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와 청년문화] 70년대 통기타 음악과 대중가요
[최인호와 청년문화] 70년대 통기타 음악과 대중가요
  • 임진모(음악 평론가)
  • 승인 2023.09.01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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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대중가요는 당대의 사회상을 반영하거나 적어도 응시한다고 하지만 아마도 1970년대의 통기타 음악 시기만큼 사회와 음악이 밀착된 때는 없을 것이다. 50년 전의 대과거 궤적임에도 그 음악은 여전히 원심력을 잃지 않으며 심지어 미래시제를 향한 잠재력으로 통한다. 통기타 음악이 지닌 음악예술성이나 아티스트의 보고 때문만이 아니라, 역사적 의미망이 그 음악에 걸치면서 대중적 관심이나 학술적 가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통기타 음악문화를 논할 때 전가의 보도처럼 동반되어 언급되는 것이 ‘최인호와 청년문화’와의 관련성이다. 최인호는 소설과 문학 분야에서의 위상, 영화 역사에서의 존재, 이 둘만으로도 거대함과 각별성을 내뿜지만 대중음악과도 접점을 갖는다는 점에서 한층 경이롭다. 1974년의 문제작 〈별들의 고향〉을 흔히 청년문화의 세 기수, 문학(최인호) 영화(이장호) 음악(이장희) 세 분야의 ‘영 건’이 엮어낸 산물이라는 통상적 규정은 정확하다. 단순이 셋을 나열한 것이 아닌, 내적 연관성을 간파한 수식이기 때문이다.

이장희

〈별들의 고향〉 외에도 최인호가 소설을 쓰고 시나리오를 구성한 작품들인 〈어제 내린 비〉, 〈바보들의 행진〉, 1984년과 85년의 흥행 블록버스터 〈고래사냥〉, 〈깊고 푸른 밤〉은 대중들에게 소설보다도 먼저 시네마로 떠오른다. 동시에 대중들은 관습적으로 이장희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윤형주의 〈어제 내린 비〉, 송창식의 〈왜 불러〉, 김수철의 〈나도야 간다〉 등 가요사의 슈퍼히트송들도 덩달아 꿴다. 이런 동시연상은 어디에서도 찾기가 어렵다.

당연히 그의 영화 OST 주역들인 이장희, 송창식, 윤형주, 강근식, 정성조, 김수철 등은 포크와 록 장르에 걸친 가요사의 레전드들이자 청년문화를 견인한 문화계 선두들이다. 본인의 의지 여부를 떠나 최인호와 더불어 찬란한 대중문화 영예의 폭풍 속으로 말려들어간 인물들이라는 사실은 ‘과연 최인호가 아니었으면 영화음악 작업에 참여했을까?’라는 천진한 의문도 들게 한다. 이건 결코 심상한 공조가 아니다.

정성조

영화 관련 노래는 아니지만 1974년 송창식의 곡 〈밤눈〉을 애청하는 사람들은 많다. 곡을 끌어가는 송창식의 포근한 장악력이 압권이지만 이 감성 노랫말을 쓴 주인공이 최인호라는 것을 알면 감동지수는 더 상승한다. 그만큼 최인호는 당대 청년문화의 주요 흐름이었던 대중가요를 면밀히 주시했고, 가수들도 그가 그 시절 청춘들의 신경과 감각에 동요를 초래한 이름임을 인정했다. 존재 자체가 음악적 영감을 돋우는 모든 환상이었다고 할까. 〈고래사냥〉의 음악을 만든 것은 물론 영화에 ‘병태’역으로 직접 출연한 김수철의 말. “제작진이 어벙한 대학생 병태 역을 물색하고 있었죠. 그러다가 술자리가 마련됐고 그 자리에 배창호 감독은 물론 작가 최인호 선생도 나온 겁니다. 최인호 선생은 우리 청춘의 영웅 아닙니까. 전 영화를 한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그 분과 함께 한다는 기쁨에 술잔이 오가고 그런 사이에 출연에 동의한 것으로 돼버렸죠.”

〈고래사냥〉 ‘병태’역으로출연한 김수철.

문학아이콘 최인호가 영화와 대중음악 시너지의 주체였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문학과 예술, 그 위대한 문예적 정복이 이뤄진 것이다. 이러한 쾌거는 1970년대 초반 ‘청년문화시장’이 형성되었기에 가능했다. 부모에 비해 괄목상대한 학력과 청년 층 인구의 증가 그리고 경제성장에 따른 문화상품 구매력 확보 등이 그 주요 인자였다. 그게 통기타 음악으로 나타났다. 대학생들은 경제적 숨통이 트이면서 자신이 바라던 음악을 소비할 수 있게 됐다.

서구지향성이 내재한 통기타 포크음악은 그들에게 딱 제격이었다. 대학생들은 밥 딜런, 조안 바에즈, 킹스턴 트리오, 브라더스 포의 음악에 지고의 가치를 부여하며 열심히 모방하고 그 속에서 창조의 기운을 쌓았다. 우리 가요계 역사의 오랜 흐름이지만 통기타 가수들의 재가공과 창의적 변형의 능력은 탁월했다. 부모세대의 작사 작곡자 집단을 넘어서면서 가요 제작 지배세력의 교체로까지 나아갔다. ‘베이비붐 세대’의 힘찬 전진과 도약이었다. 1970년대 청년문화 논쟁에서 ‘세대론’이 키워드가 되는 것은 당연했다.

〈깊고 푸른 밤〉 스틸컷

그 베이비붐 세대의 포크음악은 같은 젊은 음악인 로큰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시끄러워 어른들도 ‘용서’했고 무엇보다 통기타 하나로도 음악 전 과정을 섭렵할 수 있음은 특장이었다. 청춘은 너도나도 통기타 구입과 연주에 몰입했다. 적어도 청년층에게는 통기타가 보편화되면서 그 결과물인 포크는 ‘음악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송창식 이장희 한대수 김정호 등 싱어송라이터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와 어떤 음악장르보다도 대중가요사를 불 밝힌 음악가들을 배출했다.

비록 유신체제의 긴급조치 9호에 의한 억압으로 침체기를 맞고, 대학생들을 대상화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대중문화가 그 시대에 ‘낭만적 저항’을 제공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그 낭만성이 어두웠던 시대에 세대의 대중성을 확보해주었다. 관련인물을 예로 들라면 우리는 무조건 소설 영화 음악의 3중주를 일궈낸 최인호를 호명해야 한다. 모든 발버둥을 내리누르는 짙은 어둠의 중심에 은은히 퍼졌던 한 줄기, 아니 세 줄기 빛.

 

 


임진모 음악 평론가이자 작가, 방송인이다. 1984년 경향신문에 입사하여 대중음악 기자로 활동했다. MBC FM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25년간 고정출연하고 있으며 MBC 라디오에서 ‘유행가, 시대를 노래하다’를 진행하고 있다. 역서로는 『존 레논』, 저서로는 『팝 리얼리즘 팝 아티스트』 『젊음의 코드, 록』 『세계를 흔든 대중음악의 명반』 『우리 대중음악의 큰 별들』 『가수를 말하다』 『팝, 경제를 노래하다』 『한국인의 팝송 100』 등이 있다. 2020 MBC 방송연예대상 라디오부문 특별상(배철수의 음악캠프), 제5회 다산대상 문화예술 부문 대상 등을 수상했다. 음악 웹진 《이즘》(WWW.IZM.CO.KR)을 운영하고 있다.

 

 

* 《쿨투라》 2023년 9월호(통권 11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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