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집 속의 詩] 함명춘 시인의 「봄」

2023-03-06     함명춘(시인)

함명춘

 

눈부신 햇살로 다가와도
본 체 만 체 뒤돌아서니까
이번엔 비가 되어 온다 삐걱이는 복도를
조심스럽게 빠져나오듯 발뒤꿈치를 들고

내 손을 잡아달라고 이제 그만
문을 열고 나와 나를 안아달라고
나와 함께 젖어 흐르자고
끊어질 듯 끊어질 듯한 목소리로
며칠 몇 밤을 그렇게 뜬눈으로

그러나 젖는 건
네 파인 눈과 네 텅 빈 가슴일 뿐
오늘도 내 집 몇 바퀴를 돌다
고갤 떨구고 휘적휘적 골목 어귀를
돌아나가는 봄이여

 

- 함명춘 시집 『빛을 찾아나선 나뭇가지』(문학동네) 중에서

 


함명춘 1991년 서울신문 신촌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시집 『빛을 찾아나선 나뭇가지』 『무명시인』 『지하철엔 해녀가 산다』가 있다. 편운문학상을 수상했다.

 

 

 

* 《쿨투라》 2023년 3월호(통권 105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