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신중현 4] 기타, '꽃잎', 만발

2020-01-01     장석원(시인·광운대 교수)

꽃잎이 벌어진다. 펼쳐진 꽃잎들. 이정화의 하얀 <꽃잎>, 김추자의 빨간 <꽃잎>, 그리고 이정현의 부서진 <꽃잎>. 꽃 세 송이 앞에서 나는 각각의 꽃내음을 구별하지 못한다. 몸속으로 파고드는 꽃잎들. 드릴 꽃잎, 송곳 꽃잎, 바늘 꽃잎. 살과 피와 뼈가 되는 꽃잎. 향기는 휘발하고, 꽃은 자취도 없이 사라진다. 허공에 내던져진 나. 그 꽃잎들, 환상이었을까. 꽃 진자리에 피가 떨어진다. 꽃 없어진 곳에서 우리는 겨우 살아가고 남겨진다. 꽃은 왜 꺾였고, 꽃잎은 왜 불탔을까.

장선우의 영화 <꽃잎>을 만났을 때, 원작인 최윤의 소설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를 기억할 수 없었다. 광주의 그날을 쳐다보면서 전율하지도 분노하지도 않았다. 이정현이 부르는 노래 <꽃잎>을 보고 들으면서 터지고 밟히는 그 무엇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결코 빠져나가지 못할 암흑 속에서 가만히 눈을 감는 소녀를 나는 상상하고 있었다.

김추자가 노래를 부른다, 우리를 부른다. 우리들, 길을 잃었는데, 우리들 그 소녀를 찾아 떠도는데, 바람 속에 꽃잎 흩날리는데, 그것이 소녀의 찢어진 몸이라는 것을, 스스로 파괴한 우리의 자화상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절대로, 깨닫지 못한다. 김추자는 꽃잎처럼 흐느적이고 흐느끼고 흐드러진다.

1996년의 영화 속에서 이정현은 김추자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춘다. 나중에 테크노 여전사가 될 가녀린 소녀가 빨강 치마를 입고, 머리에 꽃핀을 꽂고, 하늘거리고 있다. 그 소녀가 꽃이다. 그 소녀가 붉은 희생이다. 나는 울먹인다. 나는 파헤쳐진다. 소녀가 무덤에 들꽃을 놓고, 무덤가를 배회하면서, 핏방울처럼 작아지면서, 한 마디 울음이 된다. 그날 죽은 자들을 위해 호곡(號哭)한다. 우리는 그녀 앞에서 대곡(大哭)도 통곡(痛哭)도 할 수 없다. 우리에게 울음과 눈물은 허락되지 않는다. 우리는 지켜봐야 하고, 기억해야 한다. 그것을 형벌이라고 부른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라면, 우리는 기꺼이 짊어지고 걸어가야 한다. 소녀를 따라간다. 소녀는, 영원히, 저만치 떨어져 있다. 소녀는 국기강하식에 맞춰 부동하는 입상이 된 사람들 사이로 증기처럼 사라진다, 퍼져 나간다. 소녀는 영원한 기억속으로, 역사 속으로 빨려들었다. 꽃잎이 떨어진다.

꽃잎이 피고, 또, 질 때면, 그날이 또다시 생각나, 못 견디겠네
서로가 말도 하지 않고, 나는 토라져서 그대로 와버렸네
그대 왜 날 찾지 않고 그대는 왜 가버렸나
꽃잎 보면 생각하네, 왜 그렇게 헤어졌나
꽃잎이 피고, 또, 질 때면, 그날이 또다시, 생각나 못 견디겠네
서로가 말도 하지 않고, 나는 토라져서, 그대로
와버렸네, 꽃잎 꽃잎
- 신중현, <꽃잎>

“그대 왜 날 찾지 않고 그대는 왜 가버렸나”에서 나는 걸음을 멈춘다. 읽기를 그만둔다. 어떤 텍스트는, 어떤 문장은 사람을 부러뜨린다. 그날 죽은 사람들의 얼굴이, 구멍 뚫린 소녀의 엄마가, 시체 더미 사이에서 눈을 뜬 소녀가 눈앞에 다가온다. 귀환한 자들이, 그들이, 그날의 원혼이 노래를 부른다. “꽃잎이 지고 또 질때면 그날이 또다시 생각나 못 견디겠”다고 절규한다. 꽃 피는 5월이면, 피는 꽃과 하나가 된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다시 피어난다. 꽃 속에서 소녀가 웃는다.

