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산책] 절묘한 〈기생충〉속 클래식 음악
[클래식 산책] 절묘한 〈기생충〉속 클래식 음악
  • 김지영(성악가·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0.07.14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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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은 올해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 장편 영화상의 주요부문 4관왕을 거머쥐었다. 2019년엔 이미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 종려상을 수상한 쾌거는 한국의 컨텐츠가 세계 최고의 공감을 끌어내는 저력이 있음을 증명해냈다. 영화의 스토리적인 탁월함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배경으로 사용된 음악들은 영화의 숨은 의미를 한 번 더 환기시켜주었으며, 스토리의 대조를 부각시켜 반전을 극대화하고 있다. 기생충에서 사용된 클래식 음악은 부유층이 누리는 속물적인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클래식 분위기를 내는 짝퉁 클래식 음악은 백수 가족의 신분 상승 욕구를 대변하고 있다. 영화 <기생충>에는 두 곡의 클래식이 등장한다. 헨델의 오페라 <로델린다>에 나오는 소프라노 아리아들이다. 사실상, 역사적으로 클래식 음악은 왕족과 귀족들의 요구와 필요에 맞추어 작곡되었고, 베토벤 이전의 작곡가들은 그들의 후원을 받아야만 하는 하인과 같은 신분이었다. 헨델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오페라는 대중의 인기를 얻는 사업이었고, 특별히 귀족들은 이탈리아어로 된 오페라를 좋아했다. 헨델이 살았던 바로크 시대의 오페라는 귀족과 왕족의 이야기나 신화적인 내용을 주로한 귀족들의 전유물로써 오페라 <로델린다>도 이에 속한다. 헨델이라는 작곡가는 그의 인생 후반부에 오라토리오 <메시아>를 작곡하기 이전까지 그 누구보다도 권력과 부에 기생하던 작곡가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영화 속에서 등장한 아리아들을 제외하고는 전체 작품으로 거의 공연되지 않은 이 오페라를 찾아낸 영화 제작진의 섬세함이 놀라울 뿐이다. 오페라 <로델린다>의 스토리가 영화 <기생충>과 많은 부분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야심가인 헨델은 독일의 대세인 하노버 왕가의 음악 감독이 되지만, 만족하지 못하고 영국으로 귀화하여 오페라 <리날도> 등으로 큰 성공을 거둔다. 그를 총애하던 앤 여왕이 서거하자 그가 하노버에서 군주로 모시던 게오르크 루드비히 선제후가 조지1세로 영국의 왕이 된다. 인생의 위기를 맞은 헨델은 음악으로 승부수를 던진다. ‘수상음악’(water Music)을 작곡하여 조지1세가 물놀이를 하는 동안 연주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를 계기로 조지1세는 헨델을 용서하게 되었고, 그는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하지만, 1728년 존 게이라는 대본가가 쓴 <거지 오페라>가 등장한다. 귀족층이 누리던 오페라를 패러디한 코메디로 최초로 모국어인 영어로 쓴 것이다. 상류계급의 행동, 정치가와 이탈리아 오페라에 대한 풍자를 내용으로 하여 이미 서민들이 잘 알고 있는 민요와 유명 오페라 아리아 등을 짜깁기하듯 넣어서 만들었다. 가수들의 비싼 몸값 때문에 헨델의 오페라 사업은 어려운 지경이었는데, 귀족 스타일의 사치스러운 오페라는 청교도 사상이 팽배하던 당대 시민들에게 외면당하게 되었고, 결국 그는 파산한다. 욕망의 끝으로 그는 몸의 마비를 얻게 되지만, 신은 그에게 다른 기회를 부여한다. 극적으로 건강을 회복하여 자선공연을 위해 쓴 오라토리오 <메시아>로 그는 성공한 종교음악가가 된다. 메시아 이전의 헨델은 귀족들에게 기생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음악가였다. 하지만, 그 또한 <거지 오페라>라는 서민층에 기생한 짝퉁 오페라 덕분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영화 속 박사장집에 기생하던 기택의 가족도 문광 부부라는 또 다른 복병을 만나게 된 것처럼 말이다.

