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숙희 시조집 『둥근 것의 힘』
김숙희 시조집 『둥근 것의 힘』
  • 쿨투라 cultura
  • 승인 2022.04.02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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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희 시조집 『둥근 것의 힘』
- ‘돌봄’의 마음 담은 시선으로 세상에 말을 걸다

 

팬데믹으로 무너진 독자들의 일상을 ‘둥근’ 손길로 다독이는 따스한 언어들

​김숙희 시인은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나 1998년 《시조 생활》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꽃, 네 곁에서』(책 만드는 집). 『엉겅퀴 독법』(시조시인 100인선, 고요아침)이 있으며, 정형시학 작품상. 시천문학상. (사)한국시조협회 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은하수숲유치원을 운영하며, 유아교육에 전념하고 있다.

데뷔 이래 지금까지 200여 편이 넘는 시를 발표하며 ‘아이들을 돌보는 마음으로’ 세상을 시어로 돌보는 김숙희 시인이 시조집 『둥근 것의 힘』을 출간했다. 시인은 첫 시집 『꽃, 네 곁에서』에서 주지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참신한 미학적 결정체를 창조해냈으며, 특히 2017년에는 〈현대시조신인 100인선〉에 선정되어 시선집 『엉겅퀴 독법』을 펴내기도 했다. “어린 시절 산과 들을 뛰놀던 때의 행복한 시절의 기억을 힘든 고비 때마다 떠올리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한 인터뷰에서 언급하기도 한 시인은, 자신의 삶 속에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 내는 사람들 하나 하나에게 정감 있는 시로 용기를 북돋는 ‘모성’의 마음으로 시를 쓰고 있다. 이번에 출간한 『둥근 것의 힘』에서 시인은 특히 팬데믹 시기에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던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주목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팬데믹 이후 우리 문학은 위로와 치유의 언어들을 작품 안에 주로 담아 왔다. 힘들고 지칠 때, 그런 것들에 대해 말하는 것만도 고통을 덜고 나누는 삶의 일이기 때문이다. 김숙희의 시집 『둥근 것의 힘』에도 이런 다정함이 자연스럽게 배어 나온다. 『둥근 것의 힘』은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이다. 32년간 초등교육에 헌신하였고, 현재도 유치원을 운영하며 유아교육에 전념하고 있는 시인이 틈틈이 쓴 작품들을 모아 펴낸 시집이다 보니 독자들과 시인 모두에게 이번 출간이 뜻깊다. 아이를 돌보고 가르치는 일에는 교육자의 오랜 기다림과 인내가 필요하다. 세상을 돌보는 시인에게도 그것은 마찬가지여서, 김숙희 시인은 이번 시집 출간을 오랫동안 준비해왔다. 덕분에 이번 시집에서는 한층 원숙해진 자연의 관조나 일상의 성찰 등에 대한 표현이 돋보인다. 시인은 이를 통해 지금 어느 때보다 ‘돌봄’이 필요한 세상을 친절하게 도닥인다. 이는 주로 자연의 관조나 일상의 성찰을 통해 표현된다.

 

  포성 없는 포연 속에
  기침 소리
  천둥소리
  천세千歲난 마스크는
  예나 제나
  동이 나고
  그 절규, 비명 소리만
  우두망찰
  떠돈다

  - 「뭉크의 날들」 전문

  파지 같은 겨울 볕살, 대신 시장 골목길에
  반쯤 눈을 감은 얼굴 지쳐가는 긴 기다림
  빛바랜 현수막 사이로 하루해가 눕는다

  - 「4단계」 부분

마스크는 최근 우리 삶의 풍경을 바꾼 상징적인 기제다. 국가적 통제부터 억압이며 금기 등을 환기하는 마스크가 자신을 보호하는 방역의 척병이기도 하니 다의적 기표로 작동하는 것이다. 3년째 접어든 전 지구적 감염병 시절이니 마스크 관련 작품이 하나도 없이 이 시절을 건너는 시인은 없을 것이다. 그런 현실의 고뇌를 김숙희 시인도 차분히 살피고 작품에 담아내고자 한다.

「뭉크의 날들」을 읽으면 ‘뭉크’의 상징 같은 어떤 표정이 떠오른다. 뭉크의 유명한 〈절규〉, 한 번 보면 잊지 못할 절규의 표정은 어떤 전언보다 강렬하다. ‘현대인의 정신적 고뇌 상징’이라는 요약 이상을 담보한 표정은 다양한 활용과 변용으로 확장된다. 뭔가 내뱉지 못하는 속을 다 토할 듯 외치는 표정인데, 제목이 크게 거든다. 그 당시 노르웨이 기후의 반영이라 하더라도, 우리에겐 ‘절규’의 가장 강렬한 극대화로 각인돼 있는 것이다. 김숙희 시인은 그 뭉크를 제목에 놓고 우리 삶에 닥친 마스크의 시간을 압축한다. “포성 없는 포연 속”처럼 지나는 전쟁 같은 재난 속에 소리 없는 “비명소리만” 떠돌고, 그림 속의 인물처럼 우리는 입이 막힌 채 살아내고 있다. 조금씩 나아져 간다지만 제도적 통제를 당연히 수용한 절제로 자신을 지키려고 “우두망찰”의 시간을 간신히 넘고 있는 것이다.

