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연극비평집단 시선의 세번째 연극 비평선: 『우리가 선택한 좌석입니다』
[북리뷰] 연극비평집단 시선의 세번째 연극 비평선: 『우리가 선택한 좌석입니다』
  • 쿨투라 편집부
  • 승인 2020.07.16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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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선택한 좌석입니다』

  코로나19가 소강상태에 접어들어 생활방역체계로 전환했지만, 예측 불가능한 집단 확진 사례들로 인해 선뜻 바깥에 나설 생각을 할 수 없는 처지이다. 떠나가는 봄에게 보내는 마지막 인사까지 방 안에서 하게 된 지금, 문화·예술계는 사회의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조심스럽게 코로나19 이후를 준비하고 있다. 연극 분야는 이전부터 대중의 선택을 받기 어려운 위치에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영화, 뮤지컬 등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소신 있게 연극을 선택해온 관객들마저 자신의 좌석을 비워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연극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어렵게 지켜온 이 극장을 지금도 업계 종사자들과 비평가, 관객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 ‘연극비평집단 시선’도 그런 절실하고 따뜻한 시선들 중 하나이다.

  『우리가 선택한 좌석입니다』는 그들의 세 번째 연극 비평선이다. 2017년도에 『이미 선택된 좌석입니다』를, 이듬해에 『이미 선택된 좌석입니까?』를 펴냈던 젊은 연극 평론가 다섯 명(김태희, 유연주, 장윤정, 장준애, 최하은)은 올해에도 공연평론지 《월간 시선》에 발표하였거나 미발표한 개별 원고들을 모아 비평선을 출간했다. 앞선 경험들 덕분에 더 세련되고 정밀해진 비평 언어들이 우리의 선택을 받지 못한 곳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이번 비평선은 수용자비평의 관점과 전문 비평의 관점 사이에서 균형을 잘 유지하고 있어서, 연극 마니아와 연극 관람 경험이 적은 일반 대중 모두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연극비평집단 시선은 프롤로그에서 “우리는 우리의 3년을 돌아보면서 다른 무엇도 아닌 바로 ‘우리’라는 개념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고 밝히고 있다. 앞선 두 권의 비평선을 내는 동안 저자들은 평론가 혹은 연구자라는 자신의 위치에 충실해 있었다. 대중들에게 학술서적보다 쉽게 읽힐 수 있도록 책을 기획했고, 그러면서도 가장 최신의 공연과 가장 동시대적인 이론을 놓치지 않고 다루고자 했다. 그런데 이번 비평선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저자들이 자신을 ‘선택하는 주체’가 아니라 ‘선택하면서도 선택받는’, 혹은 ‘연극’이라는 양식 안에 공연자·관객과 함께 머물러 있는 ‘우리’로 명명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들은 “연극비평집단 시선의 ‘우리’들, 연극계 각처에서 분투하고 있는 ‘우리’들, 극장을 찾는 ‘우리’들”을 하나하나 호명하고 “어쩌면 이 세계를 살아가는 모든 ‘우리’들이 각각의 자리에서 매분 매초 ‘선택’을 내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 고백하고 있다. 그들의 ‘선택’들이 모여서 우리가 앉을 ‘좌석’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세 가지 위치에서 보이는 연극이라는 풍경을 균형 있게 다룰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저자들은 이번 비평선에서 그동안의 비평·연구적 시각과 더불어, 관객과 연극인들의 시선도 충분히 반영하고자 노력했다.

  ‘삐딱한’이라는 챕터 제목을 가진 1부에는 비평가의 역할에 충실한 원고들이 수록되어 있다. 2019년 《월간 시선》의 ‘삐딱한 시선’이라는 코너에 연재되었던 글을 모은 1부에서는 박근형의 <청춘예찬>(1999), 이강백의 <봄날>(1984), 이현화의 <카덴자>(1978), 조일재의 <이수일과 심순애>(1913),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BC431), 셰익스피어의 <햄릿>(1601) 등의 작품을 다루고 있다. “소위 ‘고전’이라 불리는 작품들을 가려 뽑아 지금의 시각으로 대차게 까는 코너”라는 기획으로 진행되었던 ‘삐딱한 시선’ 코너는 고전 작품에 달라붙은 낡은 먼지들을 털고 그 작품들을 현재적 의미로 바라보는 것에 주력하였다. 그래서 1부에서 다뤄지는 작품들에는 후광이 덧입혀지는 대신, 기존 담론이 건드리지 못한 각 작품의 ‘실패 혹은 오류의 지점’들을 세심하게 살피는 시선이 드러나 있다.