 

  영화 <기생충>은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 기택(송강호), 해머던지기 선수 출신 엄마 충숙(장혜진), 그리고 4수생 아들 기우(최우식)와 미대 지망생 딸 기정(박소담) 등의 가족이 반지하에서 사는 생활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명문대에 다니고 있는 기우의 친구 민혁은 유학을 떠나며 기우에게 가짜 대학생이 되어 과외선생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학생을 지켜 달라고 한다. 기우가 과외선생이 되며 딸은 미술치료사로, 아버지는 운전기사로, 엄마는 가정부로 부잣집 박사장(이선균)집에 온 가족이 교묘히 취업한다. 이 과정에서 바로크풍으로 작곡된 ‘믿음의 벨트’ 같은 정재일 음악감독의 훌륭한 짝퉁 클래식이 영화 속에 흐르며, 기택 가족이 박사장 가족을 속이듯 관객을 헷갈리게 한다. 처음 등장하는 진짜 클래식 음악은 오페라 <로델린다> 2막에 나오는 ‘냉혹한 자들이여, 나는 맹세하노라(Spietati, io vi giurai)’이다. 왕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리자 로델린다 여왕은 왕의 자리를 노리는 대장군에게 자신과 결혼하려면 왕자를 자신의 눈앞에서 죽이라고 한다. 그리고 자신은 남편에게 신뢰를 지키고, 아들에게 사랑을 바치겠다고 하는 결의에 찬 아리아이다. 영화에서는 새 가정부가 된충숙이 과외하는 아들 기우에게 당당히 과일을 가져다주는 장면에 쓰인다. 기우 가족의 계략에 속은 박사장의 부인 연교(조여정)도 자신의 아들 다송을 위해서 문광(이정은)을 해고한다. 거짓투성이인 가정부 충숙과 판단력 부족한 사모님 연교의 강인한 모성애는 로델린다 여왕의 아리아로 대변된다.

 

  어느 날 박사장 가족이 캠핑을 떠나고, 기택 가족은 박사장의 집에서 파티를 하는데 예전 가정부인 문광이 찾아온다. 그들은 지하 반공호 같은 공간에 문광의 남편 근세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두 가족은 싸우게 되는데, 박사장 가족이 잠시 후 도착한다는 전화가 온다. 문광 부부를 지하에 가두는 과정에서 문광이 죽는다. 충숙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수습하고 나머지 가족은 빠져나오지만, 홍수로 그들의 집은 침수되어 대피소로 피하게 된다. 박사장네는 아들 다송의 생일 파티를 계획하고 과외선생, 미술치료사, 운전기사도 초대한다. 기우가 혼자 수석을 들고 지하실에 찾아가는데, 문광의 남편 근세가 기우를 수석으로 내리친 후 부엌칼을 들고 정원의 파티장에 나타난다. 정원에서는 <로델린다>의 다른 아리아가 화려하게 울려퍼지고 있다. 배경음악이 아니라 초대된 소프라노의 공연으로 3막에 나오는 ‘나의 사랑하는 이여’(Mio caro bene)라는 아리아이다. 왕위를 노렸던 대장군이 자신의 지나침을 후회할 때 자문관이 나타나 그를 찌르려 한다. 감옥에서 빠져나와 이를 지켜보던 왕은 자문관을 죽이고 자신의 자리를 위협한 대장군을 살려준다. 이에 대장군은 왕위를 다시 전왕에게 내어주고 왕비 로델린다는 사랑하는 남편을 되찾은 기쁨을 노래한다. 하지만, 영화 속 소프라노가 부르는 행복의 절정에 찬 아리아는 순식간에 반전을 맞는다. 근세는 케이크를 들고 있는 기정을 칼로 찌르고 이를 본 박사장 아들 다송은 기절한다. 기택 가족을 죽이려는 근세와 치열한 몸싸움 중 파티는 아수라장이 된다. 박사장은 자신의 아들을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 차 열쇠를 집던 중 근세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고 얼굴을 찌푸린다. 이를 본 기택은 순식간에 달려가 근세가 아닌 박사장을 죽이고 도망한다. 오페라 <로델린다>에서 자신을 죽이려한 대장군을 살리고 자문관을 죽인 왕처럼 말이다. 영화에서 기정은 죽었고, 기우와 충숙은 정당방위로 인정되어 집행유예로 풀려났지만 기택은 행방불명이 된다. 기우는 아버지가 근세가 살던 지하에 있는 것을 눈치채고, 성공해서 그 집을 매입하리라 다짐하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부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사회적 신분의 격차는 분명 존재하고 있다. 그것을 대변하는 한 장치로서 헨델의 오페라가 자리하고 있음은 동조와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우리는 하나의 사회 안에서 기생하고 공생하며 유기적인 관계로 살아가고 있지만, 영화 속 등장인물들처럼 가해자가 되기도 하며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황당한 영화의 스토리는 오히려 현실의 여러 문제를 더욱 직시하게 함으로써 한두 가지로 결론 내릴 수 없는 고민과 숙제를 던지고 있었다. 오페라 <로델린다>와 같은 비현실적인 해피엔딩은 아니더라도 봉준호 감독이 원래 제목으로 하려던 <데칼코마니>처럼 둘이 하나인 아름다운 공생을 꿈꾸어 볼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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