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와 청년문화] 물고기는 옆선을 새겨 넣는다 - 서로의 관찰하는 청춘
[최인호와 청년문화] 물고기는 옆선을 새겨 넣는다 - 서로의 관찰하는 청춘
  • 박소진(시인)
  • 승인 2023.09.01 15: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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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맨드라미는 무섭고 이상하게 생겼다. B급 벨벳 양탄자에 모양을 내보려고 억지로 새겨 넣은 엉터리 스티치가 엉켜있는 모습이다. 맨드라미의 주름은 마치 어느 동물의 소장에 붙은 융털 같다. 최인호의 「타인의 방」(1971)에 살던 그 남자도 그랬을까, 큰 맨드라미처럼 우울하게 서서 그를 노려보고 있던 샤워기 쪽으로(「타인의 방」) 그가 다가갔을 때 이후 일어나는 일들은 청춘의 일이라 나는 이름 붙이기로 한다. 고독이었지만 경계를 넘는 ‘의미 있는 행위’를 하는 시대의 우리. 최인호의 ‘청춘’을 관통하는 경계에는 그의 표현대로 어둠이 깃들어져 있는데, 어둠이 내린 강물은 마치 증류처럼 번득이고 있었다. 최인호 작품들의 주요 인물은 남성인데, 그들은 굉장히 흐리고 뿌연, 부유하는 물속의 물고기처럼 다가왔다. 증류처럼 번득이는 흐린 하늘에 걸린 달 아래 떠다니는 물고기이다. 그런데 이 물고기는 영원히 센티멘탈하게 침묵만으로 떠다니지만은 않을 것이다.

모든 물고기는 같은 위치에 하나의 선을 새겨 놓는다. 하나의 측선을 갖는다. 그것은 물체나 다른 생물을 관찰하거나, 물의 흐름의 변화를 감수하는 촉각기관이다. 그야말로 물속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면 자신의 몸에 진동이 생기면서 곧 감각세포가 작동하면서 무엇인가를 느낀다는 것인데, 이런 옆줄을 가진 물고기가 떠다니듯 헤엄치는 것은 마치 최인호의 청춘들뿐만 아니라 시대라는 수류를 따라 지나온 모든 이들의 몸짓과 비슷하다. 그들은 대부분 몹시도 고독하며 공상이나 대화, 회상을 통해서 계속 경계를 넘어가는 중이다. 하지만 어항에서 금세 건져 올려 도마에 턱 내려놓은 활어같이 팔딱거리는 지점이 있다. 숨 가쁜 침묵으로 정지되는 순간이다. 물고기들의 숨 가쁜 침묵이 톱밥처럼 흐르고(「타인의 방」), 여전히 밤이 오기 직전, 이런 침묵을 구현하기 위해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입을 뻐끔거린다. 동시에 물고기의 모습으로 청춘은 서로의 한때가 될 각자의 헤엄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관찰한다.

어떤 시절을 청춘이라 정한다면, 나는 이를 수류의 변화를 인지하기 전의 물고기, 그러니까 입을 뻐끔거리던 자신의 지점에서 우주 전부라고 여기던 시점에 비유하겠다. 그래서 청춘은 자주 과거형이다. 우리는 최인호의 숱한 인물처럼 “지난여름은 행복했었다.”라고 말하는 중이다. 그리고 입으로 중얼거린다. “그럼, 행복했었지, 행복했었구말구.”(「타인의 방」) 행복의 발화를 통해 청춘은 물고기의 ‘수류’처럼 세계를 변화시킨다. 청춘은 관찰자의 대상이자, 동시대의 청춘끼리 관찰 전제가 되며, 이는 또 다른 청춘과 평행을 이룬다. 서로 마주 볼 수 있다. 겹칠 수는 있지만 부드럽게 피해 가고, 서로에게 아무런 생채기를 내지 않는 세계의 변화이며, 서로의 헤엄을 관찰하는 물고기이다. 새로운 방황이기도 하며, 동시에 격리한 미로에 대한 은유(「견습환자」, 1967)이기도 하다. 저 스스로 미로를 제거할 수 있게 병실에서 죽어가고 있던 국화꽃 두어 송이를 가슴에 꽂고 계속 가는 「견습환자」 속의 남자처럼. 그래서 행복은 언제나 발화 중인 상태이고 이를 실천하는 주체는 청춘이다.

최인호는 누구에게든 어린 날의 기억은 달콤하고 포근한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위대한 유산」, 1982)이라 했다. 청춘의 기억은 관찰자로서의 ‘나’에게도 어린 날의 기억이자, 타인의 방에 깃든 기억을 모으고 싶은 존재이다. 일단 지나고 보면 아름다운 기억 하지만 반전이 드러난다. 영원한 고독이라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고아 같은 회상일지라도 너무나 황홀해서 밤하늘에 불티처럼 깔린 별 중의 하나가 돌연 가슴을 향해 스며드는 환영(「타인의 방」)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물고기의 헤엄은 단순한 풍경처럼 타인의 일에 무관한 것처럼 보인다. 물고기에 새겨진 옆선을 기억하는 역사도 없다. 하지만 이런 거품 같은 일에도 질서가 있다. 삶이라는 질서, 희망이 오겠다는 질서. 수류水流는 언제나 우연한 기회로 물고기를 절망에서 헤어나게 한다. 이때 다시 물고기에게는 헤엄칠 수 있는 청춘이 이어진다. 청춘의 희망이다.

청춘의 시간에는 단 하나의 희망, 유일한 구원, 새로운 욕망, 갑작스러운 광기가 자주 일어난다. 동시에 스스로를 구원하는 것처럼 보이는 환영이 붉게 일렁인다. ‘한여름의 전염병 같은 것’(「위대한 유산」)같이 보이지 않는 지독한 것일지도 모른다. 외부의 싱싱한 자극, 몽환적인 열기, 하지만 진짜 그가 말하려는 청춘의 유산에는 공통점이 있다. 세대를 절대 잊지 않으려는 우리들의 아버지가 전해주는 사랑과 희망이다. 서커스 경품을 기다리던 「위대한 유산」 속 ‘그’와 「달콤한 인생」(2001)에서 화차에 깔려 죽어간 엄마를 기억하고 기다린 ‘그’는 결국 각자의 뿌리인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희망을 본다. 시대의 청춘은 덩그런 섬이 아닌, 세대의 방식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질서 있는 희망을 품는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물고기는 계속해서 옆선을 그리기로 한다. 그것은 세대를 이어온 청춘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박소진 시인.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 졸업. 2015년 《포엠포엠》으로 등단. 시집으로 『사이, 시선의 간극』, 『누구나 아는 라라』 가 있다. 매일경제신문에 〈박소진 시인의 독일 에세이〉와 〈어린이와 환경〉 교육 칼럼을 연재했다. 현재 독일에 거주하며 특정 시공간에서 낯설게 발현되는 감각을 실험하는 전시형 문학프로젝트 〈Enquête Poetry〉를 진행 중이다.

 

 

 

* 《쿨투라》 2023년 9월호(통권 11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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