역사 현실의 맥락과 전혀 연결되지 않는 1967년도 작품 <꽃잎>이지만, 노래가 1980년을 지나,1996년 영화 속에서 결정적인 신(scene)에 거주하게 되었을 때, 노래는 텍스트 전체의 의미 맥락이 아니라, 단 하나의 청각 이미지로 우리의 몸에 새겨진다. 바람에 펄럭이는 것들의 소리. 소녀의 치맛자락이 나풀거린다. 포플러 잎새를 지나는 바람의 숨소리가 들린다. 창공에서 시민군의 태극기가 휘날린다. 총소리를 뚫고 노래가 울려 퍼진다. 죽은 자의 감기지 않은 눈동자 위에 침묵이 고인다. 이미지의 상기력(想起力). 우리의 기억을 점령한 적(赤). 핏방울이 흩날린다. 핏줄기가 솟구친다. 엄마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아스팔트를 적신다. 소녀의 찢어진 이마에 피가 맺힌다. 소녀는 핏빛 치마를 입고 우리의 품안으로 도피했는데, 소녀를 받아준 사람 아무도 없었다. 소녀가 꽃잎이었다. 소녀가 우리의 하혈이었다. 1980년 5월이 <꽃잎>에 응축될때, 신중현의 <꽃잎>이 영화 주제가가 되었을 때, 신중현은 역사와 대면할 수밖에 없었다.

1971년 어느 날 청와대에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박정희 대통령 찬가를 만들라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거절했다. 5분 정도 지나 다시 전화가 왔다. 집권 공화당이었다. 박 대통령을 위한 곡을 만들라고 다시 한 번 강력하게 부탁해왔다. 그 역시 거절했다. 그런 노래를 만들 이유도 생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압력을 느끼게 됐다. 내 공연장에는 늘 경찰이 단속을 나왔다. 장발 단속도 시작됐다. 머리가 긴 연예인은 텔레비전에 나갈 수 없게 됐다.
- 신중현, 『내 기타는 잠들지 않는다』(해토, 2015), 164면.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어 정신병원과 고문과 수감까지 경험한 신중현. 당대 최고의 음악가에게 가해진 권력의 협박. 역사에 기재된 신중현의 과거. 그는 예술가로 남겨지겠지만, 그의 음악과 상관없이, 박정희라는 이름이 역사에 개입될 수밖에 없게 된 사정을 확인한다. 이것이 신중현의 개인사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사료에 등재된 신중현의 삶을 잊지 않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그의 ‘불후의’ 음악이 있다. 음악은 영원하다. 독재자는 1979년에 죽었다. 1980년 5월이 열린다. 그날, 꽃잎이 있었다. 훗날 신중현은 역사와 예술의 접점에서 찬란하게피어나는 꽃이 된다. <꽃잎>이 운명처럼 펼쳐진다.

<꽃잎>은 김추자의 노래로 유명해졌다. 유튜브에서 시나위의 노래를, 재즈 싱어 웅산의 가창을 체험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이정화의 그것이다. 1967년에 신중현이 창조한 <꽃잎>이 들려온다. 명백한 사이키델릭이다. 전면의 기타. 배면의 키보드를 짖누르는 기타. 사이키델릭 음악 속 기타는 울음을 닮았다. 흐느끼던 기타가 휴식을 취하는 동안 키보드가 스피커를 장악한다. 건반의 손아귀 안에서 꽃잎이 오므라든다. 5분이 지나자 음악 안에 펼쳐지는 들판. 이정화의 노래가 돌아온다. 주조 선율을 반복하면서, 음악의 끝을 향해 전진하면서, 베이스가 구령을 붙이면서 꽃잎이 피어오른다.

