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그림] 모를 일

2022-02-02     오광수(시), 조영남(그림)
ⓒ조영남

모를 일

오광수

욕망은 소나기처럼 퍼붓다가 사라졌다
몸이 식으니 마음이 편했다
저 세상에 그리운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저녁의 불빛들은 나를 뒤흔들지 못했다
일렁이는 청보리밭에 가슴 뛰지만
내가 욕망했던 것들은 그저 신기루였다
움켜쥘수록 모래알처럼 빠져나갔다
가을이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나면
작년에 내렸던 눈이 또 내릴 것이다
그 눈을 첫눈이라고 부르면
늙지 않은 마음이 모여서 파닥거린다
모든 것이 잦아드는 빙하의 시절에
너를 향한 열망 만이 박제처럼 남은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모를 일이다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이 되어
세상의 처마 밑까지 찾아가서
첫사랑의 그 마음, 만나고 싶은 오늘

 

 


 

* 《쿨투라》 2022년 2월호(통권 92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