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시는 계속되어야 한다
[북리뷰] 시는 계속되어야 한다
  • 손희(본지 에디터)
  • 승인 2020.07.15 09: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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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시’ 동인 26년 만에 제7집 발간

  ‘5월시’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을 문학적으로 계승하기 위하여 결성된 시인들의 모임을 가리키는 동시에, 그들이 무크지 형식으로 발행한 다양한 제목의 잡지를 가리킨다. 총 5권(실제로는 1994년에 출간된 6집과 판화시집 2권을 포함해 모두 8권이다)의 잡지는 비판적인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하는 시를 주로 실었는데, 시 작품들은 강렬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인식을 생경하게 드러내지 않고 서정적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특징을 지닌다.

  형식상의 특징을 살펴보면, 처음에는 자유시형이 주로 나타나지만, 3집 이후에는 산문화의 경향이 강해진다. 이런 경향은 4, 5집에 와서 장시의 본격적인 창작으로 귀결된다. 윤재철의 「난민가」, 박몽구의 「십자가의 꿈」, 최두석의 「임진강」 등이 단편 서정시로 소화하기 힘든 현실 문제를 연작 혹은 장시 형식으로 다루고 있다. 이 잡지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을 시적인 차원에서 계승하고 이를 널리 파급시켰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를 지닌다. 또한 현실 인식을 적절하게 담기 위한 소재의 탐색, 다양한 갈래 실험 등을 통해 현실주의 시의 지평을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 『민족문화대백과사전』

  《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 기록하고 있듯이 5월시는 1981년 호남, 충남 출신 시인들을 중심으로 5·18 정신을 문학적으로 계승하고자 결성된 동인이다. 언론에서 5·18을 제대로 알리는 일이 봉쇄된 상황에서 시가 그 책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 젊은 시인들이 뭉쳤다.

두 눈 감김, 두 귀 막힘, 입 막힘,
우리는 모두 수술대 위에서 아픔을 도둑질 당하고 있다.
- 이영진 「마취사」

  동인지 1집에 실린 이영진 시인의 위 시는 당시의 암울했던 시대적 정신적 분위기를 일축한다. 보고 듣고 말하는 자유조차 막혀있던 시대에 ‘오월시’가 태어난 것이다.

  나의 시작수업은 불행히도 1970년대 후반, 그러니까 가혹한 독재체재가 영혼의 자유까지 심각하게 억압하던 시절에 치루어졌다. 그리고 등단하자마자 광주학살을 자행한 군부가 집권하였다. 그러니까 나의 초기시는 이 땅의 사회적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허위로 보이던 시기에 씌어졌다. 광주항쟁의 정신을 제대로 계승하여 구현해내지못하는 시쓰기는 가짜라는 절박감이 마음을 옥죄곤 하였다. 그런데 ‘오월시’ 동인들은 그러한 문제 의식이나 감각을 공유하고 있었고, 그것을 시적 형상으로 빚어낼 예술적 역량도 수준에 올라있었다.
- 최두석, 「‘오월시’의 시절」(『세상에 없는 책』 작가, 2005)

  최두석 시인은 “당시에 5월은 광주항쟁을 암시하는 말이었던 것이다. 사월이 사월혁명을 의미하듯 오월은 광주항쟁을 의미하였는데 그것이 암유로 통용되던 어처구니없는 시절에 동인활동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고 고백한다.

  “‘5월시’는 우리에게 언제나, 어떤 죄의식으로 먼저 온다”(판화시집 『가슴마다 꽃으로 피어 있어라』던 황지우 시인의 말처럼 5월시 동인의 존재는 모종의 죄의식을 촉발했다. 피와 죽음의 날들로부터 겨우 1년이 지난 1981년 7월, 5월시 동인은 첫 동인집 『이 땅에 태어나서』를 펴내며 80년 5월 학살과 항쟁의 기억을 52편의 시에 선명하게 새겼다.

  이처럼 20세기 우리 삶을 기록한 동인지 5월시는 그렇게 시작하였다. 1981년 1집 『이 땅에 태어나서』를 시작으로, 1982년에 2집 『그 산 그 하늘이 그립거든』과 3집 『땅들아 하늘아 많은 사람아』, 1983년에 판화시집 『가슴마다 꽃으로 피어 있어라』, 1984년에 4집 『다시는 절망을 노래할 수 없다』, 1985년에 5집 『5월』, 1986년에 판화시집 『빼앗길 수 없는 노래』, 그리고 1994년 당시 신작 시집이었던 『그리움이 끝나면 다시 길 떠날 수 있을까』를 마지막으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오래 침묵을 지켜 온 5월시 동인이 그로부터 무려 사반세기여 만에 제7동인집 『깨끗한 새벽』을 선보이며 건재를 과시했다. 특히 이번에는 7집과 함께 기존의 1~6 동인집과 판화집 두 권까지 복간해 아홉 권을 한꺼번에 ‘5월시 동인시집’이라는 이름 아래 묶어냈다. 나온 지 오래여서 절판된 데다 도서관에서도 찾기 힘들었던 5월시 동인시집이 2020년 5·18 광주항쟁 40주년을 맞아 온전한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종로구 인사동의 한 골목에 선 ‘5월시’ 동인들.
왼쪽부터 최두석·박몽구·나해철·나종영·김진경·강형철·고광헌 시인.

  강형철, 고광헌, 곽재구, 김진경, 나종영, 나해철, 박몽구, 박주관, 윤재철, 이영진, 최두석. 머리로 시대를 기록했던 11인의 청년 시인, 행간 속 그들 마음결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 새 대한민국 시단의 희끗희끗한 중견 시인들을 만나게 된다.

  지난 5월 19일 저녁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예순을 넘은 5월시 청춘들이 다시 모였다. 김진경, 박몽구, 나종영, 최두석, 나해철, 고광헌, 강형철…. 이들이 손에 든 것은 한국 시단에 ‘5·18’을 처음 아로새긴 그들의 동인시집이다.

  이번 동인지 7집의 머리말을 대표 집필한 강형철 시인은 “이 머리말 속에 그동안 5월시가 걸어온 역사가 압축되어 있다.”며 사인본을 건넨다.

  우리가 1980년 5월 광주를 빛과 참된 시로 여기며 조금이라도 전체의 아름다움에 기여하려고 노력했던 마음들을 상기하면서 새로운 과제 앞에 마주 서고자 한다. 우리들의 몸과 마음이 좀 더 젊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 한없다. 노추에 머무르고 마는 것이 아닐지 새삼 두렵고 떨린다. 하지만 시를 생각하고 쓰는 동안에는 우리가 여전히 청춘이어야 한다는 것을 믿으려 한다.
- 5월시 동인지 7집 『깨끗한 새벽』 머리말에서

  또한 5월시 동인 창립멤버로 대통령직속 국가교육회의 의장을 맡고 있는 김진경 시인은 “처음 동인시집전권 출간 얘기를 들었을 때에는 5월시가 박물관에 안치되는 느낌이어서 내키지 않았는데, 신작시들로 7집을 내기로 하면서 개인적으로는 무려 15년 만에 시를 발표하게 되었다”며 감회 어린 표정을 지었다.

  한편 나종영 시인은 5월시 동인 전집 출간을 기념하는 시 판화전을 오는 7~8월 광주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열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전시에는 동인들의 시 두 편씩과 동료 시인들의 시 한 편씩 모두 50점 가까운 시 판화 작품이 나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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