네이버TV 공연Live
공연기간 : 2020. 4. 28. ~ 5. 31.

 

 

* 《쿨투라》 2020년 6월호(통권 7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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