신중현은 곡의 후반부에서 숨을 죽였다가, 힘을 빼고, 기타를 어루만진다. 부드러워진다. 이것은 울음이 아니다. 잔향(殘響/殘香)속에서 살짝 미소 짓는다. 8분 가까운 곡. 휘황하다. 이정화의 목소리를 덮는 기타 연주가 활주로처럼, 개활지처럼 달려온다. 건반과 쟁투하다가 협력하는 기타. 악기 둘의 조응. 김추자의 <꽃잎>은 온전히 가수에게 인도된 노래, 가수 몫의 작품이다. 그녀가 꽃이 되어 피어난다. 이정화의 <꽃잎> 절반은 신중현의 영역이다. 그의 기타 연주는 이전 시대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정확하지만 다듬지 않은 돌처럼 느껴지는 음 하나하나가 핏방울처럼 또렷하다. 신중현의 기타가 지니고 있는 마티에르(matière). 매질(媒質) 없이 진동을 느낀다. 혀로 맛보는 소리. 천천히 살갗을 매만진다. 솜털이 선다. 점이 우툴두툴하다. 마무리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작품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깎아내지 않은 것이다. 손대지 않은, 본연의 소리.신중현의 기타가 피어난다. 만발(滿發)이다.

2002년 MBC 수요예술무대 신중현 콘서트. 영화의 소녀, 이정현이 노래를 부른다. 신중현이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한다. 1967년과 1996년이 합쳐져 2002년이 되고, 우리는 지금 2019년을 통과하는 중이다. 우리는 지나쳤는데 소리는 사라지지 않았고,펄 펄 흩날리는 꽃잎이 되어버렸다. 카메라는 가수를 부각한다. 신중현은 흰 그림자일 뿐이다. 보이지않는 꽃잎.

이번에는 신중현의 목소리로 <꽃잎>을 듣는다.2002년 앨범 《Body & Feel》의 두 번째 CD 첫 번째 곡이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노년기에 낸 리메이크 앨범’ 정도”(같은 책, 254면)라고 신중현이 말한다. 아들 신윤철이 연주하는 일렉트릭 기타. 신중현이 가수이다. 결코 미성이 아니고, 또한 탁월하지도 않은 창법이지만, 신중현의 노래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가슴에 숨겨놓은 악기를 울리게 만든다.

마음의 통각이다. 박동이 빨라진다. 그의 목소리는 존재하는 것만으로, 발성 자체만으로 음악이 된다. 몸의 느낌이 충만해진다. 신중현의 목소리는 적중하는 화살이다. 육성(肉聲)이다. 살의 소리. 꽃잎의 소리. 신중현이라는 꽃잎, 그 몸의 소리. 백열등이 켜진다. 깜박이다가 꺼질 것 같은 전등처럼, 어둠과 밝음 사이에서 새어 나오는 목소리. 꽃이 명멸한다. 허공에서 파열하는 꽃잎. 나는 이 꽃을 알지 못했다. 눈을 감는다. 내부를 밝히는 ‘불-꽃-잎’ 같은 여린 신중현의 목소리가 나를 휘감는다. 아버지의 노래와 아들의 기타 연주가 베이스의 율동 위에서 5월의 신록이 된다. 나는 사랑 하나 갖게 되었다.

