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예술가의 썰] 핵, 개
[청년예술가의 썰] 핵, 개
  • 이준상(소설가)
  • 승인 2023.10.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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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오펜하이머〉를 봤다. ‘핵’의 압도적인 힘을 체험했다. 관람이 아닌 체험이었다.

영화는 천재 과학자이자 원자폭탄의 아버지인 오펜하이머가 1900년대 초 ‘맨해튼 프로젝트’를 이끌며 세계 최초의 핵 개발을 이뤄내는 내용이었다. 세상을 파괴할지도 모르는 핵실험을 진행하고 발사 버튼을 누르는 장면도 흥미로웠지만, 특히 와 닿은 것은 오펜하이머의 인생 자체가 하나의 핵폭탄 같다는 점이었다. 유럽과 미국을 넘나들며, 다양한 이념이 서로 겹치는 시간 속에서 화합과 모순을 이뤄가는 그의 삶이 핵폭발과 상당히 닮아 있었다. 그 폭발적인 삶 뒤에는 지속적인 융합fusion과 분열fission이 있었고, 영화를 다 보고 나서는 그의 삶이 나의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핵폭발은 기본적으로 중성자와 양성자로 이루어진 원자핵에 가속된 중성자를 하나 더 충돌시켰을 때 일어난다. 연쇄 핵분열 반응에 기초해 원자핵이 분열하며 높은 에너지가 방출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엄청난 에너지의 핵폭발을 위해 필요한 것은 단 하나의 중성자뿐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내가 바라보는 나의 삶, 나의 문학과도 맞닿아 있다. 온전한 원자핵에 추가된 중성자 하나가 거대한 연쇄반응을 일으키듯이, 연관성 없는 두 단어의 병치가 수많은 창작의 시작점이 되듯이, 다양한 환경에 놓인 나의 삶이 하나의 문학 작품을 만들어 낸다 (혹은 그럴수 있기를 희망한다). 실제로 나는 ‘한국 문학’을 추구하면서도 그 단어와 동떨어진 시간을 보내왔다. 나의 거주지가 한국이 아니라는 사실과 전공 분야가 늘 공학이었던 것만으로도 그로부터의 이질감을 충분히 느낀다. 하지만 그 이질감이야말로 나의 동기다.

이는 나의 소설에서도 드러난다. 최근 《문장웹진》에 발표한 단편소설 「하이에나」는 ‘알마’라는 개의 시선으로 인간 사이의 관계를 바라보는 내용이다. 개가 지닌 비인간 렌즈로 인간을 응시하고, 이때 보이는 지점을 확대하여 관찰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쓴 글이었다. 그렇게 해야만 인간이 직접 볼 수 없는 모순점을 속 시원히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치 개라는 중성자가 있어야만, 이 이야기의 에너지가 독자들에게 전달될 거라 믿는 것처럼.

2.
시간이 흐르면 단어 위에는 먼지가 쌓인다. ‘핵’이라는 접두사는 이를 논하기에 좋은 예시다. 마트에 숱하게 진열된 ‘핵불닭’ 제품을  고 나면, 우리가 여태 이 단어를 어떻게 소비했는지 깨닫게 된다. 오펜하이머가 마음 졸이며 첫 번째 핵실험 발사 버튼을 눌렀을 때, 분명 그는 이 단어가 추후에 음식의 맵기나 맛을 강조하기 위한 접두사로 쓰일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나 또한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이 단어 위에 쌓여 있던 먼지를 미처 걷어내지 못했다. 핵폭탄이 탄생한 역사를 진정으로 알고 나니 핵이 지니는 본래 의미, 나아가 가치를 더 이상 무시할 수 없게 됐다.

작년 한국을 떠나오는 길에 공항 서점에서 『2022년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사 들고 비행기를 탔다. 일곱 개의 단편 소설에는 일곱 개의 원자핵처럼 깊은 에너지가 가득했다. 모두 우리의 삶을 밀접하게 비추면서도 그 속에는 일곱 개의 중성자, 일곱 개의 각기 다른 개의 시선이 존재했다. 그 소설만의 시각, 구성, 서사는 이질적인 재료 속에서 생겨났고, 곧 독자를 끌어당기는 힘을 만들어 냈다. 이러한 이야기는 서로 다른 이념, 환경, 정체성이 뒤섞이며 폭발하는 핵융합과 꼭 닮았다. 

3.
소설가라는 이름을 얻게 된 이래로, 나는 짧은 기간이나마 서로 다른 성질이 모여 하나의 에너지를 만드는 오펜하이머의 삶을 나의 글에 투영하고자 했다. 사실 소설 「하이에나」에서 ‘개’라는 렌즈를 고른 건 그 어떤 논리도 아닌 개인적인 미련에 의한 것이었다. 얼마 전 죽은 반려견에 대한 미련이 남아, 그 친구의 시선으로 나를 돌아보고 싶었다. 나의 반려견을 비인간 렌즈라 칭하며 기존과는 다른 주체의 시각으로 인간을 관찰하려 했다. 어쩌면 타(인)의 시선이라 생각했던 것은 모두 나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개의 시선이라고 생각하며 글을 썼지만, 그 또한 결국 나의 지나간 시간의 발췌본일 뿐이다.

돌이켜보면 이것은 핵분열 원리의 핵심이기도 하다. 애초에 이질적인 중성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추가된 중성자는 이미 존재하는 것과 똑같은 종류다. 이처럼 내 삶과 문학에 다른 무언가를 던지려는 시도는 도리어 ‘현시대’와 ‘나’라는 재료를 담는다는 점에서 지극히 동질적이다. 세상 곳곳을 발견하고자 쓰기 시작한 글의 끝은 늘 다른 대상이 아닌 나를 향해 있으니, 나의 문학은 렌즈보단 거울에 더 가깝다고 해야겠다.

아마 이 시대를 바라보는 청년의 마음과 그들의 문학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가수 김창완이 1981년에 발표한 〈청춘〉이라는 곡을 통해 시간의 소중함을 얘기하고자 했던 것처럼, 청춘靑春이라는 단어가 이미 찰나의 봄철을 품고 있는 것처럼, 청년의 문학은 순식간에 사라지는 현시대 속 자신을 돌아본다. 그들의 소설은 언제나 핵분열처럼 강렬하고 빠르게 사라지는 시간 한가운데 있다. 어쩌면 각자의 삶 속에서 하루하루를 쉴 새 없이 보내다가 자신만의 중성자를 던진다는 마음으로, 개의 렌즈—혹은 거울—를 들여다보는 것이 청년 문학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그간 나의 문학 속 ‘개’는 내 지나간 시간 속 ‘핵’과 같은 존재였다. 마찬가지로, 지금 나를 둘러싼 ‘개’와 같은 존재는 앞으로도 나의 문학 속 ‘핵’이 될 것이다. 그것만이 모순으로 가득한 나와 우리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방법이므로. 


 

 


이준상 2023년 제17회 쿨투라 신인상 단편소설 「Oui」 당선. 2023년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단편소설 「하이에나」 선정.

 

* 《쿨투라》 2023년 10월호(통권 11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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