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전주국제영화제와 함께한 두 권의 책: 『영화는 무엇이 될 것인가』, 『아이 엠 인디펜던트』

2021-07-09     양진호(본지 에디터)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가 코로나19 상황에도 불구하고 지난 5월에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그리고 영화제 측은 이번 영화제와 관련해 두 권의 책, 『영화는 무엇이 될 것인가』와 『아이 엠 인디펜던트』를 펴냈다.

  1. 영화의 미래를 상상하는 62인의 생각들: 『영화는 무엇이 될 것인가』

  『영화는 무엇이 될 것인가』는 2021년 전주국제영화제가 편집한 ‘영화의 미래’를 말하는 62인의 에세이 모음집이다. 2020년 아르헨티나 마르델플라타국제영화제가 출간한 동명의 책을 2021년 전주국제영화제가 이어 쓰는 형식으로 편집한 것으로, 원서에 수록된 글 외에 전주국제영화제가 섭외한 국내외 필자의 글을 묶어 일종의 영화의 미래에 관한 ‘생각의 조각집’ 같은 책으로 펴내게 되었다.

  이 책은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의 새로운 슬로건 ‘영화는 계속된다’ 캠페인의 일환으로 전세계 영화인과 비평가들이 바라보는 영화의 미래, 그리고 상상을 한 편의 책에 담아낸 것이다. 이번 책의 필진으로 영화 기자 김혜리, 소설가 정지돈, 〈벌새〉의 김보라 감독, 〈소공녀〉의 전고운 감독, 아티스트 임흥순, 번역가이자 영화평론가 달시 파켓을 비롯한 한국 필자 28명과 아르헨티나의 영화 평론가이자 마르델플라타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마르셀로 알데레테, 영화 감독 퀘이형제와 아피찻퐁 위라 세타꾼 등 해외 필자 34인이 참여했다.

  편지, 일기, 시(詩) 등 자유로운 형식에 담긴 62인 필자의 글은 대체로 코로나 팬데믹 사태에 점점 희미해지는 영화의 존재 이유를 되새기는 것으로, 코로나 시대를 통과하고 있는 영화팬이라면 절절히 공감할 언구로 가득 차 있다. 『영화는 무엇이 될 것인가』에 담긴 글 들은 영화가 자신의 여정을 스스로 개척해나갈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5월 8일 폐막 시점에 전주국제영화제 측이 이 책의 2쇄 결정을 할 만큼, 영화제가 끝난 이후에도 책에 대한 영화 애호가들과 일반 독자들의 관심이 뜨겁다. 아직 온·오프라인을 겸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영화제들, 그리고 비워 둬야 하는 자리가 더 많은 극장들을 바라보며 아쉬워할 관객들은 이 책을 통해 영화의 또다른 미래에 대해 상상하며 영화를 사랑하는 새로운 방식을 구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 영화사(映畫史)의 인터미션에 불과한 걸까? 그러나 우리는 전 지구적 방역이 끝나도 영화가 팬데믹 이전 ‘올드 노멀’ 규모의 관객을 되찾긴 어려우리라고 은연중에 예감한다. 전염병은 어차피 도래할 변화를 재촉했을 뿐인지도 모른다.
  - 김혜리, 「영화 일기」 (본문 13쪽)

  아마도, 영화가 무엇이 된다면 그것은 영화가 허약해져서가 아니라 세상이 달라져서일 것이다. 영화가 이미, 거기에 있었듯이 영화는 늘, 이미, 존재한다.
  - 강유정, 「이미, 거기 있었던 영화」 (본문 41쪽)

  영화는 우리를 다른 세계로 데려간다. 그 세계는 진실하고, 광활하고, 환대한다. 영화는 승자가 아니라 ‘패자’의 것이다. 축복받은 패배자.
  - 김보라, 「축복받은 패배자」 (본문 95쪽)

  극장가와 달리 팬데믹이 앞으로 영화제의 판도를 바꿀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중략) 하지만 좀 더 넓은 의미에서 나는 작년의 경험을 통해 영화제가 영화 콘텐츠에만 관련된 행사가 아니라는 개념이 확립될 것이라고 희망한다.
  -달시 파켓,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은」 (본문 161쪽)

  2.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힌 여성 감독에 대한 찬사: 『아이 엠 인디펜던트』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를 위해 기획된 두 권의 책 중 하나인 『아이 엠 인디펜던트』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인상적인 작품을 남긴 7인의 여성 감독(체칠리 아만지니, 포루그 파로흐자드, 바바라 로든, 안나 카리나, 셰럴 두녜이, 알베르티나 카리)을 다룬 책이다. 영화 역사의 주류는 결코 아니었지만, 당대에 금기시하던 주제를 드러내고, 소수자에 대한 공감의 상상력을 불어넣으며 영화 사조의 중요한 순간에 초석을 다진 작품을 창조한 여성 감독 7인을 비평가적 시각에서 소개하고 있다. 2021년 전주국제영화제 ‘스페셜 포커스: 인디펜던트 우먼’ 프로그램과 연계한 기획 출판 도서인 이 책은 필자로 참여한 7명의 비평가(다니엘라 페르시코, 니콜 브르네, 문성경, 김지하, 이지현, 데비카 기리시, 루시아 살라스)가 모두 여성이며, 다국어 필자와 번역 과정에 의한 2개 국어(한국어, 영어) 도서라는 점이 특징이다.