  어디에도 길은 없다, 벽과 벽 사이에는
  수천 길 크레바스 갇혀버린 열 손가락
  한 뼘도 나가지 못하는 허공 속에 뜬 감옥

  - 「청탁원고」 전문

  지난 것 다 내주고 물기 마른 옥수숫대
  오래된 폐가처럼 삭은 관절 무너지고
  찬바람 허리 휘감는 요양병원 저 불빛

  - 「외등」 전문

 

  나무 궤짝 귀퉁이에 한 몸으로 포개져서
  꽁꽁 얼어버린, 누구냐 너희들은
  한겨울 동생을 안고 선잠이 든 꽃제비들

  - 「고등어 한 손」 전문

 

위 세 편은 단수 중에도 시인의 관점이나 새로운 표현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청탁원고」가 글 쓰는 자로서의 자기 고뇌를 극명하게 살린 것이라면, 「외등」이나 「고등어 한 손」은 타자를 향한 시선이 잘 집약된 작품이다. 우리는 종종 “어디에도 길은 없다”는 막다른 지점에서 벽에 이마를 짓찧는 고통에 휩싸인다. 무릇 글쓰기가 그러한데 정형 시는 내용과 형식의 줄다리기에 고통이 가중된다. 때로는 자신도 깜짝 놀랄 발견이며 발상이라고 도취해서 정형에 앉혀도 더 맛깔스러운 효과를 찾다 좌절하기 쉬운 까닭이다. 어느 장르라고 작품의 완성이 수월한 것은 아니지만 정형시는 형식 안의 시적 발휘가 더 까다로운 것이다. 그래서 “한 뼘도 나가지 못하는 허공 속에 뜬 감옥”이라는 압축과 이미지 앞에 많은 공감이 나올 것이다. 그렇듯 수많은 “감옥”을 거쳐도 다시 감옥에 처할 운명을 택했으니 어쩌랴, ‘즐거운 글감옥’으로 들어갈 밖에.

그와 달리 「외등」은 “오래된 폐가처럼 삭은 관절 무너” 진 노인들의 긴 밤을 환기한다. “찬바람 허리 휘감는 요양병원 저 불빛”도 내일이면 떠나보낼 사람이 있을 것이다. 시인은 안타깝게 그들의 시간을 생각하며 장수시대 노인들이 직면한 현실을 “외등”에 담아 그려볼 뿐이다. 약자를 향한 시선은 「고등어 한 손」에도 잘 담겨서 우리 시대 슬픈 초상인 “꽃제비”들을 통해 나타난다. “나무 궤짝 귀퉁이에 한 몸으로 포개”지다니, 생선을 대하는 방식으로 사람도 “궤짝”에 담기는 세상의 축도다. 세계적 문제가 된 난민들 처지나 북한에서 탈출한 어린 소년들은 모두 참혹한 시간을 견딘다. “한겨울 동생을 안고 선잠이 든 꽃제비들” 모습은 “고등어 한 손”과 다를 바 없다. 유아교육현장에서 일하는 시인은 이를 특히 더 안타까운 심정으로 전하는 느낌이다.

  쉼 없이 밀려가고 밀려오는 구름 일가
  사이사이 내비치는 햇살 줄기 조붓하다
  추억은 푸른 연락선 머리 위로 길을 내고
  언약으로 남아 있는 겹겹 접힌 편지 갈피
  눈 감고 떠올리는 그날의 이야기가
  내 안의 감각을 깨워 촉수마다 등불 켠다
  깊을 만큼 깊어져서 가을은 말이 없고
  들녘을 헤엄치는 잔바람 지느러미
  빌딩 숲 멀어질수록 너는 더욱 환하다

  - 「안면도 일기」 전문

 

팬데믹에 마음껏 나다니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기만의 장소를 찾아 휴식을 얻곤 했다. 여럿이 아닌 혼자나 가족끼리 호젓이 다니는 여행으로 지친 삶을 치유하는 것이다. 시인도 안면도라는 모두가 그리워하는 아름답고 편안한 곳을 찾은 것인지 유독 참하게 그곳의 “일기”를 전한다. 그 일기는 ‘日記’일 가능성이 높지만, ‘日氣’나 ‘一氣’를 겹쳐 봐도 무방하니 다의성에 따라 함의가 넓어지는 즐거움이 다. “쉼 없이 밀려가고 밀려오는 구름 일가”에서 비롯된 기상 변화는 “사이사이 내비치는 햇살 줄기 조붓하”게 만들고, 추억도 “푸른 연락선 머리 위로 길을 내”게 한다. 하늘의 “구름” 가족 움직임에 따라 변하는 지상의 풍경과 마음의 무늬까지 섬세하게 담아낸 솜씨가 돋보이는 수채화다.