어이할꺼나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남몰래 혼자서 사랑을 가졌어라

천지엔 이미 꽃잎이 지고
새로운 녹음이 다시 돋아나
또 한 번 날 에워싸는데

못 견디게 서러운 몸짓을 하며
붉은 꽃잎은 떨어져 내려
펄펄펄 펄펄펄 떨어져 내려

(……)

풀밭에 바람 속에 떨어져 내려
올해도 내 앞에 흩날리는데
부르르 떨며 흩날리는데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꾀꼬리처럼 울지도 못할
기찬 사랑을 혼자서 가졌어라
- 서정주, 「신록」 부분

싱그러운 작품이다. 여기서 돌아본다. 서정주의 전두환 찬양시 「처음으로-전두환 대통령 각하 56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 5월. 광주. 신중현과 <꽃잎>. 「신록」 속의 “붉은 꽃잎”과 영화 <꽃잎>을 물들였던검은 피. 시와 음악과 영화가 역사 안에 배치된다. 무엇일까, 예술은. 역사는 어떻게 예술과 관계 맺는가.

음악이 있다. 신중현이 노래한다. “꽃잎이 피고 또 질 때면 그날이 또다시 생각나 못 견디겠네”. 견딜수 없는 역사를 통과하면서, 살아서 남겨진 우리는,음악 때문에 견딜 수 있었다. 형용사 하나를 <꽃잎>의 서술어 자리에 놓는다. 순정하다.

《헌정 기타 기념 앨범》의 1번 트랙 <겨울 공원>에 들어선다. 떠나버린 자를 기억한다. 겨울이고, 그 사람과 함께 거닐던 공원인데, 그 사람은 없고, 나에게는 갈 곳이 없다. 공원은 비어 있다. 겨울 공원에 차가운 바람만 오간다. 검은 겨울. 몸에 금이 생긴다. 종유석처럼 이별을 앞두었다. 기타 연주가 시작된다. 검정을 뚫고 나오는 눈꽃. 눈 속 공원. 눈 속 기타. 겨울이 부풀어 오른다. 하양의 부피 팽창. 빙결 쪽으로 철새들이 돌아오고 있다. 눈이 사라진 새들이 음악 쪽으로 날아든다. 북서풍을 타고 새가, 기타가 강습한다. 바람의 뼈가 구부러진다. 기타를 들고 노인이 다가온다. 나는 울고 있었다. 살아오는 동안 무거워진 마음 버팅기지 못해 굽은 몸으로 노인 앞에 선다. 뗏장 덮인 무덤 속에서 나오라고, 썩지 않는 그 유골을 던져버리라고, 그리움을 불태우라고, 노인이 말한다.

그가 기타를 연주한다. 육체를 탄주한다. 노인의 하얀 손에 푸른 덩굴처럼, 섬세하게, 정맥이 뻗어 나간다. 음악처럼 시간 위로 부상(浮上)한다. 천천히 그 손이 지워진다. 기타와 손이 녹아버린다, 뭉개진다. 기타와 바람이 하나가 된다. 건반 앞에서 기타가 확장된다. 늘어나다가 당기고, 벌리다가 다무는 기타. 읊조리는 신중현의 보컬, 울부짖는 신중현의 기타. 이것은 조화가 아니다. 이것은 쌍성(雙星)이다. 이원성(二元性)이다. 촛불처럼 깜박이는 노래의 틈새에서 기타가 번뜩인다. 기타 물결, 기타 휘장(揮帳), 기타 장강(長江). 건반의 수면을 가르는 기타 바람. 쏟아지는 소리. 듣는 자의 몸을 통과하는 빛-소리. 신중현은 기타 선율로 우리의 몸에 자상(刺傷)을 남긴다. 꽃잎 뚝뚝 떨어진다. 겨울 공원에눈발이 들어찬다. 기척이 붉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날 겨울 공원에서 나는 환한 그림자였다. 나는 그리움이 사라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중현과 만나는 순간, 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음악이 자욱해지고 있었다. 백일몽처럼 아름다운 강설이었다. 겨울은 몸 안으로 깊게 침강했다. 나는 두터워지고, 무거워진다. 1월이 오기 전에 <겨울 공원>에 “음악 같은 눈”(박정대,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이, 신중현의 기타 선율에 맞춰, 쏟아질 것이다. 기타가 몸을 연다.

 

 

* 《쿨투라》 2019년 12월호(통권 66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