  ‘의심스런’이라는 제목이 붙은 2부는 저자들이 자신 혹은 동료들을 다루는 ‘셀프·메타비평’이다. 연극비평집단 시선은 필명으로 활동하는데, 셰끼스피어는 2부의 「이런 평은 처음이라」에서 “이 글은 공연 리뷰가 아니라 비평에 대한 비평이므로 내가 그동안 어떤 태도로, 어떤 글들을 써왔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즉, 평론가로서 갈등 중인 나의 내밀한 고민들을 털어놓으려고 한다”고 언급하고, 입쎈은 「함께 성장하는 일」에서 “누군가 나에게 평론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나는 아직도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다. 다만 이제는 평론이란 이런 것이어야 해, 라는 강박에서 벗어나 내가 쓰고 싶은 것들에 주목해서 글을 쓴다. 그것이 훨씬 더 생산적인 일이라고 믿고 있다”고 언급하며 자기 글의 지향점에 대해 밝히고 있다. 최홉은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에서 “미감은 지극히 개인의 취향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므로 미학적 완성도라는 말에는 어떤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단지 창작자들이 자신들이 무엇을 만들고 싶어 하고 관객들에게 그것이 어떻게 보이기를 바라는지에 관한 정확한 방향성을 설정하고 그것을 향해 몰두하기를 바란다”면서, “이것은 나 자신에게 하는 당부이기도 하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는 외부의 시선을 외면하기는 어렵지만 그것 때문에 자기 자신의 내적 기준을 뒤흔들어서는 안 된다는 평론가로서의 선언으로 볼 수 있다. 즉 ‘셀프·메타 비평’은 ‘자아비판’이 아니라 ‘비평의 균형적 지향점을 찾는 작업’ 인 것이다.

  연극의 외부적 담론에 대해서 주로 다루는 3부에서는 미투 운동 이후의 연극계가 나아가게 될 방향(「이행기의 연극, 과정의 재발견」), 서울청년예술단 지원사업의 명암(「살아남아라, 예술가!」), 페미니즘 연극제(「우리만 알고 있자니 아쉬워서」), 24시간 연극제(「창작자들의, 창작자들에 의한, 창작자들을 위한 연극제」) 등 에 대해 다뤄지고 있다. 공저자인 장준애는 현재의 연극계의 위치를 ‘이행기’로 명명하며, “이행기에 대한 사유, 과정주의의 실천이 창작자 개인의 실현이라는 좁은 주제를 넘어 공공성 담론과 교차하게 되는 지점들을 발견”하는 것이 평론가로서의 자신들의 임무임을 밝히고 있다. 4부는 내·외부적 담론을 모두 포함한 ‘연극 그 자체’에 대한 연극비평집단 시선의 구성원들 각자의 총론적 입장을 담은 원고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저자들은 “지면을 갖고 대상을 소개하는 게 평론의 권력일텐데 우리가 여기에 대해 좀 돌이켜봐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장준애)라고 얘기하기도 하고, “담론을 만들고 잡지에 당대 이슈를 바탕으로 한 특집 코너를 기획하는 거, 그 판을 읽고 시대적으로 이 작품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말해줄 수 있는 거, 그건 리뷰어가 못하고 평론가가 하는 일이라는거”(입쎈)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대상과 담론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 자신들의 시선을 ‘권력’이 아니라 어두운 소극장 구석구석에 비추는 ‘스포트라이트’로 만드는 것. 이런 관점을 유지하며 자신들의 세 번째 비평선을 펴낸 연극비평집단 시선은 자신들의 책이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안전하게 무대와 관객석으로 이끄는 안내자의 역할을 해주기를 희망한다. 코로나19로 어두워진 연극계가 이들의 시선으로 인해 조금은 더 밝아질 것이다.

 

 

* 《쿨투라》 2020년 6월호(통권 7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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