  울퉁불퉁 바윗돌이 몽돌이 될 때까지
  바다는 뜬눈으로 제 몸을 부렸겠지
  밤이면 달빛도 내려와 살뜰히 핥아주고
  파도가 밀려오고 나가기를 수만 번씩
  엎어지던 불협화음 쓸리고 쓸어가며
  부딪쳐 으깨어진 채 서로를 품어내고
  새 아침 햇귀 아래 어깨를 기대느라
  자갈자갈 모여 앉은 얼굴들을 보아라
  모난 곳 하나 없구나, 둥글게 뭉쳤구나

  - 「둥근 것의 힘」 전문

“내려다보고 살아라”는 흔히 쓰이는 말이다. 하지만 시인에게는 어머니의 말씀이라 귀하게 되새기는 삶의 지침이다. 재력이든 권력이든, 높고 낮음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과 대우가 작동하는 세상이기에 더욱 그렇다. 겸허의 가치와 실천의 소중함을 알지만 살다 보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세상사다. 그래서 시인도 “굽은 산 절반을 넘어”서고 나서 “그 말씀 다시” 들으며 자신을 다잡는 것이리라. 그런 깨달음에 이르는 것도 반생은 좋이 넘어야 깊이 들리고 다시 보이니 말이다. 「둥근 것의 힘」을 몸으로 증언하는 “몽돌”들이 많은 시간을 파도에 시달려서 이루어내는 둥긂의 세계처럼. 모난 돌이 둥글어지기까지 모서리가 깎여 나가는 시간이 자기 수양의 기나긴 과정이듯, 우리네 삶 또한 그렇게 자신을 다듬으며 원숙해지는 것이겠다.

김숙희 시인은 많은 시간을 교육과 관련된 일에 바쳐왔다. 그런 교육현장의 일이든 글쓰기의 일이든, 때때로 길을 묻고 찾고 새기며 왔을 것이다. “지상은 비릿한 통증 길이 길을 묻는다”(「푸서리길」부분)고 자주 돌아봤듯. 그렇게 지상의 길을 되묻는 지점이 많아서 문학의 길에 들어섰을지도 모른다. 문학도 넓게 보면 길을 묻는 일이자 길을 찾으며 삶과 꿈의 미학을 세우는 여정이니 말이다. 그런 어느 길에서든 시인이 보고 듣고 겪고 채집한 세상의 모습은 정형 안에 담기면서 더 조신하고 아담하게 빛난다. 이런 김숙희 시인의 작품들이 더 많은 독자와 함께하며 둥글고 깊은 울림으로 메아리치길 기대한다.

 

 


 

『둥근 것의 힘』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그 핏속에 나, 있으리

청탁원고 13
오징어 게임 14
햄릿증후군 15
장엄미사 16
외등 17
역류성이라는? 18
시래기 19
바람난 무 20
바람 맛 21
매미는 떠나가고 22
둥근 것의 힘 23
달걀 24
건너편 풍경 25
애년 26

2부 타작마당 가장자리

활개똥 29
찰리 채플린처럼 30
어허, 벗님네들 31
터널 32
잡초 도감 33
유빙의 시간 34
어느 한낮 35
반그늘 36
안면도 일기 37
새참일기 38
4단계 39
봄, 미세먼지 40
뭉크의 날들 41
못 박는 날 42​

3부 못 잊어 딸려 온 것들

참매미 45
혼밥 46
칠석과 입추 사이 47
치아 파절 48
이사 49
우포 연가 50
어인 일? 51
세밑에 52
석화石花 53
밤골 이야기 54
토룡의 소신공양 55
어쭙잖은 이야기 56
가로등을 켜며 57
어떤 날 58​

4부 정지된 화면 속

수묵화 61
화장터 62
푸서리길 63
포도 알 노을 64
카트만두 셰르파 65
소록도, 그 흡연실 66
빈 집 67
동백꽃 68
관통 69
마른장마 70
일석이조 71
폭염경보 72
이바구와 이바구 사이 73​

5부 내려다보고 살아라

신파조 77
어머니 잠언 78
나이를 헤다 79
꼬투리 80
감초양반 81
누구신가 82
그렇지, 그렇지! 83
자가 격리 84
그 남자 85
갱년기 냉장고 86
수저論 87
우리가 스쳐갈 때 88
항아리 89
고등어 한 손 90​

해설

둥긂을 이루는 반그늘의 길_ 정수자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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