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산책]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클래식 산책]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 한정원(클래식칼럼니스트)
  • 승인 2022.11.0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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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형식의 콘체르토

서른여섯 나이에 요절한 천재 음악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음악사에 남긴 최고 업적이라면 단연 ‘피아노 협주곡’일 것이다. 고전음악의 정수인 그의 피아노 협주곡은 클래식 음악의 새로운 시대를 활짝 열어주었다. 모차르트가 보여준 우아하고 세련된 작곡 기법은 서양음악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가까이는 베토벤이 다섯 개 피아노 협주곡을 통해 그러한 변화의 흐름을 이어 받았고 이는 후대 낭만주의 협주곡의 모태가 되어주었다. ‘협주곡’이라는 뜻을 가진 ‘콘체르토Concerto’는 관현악이 함께 어울리면서 독주악기로 하여금 화려한 기교를 충분히 발휘하게끔 지어진 소나타 형식의 악곡이다. 원래 이 말은 ‘투쟁하다’, ‘논쟁하다’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지만 이탈리아어로 넘어오면서 ‘조화시키다’, ‘일치시키다’라는 뜻을 가진 음악 용어로 정착하게 되었다.

바로크 말기 콘체르토 양식이 전기 고전주의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작곡가는 안토니오 비발디였다. 그는 독주악기와 현악기를 다양하고 자유롭게 배치하여 새로운 음색을 도모하였다. 우리는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에서 이러한 음향을 만드는 그의 탁월한 역량을 느껴볼 수 있다. 그가 보여준 논리적인 곡 진행과 간결하고 명료한 주제와 형식은 요한 세바스찬 바흐와 그 이후 음악가들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특별히 바흐는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에서 ‘빠르게-느리게-빠르게’의 일반적 3악장 구조를 사용하여 기초 3화음에 의한 주제와 반복되는 리듬을 사용하게 된다.

또한 후기 바로크에서 고전주의로 가는 과도기에 로코코 양식이 발전하면서 음악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특이할 점은 이때 선율이 한층 복잡해졌고 음악을 구성하는 개념이 크게 변화한 것이다. 이제 작곡가들은 감정에만 호소하는 구식을 버리고 악기의 장점을 최대한 실현하는 데 매진하게 되었다. 한 악장 안에서 다양한 장치를 만들었고, 많은 장식음을 선율에 도입하여 더욱 화려해진 음악 어법을 구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비발디, 바흐 등의 전통을 이어받은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은 그러한 맥락 속에서 새로운 형식의 콘체르토를 완성한 것이다.

후대에 커다란 공감과 영향을 준 모차르트의 음악

모차르트는 독주악기인 피아노를 가장 사랑했고 피아노를 위한 작품에 가장 몰두했다. 고전주의와 함께 발달한 피아노는 맑고 고유한 음색을 가졌으며 이전의 건반악기와는 전혀 다른 음량으로 다이내믹한 표현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이러한 매력적 악기의 출현은 ‘피아노 협주곡’이라는 새로운 양식을 낳았고, 모차르트는 피아노를 통해 자신의 음악적 이상을 펼칠 수 있었다. 모차르트가 지은 27개 피아노 협주곡 가운데 지금까지도 많이 연주되는 작품은 20번 D단조 K.466, 21번 C장조 K.467, 23번 A장조 K.488 등이다. 빈에 머물던 그는 이미 유명한 프리랜서 음악가로 왕성하게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이 곡들은 모두 이 당시에 작곡된 빈 후기 작품들로서 대부분 그가 직접 초연하기도 하였다.

