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문학] 우려와 기대를 담은 새로운 세계의 모습

2019-11-01     김준철(미술평론가, 본지 미주지사장)

 

 

우리의 삶은 새로운 세계의 모습에 뜨겁게 달구어지고 있다. 그것은 실재하는 세상이 아닌 가상의 세계 속에 존재하는 이야기나 캐릭터에 열광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화가 애니메이션이 되고 게임이나 영화가 되고 비로소 현실이 되는 세계가 다가 온 것이다.

지난 8월에 한국에서도 열린 2019 코믹 콘이 L.A. 컨벤션센터에서 10월 11일부터 13일까지 3일간 열렸다. 뉴욕, 시드니, 파리, 서울 등 전 세계를 무대로 게임, 애니메이션, 영화 등의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즐기고 체험하며 교류하는 세계적 팝 컬처 페스티벌 코믹 콘인 것이다. 특별히 L.A.에서 10월에 열린 행사는 할로윈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열렸기에 그 반응이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로 분장을 하고 코스튬을 입고 모여든 사람들은 그 자체로 장관이었다. 미리 구매한 입장권을 가지고 들어가는 것 만도 1시간이 넘는 긴 줄을 서야만 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힘들어하거나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서로의 의상을 즐기고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찾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였다. 그 어떤 선입견도 없이 오직 자신들이 열광하는 캐릭터의 주인공이 되어 또 다른 주인공들을 만나 즐기는 시간이었다.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드라마 속에서 존재하던 캐릭터들이 즐비하게 줄을 섰으며 함께 어우러져 완전체를 만드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고 그런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 역시 즐거운 볼거리였다. 오랜 시간, 이 날을 위해 꼼꼼하게 만들어낸 코스튬을 입고 많은 이들과 사진을 찍고 SNS로 교류하는 모습은 나에게는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크리스 디몰린 LA 코믹 콘 CEO(최고경영자)는 올해 800개 이상의 벤더와 아티스트들이 참여한 만큼 모든 팝 문화가 한 곳에 모인다고 말했다. 지난해 10만 6천여 명이 코믹 콘을 찾았으며 이번에도 역시 10만 명 이상의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했다. 그의 예상대로 코믹 콘이 열리는 L.A. 컨벤션센터는 그 야말로 인산인해였다. 또한 메인스테이지에서는 주요 감독이나 작가들을 강사로 하여 이야기를 듣거나 가수들을 초청하여 콘서트 장을 방불케 하는 무대를 선사하기도 했다. 거기에는 Zombieland : Ruben Fleischer 감독과 함께한 시간이나 ‘스펀지밥 스퀘어팬츠’(SpongeBob SquarePants) 속 ‘패트릭 스타’(Patrick Star)의 목소리를 연기한 성우인 빌 페거바키(Bill Fagerbakke)가 무대에 오르기도 했으며 SpectreVision의 Elijah Wood와 그의 파트너가 공포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무대도 준비되었다. 또한 LG디스플레이의 유기발광다이오드 ‘OLED TV' 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특별 제작 트레일러가 등장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만화영화나 만화책 정도 수준의 소수 열광팬들이 만들어 내는 행사가 아닌, 그야말로 최첨단의 기술과 디테일하고 탄탄한 스토리 라인을 가진 수많은 이야기와 캐릭터들이 실재하는 생동감 있는 행사였다.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캐릭터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카드를 모으고 캐릭터를 구입하는 모습은 새롭고 거대한 문화의 물결 위에 세워진 세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L.A. 코믹 콘은 마블 코믹스나 DC 코믹스를 배경으로 전 세계적으로 슈퍼 팬 층을 만들어내고 있다. 단순한 전시와 판매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현재 그리 고 앞으로의 모습과 전망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행사였다. 헤아릴 수도 없는 코스튬 플레이 정보를 나누고 신작 영화나 애니메이션, 코믹스의 발표, 유명 인사의 사인회와 강의까지 이루어지는 초대형 컨퍼런스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었다. 각종 피규어와 실제 크기의 모형들, 클래식만화, 일본 애니메이션들, 캐릭터 무기들, 그야말로 상상력과 기술, 그리고 예술이 종합된 향연이었다. 확실히 세계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문화를 받아들이고 소화하는 능력 또한 다양하고 넓어졌다. 이 거대한 물결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었고 또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체계적이고 탄탄한 기초를 가지고 있다. 이 종합적인 콘텐츠는 우리를 대신하여 꿈을 꾸고 또 그 꿈을 현실에 가깝게 재현하고 있다. 그리고 가까운 그 어느 날, 그것은 현실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중심에서 그것을 즐길 수 있을지 필자는 자신이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문화적 트렌드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우리 현실에 너무도 밀접하게 다가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우려되고 또 기대된다.

 

 

* 《쿨투라》 2019년 11월호(통권 65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