  책이 다루는 7인 여성 감독, 이탈리아 최초의 여성 다큐멘터리 감독 체칠리아 만지니(1927~2021), 논쟁적인 시인이자 뉴이란시네마의 선구자 파로흐자드 (1934~1967), 한국 실험영화의 개척자 한옥희(1948~ ), 1970년대 미국 독립영화의 대표작 〈완다〉의 바바라 로든(1932~1980), 프랑스 누벨바그의 스타 배우이자 감독 안나 카리나(1940~2019), 〈워터멜론 우먼〉을 연출한 아프리카계 미국 레즈비언 감독 셰럴 두녜이 (1966~ ), 뉴아르헨티나시네마의 대표 감독 알베르티나 카리(1973~ )는 모두 비주류의 그늘 속에서도 인간 실존과 자유 의지라는 보편적 가치를 질문하는 새로운 영화의 어형을 만들어낸 감독으로 평가받는다.

  『아이 엠 인디펜던트』는 이들처럼 자신의 시대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힌 여성 감독들을 찾는 여정이었다고, 이 책을 책임편집한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문성경은 책의 서두에서 밝히고 있다. 이 책은 끝없이 변화하고 성장한 사람들, 독립적인 존재로 자신의 본질에 닿기를 두려워하지 않은 7인 독립영화 감독의 삶과 작품을 여성 비평가의 눈으로 소개한다. 인간 실존과 자유의지라는 보편적 가치를 질문하는 그들의 작품이 지속적으로 언급되고 끊임없이 현재적 의미로 해석되어 관객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이 만들어졌다. 여성으로서 생각하려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영화의 어형을 만들어낸 수많은 여성 감독들에 대한 필자들의 존경심이 이 책의 곳곳에서 드러난다.

  체칠리아 만지니의 작품 세계를 생각하면 곧장 세 개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세 번째는 자유롭고 길들여지지 않은 시네마의 즉흥성으로 환하게 빛나는 이미지다. 무리 지어 다니며 노니는 어린 친구들의 이미지가 강을 따라 선명하고 떠들썩하게 튄다. 이들은 자신의 태평한 유년 시절을 파괴할 현대성이 곧 닥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이 몇 개의 장면만으로도 체칠리아 만지니는 영화계에 언제까지나 길이 남을 공헌을 했다.
  - 다니엘라 페르시코, 「체칠리아 만지니-마지막 남은 이들의 시네마」 (본문 29페이지)

  〈비브르 앙상블〉(안나 카리나 연출)은 영화의 가능성을 재발견하게 만드는, 어느 위대한 여배우의 영화이다. 하나의 필름에 새겨진 생각은 결코 육체로부터 분리되지 않는다. 가상과 현실을 가로지르는 온갖 ‘카리나’들이 그곳에 박제되어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내러티브보다 강한 작가의 주관성을 발견 하게 된다.
  - 이지현, 「하나의 필름에 새겨진 생각- 안나 카리나의
비브르 앙상블〉」 (본문 233페이지)

  셰럴 두녜이와 동료들의 풀뿌리 노력으로 태어난 〈워터멜론 우먼〉이 분명히 보여주는바, 두녜이의 작업은 그녀 이후의 모든 흑인, 여성, 그리고 퀴어인 영화 제작자들에게 셰럴이 리처드의 삶에서 느낀 것과 똑같은 의미일 것이다. “그 의미는 희망이다. 영감이고, 가능성이다,” 영화 말미에 셰럴이 말한다. “그리고 역사다.”
  - 데비카 기리시, 「역사를 꿈꾸다-셰럴 두녜이의
워터멜론 우먼〉」 (본문 277페이지)

  탐사 다큐멘터리처럼 부모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내고, 답을 찾기 위해 과거의 단체들과 동료들과 이웃들에게 질문을 하면서 부모의 마지막 발걸음까지 추적하는 이 영화는 상실된 기억을 재구축하려 한다. 이러한 상실에 특별히 관심을 두는 금발머리 부부〉는 완전한 재구축의 불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 루시아 살라스, 「폭풍의 눈 속에서 함께-알베르 티나 카리의
금발머리 부부〉」(본문 301페이지)

 

 


 

* 《쿨투라》 2021년 7월호(통권 85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