20번 D단조는 그가 처음 단조 조성으로 지은 곡인데, 단조에서 오는 어두운 분위기, 낮은 음역대의 현악기 소리와 싱코페이션 리듬에 의해 한없이 그 안으로 빠져들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의 피아노 협주곡 가운데 가장 많이 연주된 작품일 것이다. 이전까지의 협주곡이 연주자의 기교에 중점을 두었다면 이 작품은 작곡자의 인간적 고뇌와 잠재적 슬픔까지 느껴지게끔 하였다. 이러한 속성은 후대 음악가들에게 많은 공감과 영향을 주었으며, 그 중에서도 베토벤과 브람스는 즐겨 이 곡을 연주함으로써 자신의 역량과 가능성을 키워갈 수 있었다. 21번 C장조는 20번이 만들어진 한 달 후에 완성되었다. 그리고 며칠 후 예약된 연주회에서 모차르트 스스로에 의해 초연되었다. 이 두 작품은 완전하게 다른 성격을 보인다. 20번이 열정과 비애 그리고 슬픔을 넘어서는 승리를 표현했다면, 21번은 고요와 장엄으로 사물의 양면성을 보여주었다. 교향곡적 성격을 띤 이 곡은 탄탄한 관현악 편성과 균형 있는 오케스트레이션을 바탕으로 피아노 독주와 관현악이 시종일관 대화를 나누는 듯 매끄럽게 유기적으로 전개된다. 이러한 점은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에서도 차별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2악장 안단테는 스웨덴 영화 〈엘비라 마디간〉 주제곡으로 쓰여 대중적으로 더욱 인지도가 높아지기도 했다. 모차르트 아버지 레오폴드는 이 곡에 대해 “숭고하리만큼 장엄함을 지닌 곡”이라고 했다.

그 이듬해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중에 가장 우아하고 감동적인 선율이라고 평가되는 23번 A장조가 세상에 나왔다. 이 곡은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과 같은 해에 지어졌다. 마치 오페라 아리아를 기악곡으로 옮겨놓은 듯이 섬세한 감정을 노래하며 서정적 분위기를 연출한 곡이다. 여기에는 A장조 조성에서 느껴지는, 그리 밝지만은 않은 미묘함이 존재한다. 시를 읊조리는 듯 진행되는 2악장 도입부는 비애가 느껴지는 정적감을 표현하였으며, 2악장 마지막 부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시작되는 3악장은 체념을 극복한 듯한 빠른 장면 전환을 보여준다. 그 모차르트는 이 곡에서 트럼펫과 팀파니 대신 소규모 오케스트라를 편성하였고, 오보에 대신 두 대의 클라리넷을 배치하였다. 더불어 목관악기의 따뜻한 음색 표현에 중점을 두기도 하였다.

모차르트와 함께 신명나는 시간을

모차르트에게 피아노는 악기 중의 악기였다. 쳄발로와 클라비코드는 모차르트의 어린 시절을 함께 한 악기였고 그는 어른이 되면서 피아노의 전신인 피아노포르테를 알게 되었다. 피아니스트로서 그는 평생을 함께 해온 건반악기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피아노’의 장점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고 그 결과로 수많은 피아노곡을 지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음악에는 바로크와 로코코, 그리고 전기 고전주의의 특징이 모두 들어 있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고전주의 음악으로의 궁극적 완성을 이룬 것이다. 그렇게 그의 피아노 협주곡은 오페라와 실내악과 심포니 등 모든 음악적 스타일을 함축하면서 자신의 천재성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음악은 항상 우리 곁에 머물러 있다. 기쁠 때나 외로울 때나 지쳐 있을 때에도 음악은 언제나 우리와 친구가 되어준다. 마음에 안정을 주고, 때로 벅찬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며, 우리가 가닿지 못하는 더 넓고 숭고한 세계를 암시적으로 들려주기도 한다. 얼마 전까지 낯설기만 하던 하나의 세계가 어느 날 갑자기 훌쩍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순간을 선사하기도 한다. 많은 이들이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면서 그러한 시간을 누리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한정원 피아니스트.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 음악대학,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 대학교에서 독주와 실내악을 전공하고, 최고연주자과정(Konzertexamen)을 마쳤다. 이태리 디노치아니 국제콩쿨 특별대상을 받았고, 유럽을 중심으로 연주활동을 하던 중 귀국하여 십여 년간 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일송출판사에서 악보해설집 출간하였으며, 현재 국내외로 많은 연주 활동 중이다.

 

* 《쿨투라》 2022년 11월호(통권 10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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